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맨슨 저/한재호 역
배윤민정 저
무옌거 저/최인애 역
[책이 뭐길래] 마음 상황에 따라 문학, 비문학을 골라요 – 손미혜 편
2019년 11월 21일
심리학 세계에서도 그 중심은 남성이며, 남성만을 인간으로 가정해왔다고 길리건은 지적한다. 이 책에는 기존의 주류 심리학이 놓쳤던 여성의 심리, 여아의 발달을 연구하면서 그가 발견한 통찰이 담겨있다.
여성은 왠지 모자란 인간 취급이다(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비롯된 것들). 심지어는 남여의 뇌구조가 다르다는 지금은 아주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됐지만, 한때는 진짜 그런양하여, 남자아이에게는 씩씩하고 모험심이 강한 아이가 돼 주길, 그리고 여자아이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예쁜 드레스에 조신하게, 씩씩하게 놀면, 너 커서 이쁨 못받는다. 왜 그리 드세냐...이미 우리 안에 젠더역할이 구분됐다. 그 이미지는 남성은 씩씩, 외향, 여성은 얌전, 내향으로 왜 그런가?, 거야 세상의 주인이 남자이니, 남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성상을 만들어 그 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고상한 여인인 것이지...(잰더모자이크, 다프나 조엘, 루바 비칸스키 저, 한빛비즈, 2021)
이런 흐름으로 이 책은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가부장제와 젠더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왜 여성의 목소리인가?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고유한 목소리를 막는다. 감정과 이성, 몸과 정신, 관계와 자아를 분리하여 각각의 성별에 맞는 것을 지향하도록 인류를 억압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가부장제하에서 관계를 부정하고 독립을 강요당하면서 상처를 입는다.
가부장제, 이는 로마인이야기에서도 등장한다. 이른바 패트롤(순회, 순찰)에서 비롯되어, 패터날리즘으로 이른바 농장의 노예들의 청을 들어주고 조회를 하는 등의 장면이 소개되는데, 이를 확장하여, 의료인의 인술도 그러하다는 논리다. 환자의 알권리, 자기 생명에 대한 결정권 등이 의사에 의해 통제된다?, 가부장제는 남성이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 아내와 자녀의 미래까지... 사회 역시, 시민은 자유민이 아닌 권리가 제한된 그저 관리의 대상일 뿐이고, 대의민주주의라 할지라도 국민은 수동적인 투표하는 자일뿐이다.
이런 사회질서에 대해서 보자. 지은이는 길리건은 20년 이상 여아들의 발달을 연구하며 그들이 가부장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소녀들의 목소리에는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는 우리 안에 묻혀 있던 다른 목소리를 일깨우고 공명하여 가부장제를 비롯한 모든 잘못된 권위에 저항하고 성별을 넘어 연대할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은 젠더 전쟁이라 할 만큼 분열된 한국 사회에 인류애를 회복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갈 대안을 제시한다.
페미니즘의 적은 남성이 아니라 가부장제 문화다. 그런데 가끔 별난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를 합리화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가부장제와 남성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는 남성과 여성의 합작품이지,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남성의 발명품이 아니다. 물론 특정한 알파 남성을 가부장제의 앞잡이로 몰아세울 순 있다. 가령 할렘을 거느린 남성 독재자 말이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가부장제의 공범들이라는 말은 지나치다. 솔직히 젠더를 떠나 모든 역사적 인간들이 가부장제의 공범들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라보는 강력한 렌즈라고 믿는다. 눈이 나빠 정물이 흐려지면 안경이 필요하듯이,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페미니즘이란 렌즈가 필요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알약을 먹고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세계상의 실체를 파악하듯, 페미니스트는 '여권 신장'의 정치적 차원과 '여성학과 젠더 연구'라는 학술적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뒤틀린 세계상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페미니스트는 사회를 보다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휴머니스트다. 물론 '페미니스트'라면 일단 '관종이 아닐까'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장삼이사들도 있지만, 또한 '페미니즘의 종말'을 노래하는 불손한 마초들도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는 결국 '인간 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릴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언어와 어법을 적극적으로 계발하는 데는 지식인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발달심리학을 전공한 캐럴 길리건도 페미니스트의 언어를 비옥하게 해준 학자다. 그미의 문제의식은 자아의 상징인 '목소리'다. 그래서 자신을 '귀를 기울이는 여자'에다 비유한다.
