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의 원제는 <모든 이름들>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출입구가 된 셈이다. 인간에 대해 파고드는 시각이 정말 마음에 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깨달을 때도 많다. 읽기 힘든 부분도 있다. 대화인지 설명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구절이라던가, 하지만 무작정 주욱 읽어가다보면 대충 파악이 된다. 하나 하나 제대로 읽으려 하지 말고 주욱 읽으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면 된다. <모든 이름들>이라는 원제가 더 소설을 잘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인적사항부터 파악하고 추적하는 취미가 있는 주인공이 어떤 여자에 대해 알아가면서 하나씩 추적하는 거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주인공의 심리를 읽아가면 재미나다. 정말 작가님 좋은데 다른 작품도 다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인생이란 그림같은 것이어서 비록 언젠가 그것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맛보기 위해 다가갈지라도 항상 서너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서 그것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74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영혼이란 인간적이지 못할 대도 많다.
145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웠듯이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해.
185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거짓이란 없어요.
209
예를 들어, 여기 이곳에 있는 사람도, 노인은 지팡이로 무덤의 불룩 튀어나온 곳을 두드리며 말했다, 선생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거요. 주제 씨는 그가 서 있는 땅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묘지 번호판의 마지막 돌과, 그의 마지막 확신과, 마침내 찾아낸 그 미지의 여자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다. 251
눈앞에 바로 보고 있어도 거짓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는 걸.
253
삶에 설명되지 않는 것은 수없이 많다는 겁니다.
282
결국 죽음이란 다 똑같은 거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섞이고 뒤바뀌면 어때. 어차피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을.
291
[파워문화블로그 O]
제목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Todos os nomes, 1997
지음 : 주제 사라마구
옮김 : 송필환
펴냄 : 해냄
작성 : 2016.06.02.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즉흥 감상-
‘주제 사라마구 이어달리기’라는 것으로, 다른 긴 말은 생략하고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어딘가 낡아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중앙 호적 등기 보관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에서 이야기의 바통을 받는 사람은 사무보조원인 ‘주제’씨다. 등기소에 붙어 있는 작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일하고 있는 만큼 나름의 은밀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인들의 정보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취미를 위해 다섯 유명인의 등기 서류를 직장에서 슬쩍 했지만,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섯 번째 인물의 정보가 끼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지의 여인에 대해 알아내고자, 주제씨는 뜻밖의 여정을 시작하는데…….
와우! 워우! 으흠! 뭐랄까요?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1995’를 시작으로 ‘죽음의 중지 As intermitencias da morte, 2005’까지 작가의 책을 읽으며,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니라.’라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한 마침표를 확인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며, 소리 없는 감탄을 연발하고 말았는데요. 마치 ‘이것은 주제 사라마구 버전의 미생인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면 설명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였기에 그렇게 호들갑이냐구요? 음~ 내용 자체는 위의 간추림이 다입니다. 유명인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자필로 복사해 소장하는 취미를 가진, 등기국 직원인 주제 씨가 떠나는 ‘그녀’를 찾기 위한 여행기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중요한 건 그 여정 속에서 오고가는 대화와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개인기록이 전산화 되어있는 우리에게는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종이에 수기로 작성되어 보관되어있었는데요. 생사가 불분명한 여인을 두고 불법이나 다름없는 정보탐색의 과정이 펼쳐지자, 한 편의 느긋한 스릴러(?)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게 ‘미생’이란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보셨을 ‘미생’에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작은 제목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이번 작품에서도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하며, 사실상 죽어 있지만 그 죽음을 명확히 할 수 없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살아있는 건 살아있는 것이고, 죽어있는 건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꼭 그렇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으흠. 저의 모자라는 필력으로는 그것에 대해 의미를 전달하기 힘드니, 직접 작품을 통해 생각과 감상의 시간을 가져주셨으면 하는군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죽음의 중지’와 비슷한 것 같은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어떻냐구요? 음~ ‘죽음의 중지’는 어떤 특정 상황에 처한 사회현상과 그것을 지켜보는 초자연적 존재의 ‘실험무대’였다면, 이번 책은 ‘존재의 증명’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에서 언급되는 서류상의 혼란 때문에, ‘죽음의 중지’에서의 사신이 당황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다른 분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럼, 도서 ‘한국의 욕설백과, 1997’를 마저 읽어보겠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저는 오늘 본가에서 통풍매트를 가져왔는데,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오는 여름의 대비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TEXT No. 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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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고통에 무감각해진 우리를 위한 눈물겨운 탐구
