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저
에크하르트 톨레 저/최린 역
게일 가젤 저/손현선 역
앤디 퍼디컴 저/안진환 역
임상심리학이 불교 교리 및 수행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는 임상심리학자 타라 브랙(Tara Brach)은 지난 20년간 자신이 학생들과 수련생들에게 강조한 한 마디는 자기 돌봄이라 말한다. 불교에서는 무아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는데 저자는 자아는 우리 내면의 진정한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정의한다.
문제는 고도로 발달한 사고 능력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과거의 일을 더 잘 기억하고 미래의 일을 철저하게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갖는다. 저자에 의하면 생각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분명 가상현실이다.(45 페이지)
요구되는 것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각하는 것이다.(46 페이지) 저자의 책에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이 수없이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또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깨어 있기가 아니라 그 방법 중 하나로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48 페이지)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다면 호흡마저 잊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있음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54 페이지) 저자는 RAIN 수행법을 논의(제시)한다. recognize(지금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는 것), RAIN이란 allow(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저항하지 않고 바꾸려 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investigate(지금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살피고 조사하는 것), non-identification(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의 머리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명상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머무는 것(65 페이지)이라 말하는 저자는 바다와 파도의 비유를 언급한다. 바다는 우리의 본성인 존재성이고 파도는 우리가 느끼는 흥분, 두려움, 고통, 즐거움, 생각, 분노, 행복감이다.(104 페이지) 바다와 파도가 다르듯 우리는 비유적 의미의 바다를 파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을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139 페이지) 또한 괴로움을 느끼고 다루는 능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이는 성폭행 피해자 중 스스로 비난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리적 치료 예후가 더 좋다는 사실(96 페이지)을 연상하게 한다.
자신을 어느 정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를 방관하지 않고 무력하게 버려두지 않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비난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96 페이지) 반면 트라우마로 힘들 때 스스로를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배려하고 돌보도록 하는 사람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140 페이지)
중요한 점은 트라우마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또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고 모든 트라우마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DS)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134 페이지) 트라우마가 표현되는 방식도 다양하다. 분노, 자책, 슬픔, 노여움, 질투 등...(137 페이지) 저자는 완벽해지기 위한 그 무엇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며 괴로움일 뿐으로 현재를 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명상을 통해 반드시 어떻게 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까지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150 페이지) 저자는 중요한 말을 전한다. 삶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고통은 단 하나의 원인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통들은 수많은 인과관계가 얽히고설켜 드러난 것이고 진행중인 하나의 과정으로 이를 인식하면 용서의 문은 느리지만 분명히 열릴 수 있다.(175 페이지)
저자는 용서란 상대의 나쁜 행위에 대한 특정 이야기를 내 안에서 놓아 버리겠다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똑같은 상처가 다시 저질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결심하겠다는 것이라 말한다(176 페이지) 용서는 용납이나 정당화가 아니다.
용서는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것이다. (178 페이지) 용서는 나는 괜찮다는 자기 상처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생긴 뒤에야 시작할 수 있다.(179 페이지) 진정한 용서는 내 안에서 충분히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180 페이지) 강요된 용서는 또 다른 폭력이다.(184 페이지)
용서가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이다. 내가 용서해준다고 상대가 덜 고통스럽지도 않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185 페이지) 불교에서 말하는 깨어남의 초대는 있는 그대로의 나,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를 깨닫는 것이다.(206 페이지) 깨어 있기에 도움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름 붙이기이다. 이름 붙이기는 전두엽을 활성화한다.
