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용곡 글그림/전인혁 감수
정재환 저
유정호 저
신정훈 저
신병주 저
괴담실록 저
두 조선 왕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왕은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자식도 많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잠자리는 봐주는 여인 문서를 챙겨주는 여인 책 심부름을 하는 여인 밥상을 차려 주는 여인 아내의 시중을 드는 여인 등등 눈에 들기만 하면 여지 없이 자기 여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못 말리는 사랑꾼이면서 타고난 어장 관리지다 거기다 행복한 인생에 수많은 업적까지 남겼으니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왕은 어린 시절부터 오직 한 여인만 사랑한다 집안에서 맺어준 아내가 있어도 그가 원하는 여인은 오직 그녀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여인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후로도 그는 무려 15년 동안 집요하게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래도 그녀가 허락하지 않자 급기야 그는 자신의 권위와 힘으로 그녀를 취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그의 두 아이는 모두 일찍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고 만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생 그녀를 가슴에 묻고 애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런 사랑 이야기를 남긴 두 왕은 과연 누구일까? 전혀 딴판의 로맨스를 경험한 이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끊임없이 사랑에 빠진 못 말리는 사랑꾼은 세종 15년동안 한 여인만 바라본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은 정조다
조선 왕들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고 익숙하다 역사책에서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이들의 삶과 업적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아닌 한 남자로서 이들이 해 온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낯설면서 새롭다 왕실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는 드물었던 탓이다
목차에서부터 조선 왕들을 직진형 순정남 읍소형 비운남 전투형 뒤끝남 등의 수식어를 붙여 나눠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각 왕들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읽는 맛이 있다 전쟁영웅 이성계가 21살 어린 소녀와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이야기 아내가 동성애에 빠져 궁이 발칵 뒤집혔던 문종의 이야기 등은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가볍지만은 않다 조선 왕실의 로맨스를 살피면서 조선 역사의 숨겨진 속살을 들춰내고 있다 로맨스 뒤에 숨어 있는 권력 혈연 학연은 물론이고 관련자들의 애증 관계에 대해서도 되도록 다각적인 방도로 접근했다
조선 왕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사람 사는 것이 대동소이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이 있고 미움이 있으며, 질투가 있고 인내가 있는 삶들이구나! 권세가 있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든 모두가 관계를 가지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삶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이는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왕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내용은 바로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왕실이 평온하면 백성들의 삶이 비교적 피었고,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득권자들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볼 수 있는 일이리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힘을 가진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가가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조선 왕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인조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것이 소현세자와 그의 자식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런 성격이 여자 문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제한적으로 후궁을 두었다. 인조의 첫 여인은 인열왕후 한씨였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광해로부터 역적으로 몰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광해의 어머니인 공빈의 연적인 인빈이다. 그녀의 아들이 정원군이고 이종은 정원군의 장남이다. 이종이 광해의 감시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와중에 동생이 사건에 연루되어 죽자, 인조 이종은 더욱 떨리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정원군도 홧병으로 죽고 장례를 치르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여자도 아내 한씨 뿐이었다. 왕은 왕비가 있어도 후궁을 두는 것이 상례다. 그래서 왕비가 후궁 둘을 들인다. 조씨와 김씨였다. 조씨는 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왕자를 둘이나 낳는 조귀인이 된다. 인조의 총애를 안고 그녀의 위세가 대단했다. 왕비 한씨가 죽고 왕비 간택령이 떨어졌다. 새로운 왕비로 간택된 여인은 조창원의 둘째딸이다. 그녀는 잉태하지 못했고 그것은 왕이 조귀인에게 마음이 빼앗겨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인조는 조귀인의 욕심에 따라 휘둘린다. 조귀인은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올리고 싶어 한다. 그런 야욕을 드러내는 그녀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세자 소현을 죽게 하고 그 아내 강씨를 역적으로 내몬다. 인조는 소현이 죽자 봉림을 세워 세자로 삼는다. 조귀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인조가 병들어 눕게 되자 효종이 수렴청정을 하고 왕의 길을 닦는다. 결국 인조의 죽음과 함께 조씨가 왕을 삼으려는 아들들의 이야기도 물거품이 되었다. 흥미롭게 읽혀진다.
