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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저/김승욱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5일 한줄평 총점 8.8 (768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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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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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집 (1994)에 실린 11편의 단편을 묶었다. 남은 9편은 <사랑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레싱의 초기 단편으로, 가부장제와 이성중심 등 전통적 사회질서와 사상 등에 담긴 편견과 위선 그리고 그 편견과 사상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레싱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 것처럼 이 단편들은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일상과 욕망, 때로는 저항을 가감 없이 묘사하여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레싱의 작품들은 전통과 권위에 억압받아 개인의 자유를 잃어버린 여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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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영국 대 영국
두 도공
남자와 남자 사이
목격자
20년
19호실로 가다
작품 해설: 도리스 레싱의 1960년대 단편소설(민경숙)
도리스 레싱 연보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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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저 : 도리스 레싱 (Doris May Lessing)
작가 한마디 우리를 만들고 지키며 창조하는 것은 상상력이기 때문에 작가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꿈과 신화를 만드는 작가는 최고의 상상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불사조 같은 존재다. 작가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제도·관습·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이다. 본명은 도리스 메이 테일러(Doris May Tayler)이다. 1919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영국인 이민자 부모의 장녀로 태어났다. 1925년에 가족이 영국령 남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해 농장을 운영하면서 식민지의 흑백 분리와 인종주의를 목격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가족이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으나, 레싱은 로마 가톨릭의 여학교를 다녔다. 쏠즈베... 작가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제도·관습·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이다.

본명은 도리스 메이 테일러(Doris May Tayler)이다. 1919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영국인 이민자 부모의 장녀로 태어났다. 1925년에 가족이 영국령 남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해 농장을 운영하면서 식민지의 흑백 분리와 인종주의를 목격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가족이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으나, 레싱은 로마 가톨릭의 여학교를 다녔다. 쏠즈베리 여학교에서 수학했으나 열네살에 학교를 떠나 독학했고, 열다섯살에 집을 떠나 베이비시터,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 등으로 일했다. 이런 어렵고 고된 유년기에도 불구하고, 레싱의 작품에서 그려진 영국령 아프리카의 삶은 식민지 영국인의 메마른 삶과 원주민의 어려운 삶에 대한 연민으로 채워져 있다. 열네 살 이후부터 어떤 제도 교육도 거부한 독특한 이력은 기성의 가치 체계 비판이라는 그녀의 작가 정신과 태도의 일관성을 잘 보여준다.

영국인으로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로디지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특히 인종차별 문제, 여성의 권리 회복 문제, 이념 간의 갈등 문제 등에 깊이 천착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정치 의식과 사회비판 의식은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어리석음, 반가치 등의 집단 폭력으로부터 인간 개인의 개성적인 삶과 사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두번의 이혼을 겪고 1949년 런던으로 이주해 정착한 뒤 1950년 첫 장편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했다. 그후 ‘폭력의 아이들’ 5부작(1952~69) 『금색 공책』(1962) 『생존자의 회고록』(1974) ‘아르고스의 카노푸스’ 5부작(1979~83) 등 굵직한 장편소설뿐 아니라 『사랑하는 습관』(1957) 『한 남자와 두 여자』(1963) 『런던 스케치』(1992) 등의 단편집, 희곡, 시집, 에세이, 자서전 등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1952년 영국 공산당에 입당해 반핵 시위에 앞장섰고,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비판하며 탈당한 뒤로도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반인종주의운동을 이어갔다.

그녀는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11번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당시 88세로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의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써머싯몸상(1954), 메디치상(1976), 유럽 문학상(1981), 셰익스피어상(1982), W.H.스미스 문학상(1986), 제임스테이트블랙 기념상(1995), 데이비드코언 문학상(2001) 등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는 두 차례 결혼하고 두 차례 이혼했으며,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찰스 위즈덤(Chales Wisdom)과의 첫 결혼 생활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졌다. 후에 동독의 우간다 대사를 지내기도 한 고트프리트 레싱(Gottfried Lessing)과의 결혼 생활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이어졌다. 1999년 영국 정부로부터 CH훈장을 받았으나 DBE 작위는 고사하였다. 2013년 11월 17일 향년 94세, 노환으로 별세했다.

