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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내 고양이가 떠난다면, 새로운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2023년 12월 14일
2019년 01월 17일
그때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친다기보다 만지는 소리였다. 무심결에 발걸음을 멈추고 스산함에 잠긴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달빛이 가늘고 긴 피아노 건반을 넌지시 비추고 있었다. 명아주 수풀 속 그 피아노를.ㅡ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도 없었다. 딱 한 음이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분명했다. 나는 조금 으스스 해져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때 내 뒤에 잇던 피아노가 분명히 또 희미한 소리를 냈다. 난 물론 뒤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걸어갔다, 습기를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걸 느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피아노」중에서, 38쪽)
좋은 산문, 좋은 수필은 어떨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은 아닐까. 평범한 일상 가운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명징하면서도 이상한 기류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일기처럼 보이지만 일기는 아닌 글, 한 발 떨어져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힘. 26명의 작가가 쓴 41편의 산문을 수록한 『슬픈 인간』을 읽으면서 산문이란 이렇게 아름답고 강렬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 미야자와 겐지, 다자이 오사무를 제외하면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작가들의 글이었다. 어떤 산문을 읽게 될지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할까.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 『긴 봄날의 소품』에서 만난 산문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담백한 유머라고 말하고 싶다.
26명의 작가의 산문은 각각 많게는 세 편, 적게는 한 편을 읽을 수 있는데 작가의 이력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산문의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나 생활고, 우울증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글을 통해 그 시대를 상상하고 작가의 불안을 읽는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인지 짐작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조금이나마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산문은 그 안에 담긴 고통을 상쇄시킬 정도로 아름다웠고 작가의 심리를 고스란히 묘사한 글은 걱정을 불러왔다.
나는 길을 걸으며 내 발소리가 고요하고 차분하다고 느낀다. 전찻길을 가로질러 폭 일 미터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양쪽 높은 건물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아름답다. 정말 이렇게 예쁘고 파란 하늘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의 굶어 죽을 지경으로 불판 폐허를 비틀비틀 걸아 다녔을 때, 그때도 저 높은 하늘에서 살짝 새나온 이상하리만치 맑고 깨끗한 빛이 있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어떤 힘이 내게 그 사실을 격렬하게 상기시켰다. 나는 나의 발소리를 나의 숨소리마냥 하나둘 세고 있다. (하라 다미키 「불의 아이」중에서, 318쪽)
분명 보통의 일상인데 감탄을 자아내는 산문이 많았다. 그것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일까. 아니면 쓰고 또 쓰면 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과 같은 짧은 글은 온천이 아니더라도 욕조에서의 기분을 써 보거나 마사무네 하쿠초의「꽃보다 경단」처럼 꽃 피는 풍경이나 추억을 묘사해도 좋을 듯하다. 26명의 작가의 글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쁨, 치열한 아름다움과 함께 슬픈 인간의 초상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물이다, 그래, 흡사 수정을 녹인 듯 아름답다, 나의 몸을 담그기에 어쩐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탕으로 들어간다, 졸졸 물이 넘쳤다, 아까운 짓을 했구나, 탕 안에 찰랑찰랑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기분 좋다, 햇살이 불투명 유리 너머로 쏟아져 물 밑까지 비추었다. 물은 다시 잠잠해져 나의 몸을 감쌌다. 정말로 밝다, 밖에서 참새가 짹짹 울었다. 무심코 밝은 창문 쪽을 바라본다, 뜰에서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불투명 유리에 검은 그림을 그렸다. 바슬바슬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뭇잎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괜스레 쓸쓸했다. 야릇하게 몸이 나른해졌다. 물에서 하얀 수증기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손으로 앞으로 쭉 뻗다 문득 손톱을 봤다, 많이 길었네, 잘라야겠어. 정말이지 고요하다, 나의 몸도 영혼도 수증기와 함께 천상으로 피어오를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전문,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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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정말 너무 슬프다
이렇게 슬픈 인간들만 모아놓다니
슬픈 인간은 정말 슬픈 인간이었다
전쟁 겪고 싶지 않다
전쟁 무섭고 전쟁 겪지 않았어도 나는 슬픈 인간인데
전쟁 겪고 나면 책에 나오는 슬픈 인간들처럼 나는 더 슬픈 인간 되버려
상상만으로도 슬픈 인간이다
아름답고 슬픈 인간들 많이 나온다
아름답고 슬프고 좋은 책이다
그와중에 귀여움을 잃지 않는 인간들이 좋았고
다카무라 고타로
하야시 후미코 (하트)
하기와라 사쿠타로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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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코는 작가 소개마저도 마음을 뒤흔든다
소설가. 가난한 여성이 홀로 세상과 맞서 싸운 자전적 삶의 기록을 간결한 일기체로 써내려간 장편소설 방랑기로 남녀노소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당대 인기를 반증하듯 서른다섯에 하야시 후미코 선집 전7권이 간행되는 등 국민적인 작가로 사랑 받았지만, 패전 후에는 다소 외롭게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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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읽어 준,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에 반해서 덩달아 읽게 되었다.