이름 붙이기란 가령 자신이 화가 나면 화남이라 정의하는 것, 아프면 아픔이라 정의하는 것이다. 객관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명상은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깨닫는 것이다.(217 페이지) 애도는 나에게 의미 있는 대상을 상실한 뒤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219 페이지)
저자는 마음 챙김 명상은 지금 이 순간 현존하여 나의 본성과 마주하는 명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거듭 연습하고 단련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26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아난에게 다만 스스로를 의지하고 자신이 설한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는 부처의 가르침<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을 환기시킨다.(261 페이지)
물론 이는 생명은 절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148 페이지)과 함께 음미할 말이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실이라 말한다.(156 페이지) 음미하고 음미할 말이다. 타라 브랙의 '자기 돌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천천히 정독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마흔이 훌쩍 넘다 보니까 어릴적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들이 샘솟는다. 자녀가 생기니 자녀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갑자기 들때에는 두려움이 커질때도 있고 십대와 대학시절 마냥 즐거웠던 긍정적인 마음이 그리울 정도가 되고 무엇보다 무기력해질때가 있는데 막상 혼자가 되어 잠을 자고 나면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아 이것저것 집안일을 몰아서 한다. 그러니까 정말 우울증에 빠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우울감은 가끔 느낀 적은 있어도. 가끔 나의 생활이 생각지 못하는 사태에 잠시라도 빠지게 되면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미는데..그것은 시가가 원인이 될때가 많다. 친정이라면 내가 정말 불편하면 대화라도 되는데 시가는 말이 안 통하고 매번 반복되는 일때문에 쌓여온 화가 갑자기 촉발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럴때 나는 혼자 궁시렁대더라도 상대방을 향한 화가 치솟기에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거의 없기에 내상을 덜 받는 것 같다. 헌데 유독 자책을 하고 자기비하를 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바로 딸이다.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어릴때부터 예민하고 자책을 하는 경향이 있었던 걸 보면 타고난 무엇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딸이나 남편이나 혹은 우울감이 생길때의 나에게도 이럴때 자책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때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자기돌봄이라는 책은 이런 책 중에서 이미 유명한 책이다. 일단 멈춤. 그리고 자기를 돌보고 내면을 살피고 스스로 위로하는 자기 치유법은 정말 우울증 해결에 중요한 부분이다. 명상의 중요한 부분이 있고 스스로 조용해 질 수 있도록 이 책은 정말 고요하게 만들도록 도와준다. 니탓이야 하는 부분은 절대 없어서 더욱 안심이 되는 책이다. 그저 고요히 내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고 불필요한 감정은 나가도록 도와준다. 어떻게 보면 선불교 같은 면이 있지만 기독교인이어도 상관은 없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1부가 멈춤 그리고 자기 받아들임. 내면을 살피기라면 2부는 <나보다 더 나은 나는 없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내 안의 모든 나를 용서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나 자신이 친절한 마음으로 수용한다면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정돈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두번째 화살까지 맞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자기 비난이 오래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자세히 쓸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는 가장 도움이 많이 된 책이었다. 내면적인 화와 분노 무기력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좀 더 관대해지면 가족에게도 더 잘하게 된다. 지금 자신에게서 알 수 없는 비하와 화가 내내 난다면 일단 멈추고 그 원인에 대해서 살피며 별것이 아닌것은 넘겨버릴 수 있도록 이 책이 도와줄 것이다.
