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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S OF SEEING 다른 방식으로 보기; 의심하고 맞서지 않는다면, 지배당하고 종속되는 수밖에
1. '명작'에서 '이미지'로
"이 문화적 가정들은 사실상, 세계의 실상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비화하여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 현대의 복제 기술이 해낸 것은 예술의 권위를 파괴하고 예술을 그 어떤 보호영역으로부터 떼어낸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복제 기술의 탄생은 예술로서 미술이 가진 권위를 무너뜨렸다. 예전에는 명작을 보기 위해 박물관, 왕궁, 전시실 등에 직접 가서 보아야하는 시공간적인 제한이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 있는 희소성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시공간 제약없이 언제 어디서나 작품의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 있다. 현재 미술 작품들이 가진 가치는 '복제품의 원본'이라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현대에 미술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명작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의미 전달을 위한 이미지,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그 가치가 있다. 그것들이 어떠한 다른 가치가 있다는 신비화, 권위는 점점 부서질 것이다.
2. 누드화가 의미하는 것은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 궁극적으로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녀 인생의 성공 여부가 걸려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럽 여행간 미술관에 방문하여 전시되어 있는 누드화를 보며, '참 보드랍게 잘 그렸다. 사실적으로 그렸다.' 정도로 생각했었다. 글을 읽으며 누드화라는 것이 참 본능적이고 세속적인 작품들임을 알게 되었다.
남성은 능력, 정신, 권력, 부 등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집중하는 한편 여성은 여성의 매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 자신에게 어떻게 매혹시키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
누드화는 그 관심사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재산이 많은 권력가 남편이 부인의 누드화 혹은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화를 전시함으로서 자신의 남성성과 부인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
그 당시 수많은 누드화가 양산된 것을 고려하면 대세나 시류에 대해 의심하고 맞서는 것이 어려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것들이 형태나 형식만 바뀔뿐이지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삶에, 내 삶에서 누드화같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누드화처럼 의식하지 못했지만 의심해볼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3. 유화의 세속성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서구문명의 미술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두드러진 특색 가운데 하나로 생각된다. ...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형식이다."
유화의 형식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가장 사실적이라는 것에 있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부흥한 유화는 주로 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권력자, 재력가들이 자신이 소유한 물건, 건물, 자연환경, 여자 등을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냄으로서 '소유'한 것들을 과시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유화에서 느껴지는 인물들의 딱딱한 표정은 주인공과 관찰자간의 거리감을 형성시킨다. '나는 상위 계층이다. 나는 잘 산다.' 등을 표출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내용으로 그려내고, 사고 파는 매개물이 된 유화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상품이라고 생각된다. 예술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4. 광고에게 선택당하는 삶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더 사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활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것을 한꺼번에 의미한다. ... 다른 모든 인간의 기능이나 필요성은 이 능력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누드화와 유화의 현대 버전이 광고이다. 광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욕망을 자극하고 쾌락을 채워'줄 것'처럼 보인다. 저기에 나오는 애플워치를 차면, 제네시스를 몰면 내가 저 사람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애플워치를 찬다고, 제네시스를 탄다고 내가 저기 나오는 배우처럼 멋있어 지지 않는다. 물건을 가짐으로서 얻는 만족감도 영원하지 않다. 광고가 우리에게 제공하거나 채워주는 것은 없다. 단지 우리의 시궁창 같은 현실과 멋져 보이는 미래간의 간극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뿐이다. '노동'이라는 피동성에서 벗어나 '소비'라는 능동성이 주는 쾌감은 또 다시 '노동'으로 돌아가야만 충족될 수 있는 쳇바퀴일 뿐이다.
정치인, 기업인, 권력자가 선택적으로 광고하는 가치에 우리가 생각할 '선택' 기회는 사라지고 그들에게 지배되고 종속되어 버린다. 의심하지 않는다면, 맞서지 않는다면 예속당하는 수밖에 없다.
