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한국전쟁과 함께한 대한민국 공군 창건사를 다루었다.
'바우트'는 미군이 한국 공군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이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 공군 전력은 북한에 비하면 유치원 수준. 남한 군비증강이 자칫 북한을 자극하여 군비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군은 해방 당시 일본이 남기고 간 멀쩡한 무기들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고 한다.
전투기는 한 대도 없었다. 공군 훈련은 가관이었다. 연락기에 수류탄과 같은 폭탄을 들고 탄다 → 상공에서 수류탄 던지는 연습을 한다. 비행기가 아예 없던 시절에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이런 공격을 했다면 공격 당하는 적군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트기가 발명된 시절에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이런 공격을 한다면 웃겨서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미군은 마침내 남한 공군에게 전투기 보유를 승낙한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에서 맹활약했던 무스탕 F-51D 10대를 제공한다. 이들을 조종한 남한 조종사들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소속되어 미군과 싸우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만든 전투기를 타고 미국 비행기를 공격했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어제 적들로부터 무기를 받아 싸우게 되었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아니한가?
그 10명 조종사들은 무스탕을 타고 북한군을 공격한다. 이 작품에서는 전투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돼있다. 빨갱이들을 쏴 갈기며 마구 환호하고 있다. 끔찍하다. 동족상잔 비극을 꼭 이렇게 단순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을까? 매우 불만스럽다. 역경을 헤치고 대한민국 공군을 만들어낸 업적에 숙연해지다가 포연 남무하는 살상장면에 감정이 없어 소름이 돋았다.
작가가 아마 무기 마니아인가보다. 무기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알고 있겠지?
대한민국 공군의 탄생은 참으로 초라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로부터 광복을 한 지 불과 4년 만인 1949년 10월 1일에 '육군'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창설하였고, '전투기' 한 대도 없이 'L-4 그래스호퍼(메뚜기)' 10대, 'L-5 센티넬(보초/파수꾼)' 10대가 고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해방후 대한민국을 다스리던 '미군정'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남한의 무장을 극구 반대하였던 탓에 더 이상의 군비증강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1950년 1월에 'AT-6 텍산('건국기'로 불림)' 10대를 국민성금으로 들여오는데 성공했습니다. 허나 '건국기'는 전투기는 아니었고 '훈련기' 용도로 쓰던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찰'이 전부였고, 그나마 '폭탄'을 손으로 들고 던져서 활약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자 10명의 대원을 일본으로 보냈고, 거기서 미군에게 'F-51D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지원 받아서 겨우 '전투기'를 보유하게 됩니다. 비록 '제트기'가 아닌 '프로펠러기'였지만,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에 오히려 적합했었기에 나중에는 '연합군'도 '무스탕'을 몰고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물론 그러기까지 '한국 공군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고작 10대의 '야생마(무스탕)'로 말입니다.
허나, 대원들이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 했던 훈련은 고작 '30분'이었습니다. 대원 한 명씩 '이착륙'을 해본 것이 전부였던 셈입니다. 그리고서 바로 '현해탄'을 건너 대한민국 첫 공군기지인 '대구'로 갔고, 이튿날 곧바로 '출격'을 해서 전공을 세웁니다. 물론 대원들 전부가 '비행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일제시대에 '일본군 전투기(아마도 '제로센')'를 몰거나 '비행훈련'을 받은 대원들이었으나, 미군 전투기에 비해서 상당히 가벼운 기종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무스탕'을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고 전장터로 출격한다는 것 자체가 '애국심' 하나만으로 목숨을 거는 비행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2회 출격에서 비행경험이 가장 많던 '이윤석 대령'이 '표적고착(급강하 해서 공격준비를 하던 기체가 목표물을 처리하고 다시 상승해야 하는데, 낮은 상공에서 급강하를 할 경우 '무거운 기체'일수록 다시 상승하지 못하고 그대로 표적과 충돌하는 현상)'으로 전사하게 됩니다. 물론, 논란은 있습니다. 혼전중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급강하하는 대령의 전투기를 보지 못했고,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지상에서 불꽃이 보였고 망가진 기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북한군의 대공공격에 피격을 당하자 그대로 적진으로 돌진하였다는 증언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대한민국 공군의 10대의 전투기 중 1대가 희생되었지만, 이는 대한민국 공군 전력의 '10%'가 손실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국의 '헤스 대령'이 한국 공군의 비행 훈련을 책임지고 가르치게 됩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이렇게까지 발벗고 도와준 이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로써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2권'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당시 남한의 전세는 최악이었습니다. 서울은 이미 함락되었고, 대전까지 북한군이 밀고 내려온 상황에서 강원도 방면에서는 북한군 최고의 전력인 '2사단'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밀리는 와중에 대한민국 전투기가 '태극마크'를 날개에 달고서 하늘을 누볐던 것입니다. 전쟁 초기에 북한군은 '남한 공군'의 형편없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1차 출격 때에는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하다 큰 피해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군은 '남한 공군'에 대응을 하느라 잠시나마 남하를 멈춰야 했고, 대응 태세도 갖춰야 했습니다. 그러다 2차 출격 때 '이윤석 대령'이 희생 당한 것입니다.
당시에 어째서 이렇게나 어처구니 없는 전쟁에 무모한 참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건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과 맥락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남한은 미군정의 비협조 때문에 거의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반면에 북한군은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엄청난 무장과 병력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고작 '30분 훈련'에 '전장 출격'이라는 비논리적인 방법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국심 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위험요소'였습니다.
또 하나는 '이념갈등'이었습니다. '빨갱이'와 '반동분자'로 서로를 욕하며 갈등을 벌이다 벌어진 전쟁에서 '이북 출신'은 뗄 수 없는 꼬리표로 따라다니며 괴롭힘과 의심을 받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선 독립'을 위해서 일제와 싸우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는 동안에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념갈등'이 심해져서 '빨갱이'는 최고로 모욕적인 말의 대명사인데, 당시에는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거기다 미군으로부터는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던 대원들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불과 5년 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던 적이었는데, 일본군 출신 대원들을 '스파이'로 간주하며 '언제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한국 공군 대원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공군 기지'인 '바우트 원'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위대한 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출격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불안요소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일단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고 다짐하며, '기적'을 펼쳐보입니다. (2권에서 계속)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