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저/추미란 역
오언 오케인 저/정지현 역
백원달 저
이누카이 쓰나 저/김보화 역
이현주 저
사다인(김가영) 저
알라딘 중고서점 주문이 들어와서 급하게 쓰는 독후감
다 읽은지는 한달이 지나가는 것 같다..^^
완독했다고 해서 꼭 독후감을 꼼꼼히 써야한다는 부담감은 나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읽은 책을 기록하는 것이 부담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일까?
우선 읽으면서 표시해둔 부분이 꽤 많다는 게 문제가 된다. 인상깊은 문장은 당연하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면 많게는 한 장(두 페이지)에서 두 세개를 표시하기도 하니까..
이럴 땐 이북이 더 편한 것 같다. 펜이나 인덱스가 없어도 바로 메모를 남길 수 있고 얼마든지 수정도 가능하며 위치에 상관없이 모아서 볼 수 있는 점이 매우 시간단축에 효과적인 듯하다. 대신 물리적으로 들고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기억하는 데에 있어서는 크리티컬할 수밖에 없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새가 날아가는 예쁜 화이트 앤 블랙, 하늘색 표지를 들추면
나도 모르는 새에 강박으로만 살아가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바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나를 보면서 신기하다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러지 말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최초로 (단호하게) 그렇게 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되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힘든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생각할까?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겪는 고통이 대부분 외부인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p. 27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혼이니 불륜이니 하는) 소식을 들었다. 탑스타들이 그렇듯 아리아나도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놀랍지도 않을만큼 수많은 논란이 있었던 터라 연관 영상으로 최근 몸매 관련 지적을 받고 일침을 날리는 라이브 영상이 떴다. 논란이 된 이유는 데뷔초 때와는 달리 살이 너무 빠졌기 때문. 거식증이 확실하다, 건강하지 않아보인다 등 억측이 난무하는 와중에 아리아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맞다. 본인 일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상황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다. 히나 불행은 더 그렇다. 눈 앞에 놓이지 않는 한 생각할 이유도 없으니까. 어제 본 프리다 칼로 연극에서도 그렇고 우리 삶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불행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가 불행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 애초에 타인의 상태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가?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열심히 할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가르치지만, 수용할 정도의 '열심히'기 어느 정도인지 실제로 정의하지 않는다. 약한 모습이나 쉬어야 함을 결코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p. 40
프리랜서들이 많이 겪는다는 일중독(워커홀릭)이 열정과열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못말리는 사람 정도로만 들리는가? 나는 이제 이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도 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나면 급격히 피곤해지는 몸을 속일 수 없듯이 빨리 많은 일을 해내면 앞서나가는 것 같아도 결국 언젠가는 쉬어야'만 한다.' 내가 과잉의 상태에 있을 때는 쉬어도 되는지조차 인식이 없었다. 내게 쉬는 것은 항상 새로운 자극과 모험을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은 하루를 낭비해버렸다는 생각에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피로회복에는 최고였는데도 말이다.
인생은 스터디플래너에 쓸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 수가 정해져 있는 문제집이 아니다. 어느 부분에서 쉬어야 할지, 하루에 어느 분량을 할 수 있는지는 스스로의 데이터로밖에 알 수 없다. 그리고 모두의 속도와 능력은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열심히도 똑같지 않을까. 우리에게 실패란 더 열심히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부유층에게는 노예들이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는 게 매우 중요했다. 물론 노예들은 그것으로부터 얻는 게 전혀 없었다.
p. 44
열정페이는 꺼지라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우리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도둑놈 심보이자 헛된 망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사회 초년생이라고 해서 열정페이가 부당하지 않다고 느낄만큼 멍청하지 않다. 그저 이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면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견디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제공하는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은 보장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고용인이 당장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면, 고용주들이 바라는 퀄리티 있는 노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겠는가?
