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작품 감상의 키워드
아버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조건적인 사랑이라 규정하고 아버지의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하며, 생활방식 전부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롬의 명제가 참인가, 거짓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광란자>에서는 참이다.
이 작품에서 제제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사랑과 증오는 분리할 수 없을 만큼 혼재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제제가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 아버지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데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21쪽), 중요한 수술을 앞둔 아버지를 걱정하며 아버지를 따라 죽겠다고 하다가, 이내 자신이 죽기에는 너무 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성급한 결심을 후회한다.
제제와 아버지는 한번도 서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그들의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아버지가 여자친구와 극장에 가라고 돈을 집어주자 (68쪽) 한없는 행복을 느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나(80쪽),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82쪽) 감격한다.
아버지의 그런 작은 관심에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열아홉 제제를 아직 자신의 품에서 놓고 싶어하지 않고, 제제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만을 느끼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지는 갈등 장면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버지는 ‘왜 우리가 원수처럼 지내야 하는가’하고, 제제는 ‘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라고 말한다. 결국 제제는 ‘생활방식 전부’를 바꾸지 못하고 아버지 곁을 떠나고 만다.
바다, 수영 그리고 방랑
모든 것을 귀찮아 하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제제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것은 수영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에서의 수영. 그는 세상과 사람에 실망하고, 갑갑함과 부담을 느낄 때마다 바다를 찾아 수영을 한다. 그것은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제제의 욕망의 유일한 분출구이다. “아름답고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바다에 속한 모든 것은 다 내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한없이 부풀게 하며 즐거움으로 넘실거리게 하였다.”(58쪽)
그러나 제제는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수영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제제에게 수영을 그만두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제는 수술을 앞둔 아버지의 쾌유를 위해 하나님께 약속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 산다면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역설적이게도 제제의 삶은 피폐해졌다.
삶의 숨통을 트여줬던 수영을 할 수 없게 된 제제에게 남은 것은 좁은 가족의 품을 떠나는 것. 제제는 어렸을 때부터 넓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 과목은 미지의 세계로 방랑을 유혹하는 상상의 날개!” 제제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지리에 흥미를 느낀다. 아버지 역시도 제제가 언젠가는 멀리 떠날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네가 곧 어디론가 떠날 버릴 것만 같구나”(101쪽)하고 말하기도 했다. 제제가 여자친구 문제로 가족을 떠날 거라고 이야기 했을 때 아버지에게 섭섭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자신을 떠민 것은 가족이었기 때문이었고 (155쪽), 그 자신도 아버지에게는 자신을 어디로든 멀리 보내는 방법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158쪽)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제제가 다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제제 또한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만큼의 희망을 발견하고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그는 “불쌍한 존재 하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158쪽)고 생각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이 하나 없는 답답한 세상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키스
제제가 가족의 품을 떠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여자친구 씰비아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씰비아와 제제는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틈만 나면 공원이나, 집앞 담벼락에서나, 극장 안에서나 키스를 나누었다. 제제의 주변 인물들은 지나친 그들의 애정 표현에 눈살을 찌푸린다. 아버지나 누나나 동네 사람들 모두 제제를 헐뜯고 씰비아의 품행에 다해 안 좋은 소리를 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더 이상 씰비아와 만나지 말라며 가뜩이나 환경과 반목하고 있는 제제에게 짐을 더 한다. 이런 제제를 보면서 독자들은 안쓰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씰비아는 제제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씰비아와 제제의 사랑은 제제의 고독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제제는 결국 씰비아를 버리고 가족과 살던 곳을 떠나 멀고 넓은 세계를 향해 떠난다.
고독
앞서 말했듯이 <광란자>는 눈길을 확 끌만한 사건 하나 없는 ‘밋밋한’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밋밋함’이 오히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광란자>에서 그려진 제제의 삶처럼 우리의 삶은 고독하고 밋밋하기 때문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작품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별의 슬픔도, 만남의 기쁨도, 애정과 우정의 따스함도, 그 깊이의 정도가 별로 대단치 않고 그저 그런 밋밋한 요즈음 세상.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느끼는 아픔을 이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지구 반대편 브라질 땅의 한 이름없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고독한 삶이라는 보편적인 특성 때문이다. 아버지, 사랑, 넓은 세계와 자유에 대한 동경, 주어진 운명에 고민하는 제제를 통해 우리는 가슴속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진실한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