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샤키야,홍성광 저
유시민 저
이주영 저
전국지리교사모임 저
강희정,김종호 등저
김경한 저
<<도시로 보는 유럽사>>
이 코로나는 우리의 발을 딱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묶어 두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었던 시절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 시절....
이렇게라도 작가와 함께 유럽을 여행해 본다.
세계사에서 중심을 차지했던 18개 도시를 방문해서 그 안에서 느끼는 여행 말이다.
작가는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하고, 떠나기 전에 한 동안 그 도시와 나라의 역사, 유서 깊은 건축물, 예술품들을 자세히 공부한다. 현지의 뉴스도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떠나 열흘 이상 그곳에 머무르면서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느껴본다.
이렇게라도 떠날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시들을 알아가며 좋아하는 도시가 늘어난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도시는 역사의 중심 무대이고 정치, 경제, 예술의 중심지로서 인간과 삶이 담겨 있으므로 발견하고 깨닫고 배우고자 하는 여행의 주요 동기 및 목적과 맞닿아있다. 이는 유럽의 도시들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유구한 사상과 문화, 심지어는 갈등과 대립마저도 유럽의 도시들에서 탄생하고 변화, 발전해 왔다.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은 역사를 알아야 제맛을 낼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 이 책은 유럽사 전반에 대한 훌륭한 교과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여행을 계획하게 도와주는 가이드로서 의미가 크다. 30여 년 동안 유럽을 다녀본 저자가 선별한 18개의 도시를 글과 사진으로 하나씩 탐방하는 시간은 한편의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내가 가 보았던 6개 도시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애정이 굳어졌다. 가보지 못한 (무려) 12개의 도시들은 끊임없는 '고민'을 안겨주었다. 혹시라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유럽으로 가는 길이 정상화된다면 어디부터 가야 할 것인지 리스트를 짜고 또 바꾸기를 여러 번 번복했다. 책을 마치며 일단 가장 유력한 여행 루트를 짜놓기는 했지만 이 리뷰를 적으면서 또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지 나도 예측할 수 없다. 여행의 방식은 이 책을 따르고 싶다. 역사가 탄생하고 깃든 장소, 역사적 인물의 흔적이 서려있는 장소, 도시의 특성을 십분 경 험할 수 있는 장소를 축으로 앎과 느낌의 여행을 하는 게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왜, 보고 배울 것인가,에 대한 완벽한 대답.
이 책은 1장의 아테네부터 18장의 프라이부르크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맞겠다. 서문에서 저자가 권하는 대로 '책을 처음부터 읽어가면 유럽 역사의 역동적인 흐름이 포착'되고 나아가 ' 한 도시와 국가가 점차 지구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과정도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발은 당연히 유의미한 역사의 첫 무대였던 '아테네'이다. 저자처럼 '세상의 복잡함과 어수선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득히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구미를 맞추어주는 영문으로 된 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라는 이 불친절하고 콧대 높은 도시에 매력을 느낀다. 매일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도 여행은 자유롭고 평안하다니 이 또한 무슨 매력이런가? 아테네는 고대의 도시이지만 그들이 꽃피웠던 민주주의, 과학, 철학 등의 학문과 예술이 오늘날 전 지구를 지배하는 현대 문명의 모체라는 점에서 '모두가 그리스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델로스 동맹으로 아테네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지도자 페라클레스 역시 군사와 외교면에서 롤 모델로 건재하고 있다. 그가 추진했던 '파르테논 신전'의 영향력은 더욱 영원성을 띤다. 수호 여신 아테나를 기리기 위해 피레우스 항구가 바라보이는 최고의 입지에 들어선 파르테논은 아테네를 대표하는 명소이지만, 로마제국 시대부터 그리스 내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전쟁과 침입에 순탄하지 않은 운명에 내몰렸다. 아테네가 스파르타까지 누르고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내력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중해가 가까이에 있으니 자연히 해상 무역을 넓혀간 줄 알았지 국토의 7할 이상이 산악지대인데다가 덥고 건조하여 자급자족이 안 되니까 지중해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엄청난 재정난에 허덕이고 탈세의 나라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아테네의 현재에도 불안의 요소가 있다. 중국, 미국, 독일 및 러시아 등이 그리스의 지정학적 가치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처지와 비슷한듯하여 어쩐지 마음이 간다. 아름답고 유서 깊은 역사의 산현장답게 옛 명성에 걸맞은 현대 국가로 재탄생 할 수 있길 바란다. 착잡한 기분을 걷어 들이고 여행 명소로서의 아테네에 눈을 돌리자. 아테네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역사 못지않게 저자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장소에 귀가 솔깃해진다. 파르테논 신전에 낮과 밤 모두 다녀와야 하고 호텔이나 식사할 곳도 되도록이면 신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 특별히 기대가 되는 곳은 '아나피오티카'거리인데 악사들과 카페가 가득하여 '낭만이 철철 넘치는 거리'라 한다. 꽃향기가 강렬하게 풍기는 것 같으며 작은 유리 술잔에 차게 마셔야 제멋과 맛이라는 그리스 특유의 술 '우조'가 궁금하고, 그리스 샐러드와 양고기 수블라키 같은 그리스 요리에도 호기심이 인다. 또한, 이 거리에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골목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맛보며 어슬렁어슬렁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테네의 구도심이 한눈에 펼쳐지는 스폿에 다다른다. 이 순간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직접 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 다음으로 고대의 영광을 재현하는 도시는 단연 로마일테다. 