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영,박산호 공저
노지양 저
[번역하는 여자들] 홍한별, 모두에게 열린 단어의 세계
2023년 04월 24일
[책읽아웃] 책을 번역하며 고민하는 것들 (G. 홍한별 번역가)
2022년 07월 21일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욱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실 마음만 있고 제대로 배운 건 없다. 그래서인지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원서로 읽을 수 있다니! 게다가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을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원서보다 나은 번역도 있고 오히려 번역가의 문체로 더 아름다워지는 글들도 있으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 나와 직업이 같은 사람.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에게 끌리고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작가님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글들이 나와 너, 우리들의 우정과도 같아보여서 좋았다.
이 책은 알바하는 곳에 가져갔다가 잃어버렸다. 책장 한켠에 올려놨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속상하지만 누군가에게 욕심나는 책이었나, 갖고싶은 책이었다고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여전히 열렬히 서로를 지지하고 더 말해달라고 부추겼다. 번역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가 특정 언어와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 문학이나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기쁨을 길어내는 사람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책상 위에 책이 놓여 있어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고, 쓰는 행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단어 하나를 바꾸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나 이외에도 또 있다는 것은 큰 위로였으니까. p.6~7
언어생활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언어 생활자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했더니
정말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번역 일도 하고 글도 직접 쓰기도 하며 언어를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언어생활자라니 멋지다.
제 2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정말 이 일은 끝도 없는 일이기에
번역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서간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풍성하게 이야기를 꾸며간다.
각자 번역을 하며 느꼈던 생각, 고민을 진솔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예를 들면
'nerd'나 'f*ck' 등과 같은 비속어와 같은 특정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전체적인 톤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의역을 어느 정도 감안할 것인가.
얼마나 다듬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필자 뒤에 결국 숨어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뭐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에 대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언어와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한 번역 수업에서 어떤 단어를 번역하는 것이 어려운지
첫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優しい' 이 단어가 참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뭐 그렇게 다 '야사시이' 하다고 하냐며.
일본인들은 그저 웃음.
듣는 나는 맞네.. 그러고 보니 성격도 음식도 화장품까지.. 모든 것을 다 '야사시이' 하다고 하잖아. 싶었다.
글쓴이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언어로 계속 번역하는 것을 놓지 못하는데
결국 이 일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p.119
at the end of the day를 '결국'은 너무 심심한 건 아닐까
직역으로 '하루가 끝날 즈음'은 어떨까
'가장 중요한 건'으로 번역하는 건 어떨까.
이미 이루어진 인터뷰도 요리조리 좀 더 맛깔나는 그 느낌을 찾아보려 애쓰는 글쓴이를 보며
천상 번역쟁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직업인으로서 진심이거든요
AI가 등장하면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를 꼽기도 하던데
이 책을 보면 과연 인간의 영역을 따라올 수 있을까 싶다.
한 영국 시인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이 소개되는데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특정 지역 사투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번역가는 이 지역 사투리 사전을 중고 책으로 주문했고 번역을 위해 이래저래 애쓰는 고군분투의 과정이 그려지는데
알고 보니 애초에 편집 과정에서의 철자 오류였던 것이다...
게다가 발음 나는 대로 단어를 쓴 경우까지...
난이도 최상의 번역 과정을 함께 읽고 있자니
이쯤 되면 살아있는 작가라면
메일이나 전화해서 의도가 뭐냐고 묻고 싶을 것 같다ㅋㅋ
이 책은 필연적으로 나를 조금 닮았겠지만,
나도 이제 이 책을 조금 닮았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을 때 조금 책을 닮아갈 것이다. 그렇게 낯선 우리는 서로를 길들인다.
책은 우리의 공감을 확대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p.193
이러한 천신만고의 과정 끝에 매끄러운 의미로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그물을 던져 길어올린 아름다운 선택의 단어와 문장들로 한 땀 한 땀 엮은 글을 읽을 수 있음에
아름다운 세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도와주는 번역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은 번역가로서의 생활과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번역가의 생활이 궁금하시다면 추천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언어의 세계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매력적인 언어의 세계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번역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가 특정 언어와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 문학이나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기쁨을 길어내는 사람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
작업실 불을 끄고 집으로 가던 길, 안 풀리던 문장이 조금씩 나아지던 순간에 했던 혼잣말들이 또 다시 눈처럼 소복이 쌓여갈 즈음 두 명의 여성 번역가가 편지로 대화를 나눠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주말에 고민하던 중 만약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한다면 반드시 이 친구와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메일을 보내려는 찰나, 편집자로부터 이 친구의 이름이 적힌 메일이 왔다.
그리하여 언제나 응원하고 애정을 보내던 번역가 친구와 작정하고 원 없이 번역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이야기.
...
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아침에 책을 펴고 이국과 모국의 언어를 만지작거려온 여자들의 이야기랍니다. 혹시 받고 싶은 분이 계신가요?" _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인사말 '알고 보면 할 말이 많답니다'
서문이 너무 좋아 뒷 이야기로 넘어가는 책장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노지양 번역가가 쓴 인사말은 이 책의 전부를 축약해 놓은 글이다. 번역을 하게 된 이유, 그리고 번역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희노애락. 그리고 오랜 시간 번역이란 길을 함께 해온 동료 번역가에게 느끼는 큰 애정과 안쓰러움.
우리가 익히 아는 좋은 책들을 번역해온 노지양 번역가와 홍한별 번역가가 나누는 이 편지글에는 번역의 숨은 행복과 고통이,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진솔한 고백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