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는 시간이 갈수록 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곧 100년이 되어가는 이 책은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이 책을 여러번 읽어봤지만, 읽을 때마다 씁쓸하면서도 읽을 때마다 새롭기도 하다.
다양한 버전의 책들이 있고, 번역하는 사람마다 약간의 필체가 다르기도 해서 더욱더 새롭게 느껴지는 듯 하다.
20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장편소설. 무능력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개츠비는 성공의 야망을 품고 육군장교가 되어 데이지와 만나나 데이지는 돈많은 남자 뷰캐 넌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술을 밀조하여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는데...오직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살아 온 개츠비의 삶을 통해 과연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전후 복구에 매달려 있던 유럽과 달리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주식의 수익 증가율은 108퍼센트에 달했고 기업의 이익은 76%, 개인 수입은 33%나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밀주업자와 갱단이 판을 치고, 온갖 사치와 향락이 난무하던 이 시기를 배경으로 『위대한 개츠비』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폴로 경기를 하려고 다른 도시에서 말을 한 떼나 끌고 오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톰 뷰캐넌과 남편의 부정을 알면서도 눈앞의 안락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데이지 뷰캐넌, 그리고 골프 시합에서 부정을 저질러 우승하고도 태연한 조던 베이커 등은 당시 미국 사회의 현실이 투영된 인물들이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시선 앞에 놓인 이들은 한결같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르주아로 혐오감을 자아내지만 개츠비만은 다르다. 비록 그의 외양은 허식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물질적 화려함과 부가 가진 힘은 우리에게 환멸과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라는 미끼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우리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세계대전 후 방탕하고 무질서해진 미국인들의 헛된 생각에 가려져 버린 미국의 '이상'을 보여 주려 했다. 물욕주의자의 가치관과 그 화려함에 경도되어 자신의 온 마음을 바치고 결국 희생당한 개츠비는 미국이 건립된 초기의 이상향을 되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당대 미국 사회의 낙관주의와 미국인들의 꿈이 이루어져 간다는 들뜬 기대 뒤에 가려진 공허함과 절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난에 시달리고, 연인으로부터 적은 수입 때문에 파혼당한 경험이 있는 피츠제럴드 역시 평생 부와 명예에 허기진 채 쾌락을 좇는 삶을 추구했다. 그에게 있어 ‘삶은 인간에게 너무 거세고 무자비한 것’이었다. 이처럼 비극적인 삶의 의미를 비록 금방 깨어질 것이라도 낭만적 환상을 통해 극복해 보려고 한 피츠제럴드의 태도는 『위대한 개츠비』에 고스란히 형상화되어 있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개츠비가 보여주는 낭만적 환상이나 이상주의는 미국 사람의 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상력이나 문화의 일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오죽하면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을까. 이제 여러 사전에 정식 등재된 이 형용사는 낭만적 경이감에 대한 능력이나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지네. 책표지에 그려진 데이지를 보고 있으니 영화속 데이지가 겹쳐진다.
영화도 다시 봐야지.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을 쫒고 있는 우리들. 그래도 떳떳하게 버는 거니까 괜찮아. 욕심내지말고 지금에 감사하자.
자주 읽어도 좋은 책! 위대한 개츠비!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만나게 됐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대 배경을 가지고 저자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조금은 자조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저자의 프로필이 꽤나 독특하다.
개츠비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영화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TV나 인터넷을 통해 개츠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닉이라는 인물이고 이 인물을 통해 개츠비는 3인칭으로 그려지고 있다.
닉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이 개츠비란 인물은 무지 부자이다.
매 주마다 성대하게 파티를 연다. 그 이유는 5년전에 헤어진 옛 연인인 데이지를 보고 싶어서 이다. 데이지란 인물은 개츠비의 첫사랑이다. 그 첫사랑은 첫사랑답게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개츠비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가 보다. 데이지와 개츠비는 10대 후반에 만났지만 결국에 헤어졌다. 가난한 군인이었던 개츠비와 부잣집 아가씨의 만남은 결별로 이어졌다.
그리고 데이지는 톰이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다. 지금도 톰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개츠비는 그 것도 개의치 않는지 다시 데이지를 보고 싶어 했다.
파티에서 만난 그 둘.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톰.
톰은 그 둘을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데이지는 그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톰이 바람이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대는 자동차 정비공의 아내였다.
정비공은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눈치를 채고 그녀와 말다툼을 벌인다. 그러다 아내가 집 밖을 지나던 차를 보고 나갔다가 그만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톰은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이 개츠비라 말하고 정비공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사람이 개츠비라 오해하고 총으로 개츠비를 쏘고 자신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데이즈는 개츠비의 장례식에 조차 오지 않는다. 개츠비는 그렇게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개츠비가 그렸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파티속에 감춰진 개츠비의 인생. 그 인생의 끝이 참 허무하게 느껴진다.
잘못을 했어도 교묘히 빗나가고 그걸 역으로 이용해 잘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925년 피츠 제럴드의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2013년 영화로 만들어진 닉 캐러웨이역의 토비 맥과이이어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로 개츠비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먼저 생각난다.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은 책으로 읽으면서 다양한 미사여구 표현에 먼저 빠져 들어가는 것이 좋을거 같다. 영화의 스케일은 파티 장면에서 눈에 띄고 남다르지만 부촌과 빈촌의 영상미를 이해하기는 쉬웠다.
제 1차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의 사회상을 실감나게 묘사한 부분도 강했다..
1922년대 뉴욕 외곽으로 이사온 가난한 닉은 이웃에 살고있는 개츠비에 대해 듣게된다.
여러가지 소문이 무성한 호화로운 백만장자 개츠비는 주말마다 파티를 연다.
닉의 사촌인 데이지는 개츠비의 과거 연인이었고 부자인 톰과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톰은 외도를 일삼고 데이지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불행한 삶을 살고있었다.
닉은 호의적으로 대하고 초대장까지 건네고 친절한 이웃인 개츠비와 가까워지게 되고 닉의 집에서 닉의 사촌인 데이지와 함께 있을때 우연을 가장한 방문을 하겠다고 부탁한다.
그래서 예전의 연인이었던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만나게 된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 톰과 바람피는 여자를 차로 치게된다. 톰은 여자의 남편에게 개츠비가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슬퍼하는 그는 톰의 말을 믿고 개츠비를 죽인다.
개츠비의 장례식장에 닉과 개츠비의 아버지만이 참석하고 데이지는 물론 어느누구도 참석하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여자를 죽을때까지 사랑했던 지고지순한 개츠비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개츠비는 왜 위대한 개츠비인가?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통해 세계대전후 방탕하고 무질서해진 미국인들의 헛된 생각에 가려져 버린 미국의 이상을 보여주려했다. 자신의 온마음을 바치고 모든것을 걸고 사랑했지만 결국 희생당한 개츠비의 죽음은 미국적 이상의 상실을 대표하게된다고 했다.
이글은 스타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