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저/마정현 역
조남주 저
제목처럼 거친 글이다. 운동화속에 들어간 조금만 티끌하나가 온신경을 긁듯이 내겐 읽는 내내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책이었다. 요즘 <멋진 신세계>를 읽고 있는데 과거에는 노예들 중 소수가 해방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면, 오늘 '멋진 신세계'의 노예들은 대부분 계속 노예로 편하게 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편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 앞에서 자유의 참된 의미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있다고...
자유는 외로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외로움과 함께 밀려 오는 심리적 불안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자유인은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심리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 외롭고 불안한 나를 자유로운 존재로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다. 바로 참여와 연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여, 연대의 의지가 없고 자유의 조건인 외로움과 불안이 버거워지면 자유로부터 도피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집단에 안주하려고 하고 다수파에 소속되려고 한다.
설득이 어려운 이들은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나와 다른 의견은 적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저자가 쓴 완성이라는 표현에 헛웃음이 나오는 건 정말 절묘한 표현이 아닌가 싶어서다. 나에게는 완성이란 단어가 좋은 이미지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것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회의하는 자아의 일상을 습관화 하기!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삶, 자기 변화와 성숙을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저자의 말에 완전 동감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인지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생각은 아닌지 의심하기. 이제 더이상 왜?라는 질문을 들을 일도 없고 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의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노동문제(80이 노동자로 사는데 우리는 노동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않는다는 점, 민노총은 왜 삼성물건을 보이콧하지 않느냐는 프랑스 여성 활동가의 질문에 지금까지 삼성제품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프랑스에서 난민신분으로 택시운전사로 살았던 것, 벌금형은 집행유예가 없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징역을 살아야 하는데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 등등 직책도 다양한 만큼 다양한 경험들이 들어있어서 세대를 불문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외할아버지와 나눈 개똥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글을 싫어하는 형이 정승이 되겠다, 겁이 많은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하자 서당선생이 크게 칭찬한다. 그런것이 못마땅한 셋째는 개똥 세 개가 있다면 형들입에 넣겠다고 한다. 마지막 하나는 하고 스승이 묻자 막내는 우물쭈물한다는 이야기.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지가 저자에게 질문하자 스승이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이 참 야물딱지게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저자와 할아버지가 너무 부럽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첫째와 둘째를 업신여겼던 자신을 돌아본 모습도 좋았고, 세 번째 개똥은 당신 몫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엔 내가 그 세번째 개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뼈를 때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나 그동안 얼마만큼의 개똥을 먹어야 하는건지...음...
때론 위로가 되는 부드러운 글들도 필요하지만 따끔한 회초리 같은 글들도 읽어야겠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라기보다 '생각하지 않은 생각'으로 충만하고 그것을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이것이 이미 완성 단게이 이른 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태다. p.86
그러나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뻔째 개똥을 하나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27
<결 : 거칢에 대하여>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나의 사상(이란 것이 있다면)을 이루는 근간에 몇 분의 스승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 한분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작가 신영복 선생님, 그리고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자>의 저자 홍세화 선생님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다 나라에 의해 빨갱이로 지목되고 투옥되거나 추방당하여 난민이 된 분들이네요. ㅠㅠ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도 몇 번 청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저작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의 좌표>라는 책이 참 좋습니다. 선생님 강연의 주제도 이 생각의 좌표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책이 오랜만에 출간되어 바로 읽었습니다.
책의 서문에 홍세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거친 글은, 감히 말하건대, 한국 사회라는 산에서 내려오는 한 선배가 산에 오르는 젊은 후배와 만났다고 가정하여, 누구의 어법을 빌려 다시 또 감히 말하건대,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게 하고 싶은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령 그 후배가 소수도 아닌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p16
한때는 아마도 저도 극소수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노동당 당대표였기에 노동당에 오래도록 당적을 유지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도 있었고, 박노자 선생님도 있었으니 노동당원이 될 이유가 충분하였고, 선거때마다 채 1%의 지지율도 안 나오는 정당을 지지하며 나는 대한민국 1%다, 라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당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입당부터 겪어오다가 몇 해 전 또 갈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탈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출된 사람들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한 줌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정체성을 들먹이며 싸우는 것에 환멸을 느낀 탓이었습니다. 이 책 중에 인용된 나오미 울프의 말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나 봅니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나오미 울프‘ p51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진보는 ‘부패와 분열’ 모두로 망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떤 조직이든 망쪼가 든 조직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흥분하였습니다.
