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그때 그 사건은 어떻게 역사가 됐을까?
세월호 참사에서 코로나19까지, 전면 업그레이드한 ‘대한민국 현재사’ 3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역사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지켜온 유시민의『나의 한국현대사』가 6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을 넘나들며 보고 겪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는 방식을 유지하되, 그간 더해진 시간의 자취를 담아 전면 새로 고쳐 썼다. 초판 출간 당시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보완하고 축적된 사실을 되짚겠다던 약속을 지킨 첫 번째 책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2014년 7월 초 이후부터 2020년 12월까지, 주목할 만한 사건을 불러내고 인구·국민소득·소득분배 등 사회변화를 보여주는 각종 통계자료를 활용해 보완했다. 특히 2019년 7월 4일 발표됐던 일본의 수출규제, 2016년 이후 확장된 미투운동·장애운동 등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기 절을 할애했다. 현 시점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내용을 덜어내고 문장 전반을 손봤으며, 각 장과 절의 제목을 대부분 다시 붙였다. 수정·추가된 부분을 감안해 사진자료들을 선별해 재배치하고 표지와 본문에도 새 옷을 입혔다. 유시민이 개정증보판에 애정을 쏟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거듭 불러와 지금 이곳에 연결시키려는 그의 시도를 ‘현재사(現在史)’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책에는 2014년 이후의 일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에서 재발견한 대한민국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를 확인하는 재미가 초판을 읽은 독자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다사다난했던 동시대 독자들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유익한 안내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
역사는 왜곡될 수 있다. 지금 언론이 공정성을 잃었듯 사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하고 거짓을 그럴 듯하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로보게끔 한다.
그러한 면에서 유시민 작가의 글은 편향되어 있지않고 사실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혹자는 진보에 편향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슬프게도 사실을 얘기하면 좌파로 몰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의 현대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과 인사이트를 담은 책이다. 유시민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를 정확하고 폭넓게 다루면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안을 제시한다. 특히, 대한민국이 직면한 분단과 통일 문제, 대외관계, 그리고 선거와 정치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유시민의 글쓰기는 매우 직설적이고 생동감 있어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재미있게 한편으로는 슬프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총평하자면, '나의 현대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가 쓴 책이다
현대사 흐름을 읽기 쉽게 쓰인 책이다
지난 역사의 흐름과 과정 사건에 대해 알수있었고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눈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틈틈히 읽고
또 아이들이 지난 현대역사에 대해 물어볼때
술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야 겠다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유시민 작가의
간결하고 쉬운 문체가 좋았다
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현대사는 흥미로웠다.
현대사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고 싶어서 글을 쓰셨다는
작가님의 말을 공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온 역사...
그리고 현대사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듯 하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감명있게 본 영화가 있어서 너희도 시간이 되면 한번쯤 (시간되면) 그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보라고 하셨다. 그때가 고등학교 때였던거 같은데 ....
그 영화가 생각이 안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 영화는 극장에서 엄마, 아빠와 받던 영화고 신나는 13일의 금요일 밤이라던가 이블데드, 백투더 퓨쳐도 아니다.
왜 기억이 안 날까 생각해보니 ... 그때 그 영화를 비디오 가게에서 빌릴때 아저씨가 끼워준
<쌍둥이 여전사>란 영화 때문이었다. 그래서 훌륭한 본편 영화는 기억이 안나고 <빤쮸>가 기본 의상인 <쌍둥이 여전사>의 활약상만이 아직도 기억의 일부로 남아 있다.
미스코리아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미스코리아는 60년대 70년대 만 하더라도 당선이 되면 은행같은 엘리트들의 집합소에 특채되어 근무하곤 했다. 유망한 스포츠 유망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은행에 스카웃되어 실업팀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미스코리아의 상징성은 옛날에는 대단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날 문득 내가 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서 비디오 가게에 갔다. 그랬더니 어저씨가 이번에는 미스코리아가 벗었다며 슬쩍 끼워주는 거다. 정말 배우는 8등신 미녀였다. 그리고 그때 빌렸던 영화를 다보지는 못했다. 기억이 안난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 옛날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은 이 책을 읽어서 이다.
이젠 어른들도 백반을 잘 먹지 않는 시대이다. (나만 그런가 ?)
