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전공은 '철학'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전공도 철학이다. 천재 디렉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과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도 모두 전공이 철학이다. 우리는 가끔 전공을 철학을 선택하는 학생을 보며 '취업하기 힘들거나 쓸모 없는 학문이라고 치부한다. 이에 서강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신해철은 몹시 분개했다. 실제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인문학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출신자 대부분이 전공이 인문학이나 철학이다. 스타박스의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스타벅스가 갖고 있는 인문학 스토리 때문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른 전공과는 다르게, 철학은 경계가 애매한 학문이기도 하다. 찰학의 원래 이름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필로(사랑하다)와 소피아(지혜)의 합성어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일 뿐 명확한 구분이 힘든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지혜'라는 것은 경험이나 사고, 관찰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음 작용을 말한다. 때문에 지혜에 대한 연구인 이 학문이 포용하고 있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이 책은 데카르트, 헤겔, 칸트의 지혜를 빌어 지적생산술을 늘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대로, 누군가가 심오하게 사고하고 관찰하며 경험한 일들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으며 그것을 현실의 우리가 어떻게 학습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데카르트의 공부법인 자문자답 형은 학창시절 우리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우등생 학생이 하던 방법이었다. 가상의 학생 '철수'를 설정하고 얼른 배워서 철수에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학습하는 것이다. 1인 2역을 감당하다보면, 스스로 선생님이 되고 스스로 학생이 된다. 선생의 시선으로 가르쳐주다가 다시 학생의 시선으로 질문을 하고 다시 선생의 시선으로 알려주기를 반복하는 학습법으로 이 친구는 학창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칸트의 명상법으로도 알려진 산책도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걷기는 비단 '운동'이 목적 외에도 '명상'의 효과가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니체에 공감된다는 오가와 히토시(작가)의 감각은 나 또한 공감한 적이 있따. 그가 말하는 데로 피아노를 치는 것 처럼 워드 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할 때 음악을 작곡하는 것 같은 경험에 사로잡히는 일 말이다.
서르트르와 같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확실한 아웃풋은 앞서 말한 나의 학창시절 우등생 친구의 예시에 맞다. 인풋만 하는 건 스스로 자기 것이라고 받아드린 것이 아니다. 무조건 들어온 것에 대해 자기 해석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아웃풋 하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내가 독후감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독후감을 쓰지 않고 책을 읽는다면 분명 한권의 책이라도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권 수 만 차곡 차곡 쌓아가는 독서는 결국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창가를 보며 그 거리의 풍경을 암기하는 것과도 같다. 매일 차로 다니던 길도 다시 두발로 걷다보면 낯선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한번 발로 걸어보면 그 때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그 거리가 완전히 나의 기억 속에 저장된다. 때문에 나는 새로운 도시나 나라를 여행할 때 무조건 두 발로 이곳 저곳을 걸어본다. 또한 데리다의 영화공부법 또 매우 흥미롭다.
사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감동 받은 책의 저자를 만나고 몇 마디를 나누고 나면 실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데 작가의 방향 설정과 지식이 절대적으로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디테일한 지식들은 다른 글에서 발췌해 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머리에는 없고 책에만 적혀있는 지식 투성이들이 과연 그 작가가 얼마의 수명을 연장 시킬 수 있는지을 가늠케 한다.
때문에 학생이 아닌 사람도 반드시 공부를 해야한다.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글과 할 수 있는 말에도 차이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풍부해질 때, 우리는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철학이 있는 건 그 사람에 대한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감을 준다. 굳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되면 나쁘지 않지 않을까?
칩 히스와 댄 히스의 공저인 '스틱'에 있는 SUCCESS 법칙은 다른 책에서도 소개한 걸 본 적이 있다. 단순(simple), 의외(unexpected), 구체적(concrete), 신뢰(Credible), 감정(emotional), 이야기(story)이다. 예전에 학생을 가르칠 때, 명확하게 공부법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지만, 후에 발견한 이 SUCEESS 법칙은 참으로 명쾌하고 공감되는 공부법이었다. 그냥 무식하게 외우고 마는 암기식 공부는 지금 바로 보는 영어 단어 30개의 시험에서 10개냐 20개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이 어떤 인생과 사고를 만들어내는지는 관심 없는 공부법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법칙으로는 학업 외에도 인생에 필요한 공부에 도움이 된다.
영화 '기생충'에는 '무계획이 계획' 이라는 명대사가 있다. '실용주의'로 해석되는 프래그머티즘이 기생충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하다. 원래 불완전한 인생과 세상에 완전한 계획은 있을 수 없다. 결국은 영화처럼 무계획이 계획이다. 불안정성을 인정하다보면 결국 그 불안정성이 안정성이 된다. 적당한 타협점이 있어야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책에서는 글을 모방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꽤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 '이국종 님'의 '골든아워'는 김훈 작가의 문장력을 모방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김훈 작가의 문장력으로 읽는 이국종의 시선은 깔끔하고 딱 떨어진다. 그저 '의사의 에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시간 읽지 않았던 이 책은 읽고나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모방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모방이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필체를 닮으려고 하는 건, 그의 필체에 영향을 받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이는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나의 의지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쓰는 방식을 의식하며 글을 쓴다. 물론, 그게 누구의 글인지는 밝힐 수 없다. 나의 문장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비로소 나의 글에 부끄러움이 없어졌을 때는 당당하게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해가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 불안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지능 가질 지 언정 지혜는 가질 수 없다.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자료와 데이터도 필요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갈 방향을 아는 것과 다양한 삶의 경험과 관찰 그리고 그에 따르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인터넷의 익명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는 대학생이 묻고 초등학생이 답한다고한다. 대학생의 질문한 대학과제를 초등학생도 조금만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시기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마니 알고 있는가 보다, 어떤 지혜가 필요하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