조선조에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은 5명이다. 단종, 예종, 현종, 경종, 순종 등이 그들이다. 단종은 어려서 예종, 경종은 병약해서 순종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현종은 재위 기간도 15년인데 의외다. 현종은 11살에 명성왕후 김씨는 10살에 결혼했다. 꼬마신랑 신부였고, 의좋은 부부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왕자는 숙종 한 명 뿐이었다. 왕가에 후궁을 들이는 것은 뒤를 잇기 위한 일인데 후궁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부인을 사랑했어도 그렇다. 물론 명성왕후는 1남 5녀를 낳으며 계속 아이는 가졌다. 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명성왕후의 성품이 거셌다고 전해진다.그러면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게다. 명성왕후를 배려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또한 외척 세력도 조정에서 힘이 있었다. 그들에게 눌린 것은 아닐까? 드센 기질의 여인이 집안을 다스려나간다면 기질이 약한 남자들은 여자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 한다. 현종이 후궁을 들이지 않은 것은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지만 현종에게 단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말년에 접한 여인 김상업이다. 그런데 그녀는 첩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가 잉태를 하고 갑자기 현종이 죽는다. 그로인해 숙종이 들어서고 김상업은 쫓겨나며 아이는 엉뚱한 사람의 아이로 둔갑한다. 당시 그녀를 돌봐주던 현종의 사촌이었던 복창군의 아이라 칭한 것이다. 모두 명성왕후의 농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홍수의 변’이라 한다. 하지만 복창군 형제들의 세력도 있었기에 풀려난다. 명성왕후는 숙종 앞에서 울며불며 닦달을 해 다시 김상업 일파를 감옥에 가둔다. 이 일은 확대되어 ‘경신환국’으로 나아간다. 경신환국은 서인들에 의해 남인들이 몰락하는 사건이다. 여기에 당한 사람들이 복창군 형제, 허적 조희맹 등이었다. 그 후 남인 세력들이 은인자중하면서 기회를 노리는데 그 도구가 되는 사람이 장옥정이다. 아마 현종이 좀 더 살았더라면 많은 후궁도 거느리고, 김상업도 좋은 입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숙종은 14살에 왕위에 올랐고 드센 어머니가 수렴청정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친정을 할 수가 있었다. 나이든 고관대작들이 어린 임금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애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인 문제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맞이한 왕비가 인경왕후다. 인경왕후는 딸만 놓다가 일찍 죽는다. 숙종은 모든 왕가의 여인들이 정책적으로 혼인이 이루어지는데 아픔을 느낀다. 그럴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는데 장옥정이다. 이 장옥정을 남인의 줄기라 생각한 명성왕후(대비)가 장옥정을 사가로 쫓아낸다. 숙종은 사랑하는 이와 생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 후 숙종은 서인 민우중의 딸 인현왕후와 결혼한다. 유학계의 거두 송시열과 명성왕후가 결탁하여 만든 배필이었다. 숙종은 어린 인현왕후에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가에 나가 있는 장옥정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장옥정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한다. 즉 귀양 보낸 장옥정 편 사람들을 풀어주는 일 등 말이다. 그런 가운데 명성왕후가 죽는다. 그것은 장옥정에게는 큰 유익이 된다. 대왕대비 조씨가 숙종의 마음을 읽고 장옥정을 입궐시키는 것이다. 그 후 3각 관계는 희빈이 된 장옥정의 승리로 끝나는 듯한다. 장옥정이 아들을 낳고 그를 원자로 지정한다. 신하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숙종은 완고하게 밀어부친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 세력들은 장옥정의 아들을 원자로 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종묘에 고한 것을 철회하라고 숙종을 몰아 부친다. 그것은 인현왕후를 사가로 내쫓는 계기가 되고 장희빈을 왕비가 되게 만든다. 왕비가 된 옥정은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고 숙종이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게 한다. 그것이 무수리 최씨다. 숙종은 최씨를 만나면서 숙정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 그리고 최씨는 아들을 낳게 된다. 이런 일련이 일들이 진행되면서 인현왕후 북위운동을 서인들이 벌이고 숙종은 그것을 그냥 둔다. 그것은 장옥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씨가 장옥정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말을 하고 숙종은 장옥정을 괴씸하게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결국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옥정을 몰아내게 된다. 결국은 사약을 내린다. 숙종은 장옥정과 남인 세력들에 등을 돌리고 서인을 선택한다. 즉 장옥정은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것은 경종의 이른 죽음, 영조의 등극과도 관련이 되어 나타난다.
