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천선란 저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공저/김희상 역
레이 달리오 저/송이루,조용빈 역
마우로 기옌 저/우진하 역
조병영 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저자 강인욱, 흐름출판, 2019년
이 책의 저자 강인욱님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본과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여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꾸며 살아왔고, 지금도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고고학을 강의하고 있다.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매년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을 다니며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JTBC〈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고, 「조선일보」, 「서울신문」, 「한겨례」 등에 칼럼을 다수 연재하는 등 고고학의 진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유라시아 역사 기행』, 『진실은 유물에 있다』, 『북방 고고학 개론』등이 있다.
이 책에는 신나는 보물찾기도, 실무적인 고고학 이론도 없다. 대신에 과거의 사람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는 고고학자로서의 생생한 느낌을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다소 낯설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저자는 그 생생함이야말로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가진 놀라운 매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석사 졸업 이후 박사과정을 위해 시베리아로 유학을 떠나 주로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등을 조사해 왔다. 다른 한국의 고고학자들과 달리 유라시아 일대를 다니면서 찬란한 황금 유물에서 자작나무를 감싼 시베리아 원주민의 인골까지 다양한 유물들과 씨름하면 살았고 그 시간의 기록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고고학자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토기편 한 점을 발견할 때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고고학의 매력은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한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키나.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는 셈이다.
저자가 고고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된 계기가 있다.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조선시대의 미라와 관련된 발표를 할 때였다. 1998년 안동에서 발견된 이응대묘의 출토품에서 31살에 요절한 남편을 떠나보내는 부인이 써서 무덤 속에 넣어준 마지막 편지인 〈원이 어머니의 편지〉이다.
“당신 생전에 함께 누워서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고 말하곤 하셨지요.… 이 편지를 보시고 제잘 오늘 꿈에서만이라도 나와 주세요.”
고고학자로서 저자가 발굴하고 연구했던 수많은 무덤에는 이 세계를 떠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죽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 세계를 떠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 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한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이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다.
저자는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과 더 가깝게 만나보고, 미지의 땅을 찾아가 수 많은 유물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난 느낌과 감동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 책 속에서
# 11 파괴와 복원, 고고학 발굴의 패러독스
고고학만큼 역설적인 학문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를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의 유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도면과 사진을 남기며 신충하게 발굴을 진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발굴한 유적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 간혹 유적을 발굴하지 않고 유보하는 경우도 있다. 땅속에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유적을 오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발굴을 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아니다. 발굴을 하지 않으면 정작 과거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에 오히려 고고학의 발전은 저해된다. 그러니 최소한의 발굴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고고학 발굴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고고학자들을 발굴 작업에서 사소한 정보라도 놓칠까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유적이 나오면 세밀하게 유물과 유적을 촬영하고, 도면으로 만들어 놓으면 모든 과정을 일일이 노트한다.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고고학 발굴에서의 많은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다. 고고학 현장에서 강인한 체력과 꼼꼼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이유이다.
고고학이 파괴를 의미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구제발굴’ 때문이다. 보통 현대 구조물을 만드는 경우 땅을 깊게 파거나 메우는 정지(整地) 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땅속에 있는 유적의 파괴는 필연적이다. 구제발굴은 건물이나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땅속에 있는 유적이 불가피하게 파괴될 때 공사에 앞서 미리 유적을 발굴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건설 공사가 많아지면서 한국에서는 전체 발굴의 95% 이상이 구제발굴이다. 정말 중요한 유적이라면 아예 공사가 중단되거나 유적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발굴이 끝나면 건물들이 들어서고 영영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고고학도 그러하다. 과거의 유적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인들의 모습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당연시하고 발굴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후대에 물려줄 유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몇 천년의 세월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만큼 후대 역시 누리기를 원한다면 문화재의 보존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고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느꼈다. 나는 과거의 유물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과거의 인류가 어떻게 살았으며, 그들의 문화와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과거의 인류가 우리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고 싶었다. 나는 고고학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거창고 전문적이 것이 아닌 그냥 보통사람들도 흥미를 가질고 볼 수 있는 고고학에 관한 책이라 재미있고 유익했다. 저자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생기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인욱 교수가 출간하는 책들은 나의 관심분야라 새로운 책이 출간되면 꼭 읽어보고는 한다. 이번 책은 고고학 여행이라는 제목답게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흥미를 붙이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기초안내서같은 느낌이다. 고고학이라고 하면 먼 옛날, 캐캐묵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고고학은 오랜 시간 공들여 과거를 관찰하고 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1. 죽은 이를 위한 사랑의 흔적
