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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 | 교양인 | 2021년 5월 26일 한줄평 총점 0.0 (10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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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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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글을 쓰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는’
환골탈태, 재탄생의 과정이다

한국 사회의 상식과 통념을 흔드는 치열한 글쓰기를 지속해 온 여성학자 정희진은 자신이 편협하게, 편파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 있는 ‘편협한’ 독자다.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편안한 말, 기존의 언어나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책보다는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선호한다. 이런 책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격동’을 일으키고 긍정적 의미의 ‘스트레스와 자극’을 준다. 즉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 인생관이 뒤바뀌는 책이다.
그에게 편협한 책 읽기는 ‘독창적 글쓰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같은 책이어도 어떤 동기와 관점에서 읽느냐에 따라 글쓰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편협한 책 읽기는 ‘편협하지 않다’. 편협하게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계와 만나고 나의 사고방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독서력과 문장력은 사유의 방향을 바꾸는 문제의식, 질문, 재해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창작과 비평은 같은 말이 아닐까. 비평 자체가 독자적인 창작, 새로운 글이다. …… 내게 글쓰기는 입장과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 장르가 곧 내용인 것은 분명하지만 입장 없는 글쓰기는 어느 장르나 불가능하다. 창작으로서 비평, 예술로서 비평을 지향하는 나는 서평과 그 외 글을 구분하지 않는다. - 머리말·14, 15쪽

“서평이 없다면 텍스트는 맥락 없이 부유한다.
어떤 책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의 반응, 언급, 평가가 있어야 의미를 얻는다.”

정희진에게 글을 쓰는 목적은 ‘익숙한 것에 도전하고 다르게 생각하기’에 있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이러한 창의적 글쓰기의 예를 잘 보여주는 2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정희진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으며 인간과 사회의 ‘질’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용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대지의 딸》에서는 서평을 쓴 사람은 전체 독자를 대변하는 길잡이가 아니며 서평은 자기 자신의 입장과 맥락에서 출발하는 글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선녀는 참지 않았다》를 읽으면서는 새로운 상상을 떠올리려면 여성주의 시각 혹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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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_ 또 다른 창작, 서평
1장 아픔에게 말 걸기 - 온몸으로 견디며 쓴다
불안하지 않은 이들에게 권함 _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금 뭐하세요?” “아프고 있습니다.” _ 《통증 연대기》, 멜러니 선스트럼
모든 인간의 눈물은 무색이고 피는 빨갛다 _ 《세상과 나 사이》, 타네하시 코츠
가장 어려운 혁명, 내 몸 긍정하기 _ 《몸의 말들》, 강혜영 외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_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아픈 사람은 건강한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_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메이 외
모든 권력은 고통에서 온다 _ 〈얼음의 집〉, 《완전한 영혼》, 정찬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세상과 투쟁하기 _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2장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 통념을 부수는 글쓰기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하는 여성들 _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저출산의 간단한 이유, 노동하지 않는 남성 _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오지 않을 그날’까지 필요한 책 _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던
자연의 법칙은 누가 정하는가 _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마리 루티
다윈은 ‘우리 편’ _ ‘다윈의 대답’ 시리즈, 피터 싱어 외
뼈, 털, 집착, 욕, 비참함에 대한 이론 _ 《여성, 거세당하다》, 저메인 그리어
세상의 모든 페미니즘을 나의 것으로 _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여성도 한국인도 아닌 _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여지연
군 위안부 운동의 ‘희비극’ _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3장 마음과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 질문하고 해체하는 글쓰기
가장 글로컬했던 근대인 _ 《대화》, 리영희
침략국이 되지 못한 한국 남성의 ‘한 ’ _ 《1968년 2월 12일》, 고경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소설가 _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기술 시대, 가짜 감정의 의미 _ 《탈감정사회》,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
코로나는 거버넌스와 자유를 재정의했다 _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궈징
당사자의 글쓰기 _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태초에 목소리들이 있었다 _ 《선녀는 참지 않았다》, 구오
인생이 왜 이리 모순일까, 비참한 상황에서 나는 웃고 싶다 _ 《대지의 딸》, 애그니스 스메들리
여성의 몸 위에 세워진 국가 _ 《성의 역사학》, 후지메 유키
국가 안보와 젠더 _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홍세미 외
부록 _ 정희진이 읽은 책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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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정희진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출판사 리뷰

