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저
지이·태복 저
오지은 저
2022년 09월 02일
저자 소개: E.S.호버트
책 내용
이안은 엄마와 함께 살지만, 학교도 다니지 않고 여자이지만 머리도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의상도 입고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2012년 12월 5일 이안과 생일이 같은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안의 아빠는 이안과 엄마를 구하고 죽었고 엄마도 이안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으려고 위장하고 이사는 여러 차례 했음을 엄마가 이야기해준다. 엄마는 이 책 후반부 쯤에 이안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결국에는 죽게 된다. 이안은 폴로 세상 (인간)과 퍼머루트를 수호자로 예정된 룩스이며 다섯 종류의 라이톤(보서)의 능력이 생기게 된다.
읽고 나서
1. 책의 배경 설정은, 자신을 위협하는 세계로부터의 대피 그리고 지켜야만 하는 세상을 위해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 주인공이 여자이고 부모가 주인공을 끝까지 지킨다고 하지만 결국 주인공을 남기고 먼저 떠난다.
2. 등장인물
유토피아를 소개해주는 테오도라 대번포트은 이안의 스승이자 부모역할을 하며. 이안의 감정을 느끼는 비비스, 이안의 곁에서 에너지를 주는 진, 퍼머루트의 치료사인 클로드, 이안의 엄마, 아빠는 브레익트, 폴로에 대한 증오심이 있는 피터, 현존하는 룩스이자 아키테림인 맥스웰, 스카샤의 수장이고 악명 높은 블락인 죠 헤프너, 헤프너의 부인이고 진짜 악당인 릴리, 코리도란 수장 집안의 아들이자 블락인 맥 키스, 고아이고 폴로인 이안의 친구 토미, 토미를 아끼는 폴로인 앨런.
3. 읽는 내내 문장이 연상이 되었고 이 소설도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영상화 될 것 같다. 보이쉬한 여자 아이가 주인공일 텐데 많이 기대된다.
책은 책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좋다.
4. 퍼머루트를 상상하며 읽으니 이 책이 재미있다. 나는 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 떠오르는가? 부모의 부재 속에 뭔가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고 성장해나가는 스토리를 주변 수호신들과 친구들이 같이하고 블락인 악당들이 훼방 놓고 방해하는 선과 악의 대립구조도 재미있다.
5. 초등학생은 아마 교실에서 미덕의 덕목을 배우는 데 거기서 덕목을 보석에 비유하는 데, 이 책의 비비스, 진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비비스는 감정, 진은 용기, 에너지, 충전 상징성을 가진 덕목으로.
6. 이 책이 영화화 되려면 디테일한 설정이 영상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 같다.
7. 환타지 소설로서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길 것 같다. 나는 성인이지만 이 책이 유치하지 않고 읽을 만 했다.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쓴 글입니다.]
때로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들고 마치 산책나온 것처럼 편안히 독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딱딱하고 장문의 글을 읽다보면 에너지 소진도 많이 돼서, 마치 몸안에서 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부친다. 그럴 땐 쉽게 읽어지는 책이 오히려 뇌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20~30대 한창 젊은 나이에 겪어야 하는 일, 학업, 사랑, 전공, 취업 등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책 속의 주인공들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였지만, 이들의 방황과 고민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낙비가 인생에 한 번 내리라는 법은 없다. 소낙비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내릴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무관한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소낙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단 한 두번 겪어 본 사람은 갑자기 덮친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감고 조금만 기다리면 주변 사물과 앞에 보일 정도로 눈이 적응하며 그렇게 앞으로 걸으면 된다는 것을 알 뿐이다. 하지만 처음 어둠 속에 혼자 덩그렇게 놓인 사람이야 어찌 그런 걸 알겠는가.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과 불안, 두려움을 더 말해 뭐하겠는가. 좌충우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을 혹독하게 치루는가 완만하게 넘어가느냐는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적도 아래 세상에서는 정상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호주 브리즈번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전 생각했어요. 사막에 밤이 찾아와 길을 잃었을 때, 별이 이야기하는 방향은 각자 다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요. 눈이 내린 산속을 헤맬 때 북반구에서는 북극성을 찾겠지만 남반구에서는 희미한 남극성을 바라봐야겠죠 .
