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글과 책, 저자와 독자, 의미와 상품, 도덕과 시장의 길항으로 움직이는 출판시장의 원리를 내 방식대로 조금씩 파악했다. --- p.12
“웬만한 책은 반드시 구입해서 만져요. 돈 많이 들죠. (웃음) 근데 안 만진 사람은 모르는 거거든요. 일단 제 돈을 들여 사본 사람만이 아는 거거든요. 일단 제 돈을 들여 사본 사람만이 아는 거거든요. 기다 아니다 판단하려면 반드시 사서 손에 쥐어 봐야 해요. 책에 있어서 전 감보다는 손을 우위에 둬요.” --- p.51
“말로 안 나오면 글로도 안 나와요. 말해보는 게 중요하죠. 많은 분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글 쓰는 일이 녹록지 않은데, 저도 계속 쓰려고요. 쓰는 삶이 주는 맛을 알아버렸어요.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출발했지만 타인을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p.88
“번역의 노하우라는 게 사실 전달이 잘 안 돼요. 책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언어인데, 원칙으로 정리가 불가능하죠. 제 생각에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출판 번역만은 대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출판 번역은 평균적인, 최적의 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의외의 수, 다른 사람이 쓰지 않는 산뜻한 표현을 찾는 과정에 가깝거든요. --- p. 119~120
“이윤 추구가 1번이에요. (웃음) 다른 사람들 욕망에 충실한 자기계발서 같은 책도 내보고, 또 제가 가진 가치나 정서와 묘한 어긋남이 있는 저자라도 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저자라면 같이 책을 내보고 싶어요. 큰돈을 벌어들일 베스트셀러를 만들겠다기보다는 손해 안 보는 책, 회사에 적절한 이윤을 안겨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고요. --- p.143
“아이 낳으면 경력 단철 여성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키우면서 밤샘 작업이나 급한 작업을 진행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출판계가 여성들이 많은 여초 사화인데도 여러 가지 면에서 보수적이에요. 노골적으로 남성 디자이너가 편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어찌 보면 배려가 배제가 되는 거죠.” --- p.182
“제작비를 줄이는 게 제작자의 임무라지만, 출판사만 생각하고 무조건 제작비를 낮추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거래처도 힘들죠. 일의 양이 확 줄고 인건비는 올라가고요. 인쇄 시장이 제 살 깎아먹기 많이 해요.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 다른 업체보다 100원 싸게 해주는 식으로 경쟁하다가 나중에 문을 닫기도 하거든요.” --- p.205
“사람들이 읽기 활동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하죠. 읽기는 읽되 책이 아닌 다른 형태로 소비해요. 페이스북으로 읽고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본인의 취향에 따른 채널로 콘텐츠를 봐요. 그렇게 같은 취향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책을 알리는 일을 마케터가 하는 거죠.” --- p.228~229
“신간 미팅은 MD에게 가장 피곤한 일이죠.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업무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근데 제가 아는 한 모든 MD는 신간 미팅을 즐겨요. 신간을 만날 때 기대감, 그 책의 판매를 그려보는 즐거움, MD라는 일의 근원적인 즐거움 중 하나예요. 책이 판매되는 즐거움 못지않게 신간을 누구보다 먼저 만나본다는 즐거움이 커요.” --- p.263
“독자한테 희생을 강요할 순 없어요. 저도 서점 열기 전에는 웬만하면 동네 책방에서 사자고 하면서도 책을 사면 들고 갈 짐이 많아지니까 메모했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사고 그랬거든요. 근데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 서점인들이 책을 고르고 구비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는지 알게 되니까 이게 얼마나 속상한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 p.305~306
“1인출판사나 출판계 종사자를 다루는 방식이, 뭔가 전체 세계에서 특이한 지형에 있는 사람들, 약간의 독립군, 불리한 위세에서 돌파해내는 무엇처럼 묘사되는 거, 저는 별로거든요. 서점에 가면 제 책이 문학동네 책이랑 똑같이 경쟁을 하잖아요. 불리할 것도 없고 유리할 것도 없죠. 그런데 불리함을 기본 설정값으로 해봐야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 돼요. 저는 큰 데만큼은 잘 못 팝니다만 하실래요? 그래요.”
--- p.32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