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다니엘 G. 에이멘 저/이은경 역
제니퍼 헤이스 저/이영래 역
웃따 저
게일 가젤 저/손현선 역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저/추미란 역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한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후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정신과에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맘 카페에서 정신과 후기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확실히 온갖 병원 후기가 범람하는 온라인에서도 정신과 후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나 싶지만, 광고의 힘까지 더해진 피부과나 성형외과 후기의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 정신과 후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신과에 대한 세상의 좋지 못한 시선,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크게 한 몫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정신과 후기를 쓸 정도로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기를 쓸 수 없으리라. 하여튼, 저자는 이 책에서 저자 스스로의 정신과 진료 역사를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병원, 가장 좋았던 의사와 그 이유, 약물을 지나치게 많이 복용했던 시기,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 그리고 '베테랑 환자'가 된 현재까지. 여기에서의 베테랑 환자란 대략 스스로의 상태와 외부 사건에 따라 복용하는 약을 조절하며, 병증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환자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첫아이를 난산하며 산후우울증에 걸렸다고 설명하는데, 무려 저자가 처음으로 갔던 병원의 의사는 저자를 두고 "언제까지 남 탓하고 계실 거냐"란 말을 한다. 심지어 저자가 안고 간 아이를 가리키며 "지금 얘는 그나마 약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에게 자라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병원을 옮긴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의사 중에서는 환자를 비난하고 몰아세우거나, 시종 환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나 정신과라면 환자들이 저런 의사에게 받는 악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신과를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이런 말을 적는 건 아니다. 의사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증상이나 약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지 않고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병원을 옮기는 게 좋다. 정신과 환자는 의사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여튼 저자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위에 언급한 베테랑 환자의 길로 조금씩 나아간다. 저자의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 일상에도 패턴이 생겼고 남들처럼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됐다. 날이 추워지면 약을 늘렸고 봄이 오면 약을 줄였다. 제사나 경조사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잡히면 그 전후로 약을 조절하기도 했다."
항우울제, 수면제, 각성제, 항불안제, 뭐 기타 등등 우울증 환자가 먹(을 수도 있)는 약은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저자 역시 온갖 약을 먹으며 내과 의사를 당황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약을 줄이고, 또 아예 끊어 보기도 했다. 반 년 정도 단약을 하는 동안 좋았던 점도, 나빴던 점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병원을 찾게 되고, 약을 다시 먹게 된 스스로의 상황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라 느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공감했던 내용이 있다.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곤 하는데,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뇌의 고혈압'이나 '뇌의 당뇨병'을 넘어 '뇌의 심근경색'정도는 되어야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평범한 감기는 약을 며칠 먹으면 낫고 약을 안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우울증은 약을 안 먹고 버틴다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고 낫는 병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호르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울증은 스스로의 상태와 증상을 인지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약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하는 병이다. 아마 누구나 앓는 감기처럼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우울증이라는 병을 특별히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표현이 우울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이다.
저자의 이런저런 경험에 이어 책 마지막 부분에는 정신과 방문을 권유하는 내용이 있다. 저자가 지불한 검사비와 진료비(병원마다, 검사마다 대략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약값,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원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이런 책을 훨씬 오래 전에 읽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면 살아낼 수 있다. 언젠가는 살아남아 후기를 남길 수 있다."라는 문장을 보니 나 역시 정신과 진료 경험을 블로그에 남겨 두어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 후기로부터 작은 도움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내용이 그리 많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정신과 진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약을 먹으면 어떤지 등등 궁금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산후우울증을 겪은 저자가 8년 동안 만난 일곱명의 정신과 의사와 함께한 우울증 치료기이다. 저자는 정신과 병원을 남보다 연약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 뽑힌 잡초처럼 시든 얼굴로 모여드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멘탈이 약하고 여리여리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앞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가서 30분 있고 1시간이고 나오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고 아무 말 없이 시무룩 하게 기다린다. 저자는 약만 받으면 된다는 환자에게는 몇 번이고 차례를 양보하는 착한 사람일 것이다.