내가 만났던 로마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기에 앞으로 언젠가 한두 번은 더 보고 싶은 곳이다. 아예 로마를 출발점으로 삼고 중부 피렌체와 북부의 밀라노 및 베니스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여행을 기다린다. '영원한 도시' 로마는 1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로마제국의 자취를 맥맥히 간직하고 있다. 건축물, 도로망, 달력, 법률체계, 정치제도 및 종교적 면에서 '이 세상을 운영하는 기틀'의 발현지인 로마를 21세기에 유유히 여행하는 묘미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로마다움을 말해주는 역사적 명소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에스프레소만으로도 로마를 알 수 있다. 새삼 돌이켜보니 로마에든 이탈리아반도 어디에든 커피가 생산되지 않는다. 이슬람 제국의 음료를 지중해 교역으로 받아들였고 최초의 에스프레소 기게를 19세기에 만들어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라는 로마제국의 속담답게 이들은 장점을 수용하여 변화시키는 '실용'의 명수이다. 르네상스가 여기서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일 테다. 무솔리니의 독재 정권에 끝까지 맞섰던 안토니오 그림시가 남긴 "유기적 지식인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에도 실용정신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수많은 명소와 고유의 커피문화로 일 년 내내 전 세계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로마이지만, 사실 좋지 못한 이미지도 갖고 있다. 노련한 소매치기의 위험이 도사리는 '조심해야 할' 곳이면서 정치적 부패와 실업이 심하고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등 위태로운 요소가 많다. 이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의 뿌리를 콜로세움에서 발견한다. 로마제국 당시 소수의 지배층과 로마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민층 간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자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오락을 생각해냈다. 콜로세움을 비롯해 곳곳에 분수를 만들고 대형 공중목욕탕을 무료로 제공하다 보니 만성적 적자가 이어졌다. 양극화, 선심성 대중주의, 만성적자 등으로 로마제국은 사실 '중심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현재의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부정적 모습들도 쉽사리 사라지고 있지 않는 로마 제국의 그림자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와 세계의 곳곳도 이 위험한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로마에는 다시 가야 한다. 판테온, 포로 로마노, 성탄젤로 성 등 그 위용에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던 유적들을 다시 마주해 보아야 한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이 불안한 현재를 안고 나가는 모습 속에서 한층 더 성찰적인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북부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스톡홀름도 매력적인 도시이다. 14개의 섬을 57개의 다리로 연결한 모습이라니 상상이 안된다. 스톡홀름은 사나운 바이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문화와 예술적인 면에서 부드럽고 우아하다는 인상을 준다. '세상에서 가장 긴 미술관'이라 불릴 만큼 지하철역이 아름답고 스톡홀름 시청과 도서관마저 '아름답다'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도시 전역에는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하고 대성당과 동물 정원 및 여러 '왕립'으로 시작되는 장소들이 이 도시가 북유럽의 전통적 강자임을 증명해 준다. 물이 없는 곳에는 기름칠한 통나무를 이용하여 용선을 밀고 수십 킬로미터를 내륙으로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전설은 이케아가 담고 있는 협동의 정신에 남아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내포하고 있는 여성의 동등한 권리 옹호 역시 부족장이 부재할 때는 부족장의 아내가 전권을 행사했다는 바이킹의 전통을 닮았다. 이런 협동과 평등 정신은 혹독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까지 진출했던 바이킹의 진취성과 한데 어울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복지제도를 낳았다. 아바 ABBA의 유쾌한 노래를 들으며 스톡홀름의 곳곳에 자리한 문화예술의 장소들을 다녀보고 싶다. 바이킹의 전설 속에 소박하고 우아하게 건재하고 있는 이 도시를 직접 볼 수 있다면 혹독할 날씨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독특한 위치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얻으면서도 가차없는 어려움을 당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 때부터 시작하여 제4차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튀르크에 의한 파멸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역사는 너무 복잡하다. 역사의 굴곡을 목격하면서 화재와 파괴를 당하고 여러 종교를 거치며 존립의 성격이 뒤바뀌었던 히기야 소피아 대성당의 운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동서양 교역의 철옹성 같은 입지를 믿고 인도에서 들여온 향신료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가 유럽에는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하는 동기를 부여했지만 정작 자신은 쇠퇴하는 모순을 낳기도 했다. 또한 오스만튀르크의 이슬람 세력은 당시 대부분 기독교였던 학자와 예술가들이 대거 이탈리아로 이주하는 빌미를 제공하여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유럽에 새 시대의 서막이 오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이스탄불은 한층 더 역사의 후미로 들어앉게 되었다. 동서양의 교류를 촉발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일조한 비단길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현재 이스탄불로 불리는 이곳의 상징인 된 '히기야 소피아 대성당'의 기이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은 가보고 싶다. 터키 블루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담담한 모습으로 지난날의 영광을 추억하고 있을 이스탄불, 유럽의 어디로 넘어가는 스톱오버의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찾아봐야 할 곳이다.
