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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0일
상비약_마음챙김_선물하세요
저자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독자가 어떤 제목이면 읽고 싶을까를 고심한 끝에 본 책 제목을 택했다고 한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은 아무래도 안 괜찮다는 다급한 신호음이지 않을까. 지금 주어진 상황만으로도 버거운데 애써 마음의 짐을 더하고 싶지 않은 독자의 본심을 헤아려 반영하고 있다.
요즘 나는 몸 구석구석을 침범해 공격하는 이른 노화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백기 흔들고 싶은 충동의 밤이 잦다. 철심을 넣은 발목은 반년이 지났음에도 어색하고 계단의 높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마을버스에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떨어진 아픔이 두려움(상처)으로 남았다. 비수술 치료한 오른팔은 다시 아프기 시작해 불길할 뿐 아니라 안 아픈 팔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어 불안을 가중시킨다.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통증까지 더해지면서 눈 뜰 때 마다 우울해진다. 구역질과 울렁거리던 속은 그나마 좀 나아졌는데 체중이 늘어 또 걱정이다..
몸이 아프면서 마음도 덩달아 약해지고 부정적으로 치우치는 것 같다. 왜 사는지 도대체 이유와 의미를 모르겠어, 그동안의 가치와 믿음을 잃어버려 더 세차게 흔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반백년을 산 사람이 삶의 이유와 가치를 몰라 방황하고 괴로워하는지 한심하다. 원망과 분노와 자학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살아 뭐해’ 싶은 불순하고 오만한 생각이 드세게 인다. 심리 서적을 몇 권 연이어 읽고 나니 모든 책이 말하는 요지나 삶을 이어가는 묘책이 엇비슷하다는 걸 알겠다. 신통방통한 묘약은 따로 없지만 어느 정도 일관된 삶의 원리를 전해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보듬게 된다.
의사는 지금 너의 생각과 감정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꼬집는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누적되어 만든 반응과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채택된 자동화된 사고의 패턴과 관념과 이미지의 ‘경향화’의 결과물로 분석한다.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나의 나약함과 무능함으로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런 생각과 감정이 생기는 자체에서 그만 멈추라는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친절한 말과 어루만져주는 행동을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지금이라도 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전념하여 소소한 기쁨이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마음을 기꺼이 누리면 될 듯싶다. 삶의 ‘불확실함’과 어쩔 수 없는 부분까지 통제하려 덤벼 감정 소모를 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내 감정과 생각의 주체(주인)가 되어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거나 증발시키도록 ‘마음챙김’mindfulness하는 자세가 뒷받침되어야 삶의 가능성과 괜찮아질 수 있음을 열어둘 수 있단다.
무엇보다 과한 해석과 과잉 반응을 견제한다. 힘들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의 정체와 근원을 살피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전한다. 삶이, 인간이, 관계가 대체로 그저 그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완전함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대해 그만 ‘내려놓는’ 마음을 슬며시 제시한다. 지금의 생각과 감정이 삶의 전부이거나 나의 전체가 아님을 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세상과 미래를 닫아걸지 말자고 제안한다.
오늘의 고단함, 불안함, 슬픔이 삶을 모두 되돌려야 할 증거는 아니다. (84쪽)
끊임없이 공허해하고 슬퍼하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그때(과거)의 나, 누군가 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그 위로를 내가 직접 그때의 나에게 건네는 것이다. (125쪽)
모든 사람의 마음은 그 깊은 바다와 같이 우리는 그 위를 떠다닐 뿐 내 마음의 깊이가 얼마인지,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제각각 우주 같은 그 공간 안에 좋은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을 함께 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안다고 생각할 뿐(스스로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132쪽)
억지로 좋게 생각하려 하지 마세요. 대신 억지로 나쁘게 생각하려고도 하진 마세요... 억지로 좋게 보려하는 대신 그만큼 마음이 고생했구나, 힘든 일이 많았구나, 스스로의 지친 마음과 속상한 감정을 먼저 위로해주자. 그리고 찬찬히 따져보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결론지을 만한 일인지를. 물론 세상은 자주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나 자신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보듬어주는 것이 어떨까. (167쪽; 179쪽)
당신의 슬픔이 너무도 선명하고 불안이 지나치게 날카로우며 절망이 깊다는 것은 당신이 미숙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저 당신이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계속 삶을 이어가기를 원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183쪽)
어쩔 수 없이 들고 나는 파도와는 상관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살아있기에 밀물의 서늘함을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햇살의 따뜻함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190쪽)
다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그 아픔을 쓰다듬을 때 비로소 마음이 쉰다.