2. 불에 깃든 황홀과 허무
3. 술, 신이 허락한 음료
4.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5. 마음을 울리는 소리 없는 음악
6. 빛바랜 유물에 숨어 있는 화려함
7. 지난 세월의 향기
8. 발해인들도 돼지고기를 좋아했을까
9. 중국 황제도 반한 고조선의 젓갈
10. 몸에 새겨진 시간의 기억
11. 파괴와 복원, 고고학 발굴의 패러독스
12. 고고학을 꽃피우게 한 제국주의
13. 전쟁 속의 고고학
14. 문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
15. 그들은 왜 유물을 위조했는가
16. 고고학자의 시행착오와 해프닝
17. 황금 유물을 둘러싼 운명들
18. 고고학이 밝히는 미래
에필로그. 어디에도 없는 혹은 어디에나 있는
목차만 봐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한다. 저자는 삶과 죽음 전반에 걸친 고고학 유적과 유물을 음악, 음식, 무덤 등 세부 주제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죽음은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 되었지만, 우리 삶의 여정의 한 부분이므로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옛 사람들의 무덤 양식을 살펴보면 떠나보내는 이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물관에서 그냥 스치듯 보고 지나가는 무덤출토 유물등에도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p. 30
그런 의미에서 무덤은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제2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중략)독무덤은 전 세계적으로 어린아이가 죽으면 넣어서 묻는 풍습으로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관을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항아리는 곧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죽어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듯 몸을 구부려서 넣는 독무덤만큼 무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는 유물도 없다.
평소 박물관에가서 넋놓고 유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독무덤을 보고는 왜 하필 항아리일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풀이될 수 있다니! 예전 사람들은 새는 하늘의 정령이라고 믿었으니 항아리를 곧 알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 하늘로 올라가 재생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긴 무덤형태가 아닐까?
P. 105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까.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루었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음악, 맛, 향기는 시간에 취약하다. 때문에 고고학에서 밝히기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고고학에서 빛바랜 유물과 지금은 알수 없는 소리를 추적해가는 과정은 흥미롭기도하고 영겁의 시간을 읽어내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매력적이다.
P. 210
우리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재 침탈과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주변의 유적과 문화재에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너무나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에 동조한 학자들을 비판하면 ‘그들의 연구 성과는 좋다’ 혹은 ‘인격적으로는 훌륭하다’는 식의 일본 측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 학자의 성격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 권력에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억압할 때에 그에 암묵적인 동조를 하고 따라갔던 그 모습을 비판해야 한다.
고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발굴과 동시에 파괴하는 학문이다. 제국주의가 세계를 재패했을 때 특히 고고학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신라시대 유물이나 백제 유물 등이 제대로 소중하게 발굴되지 못한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일본은 고고학을 통해 한국은 미개한 국가로 왜곡하는 것에 꽤 공을 들여 작업했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의 고고학자들은 일제강점기때 잘못 정리된 유물과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재정리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바뀌는 것들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한다.
P. 9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고고학은 과거를 살펴보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한층 더 나아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고리타분한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역사에 관심을 갖다가 선사시대 고고학에도 눈길을 돌리게했던 저자의 이전 책을 찾아서 구매하게 되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물론 비현실적 가상인물임을 안다고 해도 오랫동안 땅밑을 파들어가는 지난한 작업이 실은 최신 기술이 도입되는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학문이라고는 이 책을 통해 알게된다. 기록된 역사 이전의 문명의 증거들을 찾아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해가는 이 분야가 인디아나 존스와는 다른 의미로 낭만적임을 느낀다. 매달이 멀다하고 업데이트 되는 분야라면 몇 년 후에 저자의 또다른 책을 읽게되면 우리는 과연 어떤 새롭게 발견되는 이전 문명들의 단편들을 접하게될까. 오히려 너무 덜 학술적으로 느껴질 만큼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지만 한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다른 책들이 또 기다려진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뭣도 모르고 초등학교(실제로는 국민학교다) 시절 장래 희망이 고고학자였다.
만약 그때 이 책을 보았다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을 것 같다. ㅎㅎ
고고학은 나처럼 꼼꼼하지 못한 성격인 사람이 하면 안될 것 같은 학문인 듯 하다.