이 책은 명상에 관한 것으로 깨어있기, 마음챙김-mindfulness 에 관한 이야기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 그러니까 지금 여기 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으로 중심축으로 돌아 왔을 때 다시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어떤일들에 대해 스스로 더 자책하며 힘들어 하였고, 또한 되새김질로 상처받기도 다반사였다. 게다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내 안의 감정을 바로 보고 다독이지도 못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불편한 감정을 느낌을 안 느끼고 살수는 없다. 다만 그 감정에 휘둘려서 계속 불편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우리가 힘든 상황은 우리의 필요하지 않은 생각들이 불러온 부정적인 느낌들과(인간이 유전자 깊숙히 내포되어 있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음. 혹시나 모를 위험의 순간에 대비하기 위해 자꾸만 더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이럴지도 몰라 하는 것) 나스스로 만드는 고통에 매어서 자꾸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RAIN 기법을 사용해보면 우리의 생각과 실제 사이의 간격을 좀 더 만들 수 있고, 이런 객관적으로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답답히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체념하고, 무조건 받아들이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 마주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다음 단계로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모든 일을 항상 올바르게 하려는 성향'이라는 잘못된 도피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만의 방식으로 고통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를 구한 것이긴 하나 이 잘못된 도피처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 도피처에 적응된 우리의 뇌는 의식하지 못한다. 중독이 그러한 것인데 잠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거나 인터넷에 빠져 있는것이다. 아...........내 얘기--; 더 잘하려고,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올바르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내가 더 행복한건 아니었다. 그냥 더 바쁘기만 하달까? 나를 있는 그대로 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한 것이다. 항상 올바르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꺼야.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 않기도 하단걸 조금씩 깨달아 간다. 예전에 아이를 낳기전에 내가 좀 깔끔을 떨었던거 같다. 아이를 낳고나서는 그게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것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돌아서면 아이는 집을 어지르고, 돌아서면 무언가 정리해야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그래서 그걸 하다보면 종종 거리게 되고, 조바심나고, 짜증과 화가 나고, 게다가 그 어지르기와 정리라는 패턴은 얼마나 빨리 돌아오던가 말이다. 어느날 그걸 놓았다. 너무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놓아진건지, 한번 놓아보자 한 생각으로 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러고 나면 정말 아무일도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좀 더러워도 그럴려니...그렇다고 내가 청소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좀 숨쉬고 살만큼 정도의 시간을 청소를 하지 않음으로 얻게 된 것.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어지르는 것이 그렇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뭐...항상 괜찮았다는 건 아니다. 앞서 말한 RAIN 기술이 나도 모르게 접목 되었던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인식하고 바라보고 살펴보고 그 감정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집이 더러운건 더러운게 맞다. 그 때문에 내가 짜증이 나는 것도 맞다. 짜증이 나기 때문에 짜증을 내고 집을 치우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더러운거 인정, 그리고 짜증이 나는 감정도 인정, 그렇지만 치우고 나면 금새 또 더러워지는 것도 사실. 내 짜증의 이면의 내 감정은 '나는 깨뜻한 집에 살고 싶어' 라고 생각과 '더러운 집은 잘못된거야'가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 더러운 집이 꼭 잘못된건 아니다. 물론 깨끗한 집에 살면 좋은게 맞다. 하지만 내가 청소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좀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내가 너무 화가 나면 잠시 쉬고, 그 다음에 세번할 것을 두번, 두번할 것을 한번 이렇게 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만드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더라는 거다. 아주 작은 예시이지만 생활에서 충분이 감정을 분리하고, 감정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면 내가 좀 더 편한해지게 된다는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도 마치 다 할 수 있는 듯 버둥대다가 더 힘들어질 뿐이다. 멈추고, 머물러라.
- 우리는 똑같은 괴로운 경험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계획을 세우려는 동기를 더 많이 같고 있다. 이렇게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지속적인 마음 상태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은 그것에 낚여버린다. 나아가 우리는 단지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매이게 된다.
-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현재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계속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된다.
- 실재를 제대로 살지 않고 어떤 이유로 피하고 외면하고 도망가는 경우 우리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생긴다. 상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 안 어딘가에 쌓인다. 상처에 대해 스스로 무감각해지기 위한 에너지들이 모이는 것이다. 치유는 이 상처를 건드리고 어루만지는 과정이다. 상처가 두렵고 부끄러워서 혹은 끔찍해서 묻어둔 것을 꺼내 보며, '살지 못한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 상처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우리는 자기 내면의 거부당한 삶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두려워한다. 그 결과 진정한 자기 모습이 아닌 늘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의식한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 그 모습이 진짜 자기인 것처럼 행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페르소나(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자기 모습) 전략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 페르소나에 갇혀 살아간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로 살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번의 과정으로 해결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라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도 내가 좀 더 나를 토닥여서 상처 덜 받고,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럴려면 깨어있어야하고, 마음을 챙겨야 한다. 육체못지 않게 마음의 상처는 중요하다. 자꾸 하다보면 어느날에는 편안해져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