그래서 수용이다. 삶에는 본디 고통도 있음을,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며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99쪽)
복잡한 세상, 오묘한 삶, 다면적인 나를 담기에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몇 마디 말로 스스로의 인생, 나 자신을 규정하고 이러한 관념을 불변의 사실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그 어떤 순간의 어떤 생각도 내 삶 전부, 나 자신 전체를 정의하지는 못한다... 삶이란 몇 마디 말이나 논리, 철학으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큰 무언가다. (228쪽; 230쪽)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래 전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드라마 <다모>가 낳은 명대사이다.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건넨 이서진의 짧은 한 마디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하지원의 모습은 지금도 이따금씩 회자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나.” 나는 이 대사를 정말 좋아한다. 이보다 더한 공감과 위로가 있을까? 언젠가 호스피스 봉사자 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참, 신기하지. 내가 아무리 구구절절 좋은 말을 해 줘도 시큰둥하던 환자들이 같이 간 내 친구만 보면 눈물을 펑펑 쏟는다니까.......” 함께 봉사하러 다니는 친구는 유방암 수술로 많은 고통을 지나온 분이었는데 그녀가 말기 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저도 암이에요.”하면 죽음의 문턱에서 두려움과 허무감으로 마음을 닫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여지없이 무장 해제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주 험난한 길을 홀로 쓸쓸히 걷고 있을 때 문득 남루한 차림으로 털레털레 걷고 있는 나와 비슷한 행인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가 “힘들죠? 나도 많이 힘드네요.”라고 한 마디 건넨다면 그보다 더한 위로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우리를 무작정 위로만 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들을 기꺼이 견뎌 내셨다. 그렇기에 주님이 주시는 위로는 식상하거나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데서 머무르지 않았다.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역시 비슷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는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어려웠던 시간을 고백한다니 솔깃했다. 마음이 아파 울고 있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위치에서 쉽지만은 않은 결단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정신과 의사로 산다고 해서 감정이 무뎌지는 것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중략) 또 정신의학은 나를 초월자, 독심술사, 구원자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살아온 세월, 환경, 가치관이 다른 각각의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더듬는 일이었다. 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한계, 나를 찾는 모두를 도울 수는 없다는 현실 앞에 좌절하기도 했다.”
이두형 작가는 마음에 관해 공부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버거웠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만 알고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중요했다.
자신을 용기 있게 보여 주게 된 진심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이 따듯해졌다. 저자가 견뎌 냈던 아픔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 주는 위로가 있었다.
‘인지구조’, 이 책을 읽은 후 기억에 남는 단어이다. 저자는 자기 나름의 상으로 마음속에 세상을 그리는 것을 ‘인지’. 세상을 받아들이는 틀의 형태를 ‘인지구조’라고 알려 준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은 서로 얽혀 인지의 틀 즉 ‘인지구조’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힘든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인지구조’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뒤틀린 ‘인지 왜곡’에 있다. ‘인지 왜곡’은 자신이 겪어 온 좋지 않은 경험들을 통합해 자기 자신과 세상은 물론이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조차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안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인지 왜곡’으로 고생하는 내담자들과 상담할 때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억지로 좋게 생각하려 하지 마세요.
대신 억지로 나쁘게 생각하려고도 하진 마세요.
