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이주의 신간] 『우연이 만든 세계』,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외
2022년 04월 13일
서울에 현존하는 건축물을 떠올려보자 어떤 형태가 생각나는가
절반넘게 아파트가 차지할 것 같고 나머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무용, 혹은 오피스텔용 빌딩들, 그리고 나면 오래된 단독주택, 개중엔 아직도 구멍가게로 사용되는 적산가옥이나 8,90년대 많이 지어진 붉은 벽돌 빌라들도 한 자리 차지할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건 북촌으로 상징되는 한옥이 있다.
한옥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한국에 지어진 집은 모두 한옥이 아니겠나 그러나 이 한옥이라는 단어엔 시대의 아픔이 있다. 특히 서울의 특정 지역에 한옥이 밀집해서 그나마 명맥을 잇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진을 치고 살면서 조선인들의 주거지를 야금야금 잠식해가는 것을 보다 못한 조선의 자산가들이 북촌 일대 땅을 매입해 필지를 잘게 나누고 거기에 한옥을 지어 저렴하게 팔았다는 것이다. 지금 그곳은 마치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번쯤 둘러보는 관광지처럼 여겨지고는 있지만 엄연한 생활 거주지다.
서울 한복판에 한옥을 짓고 산다고 하면 그 반응이 볼만할 것 같다. 농담하냐고, 혹은 아파트처럼 나중에 안팔릴 것이라고,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고, 집을 짓는게 가능은 하냐고 물어볼 게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실현해냈다.
기자인 저자는 반려자와 함께 살 공간을 서촌에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 자기 집을 갖는 거 한옥으로 지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된다. 당연히 모두의 선입견처럼 고충의 연속이었다. 그 비싸고 좁은 땅 위에 한옥이라니... 땅 구입부터 설계, 인허가, 건축 등등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진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중도 포기하고 땅을 팔아버렸을텐데 웬만하지가 않은 사람인 모양이다. 그 덕에 이렇게 책까지 나오지 않았겠나.
한옥은 살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마당이 있으니 거기서 하늘을 바라다 볼 수 있을 것 같고, 층간소음도 없을 것 같고, 아파트 처럼 경비비나 일반관리비, 장기수선 충당금 같은 고정비도 없을 것 같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도 한번 짓고 살아봐?? 하는 충동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 어디에 100% 만족할 만한 '사는 곳'이 있겠는가. 100평 아파트에 산다고 행복하다고 할 수 없고 작은 한옥에서 유유자적 산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심적 여유를 누릴 수만 있다면 집은 그걸로 충분하다. 쫒겨날 이유없는 내집인데...
단군 이래 제일 비싼 집값(?)??에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 ㅠㅠ 누더기같은 규제 때문에 오히려 실수요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듯 한데, 그래도 다들 내 집 마련, 번듯한 직주근접+역세권 아팟,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소망은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 포함??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두 집 중 한 집이 아파트에 살며, 주거만족도 1위를 차지한 형태 역시 아파트라고 한다. 그러나 이 커플은 빤쓰와 양말이 빵꾸날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며 마련한 돈으로 마포 래미안 20평을 산 게 아니라 한옥을 지어버린다. 이것이 주거 모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모험의 시작은 <전통을 지켜야겠다는 거창한 마음가짐>, <한옥에 대한 평생의 로망> 등이 아니었다. "집 안에도 바깥 공간 한 평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소망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서촌 한옥을 덜컥 사버리며 실현되는데...!
한옥을 새로 짓기 위해 땅을 팠을 때 문화재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 에피소드, 집을 수리하느냐 아예 새로 짓느냐에서 고민하는 결, 기껏 산 땅이 맹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몇 십년 전의 자료까지 뒤져가며 100쪽짜리 민원 문서를 써서 낸 일, 양옥 대비 2~3배 높은 공사비를 네고하는 과정, 골목이 좁아 공사 크레인이 들어올 수 없어서 3.5톤 크레인을 150톤 크레인으로 넘겨가며 마침내 집을 완공하는 과정.
그냥 부동산 몇 군데 들러보고 임장 가본 뒤, 등기를 치는 간편한 과정(?)에 비하면 이 한옥짓기 과정은 그야말로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투쟁기.
지하 벙커가 있는 한옥이라니... 호캉스가 따로 필요 없을 듯합니다. ㅋㅋㅋ
작가의 글맛과 멋진 한옥 사진을 보며, 나는 이런 집을 갖기 위해서 저런 고생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해 본다. (물론 대답은 노입니다...)
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터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아파트 밖 동네는 방치됐다. 어렵게 어렵게 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어도 낙후한 동네 인프라를 바꾸긴 힘들었다. 단지 안의 안락한 생활은 집단으로 뭉친 개인들이 투자한 결과였고, 단지 밖의 험난한 삶은 집단이 되지 못한 개인들이 발버둥 치다 포기한 결과였다.
결혼식장 짓기 프로젝트.
마음이 맞은 연인은 마당 한 뼘이 있는 집을 원했다.
그리고 서촌에 폐가를 샀다. 그곳은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공간이자 두 인생이 하나의 삶을 일궈내기 위한 곳이었다.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오른 이후 서울은 콘크리트 숲이 되었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동네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다.
골목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전유물이 되었다.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동네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한옥 짓기 프로젝트는 실로 험난하다.
집 하나 짓는 게 그럴 일인가? 싶다가도 이것이 현실이지.라는 체념도 든다.
게다가 그들이 터를 잡은 곳은 한옥보존지역이었다.
터를 잡고 설계를 하고, 예산도 짰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3억이면 지을 줄 알고 돈을 모았는데 그 사이 견적은 5억을 넘어갔다.
지하를 파고 싶은데 문화재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찌 겨우겨우 공사를 들어갔지만 좁은 골목이라 크레인으로 모든 장비와 자재를 날라야 했다.
그래서 <<크레인으로 지은 집>>이라는 유명세를(?) 얻었다.
이 책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로 시작해서 한옥 짓기에 뛰어들어 여러 가지 난관을 헤쳐가며 끈기와 인내와 굳건함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커플의 이야기다.
마냥 즐겁고 유쾌하게만 읽을 수 없는 것이 이 이야기 자체가 대한민국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가옥인 한옥 짓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이렇게 어려우면 누가 한옥을 짓고 살고 싶어 할까?
인구는 절벽으로 치닫는데 아파트 층고는 어째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는 걸까?
공간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어째서 집 짓는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한 집을 짓는 걸까?
공간에 대한
집에 대한
삶에 대한
그 어떤 철학도 없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콘크리트들이 도시를 점령했다.
그곳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알차게 꾸려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시 모험 같다.
꿈을 일궈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노력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거 같다.
이 한옥 한 채가 앞으로 더 많은 집다운 집들을 만들어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어떤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두 사람의 한옥 짓기 분투기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집은.
투기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은.
내 가족의 영혼이 쉬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냥갑 속에서 바둥거리고 사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렇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마당 한 뼘을 구해낸 커플의 이야기는
읽는 내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주거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음을 두 사람을 통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내려다 볼일 없고, 이웃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창문을 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이 자그마한 소망을 모두가 이루고 사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