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가쓰히로 저/곽범신 역
아파트가 어떻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이 책은 '집 값'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자본, 자산에 대한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아파트로 대변되는 현대 건축과 토목 기술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묻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어떤 입장이 있기에는 우리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생각도 별로 안 해봤다는 거지요.
당신은 환경주의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보통은 "글쎄 환경을 보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정도일껍니다. 그러나 환경주의자이냐 개발주의자이냐 이건 그런 피상적인 대답으로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입니다. 환경을 보전하면 물론 좋죠. 그렇지만 그러면 포장도로를 피하자는 얘기인가요? 그러면 또 아닌거 같고, 다리를 놓지 말자는 얘긴가요? 댐도 피할까요? 이러면 또 그건 아닌거 같고... 이러다보면 대체 어디까지가 환경파괴이고 어디까지가 개발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자기 직업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 피상적인 인상만 가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구 환경에 대해서는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거기서 살아왔거든요. 그렇지만 이 책을 보다 보면 참 내가 모르는 구석도 많구나 싶으실 테고, 이런 것까지 고민해봐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겁니다. 이를테면 연말마다 갈아엎는 보도 블럭을 욕하기는 쉽지만 이 책에선 말합니다. 보도 블럭은 갈아야 한다고요. 안 갈면 어떻게 되는지 듣다보면 또 그건 그렇네 싶습니다. 요는 인간 기술에 대한 신뢰를 해야 한다... 이런 건 아니고, 적어도 반대하려면 무엇을 반대하려는지, 찬성하려면 무엇을 찬성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월드컵 대교 이야기였습니다.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대체 왜 저건 완성이 안 되나 싶었거든요. 어차피 다 인공호수인데 인공호수 주변에서 자연이 어떻고.. 이것도 이상하단 것도 재밌네요. 조선시대에 팠으면 자연이고 대한민국시대에 팠으면 인공이고 이건 이상하죠. 결국 지구를 뿌수고 고쳐가며 쓰는건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사실 이제 와서 안 하는 척 하는 것도 이상한거죠.
개발과 보존에 관한 상식적 통념과 선입견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책이다. 우린 자연적 vs. 인공적이란 이분법적인 사고를 많아 한다. 자연적이라는 말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개발되지 않은 순수한 존재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지닌 개념인데 반해, 여기에 인공이 가미된 개념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열등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 문명사회의 대표적 존재인 도시의 건설과정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다. 건물을 짓고 터널을 만들어보면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환경에 도움이 되고 인류의 삶을 쾌적하게 만들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는 노르웨이 댐에서부터 알프스의 터널, 싱가포르의 수자원시설, 우리나라의 인공저수지, 수원화성을 거쳐 서울의 출퇴근길에 이르기까지 도시와 인프라 건설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흔히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은퇴후 귀농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막연하게 동경하는 농촌생활과 삶의 하나로서 농촌생활이 같은 것일까?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의 숲속생활이 과연 친환경적이었을까 반문하면서, 그가 숲속에서 수프를 만들다가 300에이커의 숲을 태운 일화를 소개한다. '성냥갑'같은 도시 아파트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많은 도시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개선했는지 생각해 보았는지를 반문하다. 사회와 문명의 측면에서 도시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살펴보면서 과감하게 우리의 상식에 도전한다. "아파트가 어때서'라고.
저자의 결론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인공적인 것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2분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4대강 건설에 비난의 목소리가 많지만 자연에 인공의 기능을 보태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생태적 측면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를 기반으로 발전한 인류문명사에서 토건사업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이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엔지니어로서 자신이 본 인프라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하자고 역설한다. 장기적으로 보아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결국 자연의 모습에 기술이 바탕이 둔 인공을 더해 더 멋진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의 노랫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위로 별빛이 흐르고, 그 곁에는 바람 부는 녹지가 가득하며,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존재가 그 터전에 함께 하면 좋겠다.
사실 제목만 보고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와 도시 이야기인줄 알았다. 아니면 적어도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나 콘크리트를 사용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일거라 지레짐작 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도 물론 일부 있지만 저자의 건축 경험담이 뒷받침된 건축 인문에세이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인간의 힘과 기술'에 관하여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자연은 사실 인류 문명이 자연을 '인간적으로' 다스리고 길들인 '인공적인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산업화가 아닌 애초에 수렵 채집 및 농경 단계의 초기부터 지구에 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그렇게 자연이란 이름의 혹독한 야생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라는게 그의 논지다.
사실 우리는 이 '인공적'이라는 것에 일종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반대말인 유기농, 내츄럴 같은 것이 각광받는다.