인종주의, 반전(反戰), 성(性) 대결, 결혼제도와 모성 신화, 계급사회,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등 20세기 사회, 정치, 문화의 광범위하고 첨예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가장 잘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역 : 김승욱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모스트 원티드 맨』 『살인자들의 섬』 『나보코프 문학 강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스토너』 『분노의 포도』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신은 위대하지 않다』 『푸줏간 소년』 『대담한 작전』 『노년에 대하여』 『사형집행인의 딸』 『우아한 연인』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19호실로 가다』 『사랑하는 습관』 『듄』 『제1구역』 『샤프롱』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모스트 원티드 맨』 『살인자들의 섬』 『나보코프 문학 강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스토너』 『분노의 포도』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신은 위대하지 않다』 『푸줏간 소년』 『대담한 작전』 『노년에 대하여』 『사형집행인의 딸』 『우아한 연인』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19호실로 가다』 『사랑하는 습관』 『듄』 『제1구역』 『샤프롱』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저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억압된 여성의 일상을 잔인하고도 다정히 그려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들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을 담은 《19호실로 가다》가 출간되었다. 《19호실로 가다》는 1994년 다시금 출판된 ‘To Room Nineteen: Collected Stories Volume One’을 번역한 것으로, 작품 20편 가운데 11편을 묶어 출간한 것이며, 남은 9편은 《사랑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특히 《19호실로 가다》에 담긴 단편소설 가운데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방〉 〈영국 대 영국〉 〈두 도공〉 〈남자와 남자 사이〉 〈목격자〉 〈20년〉은 국내에서는 최초 번역되는 것으로, 기묘하고도 현실비판적인 레싱만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현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19호실로 가다〉와 〈옥상 위의 여자〉도 포함되어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레싱의 면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19호실로 가다》에 담긴 이 소설들은 대부분 레싱의 초기 단편소설로,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체제가 붕괴된 1960년대 전후 유럽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일상과 욕망, 때로는 저항을 레싱만의 창의적 방식으로 담담히 그려냈다.

여전히 ‘19호실’을 갖지 못한 여성들
“원하신다면 제 삶을 가져가세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당신처럼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305쪽, 〈19호실로 가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결혼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모두 포기한 전업주부 수전이 숨 쉴 틈을 찾기 위해 ‘19호실’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가꾸던 수전이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된 결정적 원인은 결혼과 가정생활이다. 수전은 가족에게서 벗어나 혼자이고 싶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 수전은 온전히 혼자일 수 없다. 결국 수전은 런던의 후미진 호텔로 향하고, 호텔의 ‘19호실’에서야 그 어떤 역할과 의미도 강요받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강조했듯, 레싱도 여성이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온전히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 듯하다. 이는 다른 소설에서도 몇 차례 반복되어 나타난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모린은 평생 애인을 뒷바라지하다가 버림받는다. 그와 헤어지고도 생활비가 부족해 전 애인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린은 자립할 수 없는 현실에 굴욕감을 느낀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의 바버라는 수전이나 모린과는 달리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바버라의 집에 간 그레이엄은 그녀의 방을 보고 ‘아내한테 이런 방이 있다면 나는 싫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엄은 바버라가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아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았고 또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레싱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여성의 상황을 이야기에 담아 결혼, 가정, 남성에 의해 객체로 머무는 그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년 여성의 연대와 그들의 힘
“나는 일어나서 그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네댓 걸음을 걸어가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심장을 옆의 빈자리에 놓았다. 그녀가 빤히 바라보는 자리에.” (103쪽,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레싱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중년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이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의 바버라, 〈남자와 남자 사이〉의 모린과 페기,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스텔라, 〈두 도공〉의 ‘나’와 메리, 〈목격자〉의 미스 아이브스 등은 모두 중년 여성으로, 이들은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레싱 이전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많은 소설이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여성, 또는 젊은 여성에 주목했다면 레싱은 중년 여성에 집중한다. 특히 이들을 다양한 직업과 모습, 성격을 가진 주체적 인물로 구성해내며 그들을 향해 다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중년의 여성들은 또 다른 여성과의 우정과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거나 서로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가령 〈남자와 남자 사이〉의 모린과 페기는 서로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정부였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경제적·정서적으로 연대를 꾀하고,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의 주인공 ‘나’는 실연에 빠져 미쳐버린 한 여자에게 자신의 심장을 건네 기쁨을 준다. 또 〈두 도공〉에 등장하는 ‘나’는 단호했던 메리의 사고(思考)를 확장시켜 그녀의 가정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영국 대 영국〉의 찰리는 분열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데, 그의 두려움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젊은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이름 모를 서민층 중년 여성뿐이다. 이처럼 레싱은 중년 여성들이 가진 연륜과 힘을 긍정할 뿐 아니라 다채로운 여성간의 연대로 생겨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고독과 불안을 긍정하는 레싱의 소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 그런데 양쪽 모두 상대를 경멸하거나, 간신히 참아주는 경향이 있다. (189쪽, 〈두 도공〉)

