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저 저
김달 저
윤을 저/김수현 그림
정영욱 저
정혜윤 저
이두형 저
88. 걸음마
인생 시작, 고난 시작, 가능하면 시작하지 말 것. 시작하면 죽는 날까지 걸어야 하니까. 잠시 쉬었다 걷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될 테니까. 엄마 아빠 박수 친다고 흥분하지 말고 오래오래 누워서 버틸 것. (34)
97. 결혼
안정을 위해 저지르는 모험. 안정과 모험이라는 반대말이 손을 잡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만약 그대가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대는 지금 일종의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36~37)
259. 노안
신의 마지막 배려. 신은 인간에게 늙음을 주고 이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노안을 줬다. 눈을 늙게 해 자신이 늙었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 (81)
459. 문제
사람의 다른 말. 인생의 다른 말. 세상의 다른 말. 그러니까 사람이 이 세상을 산다는 건, 문제가 문제 속에서 문제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어차피 정답만 만나기는 어렵다. 오답이라도 고맙게 만나며 앞으로 가야 한다. 진짜 문제는 답을 찾을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다. (139)
1213. 활
몸을 휘어 화살을 보낸다. 많이 휠수록 멀리 보낸다. 내가 부모 곁을 멀리 떠나와 늠름하게 잘 살고 있다면 내 부모의 몸과 마음은 그만큼 많이 휘어 있다는 뜻이다. 화살의 힘으로 날아가는 화살은 없다. (356)
이런 책을 쓴다는 건 사람에 대한 관찰을 많이 했다는 증거 아닐까? 사람에 대해 이렇게 관찰을 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겠지? 하긴 글을 쓰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다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겠지. 작가는 1234개의 단어 속에서 웃음을 담기도 하고, 위트를 담기도 하고 인생을 담기도 했다. 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사전적 의미와는 달라도 그걸 읽는 시간은 즐거웠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인생 사전을 어떤 단어로 채울 수 있을까? 과연 1234개의 단어를 채울 수 있을까? 작가는 표지에 이런 글을 썼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맞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사는 것 맞다. 사람의 감정을, 행동을, 생각을, 매일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찬란’. 어제 만난 책에서 만난 단어가 ‘찬란’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단어는 찬란으로 정했다. 오늘 찬란하기를, 내일도 찬란하기를. 찬란한 하루 되기를. 그렇게 지인들에게 톡을 남겼다. 오늘은 모두 찬란하시라고. ^^
내일은 어떤 단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회복이 단어이면 좋겠다. 아직은 아파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지만, 빨리 회복되어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 나면 매일 하던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계획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 안에서 나는 또 나만의 인생 사전을 만든다. 매일 달라지는 단어와 기분들. 이런 시간이 누적되면 나도 나만의 기분 좋은 사전을 만들 수 있을까?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보기. 생각해보기. 끄적여보기.
#1 ㄱ..
본명은 기역. 별명은 기억.
기역은 훈민정음 시절부터 줄곧
자신이 자음의 우두머리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자음은 모음을 만나야 글자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는 세종 말씀도 잘 기억가고 있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주저한다.
독립을 꿈꾸지 않는다.
이런 경직을 키읔이 비웃는다. ㅋㅋㅋ.
#7 가다..
이 사전에 실린 첫 동사. 기다리다. 만나다. 포옹하다 같은 동사 다 제치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사.
인생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간다. 두 다리를 움직여 그 사람에게 간다. 그 사람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98 겸손..
착한 손. 내가 먼저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손.
내가 먼저 흔들며 안녕을 챙기는 손.
내가 먼저 모으며 감사를 드리는 손.
저요, 저요 하지 않고
약한 자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손.
내 손에게 이런 손이 되어달라고
손 모아 기도하기.
#174 글..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면 그대로 생각.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 허공을 떠돌면 말.
생각이 손끝으로 나와 종이 위에 앉으면 글.
어떤 생각은 말로 생을 마치고,
어떤 생각은 글로 생을 이어가고.
#245 내일..
오늘의 절친. 만약 내일이 없다면 오늘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질까.
아니다 내일이 없는 세상인데 오늘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한다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일은 그 존재만으로도 오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같은 양의 내일이 있다.
#390 막걸리..
소주의 경쟁자로 알려진 술.
그러나 지갑이 가난한 어느 아저씨에겐
밥의 경쟁자.
밥을 포기히고 마시는 밥.
반찬은 김치 한조각.
그래도 배불리 취할 수 있으니
아저씨의 밤은 행복하다.
서럽게 행복하다.
#415 맥주..
소주에는 없는 묵직한 품격.
소주에는 없는 화려한 거품.
소주가 따를 수 없는 우월한 신장.
그러나 몰랐다.
보리였을 때도, 병에 담길 때도, 병뚜껑이 열릴 때도, 잔에 뒤어드는 순간까지도 몰랐다.