나는 왜 아직까지 베니스에 가보지 못했을까? 이 책에서 '자유로운 공기가 지배하는 도시 공화국이자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모험의 출발지'이자 '자유로움과 모험정신이 현재진행형인 곳'으로 묘사하는 베니스의 매력을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 '모래톱 위에 수백 수천만 개의 기둥을 박아 그 위에 화려한 석조건물을 얹었고 400여 개의 다리로 섬과 섬을 종횡으로 이었'다니, 정말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도시가 맞나 싶다. 17세에 중국을 찾아 17년간 체류하다가 돌아와 『동방견문록』을 써서 콜럼버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마르코 폴로의 도시이다. 또한, 계몽주의의 연장선에 서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뛰어난 상상력으로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쉴 새 없이 발현했던 '미지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험한 대단한 모험가'로 재인식되고 있는 '지아코모 카사노바'의 도시이다. 베니스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상징하는 곳이다. 카페 플로리안, 산마르코 대성당, 리알토 등 명소와 '음험하기조차 한 색채미의 향연'인 가면 행렬,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세계적인 행사로도 베니스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베니스'의 상인일까? 오늘날의 베니스를 있게 한 주인공은 바로 자유-용기-모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상인들은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국을 선택하여 과두정치체제로 베니스를 운영하면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겨룰 정도의 힘을 키웠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도록 계략을 꾸미면서까지 동지중해의 강자 자리를 지켜나갔지만, 오히려 이 독주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촉발하여 서서히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면서 향신료 가격을 대폭 인상한 것은 베니스 상인의 중간이득을 감소시켰고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오스만 제국과 무력 대결을 펼치면서 더 빨리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로마교황이 주도한 견제세력인 '캉브레 동맹'이 압박을 가해 오고 흑사병까지 발생해 인구가 반으로 줄어드는 등 베니스는 모든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이때도 베니스 상인들은 유리공예. 명품 가죽 상품, 고급 융단을 생산하여 재건을 꾀했으나, 나폴레옹 1세의 침공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유럽의 베네치아 화파가 그린 그림을 보면 산마르코 대성당 앞에 펼쳐진 바다는 옅은 에메랄드빛이다. 베니스를 본거지로 활동한 비발디의 '사계'는 화려하면서도 우울하고 애처롭다. 곤돌라 사공이 멋들어지게 불러주는 노랫소리도 청아하지만 어떤 서글픔이 베여있다. 지금에야 발 디딜 틈도 없이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통에 밤낮 소란스럽고 관광 특별세도 물리는 불친절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모험과 자유정신을 따라 이어져온 역사를 따라 구석구석을 발로 다녀보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브뤼헤에 관심을 갖지 못할 거였다. 네덜란드 화가 '대 피테르 브뢰헬'의 이름과도 헷갈리고 브뤼셀을 다르게 발음하는 건가 제멋대로 착각도 하면서 이 도시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지 않았었다.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유럽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도시라 하는데,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어 발전할 여력이 없었기에 옛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겠다. 운하의 위력에 힘입어 13~14세기에 부유한 상업도시가 되었지만, 정말 희한하게도 15세기 말 토사가 쌓여 북해로 가는 바닷길이 막히는 바람에 황금시대가 끝나버렸다. 중세 이후 여러 번 물길이 막히고 트이고를 반복할 때마다 도시의 행운과 불행이 교차했고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온 유럽이 활기를 띠던 19세기까지도 브뤼헤는 답보상태였다. 『죽음의 도시 브뤼헤』라는 책이 유럽인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중세의 모습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쇄도하면서 도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더욱 다행스럽게도 1907년에 다시 북해와 연결되면서 도시 경제가 회생 가도에 올랐다. 이 특이한 자연환경에 좌우된 역사 외에도 '그뢰닝 미술관'을 필두로 플랑드르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얀 반 에이크나 히로니뮈스 보스 등 과감하고 도전적인 세계관을 지녔던 화가들이 이 지극히 중세적인 도시에 어떤 그림을 남겨 두었는지 궁금하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브뤼셀을 간 다음 여기서 당일치기라도 브뤼헤를 다녀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나 갈 수 없다고 선을 그어놓지는 않겠다.