“서평은 독자적인 창작이자 새로운 글이다.”
육화된 책의 내용을 몸속에서 뽑아내는 일

정희진은 자신이 ‘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사고방식에 집중하는 필자이자, 고통과 몸, 권력과 지식, 젠더와 관계 등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인식틀로 삼아 온몸으로 견디고, 통념을 부수고, 질문을 던지며 써내려 간 그의 독후(讀後)의 기록이다. 페미니즘은 다른 세계, 몰랐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 충돌에서 최대한 심각한 부상을 입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이며, 그것이 자신을 진전시키는 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깊은 여운이 남고, 괴롭고 슬프고, 다양한 차원의 변화를 이끄는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가 글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성주의적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아는 한 페미니즘은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지식보다 수월(秀越)하다. 정치적, 이론적, 학문적으로 다른 어떤 언설보다 세련되고 앞서 있으며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참신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던지는 사상 체계다. 지식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면, 또 지식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지식이 사유 능력을 의미한다면 최소한 페미니즘을 따라올 지식은 없다. - ‘세상의 모든 페미니즘을 나의 것으로’·146쪽

정희진은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 실린 책이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책,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 책, 비판받아야 할 책도 있다. 정희진에 따르면 어떤 책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의 반응과 평가라는 ‘비평’의 과정이 있어야 책은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희진이 말하는 다양한 시각의 서평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공동체에 책과 서평이 필요한 이유는 사유의 방향을 틀기 위해서이다. 서평이 없다면 텍스트는 맥락 없이 부유한다. …… 해제가 필요한 이유는 책을 쉽게 읽기 위한 풀이라기보다 로컬의 상황, 즉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다. 맥락 없는 책 읽기처럼 위험한 일도 없다. - 머리말·20쪽

내용 구성

1장 아픔에게 말 걸기 _ 온몸으로 견디며 쓴다

1장에는 정희진이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주제”라고 밝힌 ‘고통’과 ‘몸’에 대해서 쓴 글이 실려 있다. 고통과 몸에 관한 연구는 곧 글쓰기의 문제와 연결된다. 군 위안부 여성의 고통스러운 경험,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모욕감, 정신 질환자와 암 환자의 통증, 장애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 고통받는 몸과 사람에 관한 글쓰기는 자기 연민과 호소, 고통을 들어주지 않는 이들을 향한 분노와 절망 등 수많은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희진은 고통과 몸에 관해 쓰면서 사회의 ‘크기’는 고통을 대하는 태도와 고통을 품을 용량에 의해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자신을, 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란 혁명에 준하는 발상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몸에 대해 쓰기, 말하기, 듣기가 필수적이다. ……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가장 어려운 혁명, 내 몸 긍정하기’·48쪽

모든 글에는 발신 주소(address)가 있지만, 특히 고통에 관한 글은 발화자가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글쓴이의 위치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을 팔거나 나의 고통만 중요한 글이 된다. 고통의 공감 불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고통받은 당사자만이 쓸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고통은 내 몸 안에 있지만 ‘나’라는 자아는 내 몸 밖,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다. - ‘두려운 것은 죽음보다 고통이다’·85, 86쪽

2장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_ 통념을 부수는 글쓰기

2장에는 자신의 경험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여성의 현실에 대한 정희진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글을 모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경험은 강자인 남성의 시각에서 해석된다. 저자는 자신이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쾌락’에 있다고 말한다. 지적인 쾌락, 분노가 선사하는 쾌락, 통념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쾌락이다. 지식으로서 페미니즘의 매력은 사회적 약자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는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여성의 현실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집 밖에서 죽으면 충격적인 사건이고, 집에서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맞으면 사소한 일인가. …… 장소는 중요하다. 사회는 남성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장소인 집 안에서의 폭력을 관용한다. 하지만 공권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거리에서 일어난 살인은 문제적이다. 남성 권력의 무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의 인권보다 ‘어디서 죽었는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하는 여성들’·104, 105쪽

어떤 관계든 간에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노동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냥 인간사다. 공적 영역에서는 그러한 노동이 위계화, 분업화, 분담화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급 문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생산 노동(육아)과 의식주 생활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닌 한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치우는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개인) 미달’이다. 그러므로 ‘주부’나 ‘아내’는 정체성도, 직업도, 지위도 될 수 없다. - ‘저출산의 간단한 이유, 노동하지 않는 남성’·112, 113쪽