기억하지 않는 시대에 옛날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물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어야 하는데 ...
나는 아직도 쌍둥이 여전사가 웃옷을 아직도 왜 걸치지 않은지 궁금하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아간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고통 받는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지만, 손에 쥔 것은 개뿔도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에 떤다. 세상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다. 그러나 그 고통 덕분에 내가 현실에 존재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 고통과 고뇌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뿌리를 밑천 삼아 앞으로의 삶을 버텨나가는 것.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미래의 희망과 자산이 될 수 있다. 비록 놓쳐버린 기회가 있을지라도,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의 한국 근현대사(개정판)>은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갖게 한다. “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p.11” 주어진 독립 이후 혼란 속에서 나라를 세웠다. 미성숙한 민주주의 체제하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군부 독재를 겪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힘들었고, 군부독재를 용인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포기했는가? 아니다.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믿고 싸워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p.658” 선배들이 믿고 싸웠기에 세계 유래 없는 국가, 식민지 경험과 내전의 상처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 삶은 팍팍하다. 부모세대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가 되었고, 포기를 일찍이 체감해야 했다. 과거에 흔했던 기회는 점점 사라졌고, 불확실성만 가득하다. 책임과 의무는 다해야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쟁취하기는커녕 꿈꾸기도 쉽지 않다. 우리세대에게 남은 것은 처참한 현실과 향할 곳 없는 원망뿐일지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 세대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버지 세대는 배고픔을 이겨내고 내 가족의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우리가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모두 선배들의 잘못이기만 할까. 우리들이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원망, 현실에 대한 절망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언제나,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고통은 비교 불가능한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모든 세대는 그 고통 속에서도 한걸음씩 나아왔다. 그 걸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p.20)” 나 역시 그렇다. 시골 깡촌의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학생이 이렇듯 최소한의 사람구실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만든 제도가 나를 그래도 밥 벌어먹고 살게는 해줬다. 다소 성에 차지는 않을지라도...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p.660)’라고 담담히 말하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와 동년배는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준 후대를 사는 입장에서 선배들이 겪었던 고통과 고뇌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수 십년이 지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며 위로를 얻듯이,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 작은 그림을 그려본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조금씩 걸어가 본다. 부끄럽고 두렵지만 올바르다 믿는 선택을 해본다. 양극화, N포, 불확실성, 주어진 현실들은 분명 만만치 않을 것이고,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할 거다. 그럼에도 감히 희망을 가져본다. 내 선택들을 믿어 본다. 미래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기에. 선배들이 그러했듯 우리들도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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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호모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미래의 역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환멸과 절망감이 세상을 뒤덮을 때도 반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역사는 나를 격려해줬다. 역사는 또한 환희와 낙관이 넘쳐나는 시대가 비극과 몰락의 시간을 예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격려를 받으며 나는 오늘의 역사를 산다. 그 과정에서 모인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독자들께 말하고 싶다. ‘역사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p.11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재 그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p.13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이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죽고 없더라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p.14)을 겪었거나 정당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 있다. 우리는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 p.15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p.18
훌륭함은 아무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함이나 지고지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어떤 사회가 추하고 불합리하며 저열한 상태에서, 완전하지는 않지(p.20)만 더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고결한 상태로 변화했다면, 그 과정을 기록한 역사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현대사 55년이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 생각한다. p.21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쥐어도 악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게(p.34)한다는 강점 덕분에 문명의 대세가 됐다. 이른바 ‘국정농단’ 이후 한국에서 펼쳐진 상황은 그런 역설을 증명해 보였다. p.35
경제발전 공로를 인정한다고 해서 독재와 인권유린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p.37