이 책에서 프라하를 읽다가 3년 전 프라하 여행 때 찍은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기대가 컸던지 비교적 담담하게 둘러보았던 기억이 나면서 좋은 것을 많이 놓쳤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황혼 녘에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던 블타바 강 (또는 몰다우 강),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며 바라보았던 주황 지붕들, 투명한 햇살 속의 그림 같은 프라하를 거느리고 있던 파란 하늘... 프라하의 어여쁜 색채를 기억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카를교'를 비롯해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와 널따란 바츨라프 광장 일대를 다니면서 다소 어둡고 질서정연한 깔끔함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얀 후스'에게서 이어져 내려오는 프라하만의 저항 정신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프라하의 봄'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도시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항쟁은 15세기의 성직자로서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했던 '얀 후스'에게서 비롯된 일명 '후스 사상'을 토대로 한다.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의 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린 이래로 종교전쟁, 히틀러의 나치 독일의 침입, 소련의 간섭을 받아 공산권에 편입, 공산체제 붕괴 이후 체코 공화국으로의 독립 등 뼈아픈 역사를 통과해올 수 있었던 것도 자유를 위해 끝까지 저항하는 후스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한복판인 개혁 광장에 검은 석상으로 우뚝 서 있는 얀 후스를 제대로 몰랐기에 나의 첫 프라하 여행은 반쪽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퉁명스럽고 (감사 인사를 열심히 해도 이렇다 할만 대꾸 없이 그냥 억지스러워 보이는 미소만 짓던 몇몇 프라하인들이 떠오른다) 좀 귀찮아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던 프라하인들도 어쩌면 내가 그들의 역사적 사연을 몰랐기 때문에 내 편에서의 일방적인 오해였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좀 더 자세히 프라하의 역사를 배워 진짜 프라하를 다시 만나야겠다.
마드리드를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예술의 도시'라고 칭송하는 것을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프라도 미술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티센 미술관이 서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고 각 미술관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포함하여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프란시스 고야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 화가들의 걸작들을 다수 전시하고 있다지만, 마드리드를 직접 다녀보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게다. 여러 이민족의 통치를 받다가 급기야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은 험난한 역사와 콜럼버스가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신대륙을 압제한 역사가 먼저 떠오른다. 침략 받은 자의 고통을 충분히 알 텐데 잔인한 약탈을 일삼으며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말살시켜버렸다니, 상당한 모순이다. 이슬람 제국을 완전히 몰아내려는 국토 회복 전쟁 '레콩키스터'를 오랫동안 치르고, 유럽의 종교개혁에도 뛰어들었고, 잔혹한 마녀재판과 유대인 학살을 일삼았고, 스페인 내전까지 일으켰던 점들로 보아 마드리드는 상처에 이력이 난 도시가 아닐까 싶다. 한편, 마드리드가 아니고 바르셀로나이기는 하지만 나는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별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건물 안팎의 현란한 무늬들과 장식이 과도하게 느껴져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짐작해보면 '기하학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애정'이 나의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이런 스페인의 '사물에 대한 기하학적 인식이 역사에 어둠'을 가져온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철저한 카톨릭 수호 국가로서 감시와 통제가 심하고 엄격한 종교재판을 자행하다 보니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말하는 대신 은유와 상징을 선호하고 추상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는 기하학적 문양의 속성과도 잘 들어맞아 이 사람들은 건물의 외관까지 기하학무늬로 장식할 만큼 기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 사물을 그대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기술하기를 거부하는 습성이 굳어져서 마녀재판이나 유대인 혐오 및 내전까지 촉발되었다는 논리의 전개가 신선하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어보면서 스페인의 기하학 사랑을 이해해본다면, 마드리드 전체가 실로 매혹적인 예술의 도시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및 빌바오를 잇는 스페인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유롭다'로 소개되는 도시 암스테르담, 내게는 5월 초에도 겨울바람이 골목마다 불어닥치는 곳이었다. 그래도 '자유롭다'를 대입하려 시도해보니 경쾌했던 호텔 직원들과 운하와 바다를 따라 자전거를 씽씽 달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17세기 유럽 최강의 해양국가였다던가, 일본에까지 진출하여 막부 정권의 유일한 교역국의 지위를 얻었다던가 ( 네덜란드를 연구하는 '난학'이 생길 정도로 일본은 네덜란드에 심취했다), 종교-장치적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던가, 보험업이나 증권 시장 등 자본주의의 진정한 원산지였다던가... 여러 사실로 보건대 암스테르담은 분명 남다른 개척과 개방의 정신을 가진 도시이다. 하기야 국토의 4분의 1을 바다에서 건져올렸던 근면하고 도전적 나라가 아니던가.