노예가 나태하거나 '게으르면' 근본적으로 부패하거나 잘못된 면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주인들은 노예들이 한가하면 반란이나 폭동을 일으킬 수단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고 최대한 바쁘게 일을 시켜 지치게 했다.
p. 45
사람을 부리는 일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서 신분제도 노예제도 사라진 마당에 사람들을 묶어둘 이유를 설득시켜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돈도 돈이지만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는 동료들, 회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애증 등의 감정도 한 몫 할 것이다. 대단한 사이비 종교의 주교와 위대한 사업가는 한 끗 차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아무튼, 요즘도 사내 괴롭힘은 만연해있고 주니어들을 향한 쉬는시간 감시는 당연히 있다. 아르바이트만 해도 시간제로 노동을 사는 구조다보니 쉼은 곧 돈을 떼먹는 파렴치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적당한 쉼이 더 높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고용주들이 반대할까?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정말로 바뀌지 않는 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뿐이다.
이상한 역설이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이로운 수준 이상을 하려고 들면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늘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결코 해냈다고 느낄 수 없다.
p. 62
아아, 이 단 두 문장을 읽고 얼마나 얼이 빠져 있었는지. 허탈했다.
사회 초년생이던 지난 2년동안 내가 느낀 허무함을 단 두줄로 요약하면 이 문장일 것이다.
회사에서도 그렇지만 내 삶으로 봐도 그랬다. 입사는 했지만 직장인이라고 해서 회사 일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출퇴근 전후로 나로써 있을 수 있는 일을 꾸몄다. 입사 초 3개월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를만큼 주어진 패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실은 그 이후에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그저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어디서 힘을 주고 힘을 빼도 되는지, 아니 빼야 하는지 적절히 분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든 틈으로 우겨넣은 일들은 내가 나로 살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음에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둘을 병행할 수 없는 것에 가깝지 않았을까. 조금 더 천천히 나누어 가면 더 오래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가 부르면 불쾌해지고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 있어도 피곤하면 자야만 한다. 너무 당연해서 되짚어보는 것조차 어이가 없는데 왜 우리는 우리에게 관대하지 못했을까?
만성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사람도 이 주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움과 격려가 있으면 늑장 부리는 사람은 큰 책임을 작은 과제들로 나누고, 가까운 기한을 설정하는 법을 배운다. '10쪽짜리 보고서 작성'과 같은 큰일은 손발을 묶을 수 있지만, '하루에 두 단락씩 쓰기'는 해볼 만하다. 불안 치료와 병행하면 늑장 부리는 사람은 생산성과 신뢰도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p. 81
늑장을 부리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어 가져와봤다.
도움과 격려를 달라! 그리고 불안은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게으름에 대한 잘못된 상식들
자신의 삶에 대한 영향력을 잃으면 에너지를 얻거나 동기가 부여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손을 떼고 포기해 감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중략)
그런 상황에서는 노력을 덜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p. 83
일도 우리의 삶이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고 깨어있는 시간만 본다면 평일의 대부분은 일터에 있으니 직장인에게는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일에 있어 영향력을 빼앗(고 빼앗기)는 일에 대해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숙련도와 일의 규모에 따라 상위 책임자가 맡는 것이 당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으르다는 느낌은 일상의 요구를 최적의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다.
p. 88
게으르다는 느낌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아니다. 우리가 여름 휴가를 가서 바닷가에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때에는 스스로가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쉬지 않으면 집중력을 잃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생긴다. 뇌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성취가 나의 가치는 아니다.
사회에서 취약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할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여성과 유색 인종은 성공하고 싶다면 백인 남성에 대한 기대치 이상을 해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자랐거나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은 과도하게 성취해야만 할 것처럼 느낀다. (중략) 우리 문화는 우리가 훌륭해지면 비로소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가르친다.
p.172
충격적인 발언이지 않은가?
위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집단이라면 축하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상대적인 취약계층에 속한다. 그래서 더 고군분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 계층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 인식을 바꾸어 지금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며 적당한 쉼을 요구할 수는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게으름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탓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죄책감을 덜기를 바란다.
