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사투를 벌이고도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온 노인의 이야기>
고기잡이를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산티아고 노인은 운이 없게도 팔십사 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이런 노인에게 유일한 위안은 항상 그를 믿어주고 따라주는 소년뿐이다. 하지만 그 소년마저 부모님의 만류로 다른 고기잡이배로 옮겨 타고 노인은 혼자서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간다. 마침내 노인은 망망대해로 나온 지 삼 일 만에 처절한 사투를 벌여서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몹시 기진맥진해진다. 또 애써 잡은 청새치도 피를 흘리는 바람에 그 냄새를 맡고 쫓아온 상어 떼가 노인과 청새치를 공격해오고, 노인이 그간 들인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희망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청새치가 상어의 공격으로 머리와 뼈만 볼품없이 남았기 때문이다. 노인은 지쳐버린 채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고 침대에 엎드려 죽은 듯이 잠을 잔다. 사투를 벌이느라 상처 입은 노인의 손을 보고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노인은 사자 꿈을 꾼다.
<헤밍웨이 특유의 함축되고 절제된 하드보일드 문체가 돋보이는 수작>
헤밍웨이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로 여러 사건의 기사를 신속하게 작성하는 습관을 들였고 이때의 경험은 훗날 ‘헤밍웨이 문체’로 일컫는 하드보일드 문체(강건체)의 밑거름이 된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그의 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했듯이, 《노인과 바다》에는 그의 낚시 경험과 관련 지식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글로 쓰게 되면 작가 스스로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단어와 수식을 사용하여 설명하듯이 서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 투우, 낚시, 아프리카 여행 등 모험적이고 역동적인 경험을 많이 했던 헤밍웨이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단어만을 골라 적소에 배치하여 간결한 문장으로도 단순치 않은 내용을 표현할 수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는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아”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이 군더더기 없이 담담한 노인의 독백을 통해서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헤밍웨이의 문체를 두고, 작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정확한 단어가 배치되어 있다며 기량이 대단하다고 극찬했다.
헤밍웨이의 탁월한 단어 선택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헤밍웨이를 찾아와 “당신이 정말 대단한 소설가라면 대여섯 개 정도의 단어를 가지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을 팝니다.)” 이 일화를 통해서도 미사여구를 쓰지 않은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도 사람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는 헤밍웨이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인간미, 그리고 절망 끝에 찾아낸 희망>
노인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장소다. 이곳에서 온갖 생물들과 투쟁하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시험해보고 인생의 목적을 재확인한다. 한편 노인은 자신을 따르는 소년도 없이 홀로 배를 타고 가면서 줄곧 혼잣말을 하고 새와 고기에게 말을 거는 등 외로움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자신도 몹시 힘든 상황임에도 노인은 새와 고기를 가엾게 여기며 연민의 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연을 단지 맞서 싸울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노인은 바다 없이 살 수 없는 어부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가 겪는 고난 속에서도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한다. 비록 머리와 뼈만 남은 청새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투지를 불태웠기에 크게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이다.
헤밍웨이는 숱한 전쟁 속에서 폭력과 죽음을 경험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글쓰기’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나름대로의 고난과 실패를 겪으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노인과 바다》는 일견 고되어 보이는 삶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위로해준다. 실패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헤밍웨이가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