소주와 섞여 소맥이 될줄은. 맥소도 아니고 소맥이 될 줄은.
#443 몸..
마음을 넣는 그릇.
신이 처음 인간을 빚을 때 몸은 없었다.
마음을 빚고 그것을 인간이라 칭했다.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마음은 흔들림이 심했다.
자꾸 헝클어지고 무너지고, 좀처럼 일정한 형체를 갖지 못했다.
보다 못한 신은 몸이라는 그릇을 빚어 마음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이것이 지금 인간의 모습이다.
마음은 여전히 흔들림이 심하다.
처음 창조될 때부터 그랬으니 타박해서는 안 된다.
몸이 일을 하면 된다.
몸이 마음을 잘 잡아주면 된다.
몸과 마음이 세트로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몸을 챙겨야 하는 이유다.
#458 문장..
생각을 글로, 느낌을 글로, 이것이 문장이다.
물론 좋은 문장이 있고 나쁜 문장이 있겠지.
어떤게 좋고 나쁜지는 국어 선생님 설명을 들으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름다운 문장,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어떤 걸까.
소월의 시나 세익스피어의 지문에 그게 있을 까. 아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 중에 그것이 있다.
평화롭고 따스하며 여러개의 설렘을 주는 아주 짧은 문장. 집에 가자.
#477 바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공기가,
나 여기있어요!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처절한 움직임.
평생을 조용히 공기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한 번은 바람이 될 것.
빨랫줄에 널린 양말 한 짝이라도 흔들고 퇴장할 것
#494 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시간. 마음이 보이는 시간.
밤엔 마음이 보인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보인다.
얼굴이 시선을 빼앗지 않으니 비로소 마음이 보인다.
깜깜할수록 또렷이 보인다.
신은 사람들이 마음보다 얼굴을 먼저 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차 싶어서 밤을 만들었다.
#510 버스..
방향 우선, 방향이 같으면 같이 간다.
내리는 곳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방향이 같으면 함께 달린다.
내리는 곳 다르다고
한 버스 타기를 거부한다면 혼자 가야 한다.
택시를 타야 한다. 그러나 인생엔 택시가 없다.
혼자 달리는 인생은 없다.
방향 같은 사람들과 한동안
어우러지다 한 명씩 차례로 내리는 것이 인생이다.
#676 쉼표..
내가 나에게 주는 여유. 내가 나에게 주는 휴식.
인생은 여러 개의 쉼표와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긴 문장이다.
쉼표를 많이 찍을수록 문장은 더 건강해지고 더 견고해지고 더 길어진다.
#721 아직..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말.
이미 졌다. 이미 늦었다. 이런 표현은 슬프다.
이미를 아직으로 바꾼다. 아직 졌다. 아직 늦었다.
슬프지 않지만 이상하다.
이상하니까 이상하지 않게 다시 바꾼다.
아직 지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됐다.
이미라는 말 한 번 사용 할 때
아직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한다면 인생은 괜찮다.
아직은.
#905 저녁..
돌아가는 시간. 지친 다리도 돌아간다.
처진 어깨도 돌아간다. 무거운 눈도 돌아간다.
다들 고마워하며 돌아간다.
지칠 수 있게, 처질 수 있게, 무거워질 수 있게 해준
오늘 하루 분의 내 일에게 고마워하며 돌아간다.
#1043 추억..
색이 바라지 않는 진한 기억.
지난 일은 처음엔 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저장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아주 일부는
추억이라는 진한 이름을 얻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자리를 옮긴다.
기억은 머리가 하고 추억은 가슴이 한다.
#1057 친구..
싸울 때 함께 싸워주는 녀석도 친구. 싸움을 말리는 녀석도 친구.
말리는 척하면서 상대를 꼬집는 녀석도 친구.
싸우는 것도 말리는 것도 꼬집는 것도 곁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친구의 다른 말은 곁. 앞도 뒤도 아니고 곁.
#1072 커피..
눈이 마시는 음료. 우리는 입으로 액체를 마시고
동시에 눈으로 그 진한 색깔을 마신다.
커피의 진함 속엔 추억, 설렘, 용서, 차분,
응원 같은 것들이 고요히 스며들어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숨어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추억을 마시는지,
누가 설렘을 마시는지, 누가 용서를 마시는지 알 수 없다.
각자 다른 이유로 마시는 같은 진함.
이것이 커피의 잔잔한 매력이다.
만약 커피가 투명한 색이였다면
지금처럼 넓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1234 힘..
마지막 단어. 왜 힘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끝을 장식하는 영광을 안았을까.
책이 주는 게 힘이니까. 지혜라는 힘. 발상이라는 힘. 재미라는 힘. 감동이라는 힘. 위로라는 힘.
그대가 첫 페이지부터 한 장 한 장 넘겨 여기까지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드셨죠?
맨 마지막 단어는 과연 뭘까 궁금해 다 건너뛰고 여기에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내세요.
... 소/라/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