무언가 달성하고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싶은 열망이다.
학습을 게임화함으로써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생산적인 시간을 갖도록, 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쓰지 않는 매 시간이 마치 '낭비'인 것처럼 느끼도록 유도한다.
p. 180
학습을 돕기 위해 나온 많은 게임 형식의 학습도구(저자는 듀오링고를 예로 들었다. 가장 원초적인 ox게임 형식의 앱이고 나도 꽤 오래 썼기 때문에 뜨끔.. 재미로라도 알림이 떠서라도 계속 하게 되는 것 모두 어쩌면 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혹은 미디어로 인해 우리의 인식체계가 속았다는 것이 놀라운 시각이었다. 마치 마르고 예쁜 연예인들을 미디어에서 많이 접한 후에 마르고 예쁜 사람을 선망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법을 배우기도 전인 어린시절부터 나를 둘러싼 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절대 게으르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 것만 같다. 사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프레드의 연구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일은 모두 '음미savoring'로 귀결된다.
음미란 긍정적인 경험을 지금 이 순간 깊게 만끽하는 과정이다. 음미는 세 가지 시점에 나타난다. 우선, 다가올 사건을 낙관적인 관점으로 예상할 때 나타난다. 그런 후 긍정적인 순간이 일어나는 동안 그것을 온전히 인식할 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그 경험이 끝난 후 경외감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되돌아 볼 때 나타난다.
(중략)
음미의 반대는 '가라앉히기dampening'다.
p. 185, 187
나는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는 것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누리기라고 표현한다. 여행처럼 사는 삶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음미라는 단어가 딱 맞다고 생각했다. 너무 우아하고 재미있는 표현이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먹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음미는 허기를 때우는 식사보다 재료 또는 향이나 분위기 등을 느끼는 고상한 의미이니까 말이다. 기쁨과 의미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찾는다는 인식도 비슷한 것 같다. 꼭 파인 다이닝이 아니어도 직접 좋은 재료를 구해다 해먹는 맛있는 미식도 있다. 그리고 찾아보면 돈이 들지 않는 미식 경험도 많다! (내일 가는 미술의 맛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너무 기대된다! >_<)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는 활동을 추구하면,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즐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비생산적이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편히 우리 시간을 '낭비'하면,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대신 자신만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자유가 생긴다.
p. 198
저자가 끊임없이 우리를 설득해야 하는 이 책은 저자가 쓰면서도 힘이 들었을 것 같다. 좋은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변화하기 두려워 고집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책을 쓰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게을러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여러가지 상황과 솔루션을 제시한다. 존경한다..
특히나 현실성 없는 조언은 안 듣느니만 못한 깐깐한 어린 예술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이다. 특히나 본인의 업이 좋아하는 일이자 생계인 사람에게는 더 필요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취미를 꼭 가져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나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는'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이런 단호하고 시원한 표현이 너무 좋다. 차라리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누군가 정해주길 바라게 되는 심리처럼 오랫동안 바뀌지 못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움직이는 데에 이런 말은 용기가 되었다.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는 활동을 해야한다! 마음 편히 시간을 낭비해라! 좀 낭비해라!!
현재 조앤은 삶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온라인에서 공유한다.
(중략)
조앤이 인터넷을 끊은 것이 마법처럼 건강을 향상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조앤이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인 만족과 성취 쫓기를 멈추자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과 정말로 중요한 예술적 추구에 집중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잠재적인 생산성과 '콘텐츠'의 원천으로 보는 대신,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작업을 했다.
p. 203
개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개인이 컨텐츠 메이커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사실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도 자신의 일대기를 일종의 컨텐츠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대상 기업에서 세상에 뿌려지게 되는 셈이다. 인생에 고단한 일이 닥친다면 그것도 나라는 인생의 책에 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어느정도는 낙관적인 시선이나 그렇다고 고통이 줄어들거나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웃고 넘어가기 이전에 내 상처를 들여다보고 적절한 치유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맞다. 엎어져 피가 나는데 그것을 찍어다 자랑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없다고 하기 전에 성취 욕구에 눈멀어 쓰는 시간을 줄여도 내 마음의 시간이 훨씬 비워질 것 같다.