집이나 주거에 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도 이를 ‘성냥갑’으로 낮춰 표현하며 전원주택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와 같이 낮은 건폐율과 높은 용적률의 구조물은 한정된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가장 진보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도시에 고밀도로 모여 사는 것이 시골에 홀로 거주하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친환경적인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책은 크게 네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겨울왕국에 정말로 댐이 사라진다면'에서는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인프라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겨울왕국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댐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고, 강원도 산불 진화를 통해 도로의 효용성을 설명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 터널을 만든 스위스와 두 개의 철도가 지나가면서도 공원으로 재탄생된 연트럴 파크, 그리고 싱카포르의 하수처리시스템 등을 통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인프라와 그 역할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019년 개봉한 <겨울왕국2>는 세계 에니메이션 흥행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사실 시기를 잘 타기도 했다. 올해 개봉했으면 분명 관객이 반도 안되었으리라.
극중 북쪽 노덜드라 부족이 사는 지역에는 댐이 있었다. 노덜브라 족이 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아렌델 왕국(주인공들의 나라)이 우정의 표시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하지만 우정의 표시인줄 알았던 이 댐이 알고 보니 해당 지역 정령의 기반을 약화시킨 원인이었고 주인공인 안나 공주는 이 댐을 무너뜨리는 일이 관계를 복원하는 길이라 판단하여 정령의 힘을 동원해 댐을 허물어 버린다. 댐이 무너지고 난 후 어두웠던 두 왕국에는 다시 빛이 찾아오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저자는 댐이라는 인공물이 악의 축으로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토목 건축가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노르웨이는 약 18,000개가 넘는 댐이 존재한다. 가히 댐의 왕국이라 할 수 있다. 수자원에너지국에 등록된 댐만 해도 약 3,800개 수준이다.
노르웨이는 이 많은 댐을 이용해 수력발전을 해서 청정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잘 이용한 것이 이유다.
저자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설사에 입사해서 여러 현장을 거친 건축 전문가다. 우리나라의 여러 오지 건설현장과 해외 건설현장을 거치면서 건축가의 시각으로 인간이 만든 건축 구조물을 이야기 하고 있다.
콘크리트 하면 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저자는 콘크리트야말로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현재의 인류 삶을 받치는 가장 아랫지반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견 동의한다.
2부 '인공적인 것은 아름답다'에서는 본격적으로 '인공'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을 통해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인 '야생'을 이야기하고 있고, 백운호수와 강화도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현재 국토가 만들어진 과정까지 살펴본다.
종횡무진으로 우리 삶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물류가 가능케 했던 항구, 교량, 철도, 도로 등이 형성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일본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통해 자연의 리스크를 끊임없이 감소시키며 문명을 형성한 과정도 분석한다.
백운호수와 우리의 삶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름부터 평평한 1기 신도시 평촌은 아파트로 개발되기 전 별다를 것 없던 논밭이었다. 과거 이러한 논밭에 물을 댈 수 있었던 것은 백운호수라는 인공의 저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백운호수 뿐만 아니라 과천의 청계저수지, 수원의 광교저수지, 시흥의 물왕저수지 등 논농사를 위한 저수지는 전국에 1만 7천개가 넘게 있으며, 이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주로 여름에 집중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다.
역사시험에도 많이 나오지만 전북 김제의 벽골제, 경남 밀양의 수산제, 충북 제천의 의림지 등이 있으며, 의림지는 무려 2천년 넘게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역사속에 몽골이나 청나라 등 북방 이민족이 침입해 오면 피난을 가던 강화도는 무려 800년의 역사를 통해 간척을 해서 섬의 크기를 키우고, 이 속에서 식량 증산을 이뤄낸 것이기도 하다. 현재 강화도 면적의 3분의 1은 인공으로 조성된 땅이라고 한다. 놀라웠다. 교동도나 석모도 역시 지금의 큰 섬이 아니라 몇개의 섬을 간척으로 키운 것이다.
내가 사는 수원 화성의 건설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온 많은 호수 지금의 광교호수(원천저수지), 파장 저수지, 만석거 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보고 있다.
저자는 다만 자연에 있어 인공 그 자체를 너무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물은 가급적 흘러야겠지만, 필요하면 가둘 수도 있는 것이고, 유역을 변경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기는 하다.) 가만히 두면 홍수로 범람하여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으니 고수부지나 안벽을 두어 강폭을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p.174
3부 '도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철근 콘크리트로 점철된 도시를 돌아보며,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형성된 아파트 주거 문화와 아파트 중심의 도시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또 대중교통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 관점에서 더 필요한 인프라에 관하여 논하고 있고, '남들이 걷는 도시'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이제는 나도 잘 알고 있는) 20세기 유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하는 빛나는 도시는 현재 어디인지, 우리나라 도시들이 혹시나 그 르 코르뷔지에가 꿈꾸던 도시는 아닐지, 정말 그런 이상적인 도시를 위해서 더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이 있을지도 이야기한다.