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20대부터 죽을 때까지 그린 100여 점의 자화상이 남아있다) 렘브란트가 인물의 개성과 심리 포착에 탁월했으며 고객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눈에 비친 대로 그리기를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세상의 풍조와 영합하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 정신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이 지닌 자유의 정신이라면 철학자 스피노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저서가 금서로 지목되고 암스테르담에서 추방당할 정도로까지 그는 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며 신에 대한 자신만의 자유로운 사상을 고수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안정보다 학문적 자유를 중시했고, 세상의 비판과 유혹 속에서도 오로지 '자유를 향한 지적 탐험을 포기'하지 않았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물론 암스테르담의 자유와 관용 및 개방 정신에도 한계는 있다. 프랑스, 스페인 및 포르투갈로부터 박해를 받던 개신교들과 유대인들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 주었지만, 20세기 초 식민지로 삼았던 남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자비한 인종차별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사실 나도 가장 노골적인 (인종)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곳이 암스테르담의 한 미술관에서였다( 그래도 이런 몰상식한 인간은 한 명에 불과했으니 뒤끝은 남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이 종교전쟁을 하며 종교화를 그릴 때 자신들은 일찌감치 종교 대립을 마무리하고 풍속화를 그리고 있었던 암스테르담, 수십수백의 운하가 길을 끊어버리지만 널따란 잔디공원을 만들어 유수의 미술관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암스테르담, 자동차 산업도 없고 (하이네켄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만한 대형 기업이 없지만 독일보다 평균 소득이 앞서는 네덜란드, 머리를 얼게 하는 찬바람이 불지 않을 계절에 다시 찾고 싶다. 단 며칠이라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많이들 좋아하는 두 도시 런던과 파리도 이 책에 있다. 나에게 이 두 도시는 각별하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듯 런던과 파리 사이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 한 도시를 건너뛰는 여행에서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런던은 첫 목적지이고 파리는 최종 목적지가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듯 왜 이 두 '평범하게 인기 많은' 도시에 이토록 매료되어 있는지는 형언할 길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니 남들도 많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인지 이 책에서 다소 실망했다. 많은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간단하게 훑고 지나가 버리니까 말이다. '런던보다 더 근대 제국의 위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시는 없다', '가장 세련된 현대적인 도시이면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 절로 우러난 품격 높은 곳','예나 지금이나 세계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곳', '마치 한 편의 멋진 성공 신화'라고 런던을 잘 표현하고는 있다. 영국의 합리성과 실용성이 드러나 있는 셜록 홈스 박물관과 그리니치 천문대, 의회 정치의 산실로서의 런던, 영국 국교회의 상징이자 위인들의 무덤을 찾을 수 있는 웨스터민스터, 금융자본가들의 터전인 런던 시티를 설명한다. 대영제국으로 눈부신 부상을 했던 19세기의 상황도 요약이 잘 되어 있고, 런던 대화재를 계기로 런던의 경관을 변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크리스토퍼 렌 경'에 대한 얘기도 담았다. 그러나, 런던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나 예술과 도시재생에 있어서의 발전상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비교적 적은 분량으로 런던을 끝내버리고 있어 아쉽다. 파리도 '시민이 주인인 도시'로 접근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오늘날까지 파업과 시위가 성행하는 도시이다)를 잠시 말한다. '특정 종교기관에 그치지 않고 1천 년 동안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의 총체가 응축된 역사의 현장'이라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자세히 알려준다. 고딕 건축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을 갖추고 있으며 바로크 시대와 19세기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예수의 가시관 일부와 십자가에 못 박혔던 못을 성물로 보관하고 있다). 16세기 종교전쟁 때부터 가장 최근인 2019년 4월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반복되어 온 훼손과 복원의 역사를 순서대로 정리해 준다. 인물로는 '루이 14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7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를 유럽의 최강국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베르사유 궁전 건립이나 화려한 대중행사로 재정 적자를 초래했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했지만 카톨릭 교회를 탄압했고 전쟁광이었다. 파리를 '빛의 도시'라 부르기도 하는데 루이 14세가 범죄를 줄이기 위해 한밤중에도 도심을 밝히도록 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몽마르트르,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라데팡스 등등 대표적 명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더듬는 부분도 없어서 파리의 너무 적은 부분만 담겨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런던과 파리는 너무 유명하고 너무 알려진 것도 많다 보니 아마 '직접 가보는 것이 최고'라는 의미에서 간단히 둘러보는 것으로 끝낸 것 같다. 