그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희극도 비극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삶의 다른 조각들조차 어두운 빛깔로 덮어 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지친 그날도
구름은 아름다웠고, 노을은 아련했고,
반가운 누군가는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무너지면
그런 작은 고마움들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쉽다.
마치 슬픔만 더 잘 보이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픔과 그 아픔을 상기시킬 만한 일들만 또렷이 잘 보인다.
내게도 슬픔만 더 잘 보이는 렌즈를 끼고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다. 지난해 겨울까지 약 3년쯤, 깊은 우울감에 빠져 지낸 날들이 있었다.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 할 괴로움이 왜 나에게만 곱빼기로 주어진 거냐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가파른 벼랑 끝에 홀로 버려진 듯 고독하고 슬픈 시간 속에서 ‘나의 인생은 불행만 주어졌다’고 정의 내렸었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보니 당시 나의 인지구조가 엉망으로 얽혀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 불행만 겪은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했던 날들도 적지 않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아껴 주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좋은 점이 많은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정처 없이 표류하면서 이전에 나를 웃게 했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잊은 채 온통 부정적인 일들만 빼곡하게 기억에 저장했다. 완벽한 ‘인지 왜곡’이었다.
저자는 ‘인지 왜곡’이 주는 부작용을 쉽게 설명해 준다. ‘그 친구가 나를 싫어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걔가 나를 싫어하는구나’로 결론 내리는 자동적 사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런 사고는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무능하다’ 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일그러뜨린다고도 했다. 그는 간절하게 권면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이유, 무능한 이유는
귀신같이 찾아내고 납득하지만
그 반대의 이유는 찾으려 노력하지도, 잘 믿지도 못한다.
살다 보면 사랑받지 못하는 일, 미움받는 일,
무능으로 인한 실패는 당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과거를 근거로
자신을 굳이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소위 사랑받는 사람, 유능한 사람도
자주 미움받거나 실패한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간주할지는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삶의 여러 경험과 상관없이
나는 가치 있는 사람, 해낼 사람’으로 믿어도 된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 내릴지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회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내가 슬픔만 더 잘 보이는 렌즈를 끼고 ‘인지 왜곡’에 시달린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어진 슬픔들은 나를 만성적인 무기력함으로 인도해 주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는 시기와 장소, 부모와 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고 불행 대신 행복을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운명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고, 계속되는 슬픔으로 삐뚤어진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좋은 멘토를 만날 수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견고하게 세워졌던 왜곡된 ‘인지구조’, 즉 일그러진 나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성경 말씀을 통해 잘못된 정체성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런 나를 위해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내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비록 혼돈과 모순이 가득한 세상을 살면서 많은 슬픔을 겪었어도, 그로 인해 때때로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실수하고 상처를 줄 때가 있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어떤 경우에도 나의 존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토록 중요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득 세상이 전해 주는 가짜 정체성이 아닌 진짜 정체성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되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인생이 준 쓴 맛을 처절하게 시식해 보았던 지난날들도 결코 허무하지만은 않았다고 고개 끄덕인다. 나도 이두형 작가님처럼, 혹은 말기 암 환자 앞에서 고백한 누군가처럼 “나도 많이 아팠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이제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겪어온 고통의 시간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데는 아직 좀 더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새겨진 움푹 팬 상처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가 될 수 있다고.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많았는데, 자신을 바라볼 때 ‘길 잃은 막내 고양이를 대하는 어미 고양이’의 마음을 가져 보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그는 우울, 불안, 초조, 공포 등 때때로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자신의 연약한 영역을 유독 모자란 말썽꾸러기 막내 고양이를 바라보는 어미의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권한다. 어미 고양이는 말 안 듣는 막내 고양이를 보며 ‘저것 때문에 내 인생이 이래’, ‘저것만 없었으면 삶이 참 괜찮았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울증만 없어도 참 행복할 텐데‘, ’공황만 해결되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라며 그 연약한 막내 고양이를 보듬기는커녕 오히려 쥐어박고 혐오한다. 작가는 일부러 어미를 화나게 하려 하거나 일을 망치려 드는 게 아닌 그저 좀 모자라서 우유를 쏟고 길을 잃어버리는 막내 고양이를 보듯, 흉터 난 나의 연약한 상처를 너그럽게 바라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도 모른 채 방황하는 그 애달픈 막내 고양이에게 화를 내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오히려 안아주고 핥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나 깊이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지난날의 아픔으로 잘못된 생각과 건강하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내 모습을 증오한 날들이 많았다.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는 나를 스스로도 미워하고 저주했었다. 저자는 유일하게 따듯한 품으로 안아 줄 거라 믿었던 어미 고양이마저 매몰차게 다그칠 때 막내 고양이에게는 더욱 깊은 상처가 남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말 그렇다. 연약한 자신을 스스로도 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한 상처를 겪게 될 테니까.