저자가 용기를 내서 처음 찾아간 정신과 병원은 클래식 음악조차 나오지 않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접수대에는 표정 없는 간호사가 무뚝뚝하고 사무적으로 예약은 했는지, 안 했으면 서류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큰소리로 두 번씩이나 꼭 생년월일과 이름을 불러서 저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마음 여린 작가는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런 정신과병원은 안 그래도 힘든 환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주고 있다.
저자의 표현처럼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병원 문턱 넘는 것도 힘겨워한다.
저자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사람들이 하던 말을 멈췄고, 내릴 때 는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정신과 병원을 다니는 사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 그들을 대할 때 배려하지 않는다.
= 첫 번째 의사 =
첫 번째 의사는 자신의 부인도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아이를 유치원까지 등교시킨다고 했다. 의사는 대뜸 저자에게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거냐”고 꼬집듯이 물었다. 의사는 환자를 불편하게 대했다. 갈 때마다 호통에 약이 힘들다고 설명을 부탁하면 의사를 못 믿어서 어떻게 치료를 하겠냐며 성질을 냈고, 약을 마음대로 바꾸고 줄이고 더 하고 했다. 약을 먹으면 머리 속도 가슴도 폐허가 되는 것 같아 고통을 호소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감정도 안생기고 좋아지고 있는 건지, 낫고 있는 건지 느낌이 안 된다고 했다. 의사는 그 말을 듣고는 “환자가 의사냐.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어떻게 아냐”고 야단 지듯이 반박했다. 공격적으로 퍼붓던 의사가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저자에게 안겨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지금 얘는 그나마 약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한테 있는게 더 행복할걸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엉망이어서 애들이 약을 먹어서 이 꼴을 하고있는 엄마와 지내는게 더 행복하다고 느낄거라는 뜻이다. 누구나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에게는 아이들이 그랬다. p 41.
이 부분을 읽을 때 화가 났다. 정말 자질없는 의사구나 싶었다.
저자가 인터넷에서 조회한 바에 의하면 그 병원은 안 온 환자가 왔다고 서류를 꾸며 의료보험공단에 사기를 쳤다가 걸려서 무료 두 번이나 영업 정지를 당했던 기록이 있는 병원이었다. p 45.
환자에게 무례한데다가 부도덕하기까지 한 의사였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약을 받아 왔다고 했더니 남편이 펄펄 뛰었다. 말도 안 하고 갔다고. 하루종일 메스껍고 몸살이 낫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은 바위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매일 전쟁을 치른다고 죽기 살기로 버틴게 어떤 건지 아냐고 말했다. 호강에 겨운 소리학 있다면서. p 47
이 대목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을까 싶었다. 따뜻하게 위로하며 도와줄테니 함께 극복해보자고 해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두 번째 의사 =
두 번째 병원은 거리는 좀 있었지만 번화가에 있어 다닌 재미가 있었다. 작은 병원이었는데 진료실 문 앞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 포스터를 가만히 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p 54
대기실에는 식이장애인인 빼빼 언니들,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이 뒤에서도 보이는 아저씨, 폐쇄공포증이나 비행공포증 같은 치명적 약점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청년. 이 병원의 대기실에도 지친 얼굴이 가득했지만, 위치나 구조 때문인지 첫 번째 병원에 비해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p55
두 번째 의사는 앞 뒤 없이 헛소리를 줄줄 늘어놔도 뒤돌아 나올 때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대화기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지런히 타이핑을 했다. 뭘 기록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기억하려 한다는 기분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p57
어느덧 어느덧 정신과 치료 3년차가 되었다 일상이 반복되는 있고 약도 반복되었고 치료도 반복되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오늘 덕근 일상이 고달픈까지 얘기하고 또 얘기했지만 문득 풀리지 않는 내 상황에 대한 답답함에 그가 상담으로 얻는 위로를 넘어서고 있음을 느꼈다. p59
한의사 씩이나 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울증 그거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거라며 빈정거렸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당신 힘든 걸 못 참는 거 같다 먹고 살기 편해지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니 하면서 나를 무슨 관심병자 취급을 하고 혀까지 끌끌 찼다. p62
