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폴 칼라니티 저/이종인 역
나탈리 골드버그 저/권진욱 역/신은정 그림
가쿠다 미쓰요 저/권남희 역
세라 워터스 저/최용준 역
박영규 저
[책읽아웃] 여성의 몸, 스스로 알아 가면 좋겠어요 (G. 최혜미 한의사)
2019년 12월 26일
2018년 08월 23일
폴 오스터의 소설 ‘뉴욕3부작’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실제 그는 개인적 경험과 특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빨간 공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적은바 있다.
“내 첫 번째 소설에 영감을 준 것은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건 남자는 핑거턴 탐정사무소가 맞느냐고 물었다.”
이튿 날 오후 다시 전화벨이 울려서 남자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폴은 아니라고 답하면서 내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뉴욕3부작을 썼다. 주인공인 ‘오스터’는 이렇게 답한다.
“말해보십시오. 제가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고 만다. 이것이 폴 오스터가 주인공을 괴롭히는 방법이다.(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당한 등장인물들이 모여서 폴 오스터를 감금하는 소재의 소설도 있다. 제목은 ‘기록실로의 여행’이다.)
신기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빨간 공책’에는 전쟁기간에 프라하에서 태어난 한 여인의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는 그녀가 젖먹이일 때 독일군에 강제징집된 뒤 러시아로 가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자라서 대학에서 미술사 교수가 되었고, 그녀의 강의를 듣는 학생 중 동독에서 온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후에 그녀는 시아버지가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인 것을 알게 되었고 전쟁 때 나치에 붙잡혀 독일군에 강제 징집된 후 러시아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서 새 가정을 꾸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결국 그녀의 남동생이었다.(한 인물이 원래의 근거지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플롯은 달의 궁전에서 중요한 세 인물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소설에서 아무렇지 않게 우연을 등장시키는 이유에는 ‘현실은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폴 오스터의 소설은 가끔 그토록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일어남으로써 독자를 당황시킨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연은 현실의 일부다. 우리는 늘 우연의 힘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며,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는 엄청날 만큼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하다. 어떻게 내가 소설의 처음부터 봤던 이 남자가 갖은 고생 후에 말도 안 되게 로또에 당첨된단 말인가. 이건 너무 억지이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은 로또에 당첨된 어느 가난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쓴 것이었군. 하는 식이다. 우리가 살면서 로또에 될 확률은 거의 제로이지만, 로또에 당첨된 사람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면 그가 소설의 스토리를 생각할 때 얼마나 우연을 중요시 하는 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가 다루는 소재나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폴 오스터의 경험을 담은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빵굽는 타자기, 내면 보고서, 빨간 공책 등) 그가 소설에서 등장 시키는 이야기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예로 달의 궁전에서 잠깐 지나가는 ‘에디슨’의 경우도 실제 에디슨의 거주지는 작가가 살았던 사우스오렌지에서 멀지 않은 웨스트오렌지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에디슨의 생일이 자신과 같은 2월이라는 사실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가 한 때 에디슨의 머리를 깎았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흥분하기도 했다. 다만 그가 에디슨에 대해 조금은 악의적으로 소설에 쓴 이유를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는 에핑은 나이 지긋한 노인인데 에디슨을 많이 비난하지요. 제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1929년에 졸업하셨을 때 에디슨은 아버지를 멘로 파크의 연구소에 보조연구원으로 고용했습니다. 아버지는 전기에 관해서 상당한 재능을 갖고 계셨거든요. 그 일을 맡은 지 2주 만에 에디슨은 제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 그를 해고하였지요. 에디슨은 사형시킬 때 쓰는 전기의자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어요. 저는 아버지를 위해 에디슨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살면서 경험한 존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설에 등장하고 더 적극적인 형태로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토마스 에핑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그 실제인물은 잊힌 소설가 H.L.흄스였는데 그의 인생은 수 차례의 반전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일종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유산으로 받은 1만 5천 달러를 50달러 지폐로 몽땅 바꾸어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종이 쪼가리일 뿐인 돈의 허구성을 무너뜨리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 이는 소설에서 토머스 에핑이 죽기 전에 벌이는 일로 소설에 등장한다.