책의 몇 페이지로 담아 내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아름다운 곳이 런던과 파리 아니겠는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로서 음악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고, 삶의 질이 매우 높으며 (주거비용과 교통비가 저렴하며 공기와 물의 질이 높다), 9년 연속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도시로 선정된 곳은? 바로 비엔나이다. 무엇보다도,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 및 사회 문화면에서 근대화를 이끌었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알아야 한다. 경쟁국 프로이센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결혼정책으로 프로이센을 고립시켰던 (프랑스 루이 16세의 불행한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제의 막내딸이다) 여제는 다방면의 개혁을 단행하여 전성기를 이끌었다. 아들 요제프 2세도 대를 잇는 성공적 개혁을 실시하여 비엔나를 최고의 근대적 도시로 굳혔다. 비엔나의 역사에 위기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되었다가 패전하여 합스부르크 왕가가 해체되는 결과를 맞았고, 히틀러가 독일에 편입시킨 바람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범국가로 주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중립을 선포하여 주권을 회복한데다가 국제 원자력기구 같은 주요 국제기구가 둥지를 틀면서 국제무대의 중심으로 재부상했다. 비엔나에는 클림트와 프로이트 같은 역사적 인물도 있지만, 비엔나커피, 자허 토르테, 비엔나 슈니첼 등도 비엔나의 세계적 명성에 큰 역할을 한다. 비엔나커피의 원래 명칭은 '아인슈페너'이고 이는 마부가 들고 마시는 커피에서 유래했으며 지금은 '멜랑쥐'라고 부른다는 깨알 정보도 챙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 자허의 발명품인 디저트 '자허 토르테'는 실로 입안에서 살살 녹아든다. 저자가 비엔나에 부제로 달고 있는 '아직 살아 있는 구체제의 영광'을 나도 비엔나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링슈트라세 주변에 도열하고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유물들이 오늘의 비엔나에 과거의 덮개를 씌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에 젖어 아예 오늘을 잊고 싶어 하는 일종의 처연한 우수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너무 비관적일까? 옛날 차림을 한 마부가 이끄는 관광객용 마차 '피아커fiaker'가 비엔나의 한복판을 덜커덩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영광을 결코 놓지 않으려는 집착 같은 것을 발견했다. 이 책에서는 말해주지 않지만 나에게 가장 좋았던 '비엔나 박물관 지구 Museum Quaters'에서 종일을 보내고 프로이트, 베토벤, 클림트, 모차르트의 궤적을 좇아 한가로이 거니는 시간들을 다시 가져보고 싶다. 쇤부른 궁전의 언덕 '글로리에뜨 Gloriette'에 올라 멋진 비엔나의 전경을 무대 삼아 비엔나커피를 마시는 것도 잊지 않겠다. 이곳 카페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늦은 오후에서 해 질 무렵으로 이어지는 비엔나의 낭만은 배가 될 것이다.
취리히는 올해 5월에 갈 계획이었지만 못 가게 된 곳이라 이 책에서 애절하게 다가왔다. 내 눈앞에 왔다가 금세 사라져버린 신기루이듯 강렬하게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써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26개의 칸톤으로 분할되어 있고 공용어도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망 슈어로 제각기인데 어떻게 스위스는 결속력이 강한 연방 국가로 살아갈 수 있는가? 칸톤을 중심으로 청원과 주민 투표로 이루어지는 직접 민주주의가 답이다. 이런 혁신적인 생활방식은 아마 취리히의 종교개혁을 주도한 울리히 츠빙글리와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혁명이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던 이 두 사람은 각각 종교와 교육 분야에서 개혁을 주도했다. 인구 400만이 사는 취리히에는 50여 개의 박물관과 200개가 넘는 미술관과 화랑이 있다 하니 과연 문화와 예술의 도시답다. 최고가 화폐인 1,000 프랑의 앞면을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차지하고 있는 등 화폐에도 모두 예술가가 등장한다. 취리히는 경관 또한 수려한데 시내에 크게 자리한 취리히 호수가 있고 곁에는 리마트 강이 흐른다. 유서 깊은 명소도 도심에 즐비한데 호수와 강을 따라 쭉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로뮌스터 대성당, 로마시대의 성터로서 시가지를 내려다 불 수 있는 린덴호프, 중앙역에서 호수까지 1km에 이르는 쇼핑거리 반호프 슈트라세, 절반이 차 없는 거리인 리마트 강 서편 신가지 등 도보로 다녀볼 만한 데가 많다. 축구 박물관인 피파 박물관, 시계 박물관, 취리히 미술관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취리히 여행을 계획할 때 망설여졌던 점이 하나 있다면 살인적인 물가였다. 여행객으로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이지만, 현지인들은 어떻게 이런 높은 물가를 견딜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임금도 매우 높고 고용률은 무려 80 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세율이 낮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정착했으며 이는 여러모로 취리히 시민들의 질적 생활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은 취리히 시민 중 5.4 퍼센트가 백만장자라 한다! 무엇 때문에 취리히는 이렇게 부유한 걸까?(세계에서 세 번째의 부자 도시임) 검은 돈의 온상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지만 스위스은행을 비롯해 세계 금융 산업의 중심지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원래부터 금융에 강한 도시가 아니라 직물업, 염색공업, 중화학 공업, 생태복원 사업, 시계 정밀산업 등 세계정세 변화에 맞게 핵심 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해 온 결과이다.뛰어난 자연 경관, 무수한 예술과 문화, 세계 일류 산업, 혁신적 역사 등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문제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명품 도시'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오가다가 '카페 오데온'이나 강가의 레스토랑에서 여유를 가지면서 이 부유한 도시의 진면목을 만나고 싶다.
