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저
김진영 저
코로나19 발생 이후로는 한적한 장소를 주로 찾는다. 서울을 벗어나 홀로 걷기를 즐기면서 낯선 장소가 품은 매력에도 서서히 눈 뜨고 있다. 당시에도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려야만 했다. 목적지는 지하철로 닿을 수 있는 용문역이었는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열차 내에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나와 함께 내렸다. 다들 설마 용문사로 올라가는 건가 싶었는데, 역 바로 앞에 들어선 장날이 원인이었다. 사람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게 하늘의 별 보는 거 만큼이나 어려워진 시대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날은 달랐다. 시절이 수상하더라도 개개인의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시장에 가면 신선한 농축수산물과 만날 수 있다. 죄다 하우스 등에서 자라나는 통에 제철이라는 게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산지 특유의 신선함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을 찾는다. 여러 단계의 유통을 거치지 않으니 가격 또한 저렴하니 일명 발품을 팔 가치가 있다. 그와 더불어 한 가지 매력을 더 꼽을 수 있으니 바로 ‘사람’이다. 나만 해도 사실 타인과 말 섞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다소 비싸더라도 정해진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시장에서 흥정하는 일 또한 옛일이 됐다고는 하나 구수한 사투리 섞인 말투에 담긴 그네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만큼은 여전하지 싶다. 백화점이나 각종 대형 마트로서는 흉내가 어려운 무언가가 시장에는 존재한다.
저자의 직업은 식품 MD였다.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았으나, 기록 속에서 그는 전국의 시장을 떠돌고 있었다. 일부 상설시장도 있었으나 특정일에만 열리는 오일장도 상당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야 장도 서는데, 하나둘 도시로 빠져나가는 통에 시장 또한 규모가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 가급적 군청 소재지를 골라 다니는 등 나름의 원칙을 세워나갔고, 자연스레 실패의 경험이 줄어들었다.
지역마다 특산물이라는 게 있다. 여수를 방문했다면 으레 게장을 먹어야만 하고, 남해하면 멸치쌈밥이 밥도둑 마냥 떠오른다. 방문 장소가 시장이라서 일수도 있지만 가급적 전형적인 음식은 피한 저자의 수고 덕에 의외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래 전 순천만 갈대밭을 둘러본 후 식사를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가이드는 순천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 사람들이 벌교 등지로 이동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도 먹어본 바 없기에 맛 짐작이 어렵지만 칠게장 이야기에 절로 침샘이 열렸다. 언제 먹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 바지락과 낙지 또한 순천에서 맛본다면 아마 서울에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했다. 내겐 너무도 맹해서 다신 안 찾게 될 거 같은 재첩국을 대신할 거 같은 하동의 두부요리와 의외지 싶었던 버거에도 시선이 갔다. 사실 이들 음식은 굳이 해당 지역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음식도 등장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춘천에서 판매한다는 닭갈비 빵이 그랬다. 매운맛, 크림맛 할 것 없이 도무지 상상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지만 닭갈비 빵이라니, 대체 누구의 발상인지가 궁금했다. 김천에서는 요상한(?) 방식으로 먹게 되는 복어탕을 만나기도 했다. 국물을 들이키는 게 아니라 탕에 든 콩나물을 건져내고 각종 찬을 뒤섞은 후에 새우젓 무침을 곁들여 먹는다는 설명이 좀체 와 닿지가 않았다. 김천이 가까웠다면 당장 뛰쳐나가 복어탕을 한 그릇 시켰을 것이다.
혼자 식사를 하는 인구가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혼밥’은 어렵다. 많은 식당들이 기본으로 2인분 이상 주문할 것을 내걸은 통에 저자처럼 홀로 전국을 떠도는 입장에서는 마땅한 식당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을 듯하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몇몇 지역의 경우엔 예전과 박한 인심을 선보이기도 했단다. 돈이 참으로 많은 걸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언제까지 신문 연재를 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려를 하는 와중에도 그는 글을 쓰고 책을 냈으며, 아직 자신의 발길이 머물지 아니 한 곳으로 향했다. 직접 모든 곳을 오갈 수 없는 나로서는 그의 경험에 기대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의 뒤를 따르고 싶은 건 물론이다.
장날하면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들이기에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사람구경, 흥정구경 모든 것이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각종 주전부리와 함께 장터에서 파는 음식이다. 그래서 ‘전국 오일장에서 찾은 사계절의 맛’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을 보고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시골 오일장의 맛과 흥 모두를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재료 전문가라는 이 책의 저자는 겨울과 봄은 남쪽의 오일장을, 여름과 가을엔 북쪽의 오일장을 찾았다고 한다. 시장의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맛있으면 쓰고 맛없으면 안썼다고 말하는 그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이라며 사람냄새, 음식냄새 가득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계절별로 총 33개 지역의 시장을 소개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제철 먹거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고 팔리는 것이 바로 그 지역의 농수산물이고 계절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장의 분위기도,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시대의 분위기만큼이나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람사이의 정, 시장에서는 흥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시골장에서 느끼고, 또 느껴보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산장이 열리는 날은 2,7일이다. 가끔 장이 열리는 날 그곳을 찾아가곤 한다. 사람 구경, 물건 구경 거기에 흥정까지 구경하고 나면 으레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찾게 된다. 장날이면 식당 앞쪽에 천막을 덧대고 간이식탁과 의자를 가져다 놓는다. 그곳에서 먹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의 맛이 바로 오일장의 음식 맛이지 싶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기대했던 시골 오일장의 사람냄새, 음식냄새에 대한 설렘은 사라지고 오직 먹거리만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음식에 대해서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날의 북적거림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찾기 힘들고 제철음식이라 불리는 것들, 그리고 소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의 소개에 치우쳤다는 생각만 든다. 다시 책표지를 살펴보지만 오일장은 그저 식당을 찾기 위한 소재에 불과하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 찾아간 시장을 분류해 놓은 것 또한 그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기 위한 구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시골 오일장에 대한 글이면서도 전북 무주장이나 경남 통영장, 남해장의 경우는 아예 장이 열리는 날짜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인천종합어시장과 같이 상설시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일장은 제 날짜가 되어야만 열리는 장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장이 서는 날이 아닐런지.
우리가 시골 오일장에 대해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 어릴 적 기억때문이지 싶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가 대세인 시대에 그런 오일장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오일장은 식당에 들어가 제철음식을 찾아 먹는 것보다도 사람냄새가 넘쳐야 제 맛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