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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문예 세계문학선 1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송영택 | 문예출판사 | 2018년 3월 30일 리뷰 총점 9.3 (27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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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독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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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문예 세계문학선 126

책 소개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에 실린 릴케의 단편들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동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릴케는 하느님의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바라며 이 단편을 지었다. 그러나 릴케의 하느님은 기독교의 '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릴케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 신에 의해 규정되었다기보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자기 성찰이 인간을 새롭게 변하게 한다고 보았다. 이는 하느님이 지상의 모든 사물에 내재하고 있고, 우리가 내재한 신의 사랑을 발견할 때 새롭게 피어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범신론적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릴케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항상 신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그 사랑을 발견하고 인정할 때 새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목차

하느님의 손에 대한 이야기
미지의 사람
하느님은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러시아에 어떻게 배신이 찾아왔는가
티모페이 노인은 어떻게 하여 노래하며 세상을 떠났나
정의의 노래
베네치아의 유대인 거리에 있었던 정경(情景)
돌에 귀 기울이는 사람
골무가 하느님이 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필자 불명의 추기(追記)
절실한 필요에서 생긴 협회
거지와 자존심이 센 소녀
어둠에게 들려준 이야기
작품 해설 -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
R. M. 릴케 연보

저자 소개 (2명)

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등 문학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10대 초반이던 발튀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으며, 이후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부친은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퇴역하여 철도회사에 근무하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양친은 성격의 차이로 해서 릴케가 9세 때 헤어지고 말았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등 문학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10대 초반이던 발튀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으며, 이후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부친은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퇴역하여 철도회사에 근무하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양친은 성격의 차이로 해서 릴케가 9세 때 헤어지고 말았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그녀가 로댕의 제자였으므로 그 자신도 로댕을 만나게 되어 예술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역 : 송영택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53년 [문예]에 시 「소녀상」이 추천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작품으로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가 있고, 옮긴 작품으로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 『말테의 수기』, 『어느 시인의 고백』, 『릴케 시집』, 헤세 『데미안』, 『게르트루트』,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시집』,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 『삶과 죽음의 번뇌』, 레마르크 『개선문』 등이 있다.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53년 [문예]에 시 「소녀상」이 추천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작품으로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가 있고, 옮긴 작품으로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 『말테의 수기』, 『어느 시인의 고백』, 『릴케 시집』, 헤세 『데미안』, 『게르트루트』,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시집』,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 『삶과 죽음의 번뇌』, 레마르크 『개선문』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 릴케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려낸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하느님 이야기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답고 언어로 풀어낸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 126번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은 릴케가 러시아 여행에서 얻은 수확이다. 그 영향으로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체험의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각각의 단편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동화 형식을 취하고 있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선입견 없이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바라고 있다.

릴케가 이 단편집에 실은 열세 편의 단편들은 그 하나하나가 하느님이라는 하나의 실로 연결되어 있으며, 작품 곳곳에 하느님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야기되는 ‘신’에 대한 이해를 벗어난다. 릴케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 신에 의해 규정되었다기보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모습이 언제나 변화하고 새롭게 생성된다고 바라보고 있으며,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참모습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릴케의 생각은 하느님은 어디까지나 이 지상의 사물들에 내재하므로 이윽고 그 사물들 속에서 날이 새듯이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범신론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고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릴케는 가난한 삶을 단순히 물질적인 궁핍으로 묘사하지 않고, 거짓과 욕심을 벗어나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삶의 참다운 모습으로 바라본다. 삶을 바라보는 릴케의 예술가적 시선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언제나 내적 성숙을 위해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원 리뷰 (17건)

종이책 (서평)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평점7점 | w*******i | 2018-05-17 | 신고

<클래식 클라우드- 니체>를 읽으면서 에라스무스의<우신 예찬>이 궁금해졌다.신을 부정했던 니체 생각의 끝에 '우신'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이유였다.해서 릴케의<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도 궁금하던 차에 서평단에 뽑혀 읽게 되였다.의도치 않게 릴케의 시선으로 본 신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였다.

 

아...그러나, 이 짧은 단편선을 읽으면서 숨고르기를 얼마나 자주해야 했는지 모른다.원서로 읽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싶을 만큼 머릿속에 차오르는 열을 수시로 식혀야 했다.다행이라면 순간 순간 내눈에도 보이는 명확한 것들이 보여,힘겹게 읽는 것에 대한 보람을 조금씩 맛볼수 있었다는 거다.마지막 즈음 가서,이렇게 보인 것들을 어떻게 하느님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할까? 라는 물음에도 대답을 얻을수 있었으니 말이다.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해석되어진 결론일지라도.애초에 릴케의 시선을 온전히 따라갈수 없었기에,이렇게라도 나만의 무엇으로 해석될 수 있는 틈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이 글을 여는 시작점이였던 '손'에 관한 언급이 혼란스러웠다.쉽게 설명이 될 수도 있으나,그러면서도 뭔가 난해한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사실 로댕의 조각상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였음에도 말이다.독자의 이런 마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하느님은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편에서 색다른 관념으로 접근하고자 함을 언급하는 부분에선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그렇다해도 빈민구제협회 라는 곳이 하느님의 목적을 방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러시아에서 어떻게 배신이 찾아왔는가' 편이 가장 알기 쉽게 이야기 된 부분이였다.재미로만 본다면 미켈란젤로가 연상되었던 '돌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였다.재미있기도 하고,앞서 언급한 색다른 관념으로 읽혀도 퍽 재미나서 미켈란젤로에 관해 검색까지 해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돌에서 영혼을 캐낸 미켈란젤로>와<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와 같은 책이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런가하면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과 용서를 그린 '티모페이 노인은 어떻게 하여 노래하며 세상을 떠났나'를 읽으면서는 신과 사제의 관계를 혹 그린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수많은 껍질을 벗기고 벗겨내고 나서야 작은 알맹이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읽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해서 어쩌면 그냥 보여지는 대로 읽으면 될텐데,저 속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혼자 씨름을 했던 것도 같다.셰익스피어소설 베니스의 상인이 살짝 연상되어지기도 했던 '베네치아의 유대인 거리에 있었던 정경'이라든가 '정의의 노래' 언급도,조금씩은 재미나게 읽을수 있는 지점들이 있긴 했다.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나 결국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릴케가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그 답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필자 불명의 추기' 편에 와서야 정리가 된 기분이였다.앞서 만났던 이야기들이 새롭게 정리가 되였다고 해야 할까?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도,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사실....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댓글 0 접어보기
종이책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m*****7 | 2018-05-21 | 신고