친구에게 우울증 일어나서 약물 치료 받는 중이라고 얘기했다. 친구는 정신과 약을 먹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신과 치료 받으면 보험 못 들고 취업도 안 되고 치료 받는다는 거 소문나면 애들한테도 안 좋다며 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교회를 가자고 했다. p66 - 69
= 세 번째 의사 =
세 번째 의사는 남편이 지방으로 가게 되어 병원을 옮기게 됐다. 마치 대서양 한가운데 발가벗겨죠 던져진 기분이었다. 나 좀 자리를 잡아가던 일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p79
세 번째 만난 의사는 학원 친구 같았다.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동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오히려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는 그런 친구. 의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춰 진료를 했다. 그러면 서 우울증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내게 필요한 건 내 뇌하수체 나 측두엽 어디쯤 해부학적으로 혹은 생리학적으로 약간의 결함이 생겼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다시 쌍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척하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억제된 감정이 쌓이고 쌓여 어딘가를 망가뜨린 것이 사달의 시작이었다. p 81 - 82
의사는 불안정한 상태인 내가 아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줬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 모습을 보면서 크더라고요 나는 든든한 말로 응원해 줄게 됐다 활자 중독인 나에게 우울증이나 양육법에 대한 새로운 책이나 논문을 추천해 주는 맞춤진료까지 해 줬다. 그는 단순한 위로가 아닌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주는 그야말로 최적의 의사였다. p 83
세 번째는 의사가 아이들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p 85
= 네 번째 의사 =
네 번째 의사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같은 아이 엄마로서 많은 부분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p89
아이가 1학년에 들어갔다. 의사는 엄마들 모임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디프레스가 엄청 심하게 온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가 1학년 때 반드시 가야 하는 자리가 몇 번 있을 텐데 그 몇 번만 잘 넘기면 된다고. “이제부터는 자정 전에 잠드는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어떤 부작용이 와도 절대 끊지 마시고 계속 드세요. 여름 방학 전까지 응급으로 봐 드릴게요. 작은 변화라도 나타난다 싶으면 바로 오세요. 학부모의 일상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끌어올리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살 것 같은 등을 미리미리 찾아서 꽉꽉 매워 둡시다 일단 등하교 시간대는 맑은 정신이어야만 해요 그러니 밤에는 반드시 잠들어야 합니다. 잠이 들도록 유도하는 약과 중간중간 잠이 깬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해서 잠을 푹 잔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약이 있어요. 일단 둘 다 처방 해 드릴 테니 드시면서 조절해 봐요. p 93
새벽 2시까지 잠들지 못할 때는 수면제를 먹었고 아이들이 집으로 오기 1시간 전 그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는 4시간 정도 충분히 맑은 정신을 보장하는 각성제를 먹었다. 부작용으로 따라붙는 두통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많은 약 목록에 타이레놀을 추가했지만 정상적인 엄마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p94
큰 아이 학교 발표회 날짜가 잡혔을 때는 보름 전부터 서서히 컨디션 조절을 시작했다. 모임에서는 유치원 다니는 작은 아이 돌보느라 정신없는 척하며 긴 대화를 피했다. 다섯 잔이나 마신 커피 카페인 때문에 손을 덜덜 떨고 약간 헛소리를 한 것도 같지만 실없는 여자라고 넘기는 수준 정도였다. 그렇게 위기감을 넘겨 뿌듯한 마음에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외식까지 했다. p 95
우울증 환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로 했다. 좋아지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고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어지간한 부작용은 그냥 버티면서 약의 개수를 줄이려 노력했다. 그래도 명절이나 방학처럼 일상이 뒤틀리는 시점이 오면 다른 엄마들도 다 타간다는 신경안정제랑 각성제를 추가로 처방받았다. p 99
= 저자가 가족 모임에 못가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 친정 가족들에게 알려 진 후 엄마와의 전화대화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 : 어쩌다가 그런 흉한 병에 걸렸냐? 약도 먹는다면서? 그쪽 약 안 먹을수는 없는거냐
나 : "안 먹으면 아예 못 일어나요.“
엄마 ”집이 너무 지저분하더라니. 우울 증환자 집이라 그랬구만. 아이고,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갈 때마다 괴로웠다.“
나 : 이제 잘 치울께요. 아빠는 뭐라고 하세요
엄마 : 아빠? 속상해하지, 엄청 속상한가봐. 아무 말도 안 해.