레싱은 명료하고 이성적인 서구 중심의 사고보다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면서도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작가와 레싱을 구별 짓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두 도공〉은 이러한 레싱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황무지에서 그릇을 빚는 한 늙은 도공의 꿈을 꾼 ‘나’는 현실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도공인 메리에게 꿈 이야기를 전해준다. 메리는 꿈을 단 한 번도 꾸지 않았을 정도로 현실에 충실하고 단호한 사람이지만 계속되는 ‘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 꿈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과정은 메리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녀가 더 유연한 생활과 풍부한 감정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동안 ‘비이성’ ‘비합리’ ‘감성’은 명료하고 확고한 ‘이성’의 대척점에 위치했다. 이성은 고독과 분열, 불안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고, 감성은 비이성, 비정상적인 것으로 격하되어왔다. 따라서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은 자신의 불안감과 이상증세를 남편 매슈에게 말하지 못한다. 지성 있고 이성적이었던 수전의 비정상적 행동을, 남편이 납득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싱은 고독과 불안의 감정, 구체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 감성과 체험을 긍정한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방〉 〈두 도공〉 등에서도 주인공의 초조, 불안, 환상, 비현실적 세계가 현실과 교차되면서 그들의 상황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꾸준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싱의 소설에서 모호한 세계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아마도 레싱은 이른바 ‘여성적인 것’으로 폄하되던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한 감성이 실은 여성, 혹은 감성적인 남성(〈영국 대 영국〉의 찰리)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본 듯하다. 그들은 고독을 느낄 수 있고 자아를 마주할 수 있으며, 내면의 적(敵)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즉, 레싱은 그동안 불완전하다고 무시되었던 비이성, 비합리, 감성,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가 현실세계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법일 수 있으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다다른 사람이야말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
‘19호실’에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던 수전뿐 아니라 《19호실에 가다》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인물의 이야기는 비단 레싱의 시대, 즉 1960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가부장제는 여전히 공고하고, 많은 남성은 가정을 부양하고 많은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맡는다. 육아와 가사로 일을 그만둔 여성은 가부장제 안의 또 다른 혐오와 마주한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위대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거나 ‘맘충’으로 전락하고, 아이가 없는 가정주부는 육아도 경제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를 다 키운 중년 여성이나 노인 여성은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낮은 급여의 일을 도맡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줌마’ ‘김여사’ 같은 혐오와 멸시다. 도처에 혐오가 가득하지만 이를 해결할 제도적, 구조적 차원의 조치는 묘연하기만 하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강물로 떠간 수전처럼 무력하고, 사회는 여성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생전 레싱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유롭기 위해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했으며, 불완전한 여성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고통을 여러 작품을 통해 늘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여성도 자유롭기 위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미투(#MeToo)와 위드유(#WithYou) 운동이 이어지고, 사회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거부하며,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여성들의 행보는 레싱의 이야기와 닿아 있다. “행간마다 고인 것은 여성의 삶”이므로 레싱은 여성을 위로해준다. 모두가 자유로울 ‘19호실’을 갖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 추천사