이두형 작가가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처방전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유익했다. 다양한 처방전이 있지만 그중에서 세 가지를 꼭 기억하고 싶다.
첫째, 세상이 자주 나를 괴롭히더라도 나 자신만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보듬어 주라는 것이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말썽꾸러기 막내 고양이를 보듬는 어미 고양이처럼 자신을 용납하고 위로해 주라는 의미이다.
둘째,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소개된 ‘승화’이다. 저자는 ‘승화’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무치는 아픔과 분노를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내가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표현된 것. 혹시 같은 고통을 겪은 이가 있다면 내 아픔과 분노가 승화된 이것이 그를 위로하기를 바라는 것.(중략) 당신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거나 한 권의 이야기를 지을 수 있다면, 그 안에 당신의 갈등이나 상처를 마음껏 풀어내기를 바라본다. 혹시 나처럼 평범해 그런 재능이 없다면, 누군가가 승화로 겪은 아름다움에 위로받아도 좋겠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씨의 무대를 기억한다. 그 연약한 체구에서 어쩌면 그렇게 강렬하고 아름다운 연주가 나올 수 있는지 정말 경이로웠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성공했다고 말하는 시점에 불현듯 깊은 우울증에 빠졌던 그녀, 만약 그녀가 캄캄하고 고독한 터널을 홀로 걸어본 일이 없었다면 그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연주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을 때, 괴로울 때 그냥 글을 썼다. 너무 슬프고 괴로워서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결핍감을 글을 쓰며 달랬다. 이제 와 생각하면 글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승화의 작업을 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의식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승화의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내가 겪은 어려운 시간들과 그저 버텨 내면서 지나올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활자 속에 아로새겨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
셋째,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현재의 소소한 행복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고민과 상념이 마음을 휘젓다 보면 작은 아름다움은 잊히기 마련이지만, 그렇기에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행복에 집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팍팍한 삶 속에서도 피어나는 들꽃들을 놓치지 않는 연습. 이를테면 월요일 출근길이라도 하늘을 바라보기, (중략) 첫눈이 오면 잠시라도 창밖을 내다보기, 비가 내리면 평소 지나치기만 했던 녹두전 집을 들러보기, 항상 곁에 있는 그의 눈을 문득 곰곰이 들여다보기 같은’ 것들을 연습해 보라고 권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내가 잊고 지낸 감사들, 지금 바로 눈앞에 펼쳐진 사랑스러운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듯이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온통 내 주위를 감싸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만약 별안간 나의 마음에 또 다시 혼돈이 찾아오더라도, 그때는 이 지구별을 여행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싶다. 비록 과거에 나를 짓눌렀던 일들이 너무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경험들이었대도, 그것은 살아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 가장 후회가 남는 일은, 가까운 이들에게 좀 더 솔직하게 나를 보여 주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화 한 통만으로도 나의 손을 꼭 잡아 줄 사람들이 충분이 많았음에도, 가파른 벼랑 끝에 홀로 버려진 듯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나를 도울 수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일은 꼭 필요한데 말이다. 그런 존재는 저자와 같은 정신과 의사가 될 수도 있고, 가족과 친구가 될 수도, 귀감이 되는 멘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들 하여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나를 향해 내미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쯤은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에는 조금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에 담긴 정말 돕고 싶어 하는 진심과 오랜 시간 마음을 공부하며 체득한 깊은 통찰력이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주위에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도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 책을 선물해도 좋겠다.