"누가 말하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가? 관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어떤 사회적·문화적 틀 안에서 이야기하는가?"(22쪽)
가부장제 문화는 어떤 사고와 인지 그리고 행동을 조장하는가. 다시 말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남녀는 어떤 민족지적 습관을 형성하게 되는가. 간단히 말해서, 가부장제 문화는 이성, 원칙, 독립을 강조하는 남성적 기질을 중시하고, 반면에 감성, 몸, 관계 등 여성적 기질은 경시한다. 발달심리학 이론 역시 이런 마초적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길리건은 발달심리학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에릭 에릭슨과 로런스 콜버그의 후학이자 동료였다. 콜버그의 이론이 보다 남성적인 기질의 '정의의 윤리'를 강조한다면, 길리건은 보다 여성적인 기질의 '보살핌의 윤리'를 강조한다. 물론 남녀의 건전한 발달과정에는 정의와 보살핌 둘 다 필요하다.
"가부장제의 통과의례는 젠더에 따라 다르게 이뤄진다. 그것은 수치심을 주거나 배제함으로써 강화된다. 목소리와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은 가부장제에 편입되었다는 숨길 수 없는 단서이다."(55쪽)
가부장제는 남성(소년)에게 이롭고 여성(소녀)에게 해로운 일방적인 차별기제가 아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젠더 경계를 이탈하면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가령 소년은 학습과 언어장애, 주의력 결핍 또는 소통 불능이나 통제 불능의 행동 등을 보일 수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 침묵을 깨트린다는 것, 또는 침묵을 지킨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목소리에 대한 풍부한 성찰과 사례를 담은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통해서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자라던 어린 시절 '침묵은 금'이라고 배웠다. 이제 권위주의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 시대, 다양성과 복잡성이 어우러진 시대로 접어들며 '침묵은 죽음'과 동일한 의미가 됐다. 일찍이 페미니즘 이론에서 보살핌의 윤리가 지닌 보편적 가치를 주장한 저자의 <담대한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서평단에 신청한 책이다.
저자는 1980년대 초 출간한 <다른 목소리로>에서 여성의 도덕발달과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그간의 도덕발달 이론이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여성의 도덕발달을 열등하게 취급해왔기 때문이다. 젠더에 기반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여성의 역할은 보살핌 기능에 맞춰지며 보살핌은 '착한 여자'가 수행하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관계에 대한 민감성과 공감력을 발달시켰다. 바로 이러한 여성의 돌봄 능력이 '정의'를 핵심으로 삼은, 프로이트학파를 계승한 에릭 에릭슨과 피아제학파를 계승한 콜버그의 도덕발달 이론에서 여성의 선을 열등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평가하게 했다. 이러한 모순에 주목한 저자는 정의의 윤리를 기준으로 하는 남성중심적 관점뿐 아니라 '보살핌의 윤리' 또한 보편적 인간의 윤리로서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역설했다.
가부장제 통과의례는 젠더에 따라 다르게 이뤄진다. 그것은 수치심을 주거나 배제함으로써 강화된다. 목소리와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은 가부장제에 편입되었다는 숨길 수 없는 단서이다. 이와 같이 가부장적 질서에 편입한 아이들의 상실감과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55p)
<담대한 목소리>는 이후 저자가 소녀들의 심리발달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바탕으로 씌어진 책이다. 성장과정에서 소녀들과 소년들은 가부장제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방어기제의 일종인 해리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소녀들보다 통과의례를 이른 시기에 겪는 소년들은 5~7세 무렵 젠더 경계를 넘는 행동을 하는 순간 '계집애, 마마보이' 같은 말로 놀림을 받는다. 이 시기에 놀림을 받은 소년들은 학습과 언어장애, 주의력 결핍이나 소통불능, 통제불능의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에 소녀들은 생식적으로 성숙해지는 청소년기까지 소년들보다 좀 더 많은 것에 허용된다. 소년들보다 뒤늦게 가부장제의 통과의례를 겪는 덕분에 소녀들은 좀 더 쉽게 인간 경험의 다양한 양상들에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청소년기에 소녀들이 받는 압박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거나 아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것, 즉 관계를 유지하거나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솔직한 목소리를 포기하라는 압박이다. 성인이 되면서 소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외부의 압력을 깨닫고 저항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인격의 일부를 자신에게서 분리시키는 '해리'에 대한 저항이자 거짓 권위를 내세우는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다. 이러한 소녀들의 심리적 저항은 정치적 저항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내적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목소리와 관계에 기반을 둔 보살핌의 윤리"는 "불의와 자기침묵에 저항하는 윤리"로서 "민주주의의 실천과 국제사회의 기능을 위해 필수적인 인간의 윤리이기도" 하며 "이는 페미니스트의 윤리로서 민주주의를 가부장제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역사적 투쟁을 이끌어온 윤리"라고 역설한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소녀들의 정직한 목소리에 공명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소녀들과 함께 할 때 가부장제의 프레임을 깨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작년 초 시작된 '미투운동'이 전국의 학교로 파급되며 '스쿨미투'를 통해 들려온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목소리는 담대한 희망의 목소리이자 성 평등한 민주주의로 가는 목소리임을 이제야 알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