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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정희진 “글쓰기는 약자가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
2020년 04월 10일
[예스24 인문 MD 손민규 추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2020년 03월 11일
세월호 이후에 쓴 서평 묶음집이라는데 현재(정치)에 대입해도 무방할 말들이라 소름끼쳤다. 오지라퍼의 성향을 어쩌지 못하고 헤매는 요즘이다. 말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바쁜 지인에게 글을 쓰라고 권해서.. 보호자 역할을 대행하던 사람이 사라져서.. 갑작스런 의료진 교체로 심란하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았다. 특정 후보를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여러모로 아닌 사람이 집계 현황에서 선두로 달리는 게 불편하고 걱정돼서 뒤숭숭함을 핑계 삼아 방황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읽은 정희진의 글이 나를 중심 잡게 한다. 공통으로 모아볼 수 있는 철학과 소신을 토대로 날카로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다시 암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와 국민의 집단 지성과 성찰을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지금 느끼는 슬픔과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아주 나쁜 것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감정과 이성을 잘 써서 삼월 구일 날개 없는 추락만은 막자.
마음이 없는 리더. 그런 리더를 선택하는 사회. 두렵고 심각한 현상이다... 이미 극소수는 양극화를 넘어 다른 공간에 산다. (31)
언제 어디서나 모욕이 일상인 사회다... 그 정도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기한테도 불리한 오버를 할까. (42)
세상의 기능을 자기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경지. 남의 생명과 상처는 귀찮을 지경이다. 시야는 미간의 폭보다 좁아져 점이 되었다. (43)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55)
착취와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나 자연을 통제하는 사고방식, 이것이 포식이다. (60)
지금 여기는 각자도생,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는 곳이다. 공식적, 비공식적 약탈 능력과 무지가 권력인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 일상이다. (75)
그런데 세상이 좋은 글로 충만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리 글쓰기 책을 읽고 노력한대 해도 자기를 이기기는 힘든가보다. 나도 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르침대로 쓰지 못하고 성질대로 쓰다가 길을 잃는다. (89)
글쓰기 자체가 사회를 다시 짓는 과정이다...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90-91)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이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95)
대한민국은 정말 생각이 필요하다. 답이 안 나오는 나라지만 그럴수록 더욱 생각하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101-102)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 것인데도 불안하게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109)
그러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빈 머리(익숙함)에 의존하지 말고 생각하고 발언하라. (109)
삶은 옳고 그름이나 일의 가치를 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전쟁은 이런 것이 있다는 가정, 즉 정치경제적 이유와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 (124)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 (132)
같은 몸은 없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135)
성별, 장애, 외모의 위계는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141)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타인의 속으로 들어가야 타인의 현실을 알 수 있다. (148)
더구나 ‘악’은 원래 이해 불가능한 인간사다. 이해는 밑에 서야 보인다(under/stand). (152)
인간은 제도의 산물이다. (154)
보편성은 언제나 특수성이라는 범주를 고안하여 권력이 필요에 따라 특정한 인간을 배제한다. (155-156)
모욕 주기는 권력 남용을 넘어 인간성 타락이다. (158)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상부상조와 이를 지지하는 사회. 이것이 정의다. (180)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194)
실력도 없고 불성실한 데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의 ‘출세에 미친’ 인재(재앙)들이 인재 행세를 하고... 능력 없고 부패한 자의 자신감이 곳곳에서 칼과 돈, 웃음을 팔고 있다. (196-197)
회피와 침묵. 비는 계속 내리는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있을까. (208)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215)
세월호가 정치권 핵심부의 비리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235)
책의 첫부분부터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문장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적'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 p.14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형식의 책은 아니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 되겠구나를 알게 해준다. 더불어서 글쓰기에 도움이 될 가치 있는 소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책에 등장하는 자료들을 따라서 읽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사회와 사람을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을까 싶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나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슬픈내용이 많다. 하지만, 작가가 그것을 충분히 꼬집어주고 있기 때문에 어떨때는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아프니? 나는 안 아픈데. 마음을 비우면 되거든." 시장에 넘치는 힐링서 중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문제를 피해자의 마음 탓으로 돌리는 책들이 많다. 어디를 비우라고? 마음은 몸인데 비우면 죽지 않을까? (남들에게 비우라고 말하기 전에 '멘토'들은 자기 마음, 아니 통장부터 비우기 바란다.) - p.192
