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서울 출생.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했다. 코넬 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에서 일했다.
휴즈항공 근무 시절에 직장 동료가 사내에서 인종 차별을 당하자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지만 오히려 혼자 조직적 불이익을 당한다. 이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여 끝내 승소하였고 이 소식은 인종 차별 이슈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첫 케이스로 ‘LA타임즈’ 신문 지면에도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은 조직인으로서의 삶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40대 중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한다....
1952년 서울 출생.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했다. 코넬 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에서 일했다. 휴즈항공 근무 시절에 직장 동료가 사내에서 인종 차별을 당하자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지만 오히려 혼자 조직적 불이익을 당한다. 이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여 끝내 승소하였고 이 소식은 인종 차별 이슈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첫 케이스로 ‘LA타임즈’ 신문 지면에도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은 조직인으로서의 삶이 맞지 않음을 깨닫고 40대 중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한다. LA에서 에너지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다 몇 해 전 은퇴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나라인 한국에 들어와 서울 가회동 한옥에 자리 잡았다. 우리 나이로 예순 일곱. 은퇴는 했지만 ‘Just do it’을 실천하며 매일 제 삶의 쓸모를 찾아 움직인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미디어그룹의 월간지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의미 있는 기획 기사와 특종 기사로 독자와 회사의 인정을 받으며 인생 전반부는 그런대로 달달하게 살았다. 그러나 일하는 내내 특유의 경계인 기질을 떨치지 못했다. 인생 후반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새 직장을 찾았고, 현재는 대형 마트에서 피자 굽는 일을 하고 있다. 몸이 서서히 나이의 신호를 보내고 마음은 헛헛해진 어느 때 가회동에 이사 온 빈센트를 만나 ‘어른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커가는 딸에게 쓸모 있는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미디어그룹의 월간지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의미 있는 기획 기사와 특종 기사로 독자와 회사의 인정을 받으며 인생 전반부는 그런대로 달달하게 살았다. 그러나 일하는 내내 특유의 경계인 기질을 떨치지 못했다. 인생 후반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새 직장을 찾았고, 현재는 대형 마트에서 피자 굽는 일을 하고 있다. 몸이 서서히 나이의 신호를 보내고 마음은 헛헛해진 어느 때 가회동에 이사 온 빈센트를 만나 ‘어른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커가는 딸에게 쓸모 있는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