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저
천선란 저
안데르스 한센 저/김아영 역
조원재 저
타일러 라쉬 저/이영란 감수
서민아 저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교수 스테파노 만쿠스의 최근 저서는 <매혹하는 식물의 뇌>,
<식물혁명>, <식물에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들>이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식물에게 동물의 기관인 뇌(腦)가 있다? 책 제목이 독자들을 매혹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처럼 보였다. 그러나 <매혹하는 식물의 뇌>을 읽고 나면 식물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물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책이다. 책 내용도 부담스럽지 않고 학문적으로 어려운 내용도 거의 없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싶으신 분은 처음으로 접해도 좋을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식물을 참 좋아하고 많이 길러도 봤기 때문에 이 책이 친근하게 느껴졌고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읽게 되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식물에 대한 지식과 뛰어난 식물의 지능에 대한 놀라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엄청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재미가 있어서 읽는내내 시간가는줄 몰랐던 것 같다. 대여로 사놓은 상태인데, 이거 그냥 새로 한권을 살까도 생각중에 있다. 두고 두고 읽으면서 가까이 하고 싶은 좋은 책인것 같다
세상에 대해 관심이 있어 철학, 심리학을 탐독했고 동물과 우주, 분자, 원자에 대한 책도 읽었다. 그러나 지구 생물의 99%를 넘는 식물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상대적으로 식물에 대한 책은 적고 접할 기회도 적었는데, 이번에 <매혹하는 식물의 뇌>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식물에 대해 많이 놀랏다.
저자는 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역사적 사실과 이론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 옥의 티라면 제목 '매혹하는'은 '매혹적인'으로 바꾸는 것이 좀 더 한국어적인 표현같다. 일독을 권한다.
본문 중.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통틀어 아브라함 종교라고 부르는데, 이 세 가지 종교들은 모두 은연중에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나 기타 살아 있는 피조물을 묘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 예술에서는 식물과 꽃을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꽃문양은 이슬람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이는 이슬람교가 은연중에 ‘식물은 생물이 아니라는’ 믿음을 지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식물을 생물로 인정한다면 식물이 예술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묘사를 금하는 관행은 하디스(hadith)에서 유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에서, “영혼의 보유 여부를 판가름하는 특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을 일단 무생물로 간주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식물은 번식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무생물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궁리 긑에 생각해낸 개념이, 식물에게만 적용되는 저급영혼, 즉 식물영혼이었다.
칼 폰 린네는 식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처음부터 엽기적이었다. 첫째로, 그는 식물의 생식기관을 찾아내어 그것을 분류의 주요기준으로 삼았다. 둘째로, 그는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식물도 잠을 잔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특유의 신중한 성격 탓에 ‘육식식물’이 존재한다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그저 약간의 ‘식충식물’이 존재한다고만 밝혔다. 벌레잡이통풀 속의 대형식물들이 쥐나 그 밖의 소형 포유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윈의 조심성을 탓할 필요는 없다. 갈릴레오를 비롯하여 수백 년 전의 과학자들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 처세술이었다. 혁명적 아이디어가 보수적인 과학계에 스며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의 식물은 수천 개의 근단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근단에는 독자적인 컴퓨팅센터가 존재한다.
고착생활을 택한 식물은 살기 위해 땅, 공기, 태양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어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이에 반해 동물은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야 했으므로 달리기, 날기, 수영 등과 같은 다양한 운동능력을 발달시켰다. 이런 점에서 식물을 독립영양생물, 동물을 종속영양생물이라고 부른다.
모듈화된 조직의 첫 번째 이점은 몸의 일부분을 초식동물에게 뜯어 먹혀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생리학은 동물과 다른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동물은 거의 모든 필수기능을 뇌, 폐, 위장 등의 장기에 집중시키도록 진화했지만,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기 쉬운 점을 고려해서 집중화전략을 지양했다. 그건 도둑을 피하기 위해 돈을 여러 곳에 보관하거나 투자위험을 경감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덩굴의 이점을 생각해보기 위해 당신이 적도의 숲 한가운데 갓 태어난 식물이라고 가정해보자. 키 작은 당신의 최우선 과제는 ‘그늘을 벗어나는 것’이다. 만약 직립식물들처럼 줄기를 곧추세워 빛이 닿는 곳까지 올라가려면 대충 따져봐도 일 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당신은 눈앞이 노래질 것이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주변의 덩굴식물들에게 한 수 배우는 것이다. 덩굴 식물은 게으름뱅이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존에 우뚝 솟은 식물의 줄기에 달라붙어, 귀중한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이 같은 덩굴식물의 전략은 ‘일부 약삭빠른 인간들’의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물에게 메시지를 맡겨 배달하게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수 세기 동안 비둘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해왔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민감한 메시지를 유리병이나 종이비행기를 이용해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식물은 어떻게 곤충과 동물을 설득하여 우편배달부로 써먹는 것일까
식물의 자기수분은 동물의 근친생식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근친생식은 새로운 유전자조합이 탄생하는 기회를 줄이므로, 식물은 자가수분을 억제하기 위해 일련의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예를 들면, 같은 개체 안에서도 암술과 수술의 성숙시기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꽃가루 매개자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특정 식물의 번식, 생존, 전파를 심지어 다른 식물에 폐를 끼쳐가면서까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물의 입장에서는 웬만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간과 친분 관계를 맺어놓으면 결국에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나온다. 식물이 꽃, 열매, 향기, 향미, 색깔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간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에게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아양을 떠는 속셈은 뻔하다.
근단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매우 작은 식물조차 무려 1,500만 개 이상의 근단을 갖고 있다. 각각의 근단에는 시시각각으로 중력, 기온, 습도, 전기장, 빛, 압력, 화학적 기울기, 독성물질의 존재, 소리와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등과 같은 다양한 정보가 입력된다. 근단에 입력되는 정보의 목록은 엄청나게 길지만,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다. 근단은 이러한 정보들을 분석하여, 식물의 각 부분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식물 전체의 입장에서 뿌리를 뻗는 방향을 최종 결정한다.
식물의 경우에는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세포 안에 존재한다. AI 분야의 과학자들은 몸통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를 체화된 행위자라고 부르는데, 식물이야말로 체화된 행위자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근단을 자르면 뿌리의 민감성이 저하되어 중력이나 흙의 밀도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다윈은 뿌리의 생리학을 창시함과 동시에, 1세기 후에 제기되는 뿌리-뇌 가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지능을 문제해결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지능적 행동과 자동반응을 구분하는 문턱값threshold 따위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내 의견에 반대하며 어떤 동물은 지능이 있고 어떤 동물은 지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과정에서 지능이 나타난 시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의 바이오매스 99.7% 정도, 정확히 말하면 99.5-99.9%는 식물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0.3%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라고 한다. 지구는 온통 식물로 뒤덮여 있으니, 지구의 생태계가 식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은 누가봐도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