저자는 정말 역사를 사랑하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작가의 감정이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짧지 않은 책이지만 쉼 없이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절반 정도는 작가가 직접 체험하고 관찰했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해 경험담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은 통찰과 지식은 지적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유라시아를 배경으로 시베리아와 몽골 중앙아시아 등의 유적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덕분에 새롭게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쪽으로도 다른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나머지 절반은 고고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 중 가장 집중되었던 부분은 고고학을 학문적인 목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혹은 국가의 권위를 위해, 아니면 개인의 명예심이나 재산 증식의 방식으로 활용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유물과 유적을 위조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파헤쳐 놓기도 했으며 제국주의 열강들이 보존을 명목으로 소중한 식민지 국가의 보물들을 강탈해 간 것들 등은 심히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지막으로 점점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더 발견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은 정말 놀라웠다. 현재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역사가 발견된지 고작 50년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AI의 도입으로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역사가 눈 앞에 펼져질 것 같다. 황량한 사막, 시베리아, 초원에서 인류의 역사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고고학자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마치 탐정이 추리를 해 가는 것처럼 작은 파편 하나하나를 맞추어 가며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내는 그들의 모습에 존경의 감사를 보낸다.
'데이비드 로웬델 교수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 라는 책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에 대한 이해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과거는 하나의 고정된 역사가 아니라 계속 바뀌어가는 낯선 나라 라고 말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현대의 고고학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는 것이다. 고고학자로서의 안목과 식견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역사학과 출신이다 보니 고고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없었다. 인디아나존스나 보물찾기는 결국 범죄의 현장이거나 고된 노동의 결과임을 안다. 발굴 현장에 참가(본인은 참가라 했지만 아무리 얘기를 들어봐도 단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의 말로는 순전히 육체노동이라 했다. 그리고 철저한 계급이 있는데 고참이고 관리자일수록 발굴도구가 가벼워진다고 했다. 친구처럼 초짜나 아르바이트생은 삽을, 전문가일수록 붓이나 솔 같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내가 직접 참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실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군복무를 한 친구도 비슷한 증언을 했으니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과장을 했을 수 있다. 어쨌든 고고학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는 고된 육체노동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경주나 로마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발굴 현장은 험한 곳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당연한 결과다.
학생시설 답사 중에 유적 발굴현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기억이 있다. 희미하지만 그때 느낌은 마치 재개발 현장 같았다. 자연의 모습은 파괴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규칙성은 있었다. 네모 반 듯 한, 건물이나 유적이 있었던 흔적에 따라 땅은 참호와 같이 가지런히 헤집어져 있었다. 저자는 고고학은 이 파괴의 행위가 있어야만 유물을 찾을 수 있고, 과거의 사람들을 불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도, 고고학도 멸망과 파괴를 공부하지만, 고고학이 좀 더 직접적이다. 파괴와 멸망의 흔적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고학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학문이(p.642)”라 정의한다.
고고학과 역사학은 서로 유기적인 학문이다. 사실상 서로 떼어낼 수 없다. 개인적으로 역사학보다 고고학이 더 흥미롭다.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상상력’의 범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새로운 발견 앞에서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p.547)”지만 “실제 유물을 앞에 놓고 있으면 없는 상상력도 일어나기 마련(p.547)”이라고 고백한다. 그만큼 상상력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크다. 따지고 보면 영상보다 문자의 빈 공간이 더 넓다. 문자보다 유물의 빈공간이 더 크다. 빈 공간의 넓이만큼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많다. 역사가 그렇듯 고고학도 유물과 유물 사이를 더 그럴싸한 상상력(가설)로 채워나가야 한다. 물론 그 사이를 역사학보다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신기술들을 통해서 메워나가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고고학이 역사학보다 더 어려운 학문일 수밖에 없다. 상상력이 많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만큼 간극이 크다는 말이다. 간극만큼 오랜 시간을 헤매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연구하지만 미래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고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p.629)”이라고.
