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치타스 아우어슈페르크 저/문항심 역
멀린 셸드레이크 저/김은영 역/홍승범 감수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장씨 셋이 번갈아 가며 화면에 등장해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패널들이 각각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표정이 심상찮다. 왠지 귀 기울여야만 할 거 같다. 어느 시점부터는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야 만다. 처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접한 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다. 학창 시절 그저 암기하기에 바빴던 역사가 대화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동시에 나의 무지에 대한 자각 또한 이루어졌다.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 중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아예 처음 듣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어 당황하기도 했다. 시험이 종료됨과 동시에 잊었고, 과도하게 신성시 여긴 나머지 나의 일상과는 별개인 것처럼 여긴 결과 나는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은 프로그램이 다룬 사례를 담아냈다. 이미 방송을 시청한 이들이라면 마치 프로그램을 재시청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시시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 특정 시점에 박제된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총 일곱 가지의 이야기 중 가장 앞부분에는 1950년대 발생한 박인수 사건이 배치됐다. 당시 인기를 끌던 고급 댄스홀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여성을 만나 잠자리르라 했는데, 상대방은 하나같이 박인수와 필히 결혼하게 되리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동거녀와 아이까지 있었지만, 이 사실은 중요치 않았고, 해군 대위라 사칭한 것에 대해서도 세상은 크게 문제시 안 삼았다. 댄스홀에 드나든 여성들의 헤픈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내렸고, 어느 시점에는 피해자가 고스란히 비난을 뒤집어쓰는 일까지 벌어졌다. 피해자답지 않음. 순간에 크게 저항하고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며, 이후 우울증 등 괴로움에 시달려야 마땅하다는 식의 잣대는 여전히 여성의 목을 조른다. 성폭력 시도에 상대의 혀를 깨물었던 여성의 행동은 혀가 잘려 나갔으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처벌받기도 하였다. 이 놀라운 일들을 그저 과거로만 여길 수 있을까.
훗날 대통령이 된 인물의 납치라는 굵직한 사건이 뒤를 이었다. 김대중이 납치된 건 이웃 일본 땅에서였다.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박정희의 대항마로서 김대중은 주목받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으니 사건이 발생한 일본은 물론 미국조차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 정부가 이에 깊이 관여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책임지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대부분이 고인이 되어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힘들어졌다. 비밀유지에 각별히 철저를 기할 것을 요구 받은 인물들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이며,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인 이들과 함께 해당 공작을 진두지휘해야 했던 ‘윤 단장’이라는 인물의 속내는 어떠했을지. 글을 읽는 내내 일련의 흐름보다도 개별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살아가는 시대는 같은데 왜 누구는 독재의 길을 걷고 누구는 민주화를 부르짖게 됐는지, 사람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일이 애국으로 얼마든지 둔갑할 수 있는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을지. 역사의 무게감을 읽는 내내 느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서글픈 현실로부터 비롯됐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었다.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고, 위법 행위는 심판을 받는 게 이 사회의 기본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법이라 하여도 당장 갈 곳 없는 이들의 움막에 불을 지르는 정부의 모습이 과연 옳은지, 더욱 중한 죄를 짓고도 미약한 처벌만을 받는 이들이 널렸다는 점이 과연 정당한지, 역사 속 많은 사례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1992년 휴거 소동을 다룬 부분이었다. 전재산을 처분하고, 급기야 어렵게 가진 아이까지 낙태한 이까지 있었다. 그 날이 오면 선택받은 이들은 휴거되는 반면 나머지는 이 땅에 남아 적그리스도가 선사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왜 그땐 그리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가 신기했다. 실제 당시에 휴거에 대해 강한 믿음을 지녔던 이들은 마지막을 상정한 삶이 오히려 해방감을 선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2-3년만 버티면 현생에서의 괴로움이 막을 내린다는 사실은 적잖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주었다. 종말로부터 행복을 발견하다니, 원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나 절로 쓴웃음이 났다.
소설 같아 보이는 이야기도 있었고, 끔찍함에 몸서리친 이야기도 있었다. 이 모든 게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무언가였으면 좋겠지만 적잖은 일들은 지독할 정도로 반복되곤 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가난에 신음하고, 사회를 향한 불만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과연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온전히 품을 만큼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전개될 역사에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담고 싶은 욕심을 느꼈다.
평소 즐겨보던 꼬꼬무가 책으로 나왔다길래 호기심에 구입해보았지만 솔직한 감상으로는
tv 방영분을 보는게 낫다고 생각되네요. 책이라고 더 추가된 정보는 많지 않고 거의
방영분과 다를게 없었고 책으로 보니 몰입도가 확 떨어지네요. 내용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내용이 많이 기입되있고 끌릴만한 소재긴 합니다. 그러나 이미 티비로 본 내용들이라
괜히 구입한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