내가 읽었을 때보다 애인의 목소리로 들었을 때 글의 분위기와 느낌이 훨씬 좋았다.
정말 대단한 애인이다... 애인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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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기일에는 아내가 어김없이 연어 한 토막과 가쓰오부시 뿌린 밥 한 공기를 무더 앞에 올린다. 지금도 잊지 않고 챙겨준다. 다만 요즘엔 뜰까지 가져가지 않고 거실 찬장 위에 올려두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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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민 그 애가 예의 부르튼 손을 쭉 뻗어 힘차게 좌우로 흔드는데, 맘이 뜰뜬 만큼 따스운 햇살에 물든 귤 대여섯 개가 배웅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이리저리 흩어져 내렸다. 나는 엉겁결에 숨이 멎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이해됐다. 이 아이는, 아마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이 아이는, 품속에 넣어온 몇 개의 귤을 창 밖으로 던져 애써 건널목까지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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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이야기 중 일부만 옮겼다.
좋은 문장이 많다.
<도련님의 시대>를 읽은 덕분에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작가의 작품을 선뜻 찾아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망설임이...있었다. 그가 너무도 유약한 인물로 그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매이지 시대를 이해하고, 그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 본다 해도...그가 가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말 가난할 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쿠보쿠의 책을 만나게 될까 싶어 고민이 되는 순간, <슬픈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오래전 제목을 보긴 했더랬다. 다만 일본 작가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도 아닌, 에세이에서 공감할 지점이 있을까..의문이 들었던 것인데, 다쿠보쿠의 에세이가 보였다. '모래 한 줌' ...제목에서 이미 슬픔이..뚝뚝 묻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삶을 미리 만나본 덕분이다.
"결국은 늘 그렇듯 습관처럼내 성격을 저주하다가,이도저도 다 질려서 힘도 기운도 죄 빠진채 아무렇게나 픽 드러눕곤 한다."/184쪽
"<도련님의 시대> 다쿠보쿠 편에는 특별히 예술가로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 까닭은, 그가 빚을 지고 난 이후의 행동이 늘 같았는데..납득하기 쉽지 않은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만의 고민이 있었을 텐데..'모래 한 줌' 을 통해 작가의 고백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어쩔수 없는 습관.... '도련님의 시대'를 읽으면서 그가 빚을 내고 난 후의 행동이 모순적이다 싶으면서도..그렇게 된 이유에 무기력병같은 것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그런데 안전을 갈망했던 작가는 안전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난에서 허우적 거릴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지...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에 드리워진 불안을 그는 이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냥 안전을 갈망하기만 했을 뿐...빚을 얻어 돈이 들어오는 그 잠깐의 순간이..그에게는 안전한 공간이었던 모양이다..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을 만큼... 안전한 삶이었다면 그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그는 재능을 피우지 못했다. "내게는 재능이 있다. 슬프게도 재능만큼은 있다.그러나 진정한 작품은 재능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시대의 조류는 휘몰아치며 흘러간다" <도련님의 시대>과 <모래 한 줌>을 나란히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이 보는 시선과,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 보는 모습은 달랐다. 도련님의 시대..에서 그려낸 다쿠보쿠..를 보면서 연민의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은데..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모습은, 그러고 보니 다쿠보쿠..에 매력을 도련님의 시대에서 왜 그렇게 언급했는지 알 것 같다..그는 사람들에게 빚을 받아내게 하는 능력이 있다(물론 비판의 시선은 아니었다) 고 했는데....자신은 동정 받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슬픈 인간의 모습을 거짓 없이 그려낼 수 있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미발표 원고가 이제서 세상에 빚을 보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