영조는 무수리 최씨에게서 태어난다. 어릴 적 연잉군으로 불렸다. 그는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로 있었기에 왕이 될 생각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때 불품 없는 가정의 딸과 혼인한다. 그녀가 정성왕후 서씨다. 그녀는 33년간 왕비로 있다. 하지만 둘 사이는 냉랭했던 것 같고 자녀가 없다. 그래도 어진 성품 때문에 여인으로서보다 국모로서 영조도 인정을 했던 여인이다. 정성왕후가 먼저 죽고 15살 적은 왕비를 새로 맞는다. 정순왕후다. 하지만 연잉군의 첫사랑은 훗날 정빈이씨로 불린 동갑내기다. 그에게서 효장세자와 화순옹주를 낳는다. 연잉군이 무력하게 있을 때 당시 숙종은 와병 중이었다. 그리고 숙종은 경종의 연액함 때문에 내심 연잉군을 다음 왕으로 정한 듯한 행보를 보인다. 그러면서 왕권다툼이 일어난다. 경종과 연잉군을 사이에 둔 세력들의 알력이다. 그런 가운데 숙종이 서거하고 경종이 왕 위에 오른다. 노론들의 강한 입김때문에 연잉군은 세제로 책봉된다. 그러면서 정빈 이씨도 첩지를 받는다. 정 5품 소훈이다. 하지만 정빈 이씨가 독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경종 편의 소론, 연잉군 편의 노론이 경종의 병약함을 근거로 세제청정을 주장하고 수용하고 거둬들이고 하는 일들이 지속된다. 그러면서 그래도 왕의 세력들이 득세하여 노론이 물리쳐 진다. 그런 가운데 정빈 이씨 독살 사건의 고변이 있게 되고 노론 세력들이 대거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당한다. 이를 신임사화라 한다. 이 사건의 중심 세력으로 몰린 연잉군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비의 노력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따른 진실도 파내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에 놓인다. 그런 가운데 경종이 죽고 연잉군이 왕 위에 오른다. 이가 영조다. 왕 위에 오른 영조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는데 영빈 이씨다. 효장세자는 10살로 단명한다. 영빈 이씨가 딸만 놓자 거처를 옮겨보게 하기도 하고 효장세자 사후 후계에 대해 영조는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사랑하는 이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선이다. 나중에 사도세자가 되는 이다. 선은 성장하면서 경종의 죽음과 관련된 노론들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서 부왕 영조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을 속이는 행위도 한다. 그것이 영조에게 들통 나고 꾸중을 들으면서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이 강해지고 관계의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대리청정을 하지만 영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그것은 질타의 요인이 된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선은 더욱 불안해 지고 공황장애 증세까지 보인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칼로 죽이기도 하고 자살 시도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영빈 이씨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영조와 그것을 시행에 옮긴다.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심정, 그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안쓰러움이 세손이었던 정조를 지키는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왕의 과도한 훈육이 아이의 성장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줬고, 그것이 성장하여 광적으로 나타난 인물이 사도세자다. 사도세자는 의경세자가 죽고 태어난 영조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기에 어렸을 때부터 왕의 훈육을 시켰다. 그리고 합당하지 못하면 호된 꾸중이 따랐다. 그것이 사도세자는 트라우마로 작용한 듯하다. 여인과의 관계에 광적인 요인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세자는 같은 나이의 혜경궁 홍씨와 혼인을 했는데 둘 사이는 보통의 부부처럼 호불호도 없아 자식 놓고 그렇게 살았다. 별 문제가 없이 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영조가 나이가 들어 세자가 대신 정사를 보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 영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영조의 왕에 관한 훈육이 과도해 지고 그것이 사도세자는 고통이 된다. 하여 세도세자는 의관을 입을 때 발작적인 모습을 보인다. 옷을 입는 자체가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이를 의대병이라 한다. 그것을 혜경궁 홍씨는 받아내야 하는데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영조가 세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왕위를 바로 세손 이산에게 넘겨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까지 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혜경궁 홍씨는 가만히 있으면 자신과 아들까지 죽을 듯한 느낌이 들어 사도세자의 친 어미인 영빈이씨에게 하소연한다. 영빈이씨가 사도세자에게 광적인 행동을 멈추라고 했지만 오히려 친 어미마저 죽일 것 같은 행보를 보인다. 영빈이씨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영조에게 차라리 아들이 죽는 것이 낫겠다고 전언한다. 이런 일들을 심화시킨 하나의 일도 있다. 사도세자와 서로 지극히 사랑한 빙애라는 여인이 있다. 자식도 둘이나 낳은 여인이다. 이 여인이 사도세자의 광기 앞에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하다가 맞아 죽는다. 심지어 아들까지 연못에 던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사도세자의 광기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영조는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뒤주 안에 가두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혜경궁홍씨와 영조의 그늘에서 자란 정조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물려받는다.