'베를린 루프트 Berlin Luft'라는 말을 이 책에서 처음 들었다. 현대 도시인데 어째서 공기가 맑다는 걸까? 넓은 숲과 호수가 있고 내륙이면서 동시에 바다와도 통하게 하는 슈프레 강과 하펠 강이 있어서란다. 유대인 학살의 암울한 잔영이 남아있는 어두운 분위기의 도시, 철혈재상이라 불리었던 비스마르크를 닮아 딱딱하고 무미건할 것 같은 도시, 프랑스와의 오랜 대립을 상징하는 파리 광장과 브란데부르크문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만한 명소도 없을 것 같은 도시... 이렇게 나는 베를린에 대해 적잖게 부정적이었다. 독일은 간다면 전혜린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뮌헨을 생각했을 뿐, 베를린은 정말 끌리지 않는 도시였다. 그러나, 도심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도시인데다가 5개의 대형 박물관이 모여있는 박물관 섬이 따로 있는 도시라 하니 흥미가 생겼다. 프랑스와 경쟁관계이었지만 프랑스의 학문과 계몽사상을 수용했던 프로이센 왕국의 이야기도 베를린의 개방성과 적극성을 알게 해 주었다. 프로이센 왕국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궁전 '성수시 sans souci'가 있고 우리와도 역사적 관련성이 있는 포츠담이 베를린 근교에 있고 매우 아름답다고 하니, 두 곳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코펜하겐에서 '인어공주 상'을 보면 확실히 실망한다,라는 말은 근거없는 낭설일 것이다. 비록 80cm에 불과하고 이렇다 할만한 장식도 없다지만 어쨌든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직접 본다는 즐거움은 사소하지 않을 테다. 이 책에 따르면 '작은 것'이야말로 덴마크를 잘 살고 행복한 나라로 만든 강점이다. 낙농업으로 시작했으나 전 세계적인 장난감 레고를 만들어냈고, 3면이 바다인 지리적 조건에서 세계적 풍력발전을 탄생시켰고, 인슐린의 주산지로서 의약업도 일류 대열에 있다. 우리처럼 '작고 천연자원도 없는 나라'이지만, 우리와 달리 '소국에 어울리는 가장 현명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산실'로 자리 잡았다. 구시가지에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포함하여 여러 궁전이 있지만 대부분 시민들에게 양도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다. 칼스버그 맥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뉘 칼스버그 박물관'과 근처의 칼스버그 양조장 및 안데르센의 자취가 남아있는 뉘하운 운하는 워낙 유명하므로 들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처음 듣는 덴마크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이 건립한 '토르발센 미술관'도 꼭 가보고 싶다. 로마에 매력을 느껴 무려 40년을 로마에서 체류했으며 이에 당연히 영향을 받아 신화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자신의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로마 체류 때 현지에서 수집한 예술작품을 모아 미술관을 남겼다니 멋지다. 코펜하겐의 '대리석 교회'라 불리는 '프레드릭 교회'에서는 키르케고르의 동상을 만날 수 있겠다. 그는 이미 19세기에 '서구 근대문명이 시민의 평균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인의 주관과 독자적 신앙을 강조하며 제도권 교회를 비판한 점은 20세기의 무교회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펜하겐의 또 다른 명소로 알려진 '구세주 교회'에서는 19세기 덴마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니콜라스 그룬트비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목사, 저술가, 사회개혁 운동가 및 정치인으로서 다방면으로 활약했던 그는 소농의 권리를 대표했고 특히 시민학교의 한 종류인 '폴케호이스콜레' 운동을 펼쳤다. 역시 코펜하겐도 선구적인 몇몇 인물의 활약으로 그 역사가 더욱 발전했던 도시였던 게다. 코펜하겐을 걷고 있을 어느 날, 나선형의 첨탑이 독특하게 아름다운 '구세주 교회'의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면 코펜하겐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과거 한때에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체제가 무너지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분위기에서 허풍이든 실효성이 있든 과거의 힘을 되찾겠다는 한 정치인이 출현했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철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시민들도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내가 모스크바에 대해 탐탁지 않은 의견을 가지는 이유이다. 붉은 광장, 크렘린 궁전, 상트 바실리 대성당에 대해서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볼쇼이 극장을 비롯하여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어떤 모습인지, 매우 아름답다는 지하철은 어느 정도로 아름다운지 보고는 싶다. 푸시킨이나 막심 고리키의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하지만 마피아 사회이며 60명의 대부호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이야기에 다시 거부감이 든다. 우리도 걱정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가 모스크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세계 최강의 나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는 외치는 푸틴과 이를 싫어하지 않는 시민들, 그 사이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의 특수층... 허물어졌다가 재개를 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부조리라고 봐야 할까?