다시 말해 폴 오스터의 소설은 대부분이 개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그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손대는 일마다 실패했고,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으며, 글쓰기는 되지 않았고 돈 문제가 항상 말썽인 삶이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수업료 면제 받으며 다녔지만, 고만고만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 둘러 싸여 평범하게 사는 게 싫어서 학교를 그만둔다. 그의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은 자전적 이야기 ‘빵굽는 타자기’에서 발췌한 몇몇 부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었다. 명색이 작가인 자가 대학에 숨어서 고만고만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너무 평온하게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내 신조였다. 그런 생활은 자기 만족에 빠질 위험이 있고, 작가가 자기 만족에 빠지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내 선택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실리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실리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상에 나가서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는 어릴 적에는 중산층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나, 대공황의 상처를 기억하며 검소하게 지내려는 아버지와 이제는 살만해졌다며 마음껏 소비를 하는 엄마 사이의 갈등을 겪으면 자라왔다. 돈 문제의 고민은 어떻게 그것을 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의 문제였었다. 그 후로 부모님의 이혼, 교외 도시의 좌절감, 1950년대 미국의 풍토를 경험하며 물질주의에 강력히 반대하는 견해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런 경험과 경향을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의 비판적인 사고방식은 모든 현상을 대하는데 기본적인 성향으로 자리잡는다.
남들이 선전하는 도그마를 그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을 필요는 없었다. 거기에 저항하고, 조롱하고, 그 가면을 벗길 수도 있었다. 미국 생활의 건전한 외양과 지루할 정도의 엄격함은 허울 좋은 속임수, 선전용 허세에 불과했다. 사실을 조사하기 시작하자마자 온갖 모순이 거품처럼 표면으로 떠오르고, 만연해 있는 위선이 드러나고,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믿으라고 배웠지만 사실 자유와 정의는 서로 대립할 때가 많았다. 금전추구는 공정함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로 가서 혼자 지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좋아해서 그의 단편 더블린 사람들이 나오는 더블린에서 한 동안 생활하게 된다. 그는 그 후로도 그 도시를 많이 생각했다고 말한다.
거기서 뭔가 중요한 일이 나한테 일어났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 뭔가 굉장한 일, 내 깊은 내면과의 멋진 상봉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난생 처음 나 자신을 본 것 같다.
1학년 여름방학 때 부랑자나 빈털터리들과 함께 1백 50킬로나 떨어진 허름한 호텔 구내 관리 일을 하면서 만난 케이시와 테디처럼 인간적인 사람들을 오래 기억한다.
1967년 대학 3년 때 파리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연수 프로그램에 불만을 갖고 담당자와 싸우다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프로그램에서 빠져나와 작은 호텔에서 살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보내고 학교를 관두려 했지만, 뉴욕으로 돌아와 될 대로 돼라 하는데 학생처장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출발선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어딘가에서는 출발해야 한다. 원하는 만큼 빠르게 전진하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그래도 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두 발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지만, 아직은 달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후로 그는 프랑스어 번역도 하고, 과외도 하고 서평을 쓰기도 하다가 ‘에소플로렌스’호라는 유조선을 타서 몇 달간 일을 한다. 그 때의 인상을 이렇게 적는다.
그렇게 배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했는지, 지금도 잘 알 수가 없다. 아마 어딘가에 안주하는 거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내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몇 달 동안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실패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어떤 위기를 견뎌 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뭐라고 할까, 우리는 그런 위기를 계기로 시험을 받는 거죠. 또 그런 때 우리의 존재를 정확하게 발견하게 되고요. 가령 인생이 거덜 났는데 어떻게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냐,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웨이터에 일할 때 16개월 동안 부모, 부인, 자식을 모두 잃은 부랑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런 말을 한다.
나는 모든 걸 포기했어.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지. 그래서 부랑자가 된거라네.