〈19호실로 가다〉 같은 불멸의 고전은 텍스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콘텍스트)이 계속 그 작품을 요구할 때, 텍스트를 통해 ‘나’를 응시할 때, 독자를 새로운 해석의 세계로 초대할 때, 그들은 모두 고전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의 불안은 레싱의 시절과 차이가 있겠지만, ‘불안’에 대한 그의 사유는 우리를 위로해준다. 나는 레싱으로부터 나혜석,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레싱은 여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_정희진(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진실 앞에 선 잔인함에 다정함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은 레싱이 쓴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19호실로 가다》 는 여성의 사유와 문장으로, 여성을 응시하고 재단하는 시선 너머의 남성성이 지닌 폭력성과 가부장제 안의 여성들이 어떻게 점점 무력화되는지 두려울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행간마다 고인 것은 여성의 삶이고,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다시 읽는다. 재미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독서에 힘이 깃든다.
_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벗겨낸 이성애 관계와 결혼생활은 어떤 민낯을 하고 있을까. 내게 〈19호실로 가다〉는 낭만적 사랑이 소거된 안나 카레니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그녀들이 사랑할 브론스키도, 현실을 버려버릴 수 있는 연애도 열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들은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인내하지만 그 어떤 선택도 기쁨이 되지는 않는다. 그녀들의 기쁨은 고독 속에서, 오로지 충만한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혼자야. 나는 혼자야. 나는 혼자야.’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귀한 일일까. 이 소설은 미치도록 혼자가 되고 싶은, 고독의 충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자발적인 추방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_최은영(소설가, 《쇼코의 미소》 저자)

종이책 회원 리뷰 (67건)

구매 도리스레싱을 통해 듣는 여성의 목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y******6 | 2023.03.29

도리스 레싱의 단편 중 일부를 담고 있는 이 소설집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표제작인 19호실은..

잘 나가던(?) 수전과 매슈는 결혼 후 저택을 마련하고, 아이 넷을 낳고, 가정부를 한명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했는데요. 어느날 매슈는 자기 어떤 아가씨와 잤다고 고백을 하고.. 수전은 그걸 이해를 하고..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수전은 그녀만을 위한 19호실을 찾게 합니다. 부정을 의심하는 매슈에게 수전은 마이클이 있다고 합니다. 그 얘길 들은 매슈는 더블데이트를 제안하고 수전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합니다.

 

그녀의 19호실이 지켜졌더라면 결말이 달라졌을 수 있을까요.

처음엔 매슈가, 그 다음엔 수전이, 그리고 매슈가 그리고 수전이 이해가 안되는데요..

그게 바로 도리스레싱 작품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곱씹게 되고, 그럴 수록 하고픈 말이 많아지는 책입니다. 

#토론하기좋은책 #토론책 으로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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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당신의 19호실은 어디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달**러 | 2023.03.27

 

"당신의 19호실어디에"

 

도리스 레싱의 <19호실 가다>를 읽고 

 


 

"저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노벨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 소설들-

 

"당신의 19호실은 어디에 있나요?" 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결혼하기 전에는 19호실이 나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간절히 19호실을 원했다. 마치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속 수전처럼 말이다. 아직은 수전처럼 그렇게 과감하게 19호실로 떠날 수 없지만, 아이가 잠든 밤, 나는 나의 19호실로 들어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나의 19호실이다. 

 

아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면 책 속 수전처럼 19호실의 존재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들에게 19호실이 있을까. 또한 수전처럼 그렇게 19호실을 찾고 매일 19호실로 찾아갈 수 있을까. 이 책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면서 자신의 자유를 찾아 19호실로 떠난 수전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여성들이 수전처럼 19호실을 간절히 원하지만 실제로 19호실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 또한 엄마로서의, 아내로서의 책무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 활동과 취미 생활 등이 비교적 자유로운데도 여전히 우리 여성들은 여러가지 책무 때문에 19호실로 자유롭게 떠날 수 없다. '완전히 나로서만 존재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은 어디에 있을까.