용적률과 건폐율을 이야기하면서 일반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 보다 오히려 아파트를 지으면서 잘 조성된 조경을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최근 아파트 개발 붐으로 이러한 조경을 가지지 못한 정말 '닭장'같은 아파트도 많지만 말이다.
저자는 경부고속도로 시점부를 지하화 하기를 바라면서 그 지하화한 윗 공간을 모두 녹지로 만들어 도심의 허파와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오늘의 경부고속도로는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 저자는 오늘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홍콩의 구룡반도 처럼 용적률과 건폐율을 높여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하고, 나머지 공간을 자연 녹지나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4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에는 국내외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겪은 단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넘나들며 느낀 소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세대론에 대한 단상 등 쉽게 풀리지는 않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풀려고 노력해야 할 사회적 과제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과학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그 이로움이 주는 가치, 그리고 공학적 비전을 성숙하게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문과생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때로는 인위적인 것보다 아닌 것이 우리에게 더 큰 만족과 장기적인 행복을 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문과생이지만 전자부품회사에 다니면서 또 전자기기가 주는 이로움과 결국 인류에게 어떤 것이 행복을 줄 수 있는가, 이 발전의 종착역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봤기 때문이다.
인프라 물론 중요하다. 오늘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중용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나같은 직장인으로 책을 써 낸 저자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며 또 해박한 지식과 깊은 생각 때문에 재미있게 잘 읽은 책이다.
저자는 『아파트가 어때서』에서 우리 사회가 공학기술을 발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인프라적인 접근을 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한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과 일상적인 생활 수준을 고취하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동안의 한국경제가 토건경제였으며, 그로 인해 실물경제가 더 이상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거품이 붕괴하는 디커플링에 접어들었다고 일갈한 학자가 있다. 그는 토건경제는 반생태적이어서 생태계에 위기가 오는 건 불가피한 일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탈토건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디 그 학자뿐이겠는가. 토건을 사회악으로 여기고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토건족이라고 하며 배척해야할 무리 정도로 여기는 모습은 하도 여러 번 봐서 새롭지도 않다. 그렇기는 해도 평생 그 토건족의 무리에 들어 살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그런 가운데 한 토건기술자가 토건 인프라가 생태계 파괴를 어떻게 최소화했는지 사례를 들어가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다.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책인데, 책 제목만큼이나 그의 주장도 도발적으로 여겨질 만 하다고 했다. 추천사를 쓴 이들도 늘 신뢰할만한 글을 쓰는 이들이어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노르웨이는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한 댐에서 전체 소비전력의 95%를 생산해 청정 환경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해유전에서 생산한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수출해 얻은 수익으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워냈다. 자연환경 훼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터널은 도로나 터널을 건설할 때 일어나는 훼손을 오히려 최소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철도나 도로의 고속주행이 점점 더 요구되는데 이를 감당하려면 노선의 경사도는 낮아지고 곡선반경은 커져야 한다. 이럴수록 훼손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터널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는 셈이다.)”
“콘크리트는 환경을 악화시키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모든 토건구조물의 뼈대가 되는 요소로 그것을 빼놓고 현대문명 사회를 말할 수 없다.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건폐율을 낮추고 용적률을 높여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었다.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문제 삼지만, 이를 철이나 나무로 대신할 경우 그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콘크리트는 재활용이 늘어나 차츰 순환골재로 자리 잡아 간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설치함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한강수계에 건설한 댐은 수도권 주민들을 홍수 피해로부터 보호했고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서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ㆍ네덜란드ㆍ프랑스ㆍ일본 할 것 없이 제방축조ㆍ간척ㆍ운하 같은 구조물들을 건설함으로서 자연을 극복하고 인류가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ㆍ로테르담과 같이 이름에 ‘담dam’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도시가 많은데, 모두 간척의 흔적이다.)”
물론 열거한 바와 같이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토건 인프라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그런 문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토건 인프라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을 몇 가지라도 열거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밝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문제 이전에 그로서 우리 삶이 엄청나게 개선되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 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토건 인프라는 보편적 복지라는 점을 말하려 한다.