고령 유권자들은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재오가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냈다. 길었던 군사독재의 어둠을 뚫고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고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와 보수정당에 표를 준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달리 그 소망을 드러낼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고령 유권자들의 투표행위에 대한 ‘이성적’설명이 될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 박근혜가 단지 ‘박정희의 딸’이어서, 문재인이 오로지 ‘노무현의 친구’여서 대통령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p.39)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2012년과 2017년의 대통령선거는 박정희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맞부딪친 역사의 전장이었다. p.40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당 사이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의 투쟁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갈등이었으며, 서로 다른 역사인식의 충돌이었다. p.46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이 이미 들어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p.46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는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현재의 모든 사실은 즉각 과거로 들어간다. 흐르는 시간에 실려온 모든 사실은 과거라는 거대한 수용소에서 망각과 소멸의 운명을 기다린다. 어떤 역사가의 손길이 닿은 사실만이 그 운명의 집행을 잠시 유예받은 ‘역사적 사실’이 된다. 사실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선택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래서 한 시대에 대(p.47)해 100명의 역사가는 100가지의 서로 다른 역사를 쓸 수 있으며, 한 시대에 대해 한 사람이 상이한 역사를 쓸 수도 있다. / 역사적 사실은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갖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신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을 죽은 것이다. p.48
대립하는 역사인시그이 배후에는 대립하는 이해관계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인생관이 놓여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존경하며, 어떤 사람은 싫어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되도록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p.49) ... “당신, 가치관에 문제가 있어. 인생을 잘못 사는 거야!”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같은 말도 역사를 가지고 하면 부담이 덜하다. “역사를 잘못 아시는군요!” 하지만 이런 말도 단순히 가ㅗ거 사실에 대한 인식과 견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철학과 인격에 대한 비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뉴라이트’의 한국사 교과서나 <반일 종족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친일파’, ‘극우’, ‘좌파’, ‘종북’이라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감정,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 것이다. p.50
우리 역사에서 모든 청년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p.62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고르게 가난했던 독재국가 대한민국은 풍요롭지만 고르지 않은 민주국가로 변신했다. p.74
나는 한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대중의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어(p.80)느 것을 쓰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이뤄낸 동력은 대중이 개별,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마을 안고 산다. 욕망은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은 사회를 바꾼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끼 때문에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p.81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의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나는 젊었을 때 프랑스 정치가 알렉시 드 토크빌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이 말의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표현의(p.102) 자유를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조작하며 정부를 찬양하는 교과서로 아이들을 세뇌하고 공포를 조장해 대중을 길들이는 독제체제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훨씬 더 훌륭한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으니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면 우리도 미국이나 서유럽처럼 수준 높은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p.103
역사에서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은 때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p.111)다. 만약 우리가 신탁통치를 받아들여 좌우가 동거하는 통일 정부를 만들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됐을까? 그랬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p.112
국가의 정통성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구호는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으며 남북 모두 유엔 회원국이 된 후에는 그런 의미마저 사라졌다. 국가의 정통성은 특정한 이념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빛나는 이념을 내세운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이, 민중이, 인민이 또는 대중이 그 나라의 국민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국가의 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복종할 때,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무질서에 대항해 공동체를 지키려고 헌신할 때 형성된다. p.114
외국의 식민지였다가 자주권을 되찾은 신생국가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역사의 대의명분이다 신생 대한민국의 긴급과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자주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야 했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민중을 빈곤에서 해방하고 물질적 삶을 개선해야 국민이 최소한의 기대를 품고 국가에 복종, 협력하게 된다.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헌법에 따라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주권재민 또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의 단맛을 누리는 데만 몰두했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p.115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p.121) “남쪽이 자주성이 결여되어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자주’ 이념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어 산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독재가 공존했던 1980년대 한국사회 한복판에서 탄생한 주사파는 뿌리 깊은 민족주의적 열등감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p.122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쿠데타는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없이 폭력으로 국가질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군대를 동원해 그런 일을 하면 군사쿠데타라고 한다. (p.139) ...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데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p.140
여가가 없는 시민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90% 사람들은 항상 일만 하고 여가가 없는 반면 10% 사람들은 늘 놀면서 전혀 또는 거의 일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마그나카르타, 권리장전, 미국 헌법, 자유와 평등이라는 프랑스의 모토는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G.버나드 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 p.148
역사에는 연습이나 실험이 없으며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바꿀 수 없다. ... ‘사고실험’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험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p.151
