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폴 핼펀 저/김성훈 역/이강영 감수
마리오 루트비히 저/강영옥 역
이학범 저
시인의 소설은 이런 것일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표현들이 있어 읽는 중간 중간 감탄을
자아냈다.
'조각구름은 망설이듯이 골목길에서 머뭇머뭇 흔들리고, 그러다가 마침내 희미한
울음소리를 냈다.
p 7
'올려다보니 만월인 듯한 달이 그물 눈금이 쳐진 유리 처마의 두 칸 너비에 가득 차게
하얗고 굵은 강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p 38
마침 창 밖에는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어서, 운치 있게 책을 읽고 있다.
고양이는 자기 집이라는 걸 생각할까. 함께 사는 사람을 날마다 보고 자기 영역이라는 게 있으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난 고양이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만화를 보면 새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진짜 고양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겠다. 어쩌면 고양이는 사람과 살면 자신을 고양이가 아닌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들은 말이구나. 사람은 동물과 말을 나눌 수 없지만 마음을 알려고 하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다. 알려고 애써야 하는구나.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신한테 말하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상대가 그런 마음인 걸 알면 놓아주면 좋을 텐데. 사람도 동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건 소설인지 산문인지. 산문 같은 느낌도 든다. 자식이 없는 부부는 어느 날 옆집 아이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고양이한테 치비(꼬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와 아내는 그 고양이가 옆집에서 가끔 놀러오는 걸 보고 반갑게 여긴다. 방울을 달아서 딸랑이라 하기도 했다. 치비는 ‘나’와 아내 앞에서는 잘 울지 않고 안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치비는 아내가 만든 잠자리에서 자고 먹을거리도 먹었다. 그런 고양이 손님 조금 반갑겠다. ‘나’와 아내가 사는 셋집 주인은 셋집 사람한테 아이가 없기를 바라고 거기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이 아니었다 해도 ‘나’와 아내는 동물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옆집에서 놀러오는 치비를 좋아했다. 자꾸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겠지.
치비는 무슨 마음으로 부부 집에 다녔을까. 그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아침이 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가 나가는 것을 배웅했다. 치비 재미있다. 진짜 집은 아이가 있는 곳이고 옆집은 다른 걸 먹고 다르게 잘 수 있는 곳이라 여겼을지도. 길고양이는 이 집 저 집 다니기도 하던데, 집고양이도 그럴까. 동물도 누가 자신을 좋아하면 그걸 알겠지. 함께 사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집에서랑 밖에서 조금 다른 것과 같구나.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듯하다. 어쩌다 보니 그러는 거겠지. 아내가 치비와 절교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아내가 치비한테 갯가재 살을 발라서 주었더니 그걸 아주 맛있게 먹었다. 치비는 아내가 갯가재 살을 바르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손을 물었다. 그것 때문에 아내는 치비한테 절교야 한다. 치비가 그 말 알아들었을까. 아내가 그런 말 했지만 그 뒤에도 치비와 잘 지냈다.
주인 집 할아버지가 죽고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서 곧 집을 떠나야 했다. ‘나’와 아내는 치비가 또 놀러올 수 있게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하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치비가 죽었다. 차에 치여 죽었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나’와 아내가 치비 무덤에 인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집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자기네 집 고양이를 옆집 사람이 좋아한 게 싫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옆집에서 다른 고양이를 기르게 되는데, 그때는 옆집으로 가는 곳을 철망으로 막았다. 자기 집 고양이가 옆집에 간 거 싫었던 거 맞는가 보다. 어쩐지 그런 마음 아쉽다. 옆집 사람이 자기 집 고양이를 예뻐했다면 그걸 기쁘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나’와 아내는 오랫동안 치비를 생각한다. 자기 집 고양이도 아니었는데 그러다니. ‘나’와 아내는 치비를 자식처럼 여긴 거기도 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
‘나’와 아내는 나중에 다른 고양이와 살게 된다. 그건 치비가 찾아와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양이는 오래 함께 살았다 한다. 어쩐지 지금은 저세상에 갔을 듯하다. 그때는 치비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더 슬펐겠지. 아니 슬픔은 비슷했을까. 늘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동물은 사람보다 먼저 떠난다. 그걸 생각하면 슬프지만, 함께 살 때 동물이 사람한테 주는 게 더 많을 거다.
희선
시인 히라이데 다카시가 발표한 첫 소설로 출간 당시 시와 산문과 소설의 경계를 지우며 사소설의 한계를 넘어선 걸작으로 평가 받았다고 합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전 세계 24개국 출간되었으며, 영어판 20만 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책이 넘 사랑스러워 보이고, 고양이도 너무 좋아하고, < 어린 왕자 >, < 동물농장 >, < 갈매기의 꿈 >, < 연어 >과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우화라고 하기에 무척 궁금하여 읽어 보고 싶었으나, 책 소개를 깊이 읽었을 때 걱정스러웠습니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지운 소설.... 장르가 뒤 섞인... 읽기 난해한 작품은 아닐까? 하는....
아쉽게도 전에 시와 소설의 중간 장르의 일본 작품을 읽다가 좀 읽기 버거워서 읽다가 중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양이를 소재라는 우화라는 이야기만 보고, 소개글을 제대로 안 보고 책을 선택했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전에 읽고 실패했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잘 읽힙니다. 어렵지도 않습니다. 뭔가 마구 마구 사랑스러운 기운을 가득 담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읽으면서 힐링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눈에 그려지듯이 섬세하고,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문장이 주절주절 길어진다거나 늘어진다거나 하는 것 없이 깔끔합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고양이 치비나 고양이의 가족, 그리고 그 옆집에 살고 있는 부부.. 그리고 번개골목 등이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고 있듯이 눈에 세세하게 그려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기분을 물씬 품고있는 작품이라 그래서 읽으면서 정말 그러한 감정들이 전달되어서 너무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쏟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매우 신비한 느낌의 고양이 치비의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뭔가 엄청난 사건사고를 그리고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잔잔한 느낌의 편안하고, 섬세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쓰여진 한 부부와 그들을 찾아온 치비의 이야기가 소소하면서도 신비스럽게도... 사랑스럽게 쓰인 작품으로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정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읽으면 마구 고양이를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