3장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_ 질문하고 해체하는 글쓰기

3장은 익숙한 논리와 상투적 언어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사유로 나아간 사람들과 책에 관한 글을 모았다. 정희진에 따르면 익숙함은 사고를 고정시킨다. 쉽게 읽히는 글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폐쇄적인 한국 지식인 사회 바깥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냈던 탈식민주의자 리영희,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해체하는 글쓰기를 보여준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 페미니스트이자 성산업 종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대담하게 글로 쓴 레이첼 모랜은 주류와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는 글쓰기가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가 시대를 이끈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류 학문 밖에서 스스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썩어 있는’ 현재의 제도화된 학문 환경의 변화가 없다면 당분간 리영희 같은 독창적이고 진정성 넘치는 탈식민주의 지식인은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리영희는 보편과 초월을 욕망하는 여느 남성 지식인들과 다르게 ‘목소리(text)’는 ‘관계(con/text)’ 속에서만 들린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을 역사 ‘너머’가 아니라 철저히 역사 속에 위치시킨다. - ‘가장 글로컬했던 근대인’·178쪽

저자는 7년 동안 성산업에 종사했다. 글쓴이의 포지션, 누가 말하는가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주제이다. 경험은 정치적, 인식론적으로 선택되고 구성된 기억이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도 있지만, 실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없거나 쓰기 어려운 글이 훨씬 더 많다. …… ‘특별한 경험’을 겪은 당사자의 글쓰기는 이토록 어렵다. 오해와 낙인으로 가득한 고통스런 경험에 대한 글쓰기는 더욱 그렇다. 고립감, 자기 연민, 자기 방어, 자의식을 지양하는 글쓰기는 “죽었다 깨어났다”고 말하는 환골탈태, 재탄생의 과정이다. - ‘당사자의 글쓰기’·211, 212쪽

종이책 회원 리뷰 (10건)

파워문화리뷰 사회적 연대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23.01.15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단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도 물론 가까이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정, 정의, 자유, 객관적, 상식, 용서 등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낱말들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저한 자기반성 대신에 구체성도 없는 과대망상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어떤 이에 대하여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분별한 믿음을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그(또는 그녀)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그(또는 그녀)가 마치 정의의 화신인 양 인간 양심의 정수인 양 대우하는 것이다. 이런 몰상식한 처사가 선거판이나 특정인의 강연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만 한정하여 일어나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일상 다반사에서 늘 있는 일이다.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감정적'이고 사적인 글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줄거리가 없는 서평일 것이다. 이 글이 일반적인 형식의 해제인지 추천사인지 독후감인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고통에 대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고통에 대한 고통이란, 침묵과 망각 외에는 고통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용서'는 이 문제가 해결된 다음이어야 한다."  (p.50)

 

정희진 작가의 저서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지극히 사적이며 주관적인 글의 모음이다. 그래서 더 깊이 읽게 되는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개별적이며 완벽한 객관에 이른다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제되는 건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게 개별적인 타인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것에 대해 지루해하거나 죽을 때까지 그와 같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정희진 개인의 생각들을 쏟아낸 책이며 그래서 더 값지고 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 실린 27편의 글은 모두 정희진의 생각일 뿐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나 창작을 적당히 모방하거나 답습한 글은 단 한 편도 없다. 정희진의 덕후가 탄생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 글은 <대지의 딸>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좋은 서평은 결국 좋은 독후감이다. 독서 감상문은 쓰는 이 자신에게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성찰적이어야 한다. 독후감은 개인의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다시 말해 서평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의 독자일 뿐 독자를 대변하는 길잡이가 아니다."  (p.220)

 

작가는 자신이 '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사고방식에 집중하는 필자이자, 고통과 몸, 권력과 지식, 젠더와 관계 등 논쟁적인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백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리영희의 저서 <대화>에 대한 서평에서는 리영희에 대한 인간적 감정과 남자라는 사회적 우월성을 배제한 채 행복한 근대인으로서의 리영희, 권력의 주조 방식을 넘어서는 지성과 인식의 소유자, 한 개인이 특정한 시대에 어느 정도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최대치를 보여준 인물로서 존경의 마음을 내비친다.