 

특히 도리스 레싱이  『19호실로 가다』에서 수전의 삶을 통해 19호실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여성들의 육아로 인한 노고와 희생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 우리가 남편들에게 "나에게도 19호실이 필요해." 라고 말한다면, 우리 남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남편들은 19호실의 필요성에 대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책 속 수전의 남편 매슈처럼 '혹시 남자가 생겨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지 않을까. 남편들 또한 19호실을 찾아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나러 유흥업소에 가고 그러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여성들은 하루종일 집안일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우리의 소중한 하루를 보낸다. 정작 나를 위한 시간, 나 혼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p. 290, <19호실로 가다>

 

이렇게 수전은 그녀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느 호텔의 19호실에 찾아가게 된다.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녀 혼자만 존재할 수 있는 곳, 아무도 그녀를 알지도 찾지도 못할 공간 즉 그녀만의 '19호실'로 가게 된다. 

왜 그녀가 19호실을 간절히 찾아 헤매였고, 왜 19호실로 매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 아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나에겐 나만의 19호실이 있을까. 나는 수전처럼 19호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은 없다. 노트북과 키보드, 책장, 책상과 의자로 이루어진 이 작은 공간이 나의 19호실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공간이 내가 나혼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나의 19호실인 셈이다.

 

이 책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면서 주인공 수전이  그녀 자신의 19호실을 찾았지만, 그 19호실마저도 침범당하면서 결국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19호실이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수전이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찾았던 곳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19호실이 없었다면, 그녀는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  『19호실로 가다』에는 11편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방」 「영국 대 영국」 「두 도공」 「남자와 남자 사이」 「목격자」 「20년」은 작가의 현실비판적인 시각과 페미니즘적 관점을 잘 드러내준다.

특히 「옥상 위의 여자」, 「19호실로 가다」에서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도리스 레싱이 활동하던 1960년대 우리 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19호실로 가다> 속 주인공 수전처럼 여성들은 결혼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모두 포기한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혼자의 인생을 즐긴 수전처럼 그렇게 결혼하기 전 여성들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로 인한 가정생활로 인해 여성은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잃고 엄마라는, 아내라는 역할로만 존재하게 된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심장을 꺼내서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열차 속 미친 여자에게 준다. 심장을 잃어버려서 슬픈 것이 아니라, 심장이 없어서 오히려 홀가분한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해 중년 여성의 연대와 그들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일어나서 그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네댓 걸음을 걸어가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심장을 옆의 빈자리에 놓았다. 그녀가 빤히 바라보는 자리에.”

"심장이 없었다. 심장이 없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자유라니...

-p. 103-104,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옥상 위의 여자」 에서 작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들의 야유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용기있는 여성을 모습을 통해 작가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보여준다. 또 그런 여성을 보며 음흉한 시선을 던지며 비난하는 남성들의 모습과 사회적 편견도 보게 된다. 

 

여전히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들에서 보여주는 여성들의 모습은 소극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한 순종적인 모습이다. 하긴 도리스 레싱이 활동하던 1960년대 모습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남성우위의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대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작가가 작품 속 수전처럼 자신의 존재의 독립을 주장하며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언급하고 주장하였던 점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폐쇄적이고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작가가 억압받는 여성들의 현실과 그들의 억압적인 상태를 폭로함으로써,  '19호실'과 같은 여성의 자유를 찾아주려는 시도와 도전을 한 점이 아마 이 책   『19호실로 가다』가 가지는 의의라고 하겠다.

 

“원하신다면 제 삶을 가져가세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당신처럼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p. 305, 「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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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오**록 | 2023.01.15

1·2차 세계대전의 상흔,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나이나 경험이 사람을 반드시 성숙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지만 도리스 레싱(1919~2013)의 작품엔 그가 겪은 고난이 다양한 결로 드러난다.

