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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2024 서울국제도서전 기념 개정판,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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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342g | 135*200*17mm
ISBN13 9791167374387
ISBN10 11673743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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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다정한 말을 한마디쯤 건네시거나 호의 어린 시선으로 한 차례쯤 바라보시거나 손을 한 번쯤 가만히 잡아주셨다면, 언제나 저를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는 진정 기본 바탕에 있어서는 관대하고 정이 많은 분이세요. 하지만 모든 아이가 어떤 행동에서 마침내 어른의 호의를 찾아낼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끈기 있고 겁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저에게 반갑지 않은 것은 그 애의 탐욕이었습니다. 제 내부에는 한층 더 강한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요. 탐욕은 심대한 불행의 가장 확실한 표식이죠. 저는 무엇에 대해서든 좀처럼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령 제 손으로 이미 잡거나 입안에 넣은 것만을, 최소한 막 그러려는 찰나에 있는 것만을 제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빼앗아 가는 일이야말로 저와 닮은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짓이었죠.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마땅히 해주셔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보다는 실제 삶을 통해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일이 절실했을 거예요. 아버지의 유대주의가 더 확고했다면, 아버지의 본보기도 거부하기가 더 힘든 것이 되었겠지요. 이는 자명한 사실이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버지에 대한 질책이 결코 아닙니다. 아버지의 책망에 대한 방어일 뿐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고의 성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멀리서부터 가까워진다는 것, 특히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다가간다는 것 자체입니다. 반드시 태양의 한복판으로 날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따금 햇살이 비쳐 들어 조금이나마 몸을 덥혀주는 지상의 협소하지만 깨끗한 장소, 그곳까지 더딘 발걸음을 옮겨 가는 것만은 필요합니다.

때때로 저는 활짝 펼쳐져 있는 세계 지도를 상상하곤 한답니다. 그 한복판을 가로질러 아버지께서 몸을 쭉 펴고 누워 계시죠. 저는 아버지의 몸이 닿지 않는 곳, 또 아버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만을 제 삶의 공간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 영역은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크기를 제외하면, 넓지도 않고 충분한 위안거리로 삼을 만하지도 않습니다.

부모의 이기심-부모 고유의 자의식-은 한계라는 것을 모른다. 부모의 가장 위대한 사랑조차도 교육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상 교육 담당자의 가장 하찮은 사랑보다 자기중심적이지.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어.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남의 자녀들을 상대할 때의 태도와는 달리, 부모는 자기 자식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아. 자기 혈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더구나 부모 양측의 피가 섞여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복잡해지지.
--- 「부록_ 누이동생 엘리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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