글쓰기 시리즈의 첫편이고, 그 뒤로도 후속편들이 나왔다고 알고 있는데 차근차근히 모두 읽어보고 싶다. 다 읽고 나면 적어도 문장 한 줄 정도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
예스24의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인문" 분야를 거쳐 최종적으로 "글쓰기 일반"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다. 작문을 주로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저자가 읽은 책의 내용과 서평에 기반하여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는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나는 이 책을 보는 동안 인문·사회학 서적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면서 그 문장을 통해 나의 태도와 시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취는, 글쓰기를 대하는 각오나 마음가짐뿐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상의 단면을 다른 시각으로 전복하여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16쪽), 곱게 늙는다는 말의 차별과 폭력성(82-83쪽), 희망의 허상과 오해(94쪽),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것의 배타성(127-128쪽),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라는 경구에 대한 비판, 평화에 대한 해석과 재정의(139쪽), 사회 구조와 개인의 관계성(63쪽, 207쪽) 등, 나의 사유가 얼마나 얕은지 책을 읽는 매 순간 무자비하게 깨닫는다.
문장도 너무 좋다. 다 옮기지 못해 몇 자만 적어본다.
16쪽.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23쪽.
삶과 죽음의 유일한 차이는 행이든 불행이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36쪽.
매체가 많아지고 간편해질수록, 사용자가 많아지고 중독될수록 소통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51쪽.
사회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83쪽.
이 책의 주인공들은 ‘노년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사는 아름다운 개인일 뿐이다.
93쪽.
희망은 삶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을 집약한다. 미래 지향, 긍정, 바람...... 사람들은 이 말을 편애한다. 희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표현 그대로 생각하면 절망(切望)이 희망적이다.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105쪽.
그들의 시간은 사회의 것이다. 근대 초기 미국에서 초등학교 의무 교육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도 주부와 노예는 예외였다.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문명인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의식은 문명의 몇 배를 앞서간다.
115쪽.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도, 너무 가까운 이야기도 감상을 방해한다. 지식은 중간에서 나온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
127쪽.
삶과 실제 길은 다르다. 길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길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
128쪽.
길이 막힌 사람에게 길은 비유가 될 수 없다. (중략) 이처럼 비유는 종종 비윤리적이다.
139쪽.
평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평화는 인간의 심장이 꺼질 때에야 찾아온다.
(중략)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148쪽.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149쪽.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
151쪽.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인생의 책'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저자'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155쪽.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란 질문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질문 자체가 폭력인데 답할 필요가 있을까. 나라면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에 반대한다."고 말할 것이다.
192쪽.
복수하거나 참거나. 상반되는 대처 방식 같지만 둘 다 피해자만 파괴된다.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206쪽.
빗소리는 비의 지문이다. 비가 닿는 곳에 따라 빗소리는 만 가지 소리를 낸다.
207쪽.
비가 피할 수 없는 구조라면 빗소리는 구조에 대한 개인의 반응이다. 그래서 비 온 뒤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작가는 114쪽에서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말이 정확하게 표현된 글을 읽을 때 살아 있는 기쁨을 느낀다"고 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마음을 느꼈다. 저자의 치열한 사유의 산물인 문장들 속에서 공감하고 분노하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다. 내가 감히 이 책을 고통과 공감의 윤리학으로 칭하여도 될까.
사회적 약자로서 나 또한 나만의 무기를 갈고 닦기 위한 수련을 지속해 나가고 싶다. 좋은 글들을 나침반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