레싱의 단편집19호실로 가다를 읽...

11편의 단편을 모두 읽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건 더 어려웠다.

눈이 줄거리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을 차지하는 감정,

불편함.

레싱의 작품에는 보일 듯 말듯 보호색을 띠고 자리 잡은, 애매한 폭력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화내면 속 좁은 사람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만만해 보일까봐 피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짚어준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런 이름도 없는 애매한 불편함을 얘기해줘서.

부족한 문해력과 일천한 지식 탓에 11편이 모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4편을 골라 소개하려 한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방송국에서 인터뷰 작가로 일하는 중년 남자 그레이엄. 그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그 공허함을 새로운 여자를 만나 손에 넣는일로 해소한다.

이번 타깃은 바버라 콜스. 잘 나가는 무대 미술가다. 인터뷰를 핑계로 바버라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이 여자, 그레이엄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일만 한다. 식사를 같이 하자고 추근대고 결국 그녀의 집까지 따라간다. 그래도 반응이 없는 바버라. 그를 남자로 봐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귀찮아한다. 열심히 시도하지만 나중엔 성욕도 사라지고 자존심만 남았다. 결국 그녀를 손에 넣는데 실패하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

, 하느님, 이 촌뜨기를 이제 떼어버릴 수 있어!’ 정말 헤픈 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59)

 

옥상 위의 여자

어느 여름, 옥상 위에서 젊은 여자가 누워 일광욕을 한다. 마침 근처 건물 옥상에서 세 남자가 홈통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년의 해리, 새신랑 스탠리, 열일곱 살 톰. 그들의 눈은 모두 여자에게 향한다. 다음날도 여자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남자들은 여전히 그녀를 훔쳐보며 비난한다. 나쁜 년.”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작가는 친절하게이유를 설명한다. 자기를 지켜보는 세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 났다.’(p.68).

일광욕만 할 뿐 그들을 신경 쓰지 않던 여자가 어느 비 오는 날 옥상에 나타나지 않자 톰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 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p.80)

 

한 남자와 두 여자

디자이너인 스텔라와 그녀와 친한 화가인 브래드퍼드 부부가 등장한다.

스텔라와 잭 브래드퍼드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잭의 아내 도로시는 아직 무명이다. 안목 없는 대중이 주는 상업적인 성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서로의 예술세계를 존중한다.

방송기자라는 남편의 직업 덕분에 몇 달씩 떨어져 지내야 하는 스텔라 부부와 달리 잭과 도로시는 가난하지만 모든 걸 함께하며 자주 여행을 다니는 행복한 부부다. 그러던 중 도로시가 임신을 하고 그들은 시골에 정착한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나고 스텔라가 그들을 찾아간다.

아기가 생긴 부부. 더 행복해졌을까 

아기를 낳고 나니 내 안의 창의성이 전부 죽어버렸어. 임신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 도로시가 말했다. (p.119)

태어난 지 6주밖에 안된 아기를 키우면서 창의성 운운하는 엄마라니. 갓난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24시간을 저당 잡힌 삶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스텔라에게 도로시는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잭이 가끔 어디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밤이고 낮이고 허구한 날 잭이랑 같이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혀.”(p.123)

10년 넘는 결혼기간 동안 부부가 계속 함께 지내야했던 끔찍함, 남편의 외도를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19호실로 가다

한 남자와 두 여자보다 더 완벽한 부부가 등장한다.

유능한 남편 매슈, 역시 유능하지만 가정을 위해 전업주부가 된 수전.

정원이 딸린 큰 집, 착하고 건강한 네 아이, 파출부,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책을 읽은 지적인 부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가끔 수전은 자신이 가진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어서인가. 그녀는 작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도 모두 등교하고 마침내 수전은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이상하다. 수전은 집안 어디에 있어도 혼자일 수 없었다. 욕실, 빈 방, 매슈가 정해준 지붕 밑 엄마의 방에서조차도.