[그림2(한국 경제의 비행궤적, GNI)]는 60여 년에 걸쳐 수천만 국민이 수행한 분투의 기록이며 그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이 느꼈던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분노를 느끼게 한(p.170)다. 역사가 그들의 인생에 각인한 성공과 좌절의 침전물인 동시에 대통령들이 품었던 야심과 포부의 흔적이기도 하다. ...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청년들은 그 모두를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여길지 몰라도, 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p.171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더 많은 노동력의 투입. 그렇게 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며, 인구가 늘지 않는다면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둘째, 더 많은 자본의 투입.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는 생산한 것 가운데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자본을 형성하는 쓰는 행위를 말한다. 투자율이 높으면 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생산기술의 향상, 기술수준이 높으면 같은 양의 노동력과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넷(p.186)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합리적 규칙이 있고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기업,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시민 각자가 모두 그 규칙을 지키면서 남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 p.187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의 총합이 아니라 제도와 행태와 의식의 복합물이다. 합리적인 제도가 있어도 행태가 비뚤어지면 소용이 없다. 권력집단과 유권자의 행태는 욕망과 감정, 의식과 관습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좌우한다. 좋은 헌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권세력 또는 통치자가 헌법과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존중해야 하며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해야 한다. p.274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한느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함으로써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p.276
사람은 누구나 성공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과거와는 성격이 다른 도전에도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응전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략과 행동양식이 등장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p.286
독재정권이 대중의 욕망을 거스를 수 없(p.366)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의 ‘혁명전사’들도 대중의 욕망을 무시하지 못했다. p.367
누가 하는 어떤 것이든, 민주주의와 관련한 헌법의 규정을 실현하려는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 정당에 대해서, 통일문제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그 무엇에 대해서든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견해를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p.405)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제약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p.406
자이실현을 하려면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은 신념이나 이상 같은 철학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설계하는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p.422
저출산 현상은 ‘자유주의적 각성’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그렇게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도 ‘희소성’과 ‘지불 능력’이라는 경제논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도 너무 많으면 대접 받지 못한다. 물질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p.435)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으며 집단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성공과 저출산 현상은 사람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였다. p.436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한다. 한국현대사(p.495)에서 가장 뚜렷한 각인을 남긴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지위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하기도 한다. ‘영원한 청년 노동자’ 또는 ‘노동열사’ 전태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p.496
소설가 김훈 선(p.510)생은 합동분향소를 다녀와서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다만 울음을 듣고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고 뒹굴면서 울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수많은 박사학위 논문, 연구보고서, 특집기사, 세미나, 공청회, 국무회의, 긴급대책회의, 총리 지시가 있었다. 이 산더미 같은 담론은 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p.511
물질의 결핍이나 불합리한 제도만이 아니라 낡은 관념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 p.540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는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누구도 내놓고 부정하지 못할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사상이 ‘혁명성’을 띤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p.543
우리는 평등 이슈를 ‘노동문제’나 ‘농민문제’와 동열에 놓인 ‘여성문제’로 취급했다. p.545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형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어떤 유형의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정부는 실패하기 쉬운데,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사고 체계를 낳는다. -버넌 보그다너,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 p.556
‘레드 콤플렉스’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었다. 북한 편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와 권리의 박탈을 묵인한 정신적 병리현상이었다. p.565
오늘날 40대, 50대가 20년 후 지금의 60대, 70대와 비슷해진다면 별로 희망이 없다. 지금의 40대, 50대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수가 많다. 그들이 변화를 기피하는 보수적 또는 과거 회귀적 고령 유권자가 된다면(p.657)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혁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물질에 대한 개별적 욕망과 북한에 대한 감정적 증오가 지배하는 나라로 머물 것이다. p.658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p.658
짧지 않은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p.659) 내 자신과 동시대의 벗들을 위로하고 싶다.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면서 오늘을 만들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역사를 지켜봅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아직도 아름다운 감정과 소망이 남아 있다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삶의 마지막 날까지 서로 등 두들기며 걸어갑시다.’ p.660
나의 한국 근현대사
역사 교과서와는 또다른 느낌의 역사 이야기 ~
가장 최근까지의 사실이라 역사라 하기도 조금 그렇지만
어쩌면 지금 이순간도 역사의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유시민 작가의 냉철한 사관으로 내려써 간 최고의 근현대사 이야기이다.
앞으로 또 다른 근현대사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유시민 작가 화이팅 ~
유시민 작가 화이팅 ~
유시민 작가 화이팅 ~
유시민 작가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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