모든 것에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최대한 많이 배우고, 인터넷이 제공하는 모든 자극과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정보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화하려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제한해야 한다.
p. 231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을 이유 중 하나이다.
정보의 양은 시간이 갈수록 축적되어 많아지고 인터넷으로 인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정보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다 알 필요도 없다. 정말 좋은 정보인지는 나에게 의미있고 의미있게 활용되었을 때에만 그렇기 때문이다. (여가를 위한 읽기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쉼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사회심리학계에서 무언가를 이해하는 첫 단계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처음 접할 때 쉽게 믿고 무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에 대해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해 봐야만 그것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p. 241
믿음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오래 고민한 문제이기도하고 어떤 것과도 연결되는 삶의 근간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는 물론이고 우리가 어떤 정보를 습득하고 익히는 것과도 연결된다.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대충이라도 믿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외우고 보라는 공부법이 그렇다.. 아마도 모든 것을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할 수 없기도 하고 일단 믿는다고 치고 넘어가는 것이 빠르고 쉽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니.. 더보기
한 단원을 천천히 가르치고, 그 내용을 소화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심지어 문제 제기할 충분한 시간을 주면, 학생들은 그것을 더 지속적이며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력의 질과 그 이면의 의도성이지 얼마나 스스로를 압박하느냐가 아니다.
p. 242
짧고 적은 경력으로나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대부분 유아에서 어린이들이다보니 학습량이 정해진 활동을 하는 데에 마음이 아픈 적이 있다. 나도 놀고만 싶은 유년시절을 지난 어른으로서 충분히 시간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고 천천히 학습하고 싶지만 단기간 일회성 수업일수록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정기 수업 등으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학습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진도와 학습일지 정도이다보니 내 능력과 보호자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에도 욕심을 내보자면 적어도 내가 겪은 압박감으로 조금은 학습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유아~어린이에게만큼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고 기다려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꼭 해야만 하는 분량이 정해진 수업은 초기 모범수업을 해보고 보호자와의 상의를 통해서 아이의 성향과 진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수많은 학원과 과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생히 선생님 얼굴을 기억하고 수업을 그리워했던 과외가 있다. 그 것은 바로 선생님과 항상 마트에서 만나 요리 재료를 사고, 영어로 레시피를 정리하고 요리하며 놀았던 수업이다. 그 시간들은 내게 삶과 깊이 밀착되어 배워두면 용이하지만 따로 배우기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익히게 해주었고 선생님과의 유대감도 애틋하게 남아있어 내가 지금 과외를 하는 순간까지도 좋은 본보기로 기억하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가 더 많은 단어를 외우게 되는 학습이 단기적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요리 과외처럼, 놀이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설레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가장 바란다.
지치게 하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법
자신은 강박적으로 베풀면서도, 그와 같은 지지를 타인에게 요청하는 법을 모른다. 그레이스는 내게 너무 외롭다고 말한다. 깁슨이 쓴 대로, "가장 깊은 욕구를 숨기면 타인과 진정한 교감을 할 수 없다."
p. 257
내가 베푸는 것만큼 나도 지지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원한다고 인지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푸는 것은 자유지만 요구하는 것은 상대방에게서 뭔가를 빼앗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돈이나 시간 등을 요구하는 일이더라도 상대는 거절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요구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이지 않게 협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가 거절했을 때에 내가 똑같이 이 관계를 위해 베풀고 싶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이 관게가 바뀌거나 이어지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관계는 시장 원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든 관계는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타인도 소중하지만 타인이 소중한 만큼, 아니 그보다 먼저 내가 소중하고, 나에게는 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가 부과한 당위를 떨쳐버려라.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근본적으로 경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왜곡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믿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를 돕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실 타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좌절하고, 지치고, 우리와 타협할 수 없는(혹은 하지 않을) 누군가를 돕느라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음을 깨닫는다.