정조의 사랑은 의외다. 어린 시절 본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다른 모든 것을 능가했다. 그 여인의 신분은 그리 높지 않았다. 청지기를 아비로 둔 성덕임인데, 홍봉한의 집에 기거하는 중에 외가에 놀러갔던 정조와 만났고, 정조의 사랑이 싹 튼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 당시에는 사랑인 줄도 몰랐다. 정조는 11살에 덕임과 같은 나이의 효의왕후 김씨와 결혼한다. 하지만 애정이 그리 깊지 못하였고 자녀도 낳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덕임이 나인으로 혜경궁의 처소로 들어오게 되고 15살이 되어 후궁을 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정조는 덕임에게 후궁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덕임이 완강히 거부한다. 그 이유는 세손빈이 아기를 낳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정조는 보류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왕비는 회임을 하지 못하고 정조는 왕위에 오른다. 이번에도 정조는 덕임에게 후궁이 되어줄 것을 권한다. 또 덕임은 후궁을 3명 들이는 것이 순서라고 거부한다. 그 후 정조는 원빈 홍씨, 화빈 윤씨 등을 후궁으로 들인다. 그런 연후에 덕임에게 승은을 받으라고 요구한다. 덕임이 사양을 하자 정조는 덕임의 하녀들을 무섭게 꾸짖고 벌을 내린다. 덕임도 이제는 정조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알고 받아들인다. 그때가 정조가 29살, 덕임이 28살이다. 그 뒤 둘은 금슬이 너무 좋다. 자식도 많이 낳는다. 정조가 처음 가진 왕자, 문효세자가 그들의 아이다. 덕임이 빈의 첩지를 받고 많은 자녀를 가졌지만 아이들이 일찍 죽는다. 문효세자도 5살에 죽는다. 그녀의 아이들의 명이 그리 길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녀도 문효세자의 죽음으로 상심이 크다가 결국 사망한다. 정조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자식들이 모두 먼저 떠나간 것이다. 정조는 일편단심, 한 여인을 알고 그녀에 대한 사랑이 한결 같았던 왕이었다.
고종 이형은 왕궁에 들어오면서 연상의 여인에게 빠졌다. 아홉 살이나 많은 이순아, 영보당 이씨다. 그런 와중에 고종 이형은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민치록의 딸 자영이다. 이때가 왕이 된 지 3년 후다. 그런데 왕은 왕비의 처소보다는 영보당에 많이 찾는다. 그런 관계로 영보당에서 임신을 한다. 낳은 아이가 고종의 첫아들 완화군 이선이다. 고종은 너무 기뻐 세자로 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말린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그 후에도 아기는 영보당 이씨에게만 들어선다. 영보당의 입지가 강해져 간다. 이런 상태에서 민비는 대왕대비에게 지극 정성을 다해 섬기고, 조대비의 도움으로 다른 궁녀들과 자신이 싸울 수 있는 힘을 비축한다. 이순아가 임신을 했을 때 왕의 마음을 끌어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자신도 잉태한다. 하지만 잉태한 아이들의 생명이 길지 않다. 그렇게 3명이 죽는다. 고종은 이런 아내의 사정이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도 주고 위로도 해준다. 결과 순종이 되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것은 민비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민비도 힘을 휘두른다. 영보당이 죽고 난 후에 쉽게 다른 여인들이 고종의 옆에 머물지 못한 이유가 거센 성격의 민비 때문이다. 결국 일제의 위세 앞에 조선의 자존을 지키려다가 시해되고 말았지만...... 조선의 마지막을 의연하게 보여준 왕비였다.