그가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인물들과 일하면서 들은 지식와 이야기들은 그의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포그 자신이 부랑자가 되기도 하고 다른 인물들이 극한으로 가게 하는데 아무 어려움 없는 묘사가 가능하게 한다. 그의 삶 때문이겠지만 그가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대부분 삶의 끝까지 가서 어떤 방법이든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인물들이다. 기다리는 것으로 보자면 수동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잘 되길 바라고 행동하는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능동적인 부랑자로 봐야할 것이다. 소설의 달의 궁전 소설의 첫 머리에서 폴 오스터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보고 싶었다. (달의 궁전 p. 5)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달의 궁전’은. 모든 것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세 명의 등장인물, M.S.포그, 토마스 에핑, 솔로몬 바버의 이야기이다. 이 셋의 이야기에는 위에서 말했던 폴 오스터의 모든 경험과 성향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가 추구하는 소설의 모든 것이 한 권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쥐덫이 만 개 정도 놓여있는 방 안에 골프공 백 개를 한꺼번에 들이 부어놓고 어떻게 되는 지 구경하는 것 같은 심정이다. 대체 어떻게 되려고 저럴까 싶을 때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구조가 달의 궁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의 인생과 생각을 다 읽은 상태에서 소설을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를 좋아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입했습니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달의 궁전이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보이네요. 아주 예전에 도서관에서 후루룩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워낙 예전이고 대충 읽었던지라 이번엔 천천히 제대로 읽어봤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작가답게 이 소설도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달의 궁전은 마르코 포그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요 등장인물은 마르코, 에핑, 솔로몬인데 책을 읽다가 이 셋의 관계를 알고 나서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책 정보에도 나와 있듯이 이 셋은 3대이다. 할아버지-에핑, 아버지-솔로몬, 마르코) 셋이 한 번에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에핑과 마르코, 솔로몬과 마르코 이렇게 둘둘씩 우연한 기회로 연이 닿아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자꾸 어긋나는 세 사람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어긋나는 이들을 보며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고 싶은데 책 초반은 <마르코와 외삼촌, 마르코와 키티>라고 테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로는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지내는 마르코>, <에핑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하게 되는 마르코>, <솔로몬과 만나게 되는 마르코>이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먹는 마르코를 보며 나도 뭔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고 함께 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주인공인 마르코가 겪는 불행과 그 불행 때문에 무너져가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닮은 면이 있었기에 많은 공감을 하며 읽어간 책이다. 결국 끝에는 기운을 차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으면 했는데 마르코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발을 디딘 거 같아 나의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 펼쳐질 마르코의 삶에는 빗겨나가는 우연도 생기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평탄함이 함께 했으면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현실적인 장소와 신비로운 장소를 오가며 내가 정말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는데 작가의 능력이 그만큼 출중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그 장면에 대한 이미지를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서두에도 말했듯이 좋은 구절이 참 많았기에 함께 나누고 싶은 몇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인상 깊었던 구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그보다 더 적절한 게 뭐가 있겠니?
나는 내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영락할 대로 영락한 겁쟁이의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다. 세상을 경멸하며 혼자 즐거워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후회와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끝없는 자괴감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118p
나는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인 것이다. -84p
우연의 일치 따위는 없어. 그런 말은 무식쟁이들이나 쓰는거야. 세상의 모든 것은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똑같이 전기로 이루어져 있어. 심지어는 생각까지도 전기장을 발생하지. 그것들이 충분히 강하면 인간의 생각은 주위에 있는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그걸 잊지 말게, 젊은이. -165p
책은 그에게 떠오를 기회, 마음속에서 자신을 띄워 올릴 기회를 제공했고, 책에 완전히 몰두하는 한 그는 자기가 자유롭게 풀려났다고, 그를 끔찍한 닻에 묶어 놓고 있는 밧줄이 끊어졌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378p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 -392p
그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물가에 이를 때까지 내리막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내가 신발을 벗고 발바닥에 와 닿는 모래를 느낀 것은 오후 네 시였다. 나는 세상 끝까지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 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480p
3대에 걸친 세 남자의 인생여정이 우연인 듯 겹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비하고 놀랍고
꿈속을 거닐듯 몽환적이기도 하다...
11살에 엄마를 잃고 외삼촌 손에 키워진 마르코 포그..
그래도 나름 자신만만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삶을 살지만 대학교 2학년때 갑작스런 외삼촌의 죽음은 자신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에 깊은 절망감과 죄책감을 안겨준다...
외삼촌에 대한 속죄와 절망으로 스스로 부랑자의 길을 선택하고 죽음의 끝까지 가게되는 과정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굶주림의 고통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죽음의 끝에서 만난 여인 키티 우의 도움으로 다시 삶을 시작한 마르코는 장님이자 장애를 가진 부유한 노인의 비서로 취직을 한다...
괴팍한 노인을 산책시키고 돌보며 부고문 겸 자서전 작업을 도우는 포그..
부유하게 태어나 화가도 되고 탐험도 하며 맘껏 삶을 즐기지만 뜻밖의 사건과 장애는 자신의 삶을 완전 바꾸어놓고 은둔자의 삶을 제공하지만 삶의 또 다른 일면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죽고 난 후 알게 된 아버지의 존재와 몰랐던 아들을 만나고 자신의 약점인 뚱뚱한 몸을 더 당당하게 드러나며 열심히 살아온 솔의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세 남자 모두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자신만의 방식과 삶의 태도로 다시 태어난 인생여정을 그리고 있어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