그래 뭐, 살 좀 빼고 매일 잘 씻어라. p 104-105
= 다섯 번째 의사 =
다섯 번째 의사는 50대 남자였다. 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표정이 없는 무심한 인상이었다. p 109
- 낫는 병이 아니에요. 버티세요. 의사는 첫 진료때 이렇게 말했다. p 111
책과 관련된 일을 해보려고 한다는 말에 의사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책장 한 곳을 가리켰다. 이거 다 제가 쓴 책인데 안 팔려요. 10년 전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 마세요. 망해요. 라고 했다. p 113
그러다 운전 중에 문득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p 119
약을 끊은지 몇 달 후 몸이 안좋아 내과에 갔다.
잠을 못 자고 과민성 대장염에 위 무력증과 근육통까지..
의사는 말했다. ”일단 신경안정제랑 진정제, 소화제 일주일 치 처방해 드릴께요. 편안해지면 병원에 꼭 가 보세요.“
우울증이었다. 이런 작고 초라한 나 같으니라구. p 138-139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선들]
. 남편 : 할 말은 많으나 하지 않겠음
. 딸, 아들 : 맨날 머리 아프다 하고, 외출만 하고 오면 감기몸살에 걸리는 것이
참으로 허약한 체질이라고 생각했음.
. 부모님 : 원래 잠 많던 애가 맨날 자느라 저러는구나 생각했음. 집이 너무
지저분한데도 치운 거라고 하길래 은ㄱ른 살림에 소질이 없다 했음
. 형제 : 애 키운다고 집에만 있더니 바보가 되었다고 생각했음. 여행 못 다니고, 맛집 못 가고, 쇼핑 못 해서 저러지 싶었음
. 친구들 : 그냥 여자는 결혼해서 애 낳으면 다 저렇게 되나? 하고 생각했음.
모임 총무를 바꿔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음 p141-142
= 여섯 번째 의사 =
여섯 번째 의사는 60대 여자였다. 베테랑 의사와 베테랑 환자가 만났다. p 145
의사는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망했다는 우울한 이야기에 이렇게 기뻐해도 될까? 이 선생님 자제분들은 다 성인일텐데 아직도 그 망함이 이어지고 있는 건가? 정신과 의사도 피할 수 없구나, 진짜 끝이 없는 거구나 싶었다. 마음속 어떤 부분이 마침내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선호하는 특정 수면제를 처방에 넣어달라는 내 말에 ”나도 그 약 좋아하는데.“ 라고 받아주었다. 이 의사는 원장이 자리를 비운 몇 달 동안만 임시로 진료했다. 약은 기존에 먹던 대로 처방을 받았고 2주 정도의 인사불성 시기를 거쳐 약간 무디고 조금은 느린, 우울증 환자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실패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p 148-149
= 일곱 번째 의사 =
지금 의사는 30대 초반의 소아청소년 전문의이다. 내 진료와 아이들 문제에 대한 조언을 동시에 받고 있다.