p. 285
나 자신도 내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기 어려운데 타인을 통제하고 바꾸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이 타인을 도우려고 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도우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이 당사자가 아닌지 혹은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묻기도 전에 달려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고 저자는 인용한다.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도우려고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불안정한 인정 추구 패턴이라고 말이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이 우리가 불만을 접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기를 원한다. 튀어나온 모든 모서리를 갈아 매끄럽게 만들어 누군가를 최대한 무난하고 특징이 없고 '정상적으로 보이게'할수록, 그와 주변의 모든 사람은 제도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생산성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게으름이라는 거짓이 하는 모든 다른 거짓된 약속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자기 패배적인 덫이다.
p. 296
아니 저자의 필력이.. 미쳤다.
이 말을 이렇게 깔끔하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이쯤되니 저자가 이 책을 써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짚은 정리된 한 두문장을 제외하고서는 수많은 학술자료와 예시자료로 가득 차있을만큼 논리적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주장이 간과하는 것도 어떤 것이 있는지 저자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기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사회탓, 정부탓, 상황탓하는 사람에게도 게으름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결국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본인(개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환경에 맞서 바뀌는 것이 빠른 해법일 수는 있으나 개인의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나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게으름을 해결하는 일은 인간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오늘날의 노동자도 여전히 파업으로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돈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들과 다른 부분을 무시하거나 억제하고 학습한 끝에 닿는 곳이 획일적인 사회구조 속이라면,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개인의 특징을 묵살하는 곳이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인간은 동물이다. 자유롭게 뛰어놀고 고유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다. 타인의 무기력이 몹시 자기 패배적이고 의미 없어 보여도, 삶의 맥락 속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p. 329
타인에 대한 관용을 나 자신에 대한 관용이기도 하다.
자신의 상황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신이 적응할 수 있고 살아 있다는 신호다.
p. 333
그러니 우리의 욕구와 감정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나는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위대한 유전자의 후손이다.
때로 선량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몸을 웅크리고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남는 것이다.
(중략)
방관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악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면, 악과 싸우기 위해 취한 모든 행동은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죄악이면, 어리석고 파괴적인 짓이라도 무언가 하는 게 선이 된다. (중략) 생산성이 선량함과 동일시되면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p. 336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알려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생산성과 선량함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게으름이라는 착각을 뿌리뽑을 수 있다.
내게 반려동물의 가치는 활동 수준이나 내 삶에 그 녀석이 '기여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 그것의 가치는 아름답고 불완전하게 살아 있는 데서 온다.
p. 339
모든 생명체는 아름답다. 살아있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순수한 어린 아이와 동물들의 눈망울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이 고난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의 삶도 애틋하고 대견하다. 사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우리의 삶에서 어떤 목적보다 살아가는 것만이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부지런히 하루를 의미있는 체크리스트들로 채우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게으름이라는 허상의 진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미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번아웃과 무기력 증상으로 고통받기도 하는데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강박을 벗어나 스스로를 돌보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평소 이와 비슷한 강박과 죄책감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삶의 여유를 더 가까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게으름을 활용하는 법을 기대했던 것에 비해, 지금도 충분히 일하고 있으니 그 외의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라는 다소 평이한 결론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웨일북 출판사에서 출간된 데번 프라이스 작가님의 <게으르다는 착각(우리는 왜 게으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보통 '게으름'이라는 건 누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마련인데 게으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게으르다는 죄책감은 사회가 만든 허상이다 라는 게 신선한 관점이었습니다. 사실 게으름에 대해 합리화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성실함에 대해 너무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기는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