도넛이 중간에 동그랗게 뚫려 있는 게 당연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넛은 원래 구멍이 없는 빵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꼭 하나는 아닐지도 므르는 거라고요. (p.120)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인생에 많은 대가를 치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잘 몰랐다. 그저 사회적 시선과 부모님의 욕망에 따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위치를 가졌어도 그들은 오히려 불행했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늘 입어야 했으니 오죽 불편했겠는가.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p.120~121)
결국 사회와 부모가 요구하는 하나의 기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새로운 기준과 방식을 찾아 삶의 선택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인생을 계획하기 보다 자신의 재능과 가치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인생을 실이길 떼 가장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흔적에 기대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몰라. (p.254)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항상 따뜻함이 있다. 마치 위기에 노출된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빛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따뜻함이다. 살을 에일 듯한 추위 속에서도 견딜 수 있게 온기가 사랑이다. 수혁에겐 어머니의 사랑이, 다인에겐 할머니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고 사람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값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척 잘 산 삶이라고 단연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다소 구성이 느슷하고 깊은 삶의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런 점이 이 책이 가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세상에 향해 발걸음을 떼었을 나이에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인공들이었다면 오히려 감동이 덜했을지 모른다. 미숙함에서 오는 순수함과 용기 그리고 도전이 좋다. 특히 과감하게 북스 키친을 연 유진이 정말 아름답다.
사실 유진과 같은 북스 키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만나고 보니 기뻤다. 우연의 일치로 그냥 넘길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마치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오픈 식에 <책들의 부엌>을 읽고 북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아름다운 삶이란 이렇게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할거다. 그리고 동행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또 다시 새롭고 가치있는 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생각만해도 흥분된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한 권의 책을 일고, 그 곳에서 만난 누군가와 책에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받고 새로운 꿈을 찾고, 강한 긍정적 에너지를 갖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내 인생의 손님들, 그들을 환영한다.
조용한 시골풍경과 어우러진 책방의 모습을 상상하면, 최근에 오픈한 주변의 다양한 책방들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현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작가의 상상안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시골 부엌공간과 누군가를 위해 마련한 음식, 잔잔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개인적인 취향에안성맞춤인 부분과 더불어 기분좋은 상상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과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매력있다.
소양리에서 북스 키친을 운영하는 유진은 휴남동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와 닯았다(<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리뷰 참고). 그녀들은 한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했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방황하며, 이제껏 소중했던 인연에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겠다는 듯 익숙지 않은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그것도 책과 함께 하는,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책 한 권, 한 권을 직접 고르며 만든 그 곳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찾아온 사람들을 보듬어 위로하고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커다란 건물이 전면에 등장하는 책의 표지부터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성까지, 지난번 리뷰를 남긴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도 투덜거렸듯 요즘 출판계 유행이라고 해야 할 듯한 비슷비슷한 모양새가 책을 읽기 전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니 어느새 유진과 북스 키친 고객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소양리 북스 키친은 책을 팔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북 카페와 책을 읽을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북 스테이를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총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북 스테이 공간은 건물 3개 동으로 만들었는데 각각 2층짜리 독채 펜션이었다. 북 스테이용이 아닌 나머지 건물의 1층은 북 카페로 사용하고 2층은 스태프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구성했다. p.5
‘소양리 북스 키친’이라는 이름을 정하는 데도 2주가 넘게 걸렸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맞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맛있는 책 냄새가 폴폴 풍겨서 사람들이 모이고, 숨겨뒀던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위로하고 격려받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p.7
책 속 인물들이 위로를 얻듯 마음에 닿는 책과 함께 마음을 쉬어가는 ‘북스 키친’에서 나 역시 며칠간 풍경을 눈에 담고 책멍을 하며 쉼을 만나고 싶어졌다.
1장 - 할머니와 밤하늘
2장 - 안녕, 나의 20대
3장 - 최적 경로와 최단 경로
4장 - 한여름 밤의 꿈
5장 - 10월 둘째 주 금요일 오전 6시
6장 - 첫눈, 그리움 그리고 이야기
7장 ? 크리스마스니까요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예측 가능한 전개와 결말로 이우러져 긴장감이 덜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고민의 어느 부분과 닿아 있어 친근하기도 하다.
서른이 되는 자신의 모습이 예전 기대했던 그것과 달라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기대했던 이 나이의 내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투덜거리던 내 모습을 엿보기도 했고,
서른 살을 코앞에 둔 지금의 모습이, 자신이 스무 살 때 상상했던 서른 살의 모습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었다. 서른 살에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실크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세상의 어려운 일은 다 해결하는 슈퍼우먼의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현실은 4년 내내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는 막내 자리였다. p.27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내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고민하는 내게, 인생의 경로를, 속도와 방향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각자가 꽃피우는 방식은 다를 수 있고, 인생의 경로는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러요. 누가 지시한 경로도 아닌데.” p.54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아닐까.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p.54
그리고 속이 시끄러울 때면 책을 꺼내들어 그 속으로 도망을 가는 내 모습과 닮은 그들을 만나며 반가움에 미소짓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는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정신없이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들었어요. 탐정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이야기 같은 거로요. 소설 속 세계에 빠진 순간만큼은 진통제를 삼킨 것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책의 세계에 빠져 있다 보면 등장인물이 문득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인생에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생기지? 진짜 이 정도일 줄 몰랐지?’ 하고요.” p.89
책 속에서 유진이 추천하는 책들을 하나둘씩 적다 보니 이렇게 쌓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도 좋겠다 생각도 들었다(그 중 한 권인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최근 읽기도 했다).