가끔 내가 못 일어나는 날과 아이들이 늦잠 자는 날이 겹칠 때가 있다. 눈을 떴는데 등교 시간이 지나 있어도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오전에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이 없을 경우엔 대범하게 좀 더 자기도 한다. 어찌어찌 등교 준비가 끝나면 ”엄마, 문자 뭐라고 보냈어?“ 라고 물어본 후 소화불량이나 감기 모드를 장착하고는 쉬는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집을 나선다. 이렇게 모든 것은 시간의 일이다. p 156-157
그때의 나는 매일 매 순간 자책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겨우 일어나 큰아이 유치원과 작은아이 어린이집에 거짓말을 둘러댈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청소하는 데도 항상 폭탄을 맞은 것처럼 난장판인 집을 볼 때마다, 하루종일 일어나지 않는 엄마 때문에 집에 갇혀 쫄쫄 굶으면서도 ’엄마 빨리 건강해 지세요.‘라고 써서 베개 옆에 붙여 놓은 아이들의 색종이 편지를 볼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미친 듯이 치밀어올랐다. 고쳐지지 않았던 나의 게으름. 죽고싶을 정도로 내가 미웠다. 온갖 검사를 다 받아 보았지만 모든 결과가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위장병과 전신 통증, 무기력증, 불면증, 피부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애써 외면하다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정신과였다. p 160-161
우울증, 누구에게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그 ’결‘과 ’층‘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발가락 하나 잃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나만 알지. 다시 생겨나는 일은 없을 거다. ’발가락은 열 개‘라는 기준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는 약간 불편하고 숨기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거다. 남아있는 발가락 아홉 개를 잘 보살피면서. p 163
곧 다른 사람의 상실도 눈에 들어온다.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완전하게 갖춘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손가락이 아홉 개인 것보다는 낫다는, 뭐 그런 기준도 생기고, 앞으로 계속 무언가를 잃어가면서 살게 될 거란 사실도 알게 된다.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8년이 된 지금은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굵고 시뻘건 펜으로 벅벅 긋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우울증은 저자의 표현대로 가볍게 지나가는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뇌의 고혈압, 뇌의 당뇨병 정도로도 부족한 뇌 심근경색쯤 되는 중한 병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p165
마음 따뜻한 저자는 정신과를 예약할 때 어떤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선뜻 병원을 못가는 사람들에게 세심한 정보를 주고 있다.
‘생명은 있지만 삶은 없는 일상이 이어진다.
휴식이나 이벤트도, 오늘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도전도 없다. 없어야만 한다.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어. 다행이야’ 하며 잠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된다‘
웃고 싶은데 웃어지지 않고,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 않고, 자고 싶은데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병이 아니라 증상이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면 증상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병은 낫지 않는다.
그래도 병원에 가면 살아낼 수 있다.
언젠가 살아남아 후기를 남길 수 있다. ’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저자는 우울증은 치료 기간이 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과 맞는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고, 소소한 행복과 삶의 기쁨을 되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잔잔하게 적어서 책으로 펴낸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의 지혜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글쓰기를 통해 저자가 치유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고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후기를 써서 다시 책으로 펴내기를 기다린다.
힘 내세요. 전지현 작가님!
이 글은 팩토리나인에서 출판한 전지현 작가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를 읽고 작성하는 후기입니다.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시어 이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는 책입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해 알아가고 다뤄가려는 작가의 노력이 보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3년 01월 팩토리나인 출판사에서 출간된 전지현 작가님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리뷰입니다. 페이백 대여로 구매했던 책이에요.
표지가 제가 보던 웹툰 그림체와 비슷하길래 설마? 했는데 그 작가님이더라구요!
상황도 비슷해서 긴가민가하다가 찾아봤어요ㅋㅋ
작가님 웹툰에선 정신과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어서 어떤 내용일까 하고
읽게 되었어요. 꽤나 진솔하게 글을 쓰셔서 읽는 내내 공감도 꽤나 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전지현 작가님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리뷰입니다. 저자가 여덟 해 동안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만난 일곱명의 의사와의 치료기를 담은 내용입니다. 책 제목처럼 정신과 후기는 쉽게 접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렇게 세밀한 치료후기가 담긴 책이 있다니..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 위안이 될 것 같은 책이에요. 페이백 대여 이벤트로 읽어보게 됐는데 나중에 다시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