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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덕질의 기쁨 - 『아무튼, 장국영』
2021년 06월 01일
*일단 책 디자인이 참 예뻤다
나는 팬으로서 그 스타를 영영 떠나보내는 기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크게 행복할 수 있는지는 안다. 나도 많이 느껴보았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 정작 스스로는 불행하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의 삶에도 행복한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상쇄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이 그를 찾아왔다면 그것은 얼마나 거대했을까? 상상하기가 어려워 나는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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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아주 조금씩 덜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잘 가요, 그 곳에서 고통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기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에세이예요. 시리즈로 나오고 있어요.”
내 관심을 눈치챘는지 주인장이 말을 걸어왔다. 외국어, 하루키, 비건, 요가.... 주제도 참 다양하다. 뭔가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나도 제법 잘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비전문가들이 쓴 에세이라고 하니 불쑥 욕심이 난다.
“<아무튼, 장국영> 써볼까 ” p.12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알게된 것은 도서관에서였다. ‘아무튼’을 접두어로 이어지는 피트니스, 스웨터, 잡지, 하루키, 달리기..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고개가 갸웃해졌다. 무슨 맥락인거지? 그냥 ‘아무튼’만 붙이면 되는 건가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아하, 그런거구나. 저마다의 기쁨이나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를 주제로 쓴 글들로 이루어진 시리즈라는 것을 알고나니 ‘아무튼’에 이어지는 단어들이 달리 보였다. 연필, 발레, 순정만화, 여름, 클래식..일상에서 스쳐 지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을 만큼, 말 그대로 ‘생각만 해도 좋은’ 것일 수 있겠구나, 책 제목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내게는 어느정도일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저자에게는 ‘장국영’이라는 이름 석자(책에서는 대부분 ‘꺼거’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지만)가 그런 의미가 되어준다.
이 ‘열병’은 여전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10대를 지나 20대, 30대까지 줄곧 의리 있게 이어졌다.
특히 그 시절 나는 꺼거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진학을 모두 결정해버렸다. 남들은 갈팡질팡하고 심사숙고한다는 그 중요한 진로를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한 걸 보면 나의 팬심도 어지간하긴 했던 모양이다. p.28
그때쯤 나는 꺼거와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것은 다름 아닌 통역사였다. 왜 꼭 통역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외국인과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통역사가 되는 것뿐인 줄 알았다. p.35
처음 그의 영화를 본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부터 박사를 졸업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의 충실한 팬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연히 오늘의 이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중략)..과장을 아주 조금 보태자면 나를 박사로 만든 건 8할이 꺼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p.115-116
이렇게 나의 논문 <후(後)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화 사회문화적 함의>가 시작되었다. 팬심 가득했지만 그래도 연구의 객관성을 유지하며 진지한 분석을 하고자 노력했다. pp.125-126
장국영과 대화를 하고싶어, 그의 옆에서 통역하던 통역사가 부러워 ‘중국어’를 전공하고, 그의 팬덤에 대한 논문을 쓰기까지 했으니, <아무튼, 장국영>이라는 에세이를 쓰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에 감탄마저 일었다.
많고 많은 ‘아무튼’ 시리즈(책표지에 적힌 제목들을 보니 50여 권이 출판된 듯 하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은 것은 나 역시 ‘장국영’의 팬이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은 순간 자신감이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영웅본색’을 통해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알게된 후 ‘천녀유혼’, ‘아비정전’, ‘동사서독’ 그리고 ‘패왕별희’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들을 만나고, 책에서도 언급된 앨범 ‘총애 장국영’을 나 역시 반복해서 들었었다.