이 책은 선생님이 언급하셨듯이 뭔가 사회와 세상을 위해 일하였던 사람이 그런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을 쓰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꼭 읽어봐야지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역시 자유를 강조하였습니다. 나를 지어야 하고, 고결하게 지어야 하고, 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몸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하베아스 코르푸스(habeas corpus)' 당신은 몸을 소유한다는 이 문장을 인용합니다.
“폭력은 남이 당신에게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 또한 남에게 행하지 말라. 남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당신도 남에게 해주어라. 라는 황금률을 어긴 행위다. 이 황금률을 지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몸의 자유를 존중하는데 있다.” p62
그리고 회의해야 함을 역설하십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을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는 것이죠. 자기 생각과 태도도 정해진 것이고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일들도 그저 그 필터링을 거쳐 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그른가?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완성된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현존재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파한 스피노자의 말처럼 고집해도 너무 고집합니다. 그리하여 설득이 불가능하며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온 후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장소는 가정과 학교다. 이 두 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유세계의 대부분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 두 곳 모두에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개탄하십니다. p89
그러기에 우리는 모순을 직면합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은 계급모순, 지역모순, 젠더, 생태문제 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다. 모순이 워낙 첨예한 탓도 있겠지만, 활동 양태나 주장들도 온유하지 못하고 거칠다. 각자가 자기만의 래디컬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모두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p115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겸손함이 필요하다. 의지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자. 나도 수시로 설득된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해야 한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p115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겸손함이 아닐까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항상 더 듣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존재를 배반하고 있는 기존의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말이죠.
모순은 결국 죽음을 양산합니다.
“1,5,13,37은 이 땅에서 죽는 사람들의 하루 평균 수들이다. ‘1’은 오늘 한국에서 타살되어 죽는 사람의 하루 평균 수, ‘5’는 산업재해로 죽는 노당자의 수, ‘13’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수, ‘37’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동시대인의 수다...(중략)... 이 숫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역시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과 무관하지 않다.”p130
1만이 타살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넓은 의미로 보자면 모두 ‘타살’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모순을 구경하고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공범자가 아닐까요? 세월호 아이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이 그런 심정 아니었을까요?
그러면서 장발장은행을 소개합니다.
“장발장은행은 2015년2월25일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법을 위반한 행위를 저질러 국가로부터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에 벌금을 낼 형편이 못돼 교도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사라들에게 벌금액을 빌려주는 은행이다. 이자도 없고, 담보도 없고, 신용 조회도 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은행은 장발장은행 뿐이다. 이 말은 장발장은행의 취지가 뛰어나다는 것보다 한국의 벌금형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연유를 알 수 있다.” p206
저도 이 장발장은행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혹시 같이 후원하시고 싶으신 분은 이쪽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 http://www.jeanvaljeanbank.com/ )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를 위하여 보편적복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모든 이웃들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연대의 정신과 성숙한 정치다. 장발장은행은 그런 사회를 향한 작은 씨앗의 하나일 뿐이다. 빨리 문을 닫는게 장발장은행의 목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가난의 상태’가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남이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할 때,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활동과 올바른 정치 참여만이 그 길을 열어줄 것이다.”p229
라며 책은 끝납니다.
책을 덮으며, 우리 사회와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뭔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꿈틀거림이 잠시의 진동으로, 혼자만의 떨림으로 남지 않고 사회를 울리는 조그마한 파장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홍세화 선생님을 지나쳐 산을 오르던 나도 언젠가는 산을 내려와야 할테니 말입니다.
대학교 때 인상적으로 읽었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의 홍세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 읽어봐야지 하던 참에 전자책으로도 함께 발간된 것을 보고 바로 구입하였다. 참 오래만에 신간이라 반갑기도 하고 기대가 무척 되었는데, 여전히 학생 때 읽었던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함이 없기에 좋았다.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가 묻게되고, 자유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