한 개인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름을 부르면서 실질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은 한 개인의 총체적 존재의 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태생부터 이름을 불리면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어떠한 행위를 하였을 때, 가령 '윤정'이라는 사람이 피아노를 친다고 했을 때, 윤정은 '내가 피아노를 친다'라는 인식과 함께 '윤정이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도 함께 인식하게 된다. 사실상 모든 행위와 그 정의에는 이름이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름은 개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과는 독립적으로 '윤정'이란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이나 '반장'이라고 누군가를 부르는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저자인 '주제 사마라구'는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주제'가 겪는 일들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소통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보여준다.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 호적 등기 보관소에서 일하는 사무보조원이다. 중앙 호적 등기소는 모든 사람들의 정보에 대해서 꿰뚫고 있는 기관이다. 시종일관 주인공 '주제씨'를 제외한 그 어떤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 이 소설에서ㅡ'주제' 조차 풀 네임full name이 등장하지 않는다ㅡ 등장인물들의 역할은 '소장', '부소장', '가게직원'과 같이 직책이나 직업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중앙등기소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직업적인 요소외에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주제 씨가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아찔한 높이의 사다리를 오를 때에도, 직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며, 그가 다친다고 해도 그것은 업무상 재해에 불과할 것이다. 주제씨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겪는 두려움을 오히려 숨기는 것은 그것을 표현해도 허무함만이 그를 엄습할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을 때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겪는 어려움은 전혀 없다. 이 도시에서는 개인적인 인간관계 따위는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하며, 그들에게 이름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에 반해 중앙등기소가 모든 '이름'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앙 등기소는 '공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런 중앙 등기소에 대해 소설 속 인물들은 경외심을 갖는다. 개인들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앙등기소는 '권력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중앙 등기소에 쌓여있는 죽은자들의 서류와 산자들의 서류들은 거대한 탑처럼 서서 '주제'씨에게 알 수 없는 위압감과 두려움을 준다. 이 곳에서 우리가 가지는 이름은 인간애적인 요소를 박탈당한다.
주제씨는 중앙 등기소 옆에 붙어있는 작은 집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주제씨는 유명인사(예를 들면, 유명 축구 선수나 추기경)들의 이름과 사는곳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괴상한 취미를 갖고 있다. 정문을 통하지 않고 중앙등기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주제씨의 집에 연결되어있다는 특별한 조건은 이러한 취미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이런 병적인 취미생활은 '인간애'의 발현이다. 모든 것이 단절되어 있는 이 도시에서, 주제씨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통에 대한 욕구가 기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괴상한 수집활동을 통해 주제씨는 중앙등기소가 '공적인 것으로서' 가지고 있는 (인간애가 결핍된) 이름을 개인적인 것으로서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여느 때처럼 자료를 수집하고 돌아가다가 우연히 한 여인에 대한 기록부를 습득하게 된다.
" 오 하나님, 제가 만일 저 책장 속에 보관되어 있는 백 명 중의 하나, 아니 그보다 덜 유명한 다섯 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기만 해도 이런 수집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갑자기 저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처럼 바로보고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 -본문 中
주제씨는 병적으로 이 알지도 못하는 여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 '우연히' 그것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이것을 발견하는 사건은 인간적 소통을 가로막는 여러가지 공적인 장애물들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제씨가 삭막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여인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주제씨가 인간의 의미와 존재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며 표현하는 강렬한 고통은 독자들의 숨겨진 고민과 의식을 깨워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주인공 '주제'가 된 듯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탐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필자의 마음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문장과 함께 이 서평을 마친다.
' 그제서야 자신이 쥐어짜져 물이 줄줄 흐르는 스폰지처럼, 떄 묻은 몸과 고통받은 영혼이란 것을 깨달았다. '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Todos os nomes' 를 읽고나서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주제사라마구는 어린시절 눈먼자들의도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책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그후로 사라마구의 작품들을 쭉 읽기 시작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도 아주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