그 유명한 공중전화 부스 신에서 어찌나 대성통곡을 했던지 같이 비디오를 보던 동생이 깜짝 놀라서 휴지를 건네줄 정도였다. 그날 눈물 콧물을 쏙 뽑은 나는 그 뒤로 하루가 멀다 하고 비디오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그의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랬듯 전혀 특별하지 않은, 나의 장국영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22
당시 가장 최근 발매된 앨범인 <총애 장국영>을 사서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었다. <총애>는 장국영이 부른 영화 OST를 모은 앨범인데 귀가 닳도록 들은 익숙한 노래들을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정말 행복했다. p.23
2003년 만우절, 세상에 안녕을 고한 그의 소식이 정도를 넘어선 짓궂은 만우절 거짓말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고,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4월 1일이면 문득문득 그의 노래를 찾아듣곤 한다.
유난히 검은색이 많이 칠해진 신문의 헤드라인.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장국영’ 세 글자가 엄청난 크기로 클로즈업됐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장국영.
이 이름 하나로 그해 참 많은 사람이 울었다. p.65
장국영의 팬 사인회에 가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방청객 자리를 차지하고, 선물과 편지를 전한 저자의 장국영 사랑(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을 만나고 있으려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하나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아쉽기도 또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없음에 새삼 마음이 헛헛해지기도 한다.
세상에나, 맞아. 나는 이렇게나 장국영을 좋아했었다.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정말로 장국영을 좋아한다..(중략)..글이 적힌 종이 몇 장과 그림을 챙겨서 방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할 얘기도, 기억하고 싶은 얘기도 너무 많다.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p.17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나만의 ‘아무튼’ 으로 짧은 글 써보기(적용기한 : 여름이 오기전)
"나는 <아무튼, 공항>을 한 번 써보고 싶어"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우리도 하나씩 주제 정해서 써봐요!"
얼마 전 함께 책을 읽는 후배들과 자신만의 ‘아무튼’을 써보자며 나눴던 이야기
두울. 까페 ‘레슬리’ 가보기(적용기한 : 봄이 가기전)
나도 틈틈이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에 있는 장국영 테마 카페 ‘카페 레슬리’를 방문했고, ‘샤로수길’에 새로 문을 연 와인바 ‘아비정전’을 찾기도 했다. p.160
노영미와 후영미, 그리고 안영미
<아무튼, 장국영>을 읽고
2003년 봄과 여름 사이, 군대에서 짧은 휴가를 나왔을 때 두 가지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중문과 동문들이 사스 때문에 돌연 귀국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국영(張國榮)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4월 1일 만우절은 중국어로 위런제(愚人節), '어리석은 이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해 그날 '꺼거(장국영의 애칭, '오빠' 또는 '형'이라는 뜻)'는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아무튼, 장국영>의 저자도 그해 만우절 다음날 어학연수중이던 베이징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고교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양조위 부인, 금성무 부인 등 여러 부인을 제치고 자타공인 장국영 부인으로 불리며, 1998년과 1999년 장국영이 앨범과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내한했을 때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그때 그의 곁에서 동행하던 통역사를 보고 그의 통역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을 거쳐 통번역 대학원까지 갈 정도로 저자의 장국영 사랑은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국영 20주기를 앞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20주기를 기념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쓴 에세이가 바로 <아무튼, 장국영>이다.
'『영웅본색』에서는 주윤발이 멋졌고, 『천녀유혼』에서는 왕조현이 선녀같이 예뻤고, 『백발마녀전』에서는 임청하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고, 『해피 투게더』에서는 양조위가 당하고 만 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장국영의 소식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좋아한 이 모든 영화에 장국영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보다 상대를 더 빛나게 해주는 배우였다. 내가 좋아한 모든 홍콩 영화는 다름 아닌 장국영의 영화였다.'
