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한화택 저
[쓰기의 감각]은 미국의 수많은 작가 지망생에게 필독서이자 위로와 용기를 북돋는 인생 책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 책을 읽은 후 나에게 ‘쓰기의 감각’이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을 읽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는 집중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학생들은 샌 쿠엔틴 감옥의 창작 교실에 참여한 수감자들이었다. 아이였을 때 수감자(학생)들과 매일 조금씩이라도 종이에 쓰도록 가르쳤다. 또한 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책에 대한 비평들을 읽으면서 자랐고 모든 것은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매일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저자의 어린 시절이 부럽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때로는 골치가 아프거나 지겨울 때도 있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날도 있다. 성공한 작가들은 결코 이토록 지겹고 절망스러운 시간들을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환상이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많은 글을 써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쓰고 있는 주제에 그만큼 깊이 몰입하는 일도 필요하다. 꼭 복잡한 윤리 철학을 견지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작가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고,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느낀 바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일 조금씩 글 쓰는 요령이 늘어 가면서, 캐릭터들이 인간 드라마를 연출하기를 원하기에 이르는데, 그 변화는 거의 자연 발생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뛰어난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한쪽 눈은 영웅이나 선한 인물에게 두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멍하니 나쁜 인물을 바라본다. 아마 후자가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롯이 이 모든 캐릭터와 독자들을 컴컴한 숲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모든 고난을 헤치고 그 플롯이라는 나침반으로 여자나 남자를 찾아낸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을 믿도록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쓴 다음, 최면에서 깨어난 후 그 글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실수가 있을 것이므로, 많은 부분을 제거하고 또 새로운 내용을 그만큼 더 써넣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친구 테리가 말하기를 글쓰기든 다른 일에서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는, 그냥 이걸 하든 저걸 하든 하라고, 이럴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내가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는 것 정도니까, 결정은 올바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저자는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라고 한다. 너무 미묘하거나 애매모호하게 쓰지 말고, 쓰려는 소재나 과거에 대해 너무 두려움을 갖지 마라. 내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너무 집착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두려워해야 한다.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일만 두려워하면 된다.
작가가 되려면 간혹 천진난만해져야 한다. 글쓰기는 고도의 세련미와 천진난만함의 결합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의가 아름답다는 믿음과 양심을 요구한다. 위대한 작품이 되기 위해서, 예술은 어딘가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되는 것은 독자로서의 삶을 더욱 심오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사람들은 훨씬 더 깊이 있는 심미안과 집중력을 갖고 책을 읽게 된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고, 글을 쉽게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쓰기의 감각]에서 저자는 유년 시절에 대해, 인생에서 열정적으로 세상에 흥미를 느꼈던 시절, 사물에 대해 깊은 감동을 느꼈을 때, 글을 써보라고 한다. 특히 유년 시절을 탐사하고 이해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며 말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뭐라도 쓰는 삶을 살게 된다. 나만의 글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SNS를 하다 보면 잘 쓰고 싶어진다. 당연하지. SNS도 쓰는 일이니까. 특별히 작가가 아니어도, 굉장히 아름다운 문장과 빛나는 단어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이는 술술 읽을 수 있게 쉽게 쓰기도 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글들을 읽다 보면 나도 의욕이 생겨서 좋아. 나도 내일부터 멋지게 한 번 살아봐야겠어. 나도 할 수 있어. 하고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SNS. 이곳은 쓰기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쓰기 전문가' 인 작가들은 글을 어떻게 쓸까? 우리는 작가들은 글쓰기를 무척 쉽게 할 거라 생각한다. 당연하지. 그게 직업인 걸? 맨날 밥 먹고 쓰기만 하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잘 쓰겠지. 하지만 땡.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그들도 너무너무 힘들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작가라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들도 머뭇거리고, 실수를 하고, 썼던 글을 다 지워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짜증 내고 자신이 머저리라 생각한다. 나만 그런 거 아니었어?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첫 문장을 쓰는 것. 그리고 글쓰기의 소재를 발견해 내는 것. 이 모든 것이 그들도 힘들다.
사람들은 작가들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윤곽을 미리 다 그려 놓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재능을 지녔으며 수월하게 쓸 거라고. 글쎄. 저자는 이런 사람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아는 작가들은 자기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하나같이 계속해서 실패하고 투덜거리고 낙담한다.
우리는 작가가 새로운 글을 마칠 때면, 우아하게 마지막 글자를 쓰고 마침표를 찍은 후 여유롭게 미소 지을 거라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오히려 실제로는 써놓은 것을 여러 번 끝없이 반복해서 고쳐 쓰다 볼일 다 본다고 한다. 군더더기를 잘라 내고,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고, 다시 고쳐 쓰고 난리다.