사람을 향한 저자의 진심어린 마음 덕분에 모처럼 뿌듯하고 따듯한 독서를 누릴 수 있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예정되어 있을지 모를 이두형 작가의 다음 책이 몹시 기대된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깊은 사색이 없이는 써 내려갈 수 없는 울림이 느껴졌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살았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는 저자의 경험들, 타고난 필력, 여기에 진실한 마음까지 더해져 왠지 앞으로도 계속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된다.
책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는 현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책으로 이 책의 목차만 봐도 누구나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정말 꼭 책 제목처럼, 좀 괜찮아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마땅히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어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작가님께서 직접 구성한 목차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차를 읽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짜임새가 아주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1) 마음의 연고, 감정이 다쳤을 때
2) 마음의 반창고,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3) 마음의 해열제, 가슴에서 자꾸 열이 날 때
4) 마음의 붕대, 부러지고 꺾인 마음이 버거울 때
5) 마음의 소독약, 노력할수록 삶이 더 불행해지는 것 같을 때
6) 마음의 비타민, 살아가는 맛을 유지하고 싶을 때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과 내용들이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 6. 마음의 비타민 챕터에서 "자기 이해가 선물하는 마음의 자유. 자존심과 자존감 에 관한 문장을 몇 자 옮겨 적어본다.
"이상향과 현실의 괴리로 힘든 이들이 늘수록 자존감은 온전히 내 것이며 외부 시선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로 해보자. ... '자기 이해' 를 통해"
"마음에는 타인의 기준, 사회통념과는 관계없이 내게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것들이 숨어 있다. 자기 이해는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게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지금은 '주식' 이 대세이지만, 몇 년전만 해도 서점가에는 '자존감' 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오고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왜 그땐 '자존감' 이란게 엄청난 키워드였을까? 생각해보면, 인터넷 발달로 인해, 각종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자신' 을 들여다보기 보단, 나보다 더 잘나 보이는 '타인' 에 대한 정보와 사진 등등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 살다보니 '자기 중심' 을 잡으려 하지 않으면 너무도 잡다한 것들로, 불필요하게 복잡한 시대상 속에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것도 '타인에 대한 비교' 를 멈추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멋졌던 추억, 감사했던 일,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스스로 온전히 존재하는 느낌' 을 가져보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요즘같은 때는 '와이파이 없이, 핸드폰과 떨어져서 '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게 필수인 것 같다.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집에 사는지는 세상의 기준에 나를 얼마나 잘 맞추었는지를 알려준다.
언제 기쁘고 슬프며 어떤 이를 사랑하는지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해주었다.
이 챕터 말고 다른 내용들도 읽기 쉽게 잘 쓰여져 있어, 주변에 친구나 가족에서 말하기가 애매한 그런 것들에 다양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추천합니다. ^^
기분이 멜랑콜리하던 시기에 마침 대여 특가가 있어서 구매했다. 자주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겠지만... 불안 이야기를 앞부분에 배치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불안은 빨리 완화될수록 좋다. 1분 1초 매순간 불안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목차에서 저자의 배려가 느껴졌다. 이 책은 하루만에 다 읽지 않고, 필요한 얘기를 필요한 때에 조금씩 읽었다. 편집과 구성에 많은 칭찬을 하고 싶다. 구급상자처럼 정말 이런저런 위급한 상처에 조치할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리뷰입니다. 정신과의사인 저자가 현대인이 갖고있는 여러가지 심리적 문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책입니다! 서점에 심리학 서적들이 유행처럼 퍼져있는데 그 중에서도 꽤 괜찮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감가는 구절도 굉장히 많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해주는 그런 책이에요. 다 읽고나서도 문득문득 생각날때마다 펼쳐서 읽어보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