저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있고 싶어서 이 호텔을 찾아왔어요.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p.305)

혼자만의 방이 필요한 수전이 찾아낸 곳은 어느 허름한 호텔의 19호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그랬듯 그곳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찾아온다. 수전의 19호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한 남자와 두 여자는 여자를 같은 인간으로 대할 줄 모르고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 폭력이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여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나마 위협도 못되는 찌질함으로 그려진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찌질남들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고 해서 존중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의 여자는 오직 두 종류가 있을 따름이다.

나쁜 년과 헤픈 년.

 

한 남자와 두 여자와 표제작 <19호실로 가다역시 비슷한 결로 묶인다.

완벽한 가정의 그녀들은 왜 불행할까 

 

내가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경제력이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등장인물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돈이 숨어있다. 도로시는 남편과 늘 함께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싫어하는 건 남편과 함께 한다.’는 그 자체보다 남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삶의 형태 또한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는 그녀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은 일에, 아내는 가정에 집중한다. 남편의 수입이 넉넉하고 부부의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전은 허름한 호텔의 숙박료 몇 푼마저도 남편에게 일일이 받아야하는 처지다. 물론 지적이고 성실한 남편이 아내에게 돈의 용도 따위는 묻지 않지만 이것은 배우자의 지성이나 인성 문제가 아닌 헤게모니의 문제다.

 

 둘째 이유를 들자면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아이가 딸린 도로시에게도, 모든 물리적 노동에서 벗어난 부유한 주부 수전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흔히들 남자에겐 동굴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동굴은 남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은퇴한 부부가 갈등을 빚고 황혼이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남자들이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아내의 보살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1년에 500파운드라는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난다. 글을 쓰는 데만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작가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수전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편에게 19호실로 가는 이유를 말할 수 없어서 외도를 핑계대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다. 19호실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대신 19호실로 가는 수전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을까. 남편으로 대표되는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심지어 작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수전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것 또한 수전에게는 참을 수 없는 폭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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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211건)

구매 19호실로 가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좀* | 2022.09.07

도리스 레싱 저/김승욱 역 19호실로 가다 리뷰입니다.

읽을 때도 많은 생각과 기분이 들었던 책이라 리뷰 조차도 간결하게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네요. 단편을 엮은 책이라 길지 않은 호흡으로 쭉 읽기 쉬운 내용이지만 막상 한편을 다 읽고나면 왠지 긴 숨을 내뱉게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오래 전 작가의 작품이 아직도 내 마음을 읽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아직도 우리가 과거 속에 머무르고 있단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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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yes24 전자책) 2019. 10. 25 (Fri)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민* | 2019.12.17
작가: 도리스 레싱
번역: 김승욱
출판사: (주)문예출판사
출판년: 2018년 7월 5일 1판 1쇄 발행

먹책모 북클럽 11월의 선정도서라 읽은 책.
도리스 레싱은 예전에 (아마도) 해방촌 고요서사에 방문했을 때 책상에 따로 빼놓은 특별코너 같은 곳에서 봤었고,<다섯째 아이>라는 책에 대한 소개글이 무척 인상깊었던 작가이다.
그 때 조만간 꼭 봐야지 다짐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내 맘을 끈 <다섯째 아이>의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빅토리아풍의 집에 살며, 안정된 중산층 수입을 보장받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랑스런 아이들과 따뜻한 이웃과 함께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는 해리엇과 데이빗 부부. 그러나 다섯째 아이인 벤의 탄생은 모성애와 책임감, 전통적인 가치를 믿어온 그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그들이 계획했던 이상적인 삶의 행로를 모두 파괴하는 벤을 보면서 헤리엇은 다섯째 아이의 존재가 행복하게 살려는 자신들에 대한 신의 형벌일까 아니면 태고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주적 진화의 소산일까 자문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 부분만 봤을 때는 <다섯째 아이>가 조금 더 철학적인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번 <19호실로 가다>를 읽고는 이 책에 대한 예상 장르를 조금 수정했다.
아무튼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책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내가 느낀 도리스 레싱은 너무나 날카롭고 신랄한 나머지 이게 유머인지 긴가민가한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였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들.

