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주제 사라마구, 작은 기억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목차가 없어서 당황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 읽는 것을 중단하고, 책 소개를 검색하여 찾아보았다. 그제서야 이야기의 흐름과 나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의 이름만 보고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은 저자의 유년시절이 담긴 회고록이었다.
정신을 다잡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산만하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노년의 저자가 아주 오래되고 본인조차도 완전하지 못한 기억을 더듬어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간의 순서나 에피소드 형식이 아니라 생각나는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놓았다.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기승전결 없이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버거웠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넘치는 TMI(Too Much Information) 속에서 정말 힘들었다.
거장의 유년시절은 특별했을 거라는 나의 편견때문이었을까. 저자의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라 일기장에도 적지 않을 법한 일들과 경험들이 담겨있는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 그 자체였다. 이러한 크고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고, 이 책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던 책의 구성과는 너무나 달라서 낯설었고, 그 낯섦은 나한테는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팬이라면 꼭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시작하기를 권한다.
책은 작가의 생각의 흐름대로 진행된다. 나는 종종 과거의 기억은 4차원의 공간안에 접혀져 있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기억들은 뇌 속에 접혀져 있어서 한번에 떠오르진 않지만, 기억을 따라가다보면 3차원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의 축을 하나 덧댄것 마냥 과거의 기억을 펼쳐내곤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흐름을 평평한 2차원의 종이책 안에 풀어냈다.
유년의 경험과 추억은 곱게 접혀져 평소에 의식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기에 마치 사라진 것 같지만, 기억이 끝을 따라 펼쳐보면 다양한 유년시절의 파편과 맞닿을 수 있다. 그러한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고, 부분적으로 지워지며 어떠한 부분들은 좀 더 강렬하게 하이라이트 되어 각색된다. 이것이 내가 그 어린시절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는 증거 그 자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았던 씨앗은 싹을 틔웠고 본래의 형체와는 달라졌지만 그 씨앗은 그시절의 나이며 지금의 나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와 <죽음의 중지>라는 소설을 통해 접했던 작가였다. 이전에 읽어봤던 작가의 작품들은 강렬한 상상력에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곁들어진 작품들이었다. 그러한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자양분이 되었을 작가의 유년기의 일대기를 상상하며 독서를 시작했지만 내용은 나의 상상과는 달랐다. 참으로 사라마구 "답게" 풀어낸 유년시절의 에세이였다. 작가가 풀어낸 어린시절의 "이야기"보다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에세이로 기억될 것 같다. (이야기 자체는 사실 흐름을 따라가는게 쉽지 않았다ㅠㅠ)
주제 사라마구 저/박정훈 역ㅡ주제 사라마구, 작은 기억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주제사라마구의 책은 수십년전 눈먼자들의 도시를 시작으로 가끔씩 한 권 한 권 사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사라마구의 에세이집 입니다. 어린시절 사진도 여러장 실려있습니다.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들과 문학을 처음 접하게 된 사연 등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