스트라스부르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하늘을 찌르는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닐까?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찾아올 만큼 유명했던 판화 작가 '마르틴 숀 가우어'의 도시이기도 하고, 구텐베르크가 독일어 성경을 인쇄할 만큼 이곳은 출판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프랑스 치하에 있을 때 왕을 대신해서 이 도시를 지배했던 '로앙 가문'이 남긴 '추기경의 저택'도 현재 3개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1869년부터 1946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독일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각종 다툼과 전쟁 때문에 그 소속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수없이 오가야 했던 비운의 도시였다. 반면에 14세기 흑사병이 돌 때 유대인을 주범으로 몰며 심각하게 박해한 도시였기도 하다. 여러 전쟁과 부침을 겪어서인지 사상면에서도 매우 강한 성격을 띤다.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소유가 개인의 자유를 확대시킨다고 주장했고, 스트라스부르 대학교는 『비참한 대학생활』이라는 유인물을 제작하여 자본주의가 사회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내세웠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 주장들 덕택에 돈과 자본주의의 단점으로 멍들어가고 있는 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어설픈 위로를 받는다. 전쟁과 대립의 역사로 점철된 스트라스부르는 그만큼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 터라, 유럽회의나 유럽 인권 재판소 같은 통합을 모색하는 기관들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인 것 같다. 프랑스이면서 독일 같은 분위기가 가득하고 대립과 화해의 모순적 역사를 절절히 목격할 수 있으면서 끈기와 중용을 체험할 수 있을 스트라스부르, 이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궁리해본다.
시내의 대기가 쾌적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자동차가 없는 삶을 실현하고 있고, 시내에서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어 있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종일 회전하는 원통의 3층짜리 목조주택(헬리오트로프)을 볼 수 있고, 사유지에는 저에너지 건물만 짓기로 시민들이 결의했고, 도시 곳곳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도시라면 '미래'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나, 이 도시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라는 이름으로 현재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이 특이하게 돌아가는 도시는 결연한 의지가 생명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지만 종전과 더불어 폭격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남아있던 프랑스군이 독일의 재통일을 기점으로 물러가자 그들의 병영이 있던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보봉 포럼'이라는 시민단체를 결성하여 '지속 가능한 모범 지구'의 건설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녹색당의 본거지로 자리 잡았고 태양광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생태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에는 녹지공간이 풍부하고 흑림(슈바르츠발트)가 울창하며 '베힐레'라 불리는 작은 개울들이 그물망처럼 오밀조밀 퍼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도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똘똘 뭉친 요정들이 사는 동화의 나라 같기도 하다. 이 도시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알버르트 루드비히 대학이 있고, 유명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말을 들으니 비로소 도시 전체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이상적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대학도시답게 의식 수준이 높고 '자연환경 보존을 의무로 자각'하는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이 도시에서 청정의 맑은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작은 개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심 속의 숲길을 걸어본다? 내 존재 저편의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일지 나에게는 접근이 불허된 먼 미래를 미리 만나고 있는 것일지 지금으로선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려 30여 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역사와 문화를 깊숙이 들여다본 역사가가 쓴 유럽 도시 이야기... 『도시로 보는 유럽사』는 내가 유럽 도시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과 소망을 완벽하게 구현해 놓은 책이다. 지금처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전 지구적 난세에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뼈를 조여오는 괴로움과 다름없었다. 저자가 선별한 18개의 도시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고 내 마음에는 쉴 새 없이 흥분이 일었다. 처음에는 모든 사진이 흑백으로 되어 있어 실망했는데, 저자의 투명한 수채화 같기도 하고 선명한 유화 같기도 한 문장들을 읽으며 이 사진들에 내 나름의 색채를 덧입혀볼 수 있어 즐거웠다. 이 사진 속 장면들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내가 상상한 색깔들과 얼마나 일치 또는 불일치할까, 상상하는 행복이 크다. 내가 이미 보았던 곳의 사진에는 추억 속 색채를 얹으며 그리움에 젖어 보았다. 마치 학창 시절의 세계사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 각 도시마다의 역사를 정리하고 중얼거리며 흡입하려 했다. 18개 도시 곳곳에 가보야 할 곳이 이렇게 많은데 어느 세월에 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증폭되는 열망이라는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이 책에서 배운 역사와 도시를 잘 간직하며 실제의 현장에 서게 될 그 어느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다. 이 책에서 이 도시들을 만난 감흥을 정리해놓고 관련된 책들을 더 읽어보는 것으로 나의 그랜드 투어는 이미 시작되었다.
역사의 광채아래 찬란히 빛나고 있는 이 18개의 도시들이 모든 사람의 여행이 되면 좋겠다.
*** 이 글은 예스 24 리뷰어 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 진심과 즐거움으로)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