저자는 토건기술자로 국내 뿐 아니라 중동ㆍ아시아ㆍ아프리카 현장을 다니면서 치수 인프라가 부족할 때 비가 조금만 내려도 다리가 무너지고 마을과 마을이 분리될 수밖에 없으며, 담수화 시설이 없으면 맑은 물도 마실 수 없고, 발전소가 없으면 산업도 시작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라크에서는 석유매장량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항구와 철도망이 없어서 수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다. 결국 그 토건이라는 인프라가 없으면 인류가 지구에서 이렇게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되면서 토건인프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억울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그것이 이 책의 집필동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주택 인프라, 특히 아파트에 대한 세간의 비판적 시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책 제목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아파트는 건폐율을 높여(좁고 높게 지어) 지상공간을 확대함으로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었으며, 집합주택으로 냉난방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하였고, 고압으로 전기ㆍ수도ㆍ가스와 같은 유틸리티를 공급해 비용을 절약하였고, 인구밀집으로 오히려 온실가스가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합리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한정된 땅에 천 만 인구를 수용하자면 아파트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택의 문제도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는 면적이 서울의 3.3배에 달하는데 인구는 80%에 미치지 못한다. 인구밀도로 보면 리야드의 4.3배에 달하는 것이니 서울에서는 주택을 위로 쌓는 것 말고 어떤 다른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는 건축비는 앞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아파트 후분양은 궁극적으로 공급을 위축시키고 건축비를 높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리한 제도일 것이라는 주장에 눈길이 끌렸다.
주택 건축비는 모든 토목건축공사와 마찬가지로 재료비ㆍ노무비ㆍ경비로 이루어지는데, 그 세 가지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되기 마련이어서 그 요소의 합인 건축비는 당연히 인상될 수밖에 없다. 집값은 건축비 말고도 여러 요인으로 결정된다. 요즘의 집값 변동 추이를 보면 건축비는 집값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 부차적인 요소로 보일 정도이다. 그렇기는 해도 건축비의 비중이 결코 무시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므로 건축비 인상이 집값 인상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집값 등락을 예측할 때 건축비 인상이 고려되지 않는 걸 보면 지금 집값은 상식의 틀 밖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저자는 후분양제가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키고 금융조달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결국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그룹 신년인사 자리에서 건설ㆍ건축자재를 총괄하시던 회장께서 기업으로서는 선분양제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는 하지만 비상식적인 모델이니 후분양제로 바뀌는 것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셔서 놀란 일이 있다. 나는 평생 토건분야에서 일해 왔고 그룹의 주축사가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지만 아파트 선분양제에는 부정적이다. 그런 내게도 그 발언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저자는 우선 후분양일 경우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 차액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말한다. 또한 건설업체의 자금 여력이 취약할 경우 금리 부담이 더욱 커지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업체는 사업이 더욱 위축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아파트 건설에 최소한 2~3년이 걸리는데 준공 이후 주택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건설업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후분양제는 전체적으로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켜 소비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평생 재산인 아파트를 실물도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원론적 지적도 그렇고, 하자 확인이 어렵다는 실질적인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후분양이더라도 하자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일부분에 국한될 뿐이고, 하자 발생은 분양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건설업체의 품질관리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선분양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선분양은 신뢰가 전제된 사회에서 모두가 리스크를 함께 줄여가자는 진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에게는 후분양 선택권을 주고, 리스크를 감내하겠다는 이에게는 선분양 선택권을 돌려주자는 것이다. 다만 획일적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토건회사에서 평생 일했지만 토목 인프라사업에 참여했을 뿐 건축에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선분양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일반 소비자의 시각이었지 건축업 종사자의 시각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분양제도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것에 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며칠 전에 서울 아파트 값의 평균이 고가 주택의 기준인 9억 원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공급확대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후분양제가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킬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거의 그럴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강제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 아닌가 한다. 저자가 제안한 대로 선택권을 소비자와 건설업체에 돌려주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당초 이 책이 토건 인프라를 부정하는 시각에 대한 반박일 것으로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추천사에 언급된 것 같이 “개발과 보전의 낡은 이분법을 깼다”거나, “인텔리겐치아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거나, “지자체장으로 출마할 사람들이 숙지하고 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내용”을 찾지 못했다. 추천사야 홍보용 글이니 크게 비중을 둘 일이 아니었는데 그만 추천한 이의 이름에 걸려들었다. 이미 몇 번 겪고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했다.
토건기술자로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경험을 겪었겠으나 토건 인프라와 관련한 내용 중에 아쉬운 부분이 몇몇 눈에 띄었다. 오류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견강부회라고 여길 부분에 있었다. 하나 예를 들자면,
저자는 보도블록을 매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도시 지역 대부분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는 비교적 젊은 지층이어서 압밀침하로 보도블록 밑의 지층이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인천공항의 공사 중 침하량이 0.5미터 향후 20년간 잔류침하량이 2.5센티미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에 조성된 지층이 젊은 것하고 압밀침하가 일어나는 것은 별 상관이 없다. 압밀침하는 점성토(진흙)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사질토(모래흙)에서는 즉시침하가 일어나 공사가 끝날 때쯤이면 침하가 모두 끝난다. 낙동강 유역은 압밀침하의 대표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적용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 하구지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압밀침하 때문에 보도블록을 매년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없느니만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