작가인 저자도 첫 문장을 쓰려면 매번 어김없이 공포감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도입부를 쓰려고 애쓰지만, 따분한 문장 두어 줄밖에 쓰지 못한다. 그래서 그 몇 줄 지우고 다시 몇 줄 더 썼다가, 이번엔 써놓은 것을 모조리 다 지워버린다. '다 끝났어' 절망. 난 망했다. 이제 재능은 다 고갈되어 버렸군. 나는 완전히 맛이 갔다고 엉엉 운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너무 자기 자신을 몰아대지 않고 편안하게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것. 그냥 타자 칠 때처럼. 어떻게든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본다. 당연히 그렇게 쓴 글은 형편없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쓴다. 그렇게 원래 예상했던 분량의 두 배 정도를 쓴다. 그런 뒤 잊은 다음 내일 다시 꺼내 고쳐 쓴다. 계속해서 고쳐 쓴다.
작가의 쓰기도 이렇다. 글쓰기 초보자인 우리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계속 고쳐쓰기
완벽주의 버리기 (인류의 적)
한편 글쓰기가 특히 어려운 사람도 있다. 바로 '부정 주의자'들인데, 저자는 이를 '라디오 방송국'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이 라디오 방송국은 작가들에게 있어 자기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 방송국은 당신 머릿속에서 24시간 내내 스테레오로 쉬지 않고 방송을 내보낼 것이다. 오른쪽 스피커에서는 자신에 대한 과대한 평가와 자화자찬이 반복되고, 왼쪽 스피커에서는 자기혐오로 가득 찬 랩과, 평생 동안 저지른 모든 실수와 의심이 떠오른다. 하소연, 인간관계 빵점.
글을 쓰려면 어떻게든 머릿속을 잠잠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알 수 있고, 평온한 마음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이 방송국에서 듣게 될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이 바로 질투의 소리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신이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질투심에 몸부림칠 날이 올 것이다. 멋지고 눈부신 성공이 하필이면 당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괴팍하고 성질 더러운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작가의 직업병이다. 엄청난 질투심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그 문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첫째 더 나이가 들거나,
둘째 그 흥분이 사라질 때까지 수다를 떨거나,
셋째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이다.
많은 책들에서 그런 질투나 슬픔의 감정들을 글쓰기 소재로 쓰라고 얘기한다. 그런 감정들은 감정의 진폭이 크기 때문에, 쓰다 보면 몰입되어 꽤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다. 질투를 이용하자. 질투는 나의 힘!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난 쓰기 따위는 평생 안 하고 살 거라고요! 쓰기가 싫으니까!' 나 같은 경우도 쓰기보다 비교가 안되게 '읽기'가 좋은데, 저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쓰기란 세상을 배워나가는 방법이다.
쓰기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우는 것이다. 경외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새로움에 허가 찔리는 것. 결국 자신을 가두던 좁고 제한된 세계를 부수고 나올 수 있게 돕는 것. 쓰기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 읽다 보니 이건 참 마음 챙김 명상 같기도 해서 쓰다 보면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력도 높아질 것 같고. 관찰력이 좋아질 것 같다.
또한 글쓰기는 영혼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물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마지막으로 쓰는 것은 독자로서 당신의 삶을 더욱 심오하게 바꿔 놓을 수 있다. 사람들은 훨씬 더 깊이 있는 심미안과 집중력을 갖고 책을 읽게 된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고, 특히 글을 쉽게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된다. 당신은 작가의 눈으로 글을 읽기 시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집중하게 된다. 어떤 작가가 얼마나 새롭고 대담하게 자신의 관점을 그려 나갔는지 연구하면서 독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왜 써야 하는가?
영혼을 위해서
잘 읽기 위해서
춤을 추기 위해서
반짝이는 것들을 위해서
다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쓴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이북으로 구입하였다. 이 책은 미국에서는 글쓰기의 고전이라 불리며, 교재로도 많이 사용되는 유명한 책이다. 국내에서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번역본이 출간되어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앤 라모트 작가 자신이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글쓰기를 시작해 보고 싶어졌다.
'쓰기의 감각'을 이북으로 구입하였다. 이 책을 처음 구입했을 때는 글쓰기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 책은 단순한 테크닉 보다는 앤 라모트 작가 자신의 책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기록한 책이었다. 그런 작가의 경험담과 마음가짐은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싶게 하고, 글을 쓰고 싶어지게 많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