조선왕실 로맨스를 다 읽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왕실의 사랑을 읽는다는 것은 위정자들의 마음을 통해, 그들의 삶을 통해 백성들에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도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여러 편으로 나누어 리뷰를 남기는 것은 내용의 기록하기 위함도 있고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다.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한 시대가 어떻게 다음 시대로 이어지며 그 속에서 백성들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마음에 담아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함이다. 이렇게 왕들의 사랑을 자세하게 기록해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되고, 다음에 이 흔적만 보면 책이 온전히 마음에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나에겐 고마운 읽기였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도 결국 한 명의 남자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대로 여인을 취할 수 있었던 자리라 왕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느냐에 따라 여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선시대 왕 들 중에는 10여명의 부인과 20여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관계가 관료주의 근간을 구성했던 사대부들과 가문과 출세 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다양한 형태의 영욕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시대 왕들의 애정 전선을 살핀다. 26명의 왕들의 정치적 치적에 대해서는 역사공부나 드라마 등을 통해 많이 들어 왔지만 비공식적인 사랑이야기를 정리해 듣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이 책은 왕과 왕족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방편으로 삼아도 좋고, 그냥 한 인간의 애정 문제 차원에서 가볍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총 26개의 사랑 이야기가 소개된다. 대부분 왕의 이야기지만 양녕대군과 같은 왕자의 로맨스도 가끔 등장한다. 이 중에서 조금 의외로 다가오는 사랑 이야기는 세종의 로맨스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자식도 많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달성하느라 밤낮으로 일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잠자리 봐주는 여인, 문서 챙겨주는 여인, 책 심부름 하는 여인, 밥상 차려 주는 여인, 중궁에서 아내의 시중을 드는 여인 등등 눈에 들기만 하면 여지없이 자기 여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에 소개된 공식적 숫자로 부인 13명에 18남 7녀를 두었다. 그러면서도 수 많은 여인들간의 불화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모두를 섭섭하지 않게 잘 챙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업적을 남긴 세종이 이런 사랑꾼이자 어장 관리자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좀 놀랍게 다가온다.
물론 일편단심형 사랑을 한 왕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한 여인만 사랑한다. 왕실에서 맺어준 아내가 있어도 그가 원하는 여인은 오직 그녀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여인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후로도 그는 무려 15년 동안 집요하게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래도 그녀가 허락하지 않자, 급기야 그는 자신의 권위와 힘으로 그녀를 취한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두 아이는 모두 일찍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고 만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생 그녀를 가슴에 묻고 애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가져왔던 정조 이야기이다. 비운에 죽은 아버지와 궁중 권력관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의 사랑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 외에도 다양한 조선왕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각 왕들을 유형에 따라 이름짓기를 하는데 참 재미있다. 태조 이성계는 직진형 순정남이고, 태종 이방원은 전투형 뒤끝남이며, 문종은 결벽형 도도남으로 소개된다. 예종은 조숙했는지 12살에 아비가 되었고, 성종은 호색형 열정남으로 분류되어 있다. 중종은 조강지처를 버린 야누스형 배신남으로 이름을 올렸고, 명종은 마마보이형 유약남으로 분류된다. 결국 사랑은 개인의 성격과 자란 환경을 반영하는 종합적 산물이라 하겠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애정이라는 측면에서 왕이란 자리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기 마음대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왕의 자리가 부러운 사람이 많겠지만 결국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이고 60세를 넘겨 장수한 왕이 6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복잡한 여성관계에 기인한 점도 상당히 크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왕의 로맨스라는 것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음도 알게 된다. 결국 왕들의 애정 전선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왕과 권력자들의 '본능과 이성, 그리고 이익의 삼각함수'가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