메이브 빈치 <그 겨울의 일주일> / 최은영 <밝은 밤> / 고수리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 루시드 몽고메리 <빨강머리 앤> /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 김혼비 <다정소감> /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 윤가은 <호호호> / 최민석 <꽈배기의 맛> / 최민석 <꽈배기의 멋> /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에쿠니 가오리 <나비>
책의 말미에 적힌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 역시 그러했다고 그리고 아직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노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제는 남들의 거대한 항공기를 부러워하는 대신 프로펠러가 탈탈거리는 거친 소리를 내며 나는 내 작은 비행기도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어찌보면 소심하고 (자칫 뒤쳐져 보이기까지 하는) 중얼거림을 되뇌어 본다.
돌아보면 나의 삼십 대는 항공기 대기 라운지를 닮아 있었다. 인생의 경계 지대에 예상보다 오랜시간 머물러야 했다. 내가 예상했던 스케주로가 달리 계속해서 ‘지연’과 ‘연착’이 되었고, 때로는 ‘비행 취소’ 사인이 올라온 날도 있었다. 결혼, 이직, 업무, 육아라는 파도에 허덕이면서 마음이 끝없이 시끄러웠다. 남들이 로켓처럼 거대한 항공기를 타고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고, 때로는 우아하고 민첩하게 환승에도 성공해서 다른 세계로 사라지는 동안, 나만 계속해서 대기자 명단에 남이 있는 기분이었다. p.129
*기억에 남는 문장
각자 섬처럼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일상을 살아가지만, 바다 아래 깊은 어딘가에 서로의 감정이 비슷한 멜로디로 연결된 것 같았다. p.49
비오는 여름밤에는 마법 같은 힘이 깃들어 있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마음속 우물 깊은 곳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길어내고 싶어지는 시간이었다. 햇빛 찬란한 한여름의 낮에는 침묵을 지키던 어떤 감정이 비가 퍼붓는 밤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뭘 얘기해도 빗물에 씻겨 내려가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뭘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마음속 우물이 가득 채워져서였다. p.50
“적도 위쪽 세상에서는 북극성이 변치 않는 지표가 되잖아요.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기준처럼. 다들 그 기준을 따르는 게 장상적인 삶이라고 믿고 살죠. 그런데 적도 아래 세상에서는 정상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중략)..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꼭 하나는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p.53
금세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여행이니까 그냥 다른 사람처럼 굴어도 크게 상관없겠다 싶었다. p.86
사진에는 그날의 온도, 습도, 냄새, 들었던 노래, 기분, 생각들이 일시 정지된 채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진들은 쓸쓸해 보였다. 사진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존재처럼, 모든 상황이 변해버린 이후에도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스산하고 어두운 쓸쓸함은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든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애틋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뒤돌아보게 되는 종류의 쓸쓸함이었다. p.95
때로는 그리운 마음이 눈송이처럼 그 사람에게도 내려서, 그도 문득 유진을 떠올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지만, 그리운 마음속에서 언제나 만날 것이다. 그런 그리운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이야기의 물줄기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p.96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흔적에 기대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몰라.”
(중략)
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했다. 깊은 겨울의 시간을 걸어갈 때 언 발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함이,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지는 실패와 거절의 하루를 꾹 참고 지나 보낼 수 있는 인내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흔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사랑은 완전하니까. p.115
어떤 감정은 언어로 도저히 전해지지 않는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와 울먹이는 눈동자로 가까스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pp.117-118
처음 프롤로그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고 생각되고 재미있을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는데, 찾아오는 손님들의 사연이 하나 하나 소개되고 그걸 읽어 갈 수록 점점 빠져들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첫번째 스토리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저도 가족 중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읽는 내내 절절한 마음이었네요. 여러가지 사연이 모이고 치유되는 소양리 북스 키친의 이야기 너무 잘 읽었고, 그리고 책 안의 책, 작가님이 책 안에서 소개해주시는 책들을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다음 읽을 책 리스트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