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진 저
박권 저
마음 굳게 먹고 읽어볼라고 그렇게 대단하다는데...
인간의 뇌를 돕는 이상한 도구들? 암호비서 같은 것이 가격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더 실감나기도 한다.
버블에 갇혀 우주에서 격리된 지구이야기?
뭐지하면서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빠져든다.
P1~P5까지의 모드가 나도 있었으면...인간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골라쓸 수 있다면...
인간적인? 철학적인 문제.
읽다가 작가가 혹시 물히학자인가 싶어 책날개를 다시 확인했다.
수학전공, 의학 연구소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SF소설 쓰기 시작했다는데, 이 책의 양자역학 지식들을 적어도 이해하고 이야기 속에 녹였다는 건 나름의 배경지식과 이해가 있었다는 건데 진짜 대단하다.
읽다보니 양자역학, 모드 복잡하지만 결국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유한 계가 엄청 많으니까. 근데 그 계들이 어떻게든 겹쳐야 인지되지 않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확히 이해했다고 생각되진 않다. 그래도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진다.
뇌병변 장애자인 로라의 실종, 그녀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탐정 닉의 이야기다.
병원의 과실을 밝혀 징벌적 손해보상받기를 원하는 로라의 언니 미사. 완전히 미궁.
<버블> 별들이 사라진 일. 지구를 둘러싼 버블.
지구의 미래가 이럴까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된다. SF소설의 특징? 이려나?
<나락의 아이들> 종말론적 종교집단. 19세기 상류층을 엄습했던 시답잖은 노이로제 증세만큼 기이한? <버블열> 종교만 문제인 건 아니다. 지구가 버블에 갇힌게 쿼런틴이었다.
<낙원> 이라는 음악? 미래엔 음악도 저런 식일까?
변주, 우연한 결정의 범위 안에서만 일어나는 진화(어떤 시점이 지나면) 단 한번 밖에 못듣는 음악.
'모드'라는 것 신기하다. 나도 이었...쿨럭.
로라는 어디로 갔을까. 이 일을 맡긴 사람은 누굴까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미래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컴퓨터 처리된 정보는 양자론적 진공이나 마찬가지로 덧없는 존재. 출현과 소멸 거듭하는 가상진실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
뉴홍콩이야기에 뜬금없이 한국이 등장해서 놀랐다.
오스트레일리아 한 귀퉁이의 뉴홍콩. 중국은 점점 가난해지고 뉴홍콩은 점점 더 번영.
<액슨>에서 발매된 각종 베스트셀러 신경 모드.
시체 뒤바꾸기.
전직 경찰관의 강화 상태.
아내 캐런의 죽음. 나락의 아이들 때문이었구나.
<BDI>,<앙상블>, 욕구, 정체성, 충성모드.
서울이 나오네.(서울에서 공부한 싱가포르 사람)
심지어 철학적이기까지 하네.
<ASR>에서의 칭포콰이와의 대화. 양자역학. 슈뢰딩거의 고양이.
단지 관측하는 것만으로 우주를 난도질하고 있었다니.
<캐넌>의 등장도 신기. 충성모드에 의한 것이 진짜다?
인간도 확산, 수축, 양자역학이 실험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모든 것의 고유 상태의 수는 끝도 없이 많겠네.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일 없이 어느 한 부분만 건드릴 수는 없다.
ex. 내가 풀잎 관찰하면 나 - 더하기- 풀잎이라는 새로운 계가 형성된다. 이 계는 내가 혼자였을 때의 고유 상태 수에 풀잎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고유 상태 수의 곱만큼의 고유 상태 가진다.
진정한 <앙상블>은 로라의 불가사의한 재능. 과정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수축시키지 않고 관측함으로써 확산하기의 의미는/
로라가 버블메이커의 화신?
너무 오래 확산하면? 전염병?
근데 앙상블을 훔치고 나서가 좀 이해가 안되기 했지만...
정말 재미있다. 이해가 완전히 되지 않아도 재미있을 수 있더라는.
내가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재미있고.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문과 중에서도 찐문과인 저 같은 독자가 하드 sf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게 사실이고.. 예전에 같은 작가의 Luminous를 원서로 구매해서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도 있어서 망설이긴 했는데 처음 번역 출간됐을 때부터 궁금했던 책이라 읽어보게 되었네요. 역시 작가의 장치들을 20퍼센트는 알아들었을까 싶긴 한데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인 관찰자 개입 활용은 감탄이 나왔습니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라서 섣부르게 쓰는거지만 이 책 읽으며 <우주전쟁>이 생각났어요. 그 소설을 다 읽고 덮으며 이게 백년전에 쓴 거라고? 그렇게 오래된 소설속에 지금도 따라잡지 못한 또는 절대 따라잡아선 안될 미래가 여전히 미래처럼 느껴질때 즐거움이 증폭돼요.
본문 중 -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평균적인 사람은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합리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낸 다음, 그것에서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수정을 가한다고? 그건 순수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