; 영원회귀의 긍정과 자기 파괴와 창조라는 열정으로 무장한 나에게 참 의미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위버맨쉬'가 되려면 내 앞에 주어진, 내 머리 속에 채워진 관념, 생각, 행동, 규율 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맞서 싸우고 무너뜨리고 새로 만들어내야한다.
심각한 것은 책에도 나오듯 우리는 광고를 선택한다고 하지만 광고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광고에 선택될 뿐이다. 의식하려고 노력해도 그것들이 내뿜는 향수에 이미 취해있다.
엄마가 사기 시작하면 그 주식은 고점이라는 말처럼 주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의심없이 따라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멈춰서서 의심하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읽었던 <다른 방식으로 듣기>랑 세트로 읽어볼까 싶어 다시 꺼내어 읽어본 <다른 방식으로 보기>. 10여 년 전 서촌으로 전시 보러 갔다가 갤러리에서 팔길래 샀었나 그랬다. 책 끝이 노래진 게 2012년이 10년도 더 넘었음을 실감케 한다. 그때 아마 이 책 보고 이듬해 페르소나 영화 보러 갔었지. 나 학부 때 열심히 살았구나…
무튼 50년 전과 비슷한 고민을 계속해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더하면 더하겠지. 음악을 전공하면서 사실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시각 예술은 빠른 시간에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형태인 음악은 그렇기 때문에 더 고차원적인 예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시간 기반의 예술은 대중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바쁘디바쁘신 현대인들은 이 시간 자체를 기다릴 집중력이 없기 때문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이게 더욱더 두드러져서, 3분도 아니고 15초짜리 틱톡이나 릴스에 맞춰 모든 대중문화가 소비되기 시작했다. 마케팅도 바이럴이다. SNS에서는 매일매일 자신을 보여주며 자신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가득 차 있다. 예술을 소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게시하고 팔리기 위해 대중의 욕망만을 좇는 컨텐츠만 소비된다. 지식을 알려주겠다는 구독 매체마저도 자신들의 존재를 특별함으로 브랜딩한다. 독서는 의도가 순수할 때 나를 변화시킨다고 했는데. 무튼 존 버거는 이러한 삶이 매력적인 삶이냐고 물었지만, 현대는 ‘네 매력적인 삶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인기 웹툰 하단에 있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 사는 게 너무 고구마니까 사이다만 그려주세요> 대중이 보고 싶은 걸 그리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10년 전의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감히 말하지 못한다. 베스트 딱지가 붙은 컨텐츠를 읽으며 현재의 삶을 생각해 본다. 계속해서 오르는 물가, 월급 동결, 힘든 취업, 두 발 뻗을 집 조차 살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을 생각하며.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 그래, 세상 사는 건 너무나도 힘드니까. 어느 하나 쉽게 말할 게 없다.
Ways of Seeing
나는 아직 이 원제를 보는 방법'들' 로만 해석할 수 있지만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 라고 읽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
다른 방식으로 듣기와 연장선 위에 있는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방듣은 그저 제목의 형식만 빌려온 도서였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듣기와 보기 모두 우리의 사고보다 '선행하는 인식'이라는 점.
우리는 뇌로 생각하기 전 두 눈을 통해 가장 먼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 신체의 기능에 이상이 없는 일반인의 기준 하에 )
눈에 보이는 대로 읽는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낀다고 하지만
과연 정말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 하는 의구심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내가 스스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누군가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의도적으로 보게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달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머리통에 달린 눈가리개를 털어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보다 더 멀리서, 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까지 달려나가야 한다.
혁명 !
예술을 보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준 책.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도판이 같이 실려있어서 보는 즐거움과 바로 확인해볼 수 있는 편리성이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도판이 전부 흑백이었다는 점. 전자책단말기에서 봐서 그런가 했는데 pc로도 확인해본 결과 원래 그런 것으로... 컬러랑 흑백 인쇄 단가가 다른 종이책도 아니고 전자책인데 도판은 컬러로 실어줬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전체적으로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