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 그리고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지 명확히 그리지 않고는
아무도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칼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줕 타는 곡예사는 자신의 행위가 예술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만 사실 마음속
으로는 떨어지지 않고 성공적으로 줄 반대쪽에 도달하기만을 바랄 뿐이거든요.
그게 눈에 뻔히 보여요. 부모도 그런거죠.”(page.177)
부모가 된다는 건 추적하는 거다. 다음번 움직임을 더 이상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아이가 너무 앞서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page.207)
[감상]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위해 유전자를 수정하여 태어난 아이 안나는 출생 후 언니
케이트에게 필요한 제대혈,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등을 제공한다.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안나는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 민감한 소재와 극적인
갈등 구조, 매력적인 인물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너무 속상하다.
영화소개에서 이 영화를 알고서, 원작소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책을 읽었다.
책이나 영화를 보실분은 제 서평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 보통 책을 읽고 서평을 간단하게 작성할때는 간략한 줄거리 외에는 내용노출을 안하려고 하나, 이 책은 글쎄. 책에 대한 감상평을 적을때, 결말이 노출되지 않기가 참 힘들어서. 미리 말씀드린다.
또한 개인적으로 영화를 다 보진 않았으나, 소개프로에서 영화대략의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원작소설을 읽었다. 영화와 소설의 결론은 다르나 둘다 슬프다. 영화도 책도 둘다 모두 서로에게 키퍼가 되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라와 브라이언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해 아들 제시, 딸 케이트를 두었다. 케이트가 2살이 되던해 전골수구 백혈병에 걸렸고, 완벽하게 일치하는 공여자만이 딸을 살릴수 있었기에 완벽하게 일치하도록 시험관을 통해 막내딸 안나를 낳았다. 그렇게 태어난 안나는 제대혈부터 골수, 줄기세포등을 계속해서 언니에게 제공해야했고, 결국은 그녀의 나이 13살때는 계속해서 병으로인한 약물로 완전히 신장이 망가진 언니에게 신장을 내어줘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13살 안나는 부모를 대상으로 본인 신체의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을 시작한다.
여기서 안나가 너무 이기적인걸까? 아니다. 안나는 태어날때부터 언니를 위해 태어났고, 13살이 될때가지 언니가 병원에 입원할때마다 언니를 돕기위해 자신몸의 일부를 제공하기 위해 같이 입원해야 했다. 늘 재발의 위험성과 건강악화가 염려되는 언니로인해 일상에서는 오빠 제시와 함께 어느정도 소외되어야했다. 그런 안나에게 누가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제시. 책에서 제시의 관점도 등장한다. 제시는 동생 케이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고, 그러면서도 막내 안나의 고통을 지켜봐야했으며, 자신의 동생 케이트가 늘 병에 아파하는 모습을 봐야했다. 그래서 부모에게 반항을 하는 아이이면서도, 동생 케이트에게 부모 몰래 혈소판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라는 케이트로 인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아이의 병간호에 매달려야했고, 아빠 브라이언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소방관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야 했다.
책은 엄마 사라, 아빠 브라이언, 케이트, 안나, 제시, 변호사 캠벨, 안나의 법정 후견인 줄리아의 시점으로 스토리를 이어간다. 안나는 정말 본인 때문에 이 재판을 시작한걸까? 엄마 사라는 정말 오로지 케이트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책을 읽고있다보면 각 사람의 관점으로 스토리를 이어가서인지는 몰라도, 각자의 입장이 정말 다 오롯이 이해가 간다. 엄마 사라도. 안나의 공여에도 뼈아프게 아파하면서도 케이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부모의 마음. 아빠 브라이언. 어느 딸도 포기할수 없다. 오빠 제시, 케이트 그리고 안나. 누구보다 언니를 사랑하고 10년후에도 언니의 동생이고 싶고, 언니가 가장 친한 친구인 안나는 왜 소송을 시작했을까.
안나의 소송이유가 밝혀지는 순간 그 어느순간보다 13살짜리가 짊어져야 했던 일, 언니 케이트가 겪어내야 했던 그 감히 상상도 되지않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그 아이들의 감정에 가슴이 아팠고, 그녀들의 가족이 처해야했던 상황 모두에 그저 슬펐다. 케이트와 안나는 서로에게 수호자였고, 친구였고, 가족이였음에도.
책을 다 읽은 후의 생각은 감히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케이트였다면, 안나였다면, 사라였다면, 제시였다면, 브라이언이였다면. 누구의 입장에서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펐고, 여전히 어렵다.
책은 정말 잘 읽혔지만,재밌다는 표현을 쓰기보단 힘들었다는 말을 쓰고 싶다.
읽기를 추천드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만 남는다.
모쪼록 남은 이들이 이제는 행복하길 바라며.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영화 <노트북>의 닉 카사베츠 감독이 연출하고 카메론 디아즈와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에 개봉했는데 사실 원작을 읽어본 바도 없고 영화 역시도 본 적은 없다.
다만, 개봉 당시 흥행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안다. 도덕, 윤리적으로 이렇게 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작이였던것 같은데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면 돈 많은, 그리고 불로장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두고 자신의 장기 중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을 경우 복제인간의 장기를 이식받는다는 설정이 사실 충격적이였으나 과학기술이 점차 발달하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과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 또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난 조디 피코의 대표작이기도 한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경우에는 자신의 복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언니를 치료하기 위한 어찌보면 하나의 치료제로서 유전자가 조작된 열세 살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분명 충격적이고 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영화보다 더 믿기 힘든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부모로서 어떻게 저럴수가 있나 싶기도 하는데 장기 기증이 사실상 어렵고 절차도 까다롭지만 맞는 사람을 찾기는 더 어렵다는 점에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형제나 자매를 낳아 치료를 위해 쓰겠다는(말이 너무 극단적이긴 하지만 안나의 입장에서는 언니 케이트를 위한 딱 그 목적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처사이다)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절막함이 과연 엄연히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아이에게 이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책에서 안나는 언니 케이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 과정에 순수히 따르던 안나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열세 살이라고 하면 한창 10대의 삶, 더욱이 결코 많지도 않은 어리다면 충분히 어린 입장에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가치를 찾으려 어쩌면 언니에게는 치명적일수도 있는 소송을 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움을 넘어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책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