 다른 사람들의 재능으로 돈을 버는 사람
<p.25>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 세계 어느 나라나 정말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 하다는 것. 남녀차별이나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문장들을 보면서 굉장한 기시감과 동질감을 느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누이는 교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집안의 여윳돈은 모두 찰리에게 들어갔다.
<p.262>

하루 저역 시내에 나가서 좀 즐겁게 놀아도 되잖아. 과자를 포장하는 노동을 하면서 어떻게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p.275>

이건 영국과 영국이 대립하고 있는 거야. 다들 공정한 규칙을 말하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가난한 놈들을 정해진 날짜에 목매달아 죽일 걸.
<p.295>



사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 작가가, 사람 내면의 질투나 불안, 열등감, 초조함, 얄팍한 자존감과 비대한 자아 등, 소위 사람 내면의 '찌질함'을 너무나 잘 묘사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부분에 더 집중해서 읽었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 내가 하이라이트 해 둔 부분들을 쭉 모아 읽다보니 의외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집중했던 키워드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립과 독립'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이고, 애인이고, 친구이고, 혹은 배우자나 부모이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의 개인이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일지라도 한 사람이 타인과 완전히 동일화 되는 건 불가능하며 본질적으로 우리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개인의 공간과 개인의 시간, 타인과 완전히 분리되어 오롯이 나 홀로 느끼는 나만의 심장을 (의식하든 못하든) 필요로 하는 것은 불가역적인 현상 아닐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그 어떤 사람도 사회 자체는 될 수 없다. 모두는 개별적 존재이며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이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의존하지 말자는 것에 가깝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에서 나온 문장을 조금 변형하여 인용하자면, "타인은 내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들이 삶에 기쁨과 재미와 만족과 안정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은 나 개인에게 더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 서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의 상처를 핥아주는 일은 하지 말기로 해요. 자신의 심장은 그냥 자신이 갖고 있자고요.
<p.149>

임신 중에 도로시는 부드럽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사실 나는 아기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어쩌면 엄마가 되는 건 나한테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몰라. 어쩌면...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p.187>

아이들은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p.465>

매슈와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진지한 대화를 여러 번 나눴다. 수전은 처음에 남편과 장남 해리가 나누는 대화를 언뜻 들었을 때,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 커다란 집에서 그녀가 
자기만의 방을 하나 마련하는 일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이렇게 엄숙하게 토론해야 될 일인가?
<p.502>



요즘 종종 '자기만의 방'이라는 키워드로 생각에 잠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정 금액 이상(연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글을 쓰는 여성들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비단 이것이 '글을 쓰는' 혹은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여성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에게,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방'으로 대변되는 나만의 시공간, 그리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하는 물질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19호실로 가다>에서도, 수전은 결국 자기만의 방을 찾아 나섰던 것이고, 스스로 남편에게서 금전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기만의 방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불완전하나마 지속되었던 자기만의 방이 파헤쳐지고 타인에게 침범당했을 때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전체적으로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여성을 구속하는, 여성의 선택지와 한계를 한없이 좁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인간을 옭아매는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읽어보고 싶은 책
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버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 19세기 여성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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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상*****찔 | 2019.11.28

자주 시도했다가 또 금방 이전에 중단했던 지점에서 책장을 덮고야 마는 책이 있다. 아쉽지만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들이 이미 많기 때문에 적지 않은 책들이 그렇게 ‘최종후보 명단에서’ 빠지게 된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전에 없던 집중력으로 다시 읽게 되는 책들도 있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이 책을 한 문장 더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되었음을 느꼈다. 이런 성장의 느낌을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한참이나 읽다가 이내 책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분명한 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의 말이 왜 전엔 이해되지 않았지? 즐거움이 의아함으로, 그것이 곧 부끄러움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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