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투데이지원도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은 태평양 전쟁 패망 직후인 194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사양'은 지는 해를 말하는데,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몰락해 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해는 지면서 찬란한 석양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몰락한 귀족을 '사양족'이라고 지칭하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를 '사양관'으로 불렀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본명은 쓰시마 슈지 (津島 修治つしま しゅうじ)이다.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는 그의 고향인 쓰가루 사투리로 읽었을 때의 발음이라고 한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다. 제주도 사투리를 들으면 못 알아듣는 그런 느낌인 듯.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에 일본 귀족 집안이 몰락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다자이 오사무는 <사양>을 통해 어떤 인물상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모든 것들이 '지는 해'로 보이는 4명의 우울한 삶을 통해 당시의 일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10년 전, 남편의 죽음으로 가세는 점점 기울어지게 되고, 건강도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뼛속까지 귀족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희망을 잃어버린 엄마와 이혼 후에 엄마를 돌봐야 하는 딸 가즈코와 태평양 전쟁에 징집된 후 소식이 끊겨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들 나오지는 아편중독자가 되어 방탕한 생활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나오지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공포와 전쟁터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신체적 부상만이 아닌 심리적, 정신적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극복이라는 방법보다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아편중독과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일지도.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애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결핵 진단을 받고 사망한 엄마의 죽음에 계속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무조건 도쿄로 우에하라를 찾아가게 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삶을 선택한 가즈코와 죽음을 선택한 나오지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하다가 천황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들이 선택했어야 할 상황은 아니었을까 싶다. 패전 후에 일본인들이 느꼈을 당시의 상황을 대신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죽음으로 삶의 터전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가즈코와 나오지가 선택하고 보여주는 행동들은 삶의 조건이 완전히 변한 상황에서 어떤 삶의 모습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어둡고 파멸적인 <인간실격>의 세계관이 아니라, 죽음이 아닌 살기를 선택한 가즈코의 선택처럼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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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를 제대로 만났다. 달려라 메로스의 밝은 다자이 오사무밖에 몰랐었는데 사양은 깊은 우울감과 절망이 느껴졌다. 인간 본성 바닥은 어디쯤일까? 떨어져도 떨어져도 닫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들에 손을 들고 항복하며 자신을 버린다.
일본의 몰락 귀족 가문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 가즈꼬는 집안의 장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남동생 나오미는 막대한 마약 빛을 남기고 군대에 가버렸다. 어머니와 둘이 살던 중 어머니의 남동생, 외삼촌이 더 경제적으로 어려워 더 이상은 집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여 니시카타초에서 산골 동네 이즈로 이사를 한다.
남동생 나오지는 언젠가부터 불량해 보이는 우에하라 씨와 그 무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약에 빠져든다. 돈이 없어 약국에 외상을 지면 누나인 가즈꼬에게 보내달라 부탁을 하기도 하였다. 보내달라는 돈의 규모가 점점 커지던 어느 날 가즈꼬는 우에하라 씨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비밀이 생기게 된다.
죽자고 마셔대는 거야. 살아 있다는 게 서글퍼 견딜 수가 없어. 외로움, 쓸쓸함, 그런 배부른 감정이 아니라 그저 슬퍼. 칙칙해. 나를 둘러싼 사방의 벽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오는데 나만의 행복 따위가 있을 리 없잖아.
사양 P167
이 책의 분위기를, 패전 후 일본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세계 경제대국 2위까지 올라갔던 일본의 패망은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에 느껴지는 허탈감, 박탈감 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섞인 무력감이 일본 전체를 누르고 있던 시기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술과 마약 등에 빠져 한탄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행복>은 인간이 살아가며 끊임없이 원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 가족의 행복, 타인의 행복. 그것들이 좌절되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까?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비참함일 것이다. <비참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 재수 없지?>라는 우에하라의 말에 가즈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해요.>라 한다. 가즈꼬가 원하는 행복은 사랑이었을까? 원하는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고 불안한 것인데도 그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우에하라의 모습이 당시의 일본을 말한다면 가즈꼬를 통해서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나는 내 혁명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시절 지쳐 쓰러져 절망감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다자이 오사무가 보내는 응원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뒤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감도 일었다. 당시 책의 표지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예출판사에서 선택한 표지와 사양이라는 제목과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너무 잘 매치되어 더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사양은 초판본이 만여 부나 판매될 정도로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있을 당시 그의 최고 인기작이라 하니 그를 좋아하고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사양』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세 번째로 만나는 <사양>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인간실격'보다 앞선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인간실격'으로 처음 만나고 저랑 너무 안 맞는 분위기라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 읽는 날이 올까 했는데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달려라 메로스'와 <사양>을 읽게 되네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해가는 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양'은 저녁때의 저무는 해를 뜻하고 있습니다. 몰락하는 귀족과 저무는 해, 분위기가 너무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양>으로 인해 '사양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되네요.
부족한 것 없는 귀족의 삶을 살았던 주인공 가즈코는 남편과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와 아이마저 유산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생 나오지는 전쟁에 징집되어 갔지만 그 후 소식이 없었지요. 점점 가세는 기울었고 더 이상 도쿄의 집을 유지할 수 없어 외삼촌의 도움으로 시골마을 리즈의 산장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익숙하지 않은 살림을 살아가는 가즈코는 살림을 팔아 마련했던 돈이 떨어질 때쯤 가정교사 자리를 추천하는 어머니지만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려니 내키지 않았겠죠? 옷가지를 팔아 생활하자는 가즈코의 모습은 좀 철이 없어 보였습니다.
외삼촌을 통해 연락이 끊겼던 나오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미 마약에 손을 댔던 동생인데 아편을 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요. 가즈코는 나오지의 수기를 발견하고 한 번의 입맞춤으로 끝났던 우에하라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세 통의 편지 속에 구애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냈지만 결국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오지가 돌아온 후 살림은 더욱 힘들어졌고 그런 와중에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조용히 장례를 치른 가즈코는 편지의 주인공 우에하라를 찾아 무작정 떠나고 그의 아이를 가지길 소망합니다. 가즈코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이미 그 역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모습이었고 죽고 싶어 술을 마신다는 우에하라입니다. 왜 하필 이 남자였을까, 삶에 미련도 없고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아내와 딸을 사흘 동안 어둠 속에서 지내게 하는 무책임한 남자에게서 무엇을 느꼈던 걸까요.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긴 했지만 뜻을 이룬 그날, 동생 나오지는 세상에 뜻이 없다며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우울을 한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가즈코에게 남긴 나오지의 유서를 읽으며 어떻게 해도, 어떤 이유든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뜻하는 바를 이루는구나 하는 씁쓸함도 생겼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건 '혁명'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가즈코의 행보입니다. 하룻밤 잠자리였지만 그녀는 원하던 바를 이루었고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