 

"결국 나는 이 분열에 대해 쓴다. 모든 의미는 차이의 산물이며, 앎은 경계를 인식하는 데서 가능하다는 '진리'가 내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만용을 주었다. 텍스트와의 대화는 독자와 저자 간 갈등의 의미를 정치화함으로써 텍스트를 소통 가능한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것(mapping)이다."  (p.176)

 

나는 자신이 하는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하고 입만 벌리면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어느 정치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어느 당은 당원 전체가 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종종 전해 듣곤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낱말들을 나열하는 그의 연설 자체가 사기인 것처럼 당원들 모두가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것도 사기에 가깝다. 로봇이 아닌 이상,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인간이 어떻게 로봇처럼 일괄적인 대오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선전하는 정당은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괴멸한 것처럼 말이다. 정희진의 글이 이 시대에 귀하게 읽히는 까닭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과거로의 퇴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너와 다르고 너의 생각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탐구하는 것, 사회적 결합과 연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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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이 고른, 나를 소생시키는 책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키* | 2022.08.16


 

제목이 재미있다. '치열하게' 쓴다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데 '편협하게' 읽는다니 독자로서 괜찮을까. 알고보니 저자가 말하는 '편협하게'의 의미는 한 쪽으로 치우친 의견만 반영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편안한 말, 기존의 언어나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책보다는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선호한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저 그런 책 열 권을 읽느니 인생을 바꿀 만한 위력을 지닌 책 한 권을 읽겠다는 의지(혹은 읽고 싶다는 희망)의 표현이랄까. 그렇다면 나도 편협하게 읽는 독자가 되리...

 

저자는 여성학자이지만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특히 관심 있는 주제는 고통과 통증, 질병과 죽음, 이를 모두 아우르는 '몸'이다. 몸에는 얼굴도 포함되는데, 얼굴이 두꺼운 사람, 즉 뻔뻔한 사람일수록 그나마 적은 기회를 잡기 쉽고 물리력, 폭력, 권력을 행사하기 쉬운 것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 구조다. 반대로 얼굴이 두껍지 못한, 남을 괴롭히고는 발 뻗고 못 자는 양심의 소유자들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계층 구조의 하단부에 머무른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글을 쓰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결국 고통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60쪽 참고) 

 

남성 작가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저자는 리영희 대기자의 책 <대화>를 읽고 이렇게 썼다. "물론 그는 충분히 성찰적인 남성이지만, 그의 위대함은 성별화된 공/사 영역 분리로 인해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업적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80쪽) 위대한(혹은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남성(작가)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들이 여성이었다면 남성일 때와 같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고, 같은 수준의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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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3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싱* | 2022.03.03

치료’(해방)란 예전으로 돌아가는 정상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다. (27)

 

몸은 언제나 해석이다. (39)

 

인생은 ’, ‘’, ‘몸의 글사이에서 하는 방황이다. (43)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48)

 

일상은 지속되기 때문에 정치의 최종 심급이자 가장 치열한 정치다. (53)

 

재현은 모두 환골탈태, 기억, 몸의 형태가 바뀌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61)

 

어쩌면 인문학의 위기는 무식한 데다 권력욕에 눈이 충혈된 채 이리저리 날뛰는 이들을 정면할 언어의 부재가 아닐까. (78-79)

 

나는 인간과 사회의 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지성의 용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85)

 

고통은 나눌 수 없다. 육체의 통약 불가능성 때문이다. 개인들, 몸들 간의 공통분모는 없다. (87)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인지되고 해석된다. (102)

 

문제는 구조다. (106)

 

인간의 해방과 자유는 추구하는 내내 달성할 수 없는 과정의 정치이다...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영원히 필요하며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16-117)

 

과학자들 정치가든 자기가 사는 사회의 언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힘의 원리만이 동물의 세계를 지배한다는 가정이고... 동물에게는 정치가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모두 자기 생각을 자연(타자)에 투사하는 것이다. (123-124)

 

어떤 학문 분야에서나 모든 이론은 매순간 운동하는 세계를 영원으로 고정시키려는 욕망 행위다.... 그러므로 확실함에 대한 추구는 소통의 가장 큰 장애물일 뿐만 아니라 지성의 독이다. (127)

 

몸은 사회적 기억이다. (135)

 

세상에는 현장에 따라 수많은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점이지만, 페미니즘의 정수는 스스로 내파와 파생을 거듭하는 지식(형성)이라는 데 있다. (151)

 

외롭고 지겨운 노동의 연속, 이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이다. 슬픔은 삶에 어쩌다 닥치는 불행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슬픔을 외면한다. (222)

 

모든 사회적 모순은 상호 의존적이다. (223)

 

지금 우리의 외부는 북한, 일본, 검찰, 그리고 미디어(‘조중동’)가 아닐까. ‘진실과 사실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위 네 집단의 입장이 유일한 기준으로서, 그들과 같은/다른 의견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잣대가 된다... 이 같은 진영 논리는 역설적으로 검찰과 보수 언론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은 언론플레이를 하고, 보수 언론은 (취재라기보다는) 수사를 한다. (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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