릴케의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릴케의 하나님에 대한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고, 단편이지만 모두 모아져서 하나의 이야기인듯 느껴지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단편 소설들은 주제에 대해 아주 간략하고 압축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릴케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이해가 안되고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 한다. 내가 아는 하나님의 모습보다 훨씬 인간적인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의문은 그냥 열린 결말로 남겨놓아버리는.. 그래서 어찌 보면 시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전해지고 아이들은 좋아하더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뒷부분의 해설부분을 중간에 살펴보았지만, 작품에 대한 별다른 해설은 없었다. 오히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신의 편재만 감수하라는 이야기 .. 그런데.. 신의 편재를 느낄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너무 닫혀있는건가.. 책의 소개에도 범신론이 녹아있다는데.. 글쎄.. 내가 부족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열린 결말로 인해 어렵지만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단편이 하나하나 끝날때마다 깊이 묵상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읽고 넘어갈 책이라기 보다는 오랜시간동안 천천히 묵혀가면서 소화해가면서 두고두고 곱씹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 이벤트에 페이지에 톨스토이에 비교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느낌으로 톨스토이가 초등학교 교재라면 책은 대학교 교재라는 느낌이다..


#도서출판 문예출판사 출판 [본 리뷰는 yes24의 지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독서 #독서감상 #릴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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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대여]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문예 세계문학선 126
평점9점 | s*******e | 2023-11-30 | 신고

이 단편집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기독교적인 성격이고, 13편의 단편집입니다. 릴케의 소설로는 '말테의 수기' 밖에 읽은 적이 없었는데 작가의 수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온유하고 차분한 문체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러시아 여행을 마치고 1900년 이전에 쓰여졌다는데 동화 같다고는 하지만, 또 릴케의 청년기에 쓰여졌지만 작가의 현실 관찰에는 충분히 건조하고 또 냉정한, 분명히 어른이 바라보는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이야기인 '어둠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주인공 남성이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인들을 만나는 부분의 묘사 같은 문장들도요. 

결혼한 누이들과의 재회는 어쩐지 어색한 점이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혈연 사이면서도 서로 얼마나 오래도록 소식 없이 지냈는가를 잊고, 잠시 동안은 오누이답게 행동하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세 사람은 침묵 속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경우에 상응하는 사교가 낳은 중음의 어조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문예 세계문학선 126 |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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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r******8 | 2025-08-22 | 신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의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전하는 동화의 형식으로 그렸다.릴케의 하느님은 인간속에 내재된 하느님으로 우리 마음속의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단편선도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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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10점 | b*****a | 2025-01-16 | 신고
문자 그대로 기독교적인 릴케의 소품격의 단편들이지만 릴케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반드시 믿어야만 할 절대자이기에, 같은 태도보다 좀 사상적인 여유가 있습니다. 릴케는 종교가 갖는 민중에의 아편 같은 요소도 동시에 인정하는 기독교인이라고 해야겠죠. 릴케는 생전 굉장히 많은 편지글을 남겼고, 이 책에서는 아니라 릴케의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예술론에서 대다수의 기독교인과 다른 이런 면모가 보이기 때문에 참고상 리뷰에 붙여둡니다.



예술 작품은 한번 존재하면,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맞은편에 서게 됩니다. 스스로 충만하고, 분수처럼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모든 것에 무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억제하고 있는 제2의 자연, 그것을 결정하는 의지에 의해 억제된 이 자연은 바로 인간적인 것, 그 극단적인 고통과 기쁨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말입니다. 예술 작품 속에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무한한 위안의 보물 창고로 들어가는 열쇠는 바로 여기 있으며, 고독한 사람은 그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익숙한 공동생활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살다 보면 비슷한 사람들 틈의 외로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는 순간들, 아니 그런 수많은 세월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다가갈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재해석하고 획득할 수 있는 힘, 그 자연을 어느 정도 인간적인 것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몫을 우리 것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철저하게 고독해진 우리는 정작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선물로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기력을 완전히 탕진해서 음식을 입에다 갖다 대 줘도 입을 열지 못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고독에 맞설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 인간에게 일어나려 하고,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그 인간을 갑자기 덮쳐야 합니다. 마치 그를 그리워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인간 존재의 약점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를 변용할 권한을 인간 자신에게 모두 위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한 예술 작품이 어떤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그 안에만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것의 긴장, 즉 예술 작품의 내면의 밀도가 외연적으로 되는 일 없이 단순한 현전만으로도 그것이 마치 노력이요, 요구요, 구애?구애하는 매력적인 사랑, 소환, 소집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 작품의 양심이겠지요(사명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술품과 고독한 인간 사이의 이러한 속임수는 옛날부터 신적인 것을 장려해 온 사제들의 모든 속임수와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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