(73쪽, 「어리석은 이의 날」 中)
나 역시 장국영과 그가 출현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공강 때면 학교 비디오감상실에서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동사서독』, 『야반가성』, 『춘광사설(해피 투게더)』 등을 빌려 보면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섭렵해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패왕별희』는 몇 번을 봐도 질리기는커녕 또 보고 싶을 만큼 최애하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영화처럼 살다간 장국영을 영화인으로만 기억해온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인(歌人),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장국영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1977년 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하고 연예계에 입문한 그지만 의외로 꽤 긴 무명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데뷔한 지 6~7년이 지난 후 발라드와 댄스곡을 넘나들며 홍콩 음악계를 평정했는데, 특히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알란탐(譚詠麟)과의 라이벌 구도는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 '담장쟁패(譚張爭覇)'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다가 끝내 이를 견디다 못한 장국영은 1989년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훗날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가 알란탐과 함께 음원을 녹음하는 등 한결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영원한 우상 장국영 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처음 그의 영화를 본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부터 박사를 졸업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의 충실한 팬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연히 오늘의 이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115쪽, 「이 모든 영광을 꺼거에게」中)
<아무튼, 장국영>은 장국영에 관한 이야기이자 저자의 지난 30여 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수년간 중국 영업을 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 상하이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썼던 '치사[(致謝), 박사학위 논문 마지막에 후기 형식을 빌려 논문 작성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는 중국 대학의 관행 중 하나]'에서도 저자가 장국영의 찐팬임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수차례 출장과 유학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남아 있는 꺼거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를 추억해왔는데, 특히 꺼거가 가장 좋아한 대륙의 도시인 상하이 곳곳에 베어 있는 그의 향기를 맡아내는 저자의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다. 교환학생 시절과 출장 때 여러 번 방문했던 상하이의 길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야경들이 떠오르면서 문득 나 역시 꺼거가 거닐었던 공간을 오갔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도 꽤 오래된 팬이라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1세대 팬은 아니다. 조금 거칠게 구분해 1989년 은퇴 이전의 팬들을 1세대 팬이라고 한다면, 그 후 세대는 2세대 팬이라 할 수 있다. (중략) 반면 꺼거의 활동 시기에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그를 알지 못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비로소 팬이 된 이들이 있다. 바로 3세대 팬이다.
(123쪽, 「후영미」中)
현재 중국어를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넘어야할 큰 산 중 하나가 바로 논문쓰기인데, 고민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써낸 논문의 제목이 다름 아닌 「후(後) 장국영 시대 팬덤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함의」라고 한다. 성덕(성공한 덕후)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으며, 그의 장국영 사랑에 대한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장국영의 '영(榮)'과 중국어로 팬(fan)을 뜻하는 '미(迷)'를 합치면 '영미(榮迷)', 즉 장국영의 팬을 의미하며, 장국영이 사망한 후에 그를 좋아하게 된 팬을 지칭하여 중국에서는 '후영미(後榮迷)'라고 부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그의 영화와 노래를 접한 그들은 장국영의 팬카페나 위챗 채팅방 등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그를 단순히 '스타'가 아닌 '예술가'로 바라본다. 무엇보다 후영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인간' 장국영이며, 그가 노래와 연기, 그리고 삶으로 몸소 보여줬던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장국영 정신'이라 부르며 계승하고 전파해나가는 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꺼거가 여전히 노영미와 후영미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장국영>은 저자와 같은 노영미[(老榮迷), 후영미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기존의 장국영 팬을 뜻함)들에게는 꺼거에 대한 추억을 함께 회상하고, 꺼거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후영미로 이끌어주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국영으로부터 위안(慰安)을 얻었던 노영미와 위안을 얻게 될 후영미 사이에는, 어쩌면 그가 있을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길 바라는 나와 같은 '안영미(安榮迷)'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가져본다. 끝으로 책을 내려놓다가 소리없이 화들짝 두 번 놀라게 된다. 앞표지에는 그의 노래 「춘하추동(春夏秋冬):들어보기(클릭)」의 노랫말과 그의 싸인 CD가, 뒷표지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백합 한 송이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전에 바치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디자인에 한 번 놀라고, 불현듯 설마 하는 마음에 초판 발행일을 찾아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그렇다. 2021년 4월 1일이다.
(153쪽, 「열일곱번의 춘하추동」中 / 128~129쪽, 「후영미」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