역사학과 고고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결국 “고고학이 보물찾기가 아니라 유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소중한 깨달음(p.649)”을 얻는 길이다. 고고학이 그러하듯 역사학도 그러하다. 결국, 우리가 어떠한지를 배워가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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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는 모은 땅 속에 있어야 하지만 머리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훨훨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꿰고 있어야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끊임없이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는 만능학자이기도 하다. p.7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p.18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p.20)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21
무덤은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죽음이 다시 태어나는 황홀한 경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가장 꺼리는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무덤을 만들고,(p.54) 그들을 기억하는 제사를 마치 축제처럼 지냄으로써 고대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무덤에는 이처럼 인류의 생존 비결이 담겨 있다. p.55
무덤 하나하나는 곧 내세에서의 복을 기원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산 자가 남긴 마지막 사랑이다. p.55
로버트 던바는 요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사회적인 시간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을 통한 요리의 사용은 이렇게 복합적으로 인간의 진화에 작용하고, 인간의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p.96
재를 보면서 불을 느낀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적은 마치 타고 남은 재와 같다. ... 지금 남은 것은 불을 태운 흔적과 재뿐이다. 하지만 그 불의 흔(p.99)적을 가진 흙들을 발굴하다 보면 그 위에서 벌어진 수많은 의식, 요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p.100
중요한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 안의 뜨거운 열기를 꺼드리지 않는 것이다. 불과 재는 둘 다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내 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질 때, 재 속을 헤집듯 자기 안을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p.103
이 자그마한 뼈로 만들어진 인삼 채취(p.144) 도구는 발해사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단서이다. 역사를 보면 발해는 추운 극동 변방 지역의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산악 지역이다. 이런 곳에까지 왜 발해가 진출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바로 경제가치가 높은 물품들(인삼, 모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사소한 유물들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p.145
지식이라는 것에 사유, 성찰 그리고 자기의 절제가 더해져야만 지혜는 생겨난다. p.171
음식에 대한 탐닉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를 이끄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p.293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 과정은 중요한 요소였음을 지적한다. 특히 로버트 던다는 이러한 행위를 ‘그루밍’으로 규정짓고 인간 역시 서로를 어루만지고 느끼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유대를 키웠으며, 여기에 음악과(p.351) 언어가 더해지면서 현대 인류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p.352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p.391
문화재 조사의 핵심은 ‘불가역성’, 즉 한번 발굴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p.404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고고학도 그러하다. 과거의 유적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인들의 모습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당연시하고 발굴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후대에 물려줄 유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p.406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여 이득을 얻으면 그 욕심에 편승한 또 다른 개인이 등(p.426)장한다. 그 개인들이 모이고 모여 집단이 되고,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맹목적인 광기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이념으로만 집단 이기주의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다. p.427
전쟁과 고고학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현(p.429)실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지층의 구조를 파괴하여 그 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 전쟁은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부여한다. 고고학은 땅을 파헤쳐서 자연에 숨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는 점에서 유적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승자가 그 이후의 세상을 재편하듯이 유적을 파괴하고 그 속의 유물을 꺼내서 과거를 다시 재편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로 닮아 있다. p.430
너무나 많은 전쟁의 과정이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일방적으로 서술되었다. 고고학을 동원해서 그 과정들을 객관적으로 남겨 놓는 것이 필요하다. 수백만 명이 쓰러져간 그 과정을 어떻게든 기록해서 전하는 것은 우리 고고학자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p.471
우리 주변에 사라지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생겨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때문에 우리는 소비할 뿐, 남기거나 간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어져야 하는 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법이다. p.481
“문명이란 어둠과 혼돈의 깊은 바다위에 떠 있는 얇은 얼음장과 같다.” - 위너 헤어초크(독일 영화감독) p.483
인류 역사의 원동력은 과거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에 있었다. 지리나 환경의 변화를 거부하고 지나치게 이전의 사회나 문화에 집착을 했다면 현생인류는 완전히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p.484
“조상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예푸(중국 인문학자, 작가) p.507
고고학자들의 어떠한 주장이든 유물에 기반이 되어야 한다. 고고학자에게 진실은 유물에서 시작해서 유물로 끝난다. 고고학자들은 새로운 발견 앞에서 최대한 상상력을 억제하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실 실제 유물을 앞에 놓고 있으면 없는 상상력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물을 두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고학 유물의 가변성에 있다. 문헌을 주로 연구하는 역사와(p.546) 달리 고고학이 대상으로 하는 유물들은 매일 새롭게 쌓인다. 언제나 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두 개의 발견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p.547
고고학자에게 명성은 마치 헤엄치는 고래와 같다. ... 너무 오랫동안 수면 밑에 있어서도 안 되지만 수면 위에 계속 머물러서도 안 된다. p.547
많은 사람들은 고고학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를 밝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목적은 역사 기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p.57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눌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p.627
고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629
기술이 발전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p.641)어야 할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현대의 고고학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는 것이다. 고고학자로서의 안목과 식견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본연의 목적인 ‘과거의 유물을 통해 사람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에 더 집중해 사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연구하는 고고학의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p.642
고고학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생존을 거듭하며,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느낄 수 있는 지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고학은 이어진다. p.642
고고학이 보물찾기가 아니라 유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소중한 깨달(p.649)음을 여러분께서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펴냅니다. p.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