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저
이미예 저
박완서 저
문미순 저
김민철 저
히가시노 게이고 저/최고은 역
30대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 중 한 명이 폴 오스터였다.
이미 전생처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서른에 발병해서 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할 때, 내가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준 작가다.
의사는 나한테 더이상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니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유한 부인으로 살라는 말로, 사회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나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주는 불안감도 컸다. 죽음 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게릴라처럼 불쑥불쑥 일상생활에 엄습했다.
이런 건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라 자세한 설명이라는 게 무의미하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어느연유로인지 『달의 궁전』을 읽게 됐고, 그 이후로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섭렵하게 됐다. 폴 오스터를 통해 소설을 읽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폴 오스터는 내게 은인이다. 내가 죽음의 시커먼 심연에 빠져 익사하지 않도록 해줬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폴 오스터는 30대에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작가가 되었다.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Complete Works of Paul Auster'로 출간된 책들을 원서로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아마 폴 오스터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모를 수도 있는데, 폴 오스터는 애초에 시인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 말인즉슨 폴 오스터의 시집도 있다는 의미인데, 그 시집 역시 원서로 소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이 작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Talking to Strangers: Selected Essays, Prefaces, and Other Writings, 1967-2017』의 번역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967년부터 2017년 사이 폴 오스터가 쓴 산문들 중 선별한 글들을 모은 책인데, 이 선별 작업을 폴 오스터가 직접했다. 그러니깐 본인 스스로 어떤 기준에 의해서건 그 시기를 대표한다거나, 본인이 잘 썼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고른 것이니, 어떤 식으로든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번역자가 네 명이나 된다는 것인데, 내 생각에는, 넷이서 나눠서 번역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에 여러 책에 수록된 각각의 글들의 번역자가 이 들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즉, 이 책을 위해 따로 번역을 한 게 아니라, 이미 번역되었던 글들을 모아놓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아예 이 참에 한 번역가가 공들여 번역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이건 또 이것대로 글들이 가진 시간의 퇴적을 느낄 수 있으니 꼭 나쁘지만은 않지만, 폴 오스터 정도의 작가라면, 그리고 한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책들을 출간한다면, 한 번역자에게 꾸준히 맡기는 게 최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이미 한 번은 읽은 적이 있는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다분히 소장욕 때문이다. 가령, 여기저기 흩어진 사진들을 인화해서 앨범에 담는 작업과 유사하달까. 흩어진 기억들을 하나의 유형물 안에 담아 놓는 작업. 그래서 더 이상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행여 옅어진다면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 생각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을 구입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을 구입하면 폴 오스터의 사인이 들어간 머그잔을 준다. 비록 친필 사인은 아니라 해도, 나같은 독자에겐 나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어쩌다 보니 이번 리뷰에선 '충분히' 혹은 '충분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된다. 그게 폴 오스터가 내게 지니는 의미다. '의미'란 단어도 참 많이 쓰게 된다. 이 역시 같은이유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30대엔 마치 아빠의 젊은 시절을 따라가듯 책을 읽었다면(실제로 폴 오스터는 우리 아빠와 동갑이다), 이제는 마치 내 예전 이야기처럼 읽게 된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겠지.
개인적으로는 「타자기를 치켜세움」이 가장(여전히) 좋았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도 갖고 있는데, 어찌보면 가장 폴 오스터답지 않은 글이면서도(매우 낭만적이다!), 폴 오스터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1962년에 만들어진 타자기를 지인에게 중고로 사서 1974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폴 오스터다(그런데 다른 한 편으론 역시 독일제품이 우수하다는 걸 입증하기도 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고장나거나 망가지지 않았다는 거니까).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이기에, 그의 충성스러운 독자로 사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그 점도 고맙다.
요새야 책도 별로 못 읽고 해서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인생 작가를 꼽으라면 폴 오스터를 들 것 같다. 왜였나 이유도 기억 안 나는데, 수능을 마친 무렵에 [뉴욕 삼부작]을 사 읽은 청소년 추리소설 팬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고 이후 오스터 소설들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방황하며 어른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쓰는 속도도 뜸하고, 언제부턴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듯도 하고, 나는 바쁘고… 해서 어떤 책은 사서 덜 읽고 덮기도 했는데 두꺼운 산문집이 나온다니 무엇보다 반가워서 냉큼 주문! 하고는 많이 읽진 못했다. (종이책은 두껍지만 Yes24 북클럽에도 전자책이 있어 요즘은 전자책으로 읽는 중…) 전부터도 문학 평론, 시도 쓰고 했던 것으로 아는데, 책의 앞부분은 대체로 외국 시, 시인에 대한 소개와 평론 글 위주다. 이야기하는 시와 시인을 잘 모르니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져 한두 챕터를 읽고 금세 잠들기도 했는데, 그러는 사이사이 오스터의 시에 대한 사랑, 소설에서도 드러나던 오스터의 관심 주제들이 엿보여 즐겁다. 제목인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언급된 수상소감 글도 참 절절하고 좋더라. 그런 마음으로 쓰셔서 어린 저도 들을 수 있었나 봐요. 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글들 더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인 폴 오스터의 산문선이 나왔길래 망설임 없이 구매. 밑줄 칠만한 곳도 많았고 군데군데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있어서 역시나 실망을 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것을 재확인. 폴 오스터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 작가는 (글으로만 봤을때)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려 깊고 섬세함. 여전히 폴오스터의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좋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많이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