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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정희진 “글쓰기는 약자가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
2020년 04월 10일
[예스24 인문 MD 손민규 추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2020년 03월 11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정희진 님의 글쓰기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정희진 님이 읽은 여러 가지 책들을 바탕으로 여성, 장애, 우울, 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그만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다. 그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다. 그중에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주제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글쓰기'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적’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왜 약자는 글을 써야 하는가? 강자에게 폭력이라는 무기가 있다면, 약자는 글쓰기라는 무기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약자는, 여성은 글을 써야 한다.
‘쉬운 글은 속임수’ 이론의 대표 주자는 탈식민주의 비평가 가야트리 스피박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백인 남성의 인식이 쉽고 투명해 보이는 것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보편적인 언어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 것인데도 불안하고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보편적인 여성 혐오적 발언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틈조차 없이 너무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여성들은, 약자들은 고되고 힘들더라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분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정의하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된다.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다. ‘남성’은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면을 보면 기가 차지도 않다. 한국 여성들은 고작 머리 스타일로 생존을 위협받는 위치에 있는데도 약자임을 부정당한다. 어떤 글을 얼마나 써야 나도 이 약자로서의 무기를 갈고 닦을 수 있을까.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일상이 너무 피곤하다 보니 그 여파로 병렬독서를 이것저것 찍먹하며 풍차 돌리기 수준으로 읽고 있는데 언제 다 완독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출퇴근하며 짬짬이 읽고 있는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이번 편의 부제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부터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끊임없이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준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었다. 문명 속 차별의식을 곱씹고, 그에 대항하는 나만의 언어를 갖기. 읽으면서 <재현> 의 문제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룬 텍스트들을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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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에 쓴 서평 묶음집이라는데 현재(정치)에 대입해도 무방할 말들이라 소름끼쳤다. 오지라퍼의 성향을 어쩌지 못하고 헤매는 요즘이다. 말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바쁜 지인에게 글을 쓰라고 권해서.. 보호자 역할을 대행하던 사람이 사라져서.. 갑작스런 의료진 교체로 심란하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았다. 특정 후보를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여러모로 아닌 사람이 집계 현황에서 선두로 달리는 게 불편하고 걱정돼서 뒤숭숭함을 핑계 삼아 방황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읽은 정희진의 글이 나를 중심 잡게 한다. 공통으로 모아볼 수 있는 철학과 소신을 토대로 날카로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다시 암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와 국민의 집단 지성과 성찰을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지금 느끼는 슬픔과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아주 나쁜 것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감정과 이성을 잘 써서 삼월 구일 날개 없는 추락만은 막자.
마음이 없는 리더. 그런 리더를 선택하는 사회. 두렵고 심각한 현상이다... 이미 극소수는 양극화를 넘어 다른 공간에 산다. (31)
언제 어디서나 모욕이 일상인 사회다... 그 정도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기한테도 불리한 오버를 할까. (42)
세상의 기능을 자기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경지. 남의 생명과 상처는 귀찮을 지경이다. 시야는 미간의 폭보다 좁아져 점이 되었다. (43)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55)
착취와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나 자연을 통제하는 사고방식, 이것이 포식이다. (60)
지금 여기는 각자도생,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는 곳이다. 공식적, 비공식적 약탈 능력과 무지가 권력인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 일상이다. (75)
그런데 세상이 좋은 글로 충만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리 글쓰기 책을 읽고 노력한대 해도 자기를 이기기는 힘든가보다. 나도 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르침대로 쓰지 못하고 성질대로 쓰다가 길을 잃는다. (89)
글쓰기 자체가 사회를 다시 짓는 과정이다...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90-91)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이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95)
대한민국은 정말 생각이 필요하다. 답이 안 나오는 나라지만 그럴수록 더욱 생각하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101-102)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 것인데도 불안하게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109)
그러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빈 머리(익숙함)에 의존하지 말고 생각하고 발언하라. (109)
삶은 옳고 그름이나 일의 가치를 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전쟁은 이런 것이 있다는 가정, 즉 정치경제적 이유와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 (124)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 (132)
같은 몸은 없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135)
성별, 장애, 외모의 위계는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141)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타인의 속으로 들어가야 타인의 현실을 알 수 있다. (148)
더구나 ‘악’은 원래 이해 불가능한 인간사다. 이해는 밑에 서야 보인다(under/stand). (152)
인간은 제도의 산물이다. (154)
보편성은 언제나 특수성이라는 범주를 고안하여 권력이 필요에 따라 특정한 인간을 배제한다. (155-156)
모욕 주기는 권력 남용을 넘어 인간성 타락이다. (158)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상부상조와 이를 지지하는 사회. 이것이 정의다. (180)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194)
실력도 없고 불성실한 데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의 ‘출세에 미친’ 인재(재앙)들이 인재 행세를 하고... 능력 없고 부패한 자의 자신감이 곳곳에서 칼과 돈, 웃음을 팔고 있다. (196-197)
회피와 침묵. 비는 계속 내리는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있을까. (208)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215)
세월호가 정치권 핵심부의 비리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