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분야 전체
크레마클럽 허브

리센코의 망령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

로렌 그레이엄 저/이종식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5일 한줄평 총점 0.0 (2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2건)
  •  eBook 리뷰 (0건)
  •  한줄평 (0건)
분야
자연과학 > 생명과학
파일정보
EPUB(DRM) 71.90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책 소개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 리센코,
그가 옳았다고?

리센코는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다. 우리에게 리센코는 20세기 중반 소련 생물학계를 망하게 만든 원흉으로 알려졌다. 스탈린의 비호 아래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비롯해 자신의 반대편에 있던 과학자들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리센코가 옳았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었다.

“현대생물학에 의해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의 진리가 확인되었다.”
“센세이션!: 리센코 원사가 옳았던 것으로 드러나!”
“트로핌, 당신이 옳았소!”
“위대한 생물학자 리센코를 기리며”

러시아 언론이나 블로그에서 리센코를 재평가하며 붙인 제목이다. 리센코가 옳았다고? 이제 와서? 논란의 발단은 후성유전학이다. 리센코를 ‘틀린’ 과학자로 규정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획득 형질 유전설’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주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리센코는 당시 서방에서 주류를 이루던 다윈주의 유전학을 거부하고 획득 형질도 유전된다는 일종의 후성유전학을 받아들였다. 다윈주의 유전학에서는 획득 형질의 유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서방 세계의 과학자들에게는 틀린 이론을 붙들고 자국의 과학계를 좌지우지한 리센코가 공포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 것으로 보이는, 후성유전학으로 설명해야 할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비록 리센코가 정치적으로 ‘나쁜’ 과학자였을지언정, ‘틀린’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인가? 리센코는 수많은 비운의 선지자들처럼,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할 운명을 지녔던 걸까?

이 책은 ‘리센코는 옳았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당시 러시아 생물학계의 상황, 후성유전학의 전통, 리센코의 이론, 소비에트 과학계의 모순, 현재 러시아의 실상을 폭넓게 조망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리센코 현상’은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미스터리 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곁들이며 리센코 현상에 숨어 있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리센코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과학과 정치, 국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구조가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 질문의 답은 명확해질 것이다. 리센코는 옳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

목차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서론

1장 시베리아의 다정한 여우들
2장 획득 형질의 유전
3장 생물학계의 이단아 파울 캄머러
4장 1920년대 러시아 인간 유전 대논쟁
5장 리센코와의 조우
6장 리센코의 생물학
7장 후성유전학
8장 리센코주의의 부활
9장 신리센코주의의 충격
10장 반리센코주의적 획득 형질의 유전

결론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2명)

저 : 로렌 그레이엄 (Loren Graham)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과학기술학 및 하버드대학교 과학사 명예교수이다. 1933년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나 1955년 퍼듀대학교에서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1964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인디애나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MIT, 하버드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영미권에서 소련 및 러시아 과학사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원로학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소련과학원과 공산당, 1927~1932(The Soviet Academy of Sciences and the Communist Party, 1927-1932)』(1967), 『소련의 과학과 철학(Sc...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과학기술학 및 하버드대학교 과학사 명예교수이다. 1933년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나 1955년 퍼듀대학교에서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1964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인디애나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MIT, 하버드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영미권에서 소련 및 러시아 과학사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원로학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소련과학원과 공산당, 1927~1932(The Soviet Academy of Sciences and the Communist Party, 1927-1932)』(1967), 『소련의 과학과 철학(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Soviet Union)』(1972),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1993), 『우리는 러시아의 경험으로부터 과학과 기술에 대해 무엇을 배웠나(What Have We Learned about Science and Technology from the Russian Experience?)』(1998) 등이 있다. 2016년에 출간된 『리센코의 망령』은 그의 최신 단행본 연구서이다. 고령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정정한 모습으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곳곳에 나타나 후학들을 격려해 주었으며, 이 책의 한국어판의 실물을 받아보기를 고대하고 있다.
역 : 이종식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회주의, 과학, 농업, 동물, 건강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 간의 역사적 상관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주로 중국과 베트남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사의 연장선에서 리센코주의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으며, 중국과 베트남에서의 리센코주의 및 소련 토양학의 수용에 관한 논문인 「주의주의적 생산주의와 변증유물론의 결합: 사회주의 중국과 북베트남에서의 리센코주의의 인식론적 토대(Dialectical Materialism Serves Voluntarist...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회주의, 과학, 농업, 동물, 건강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 간의 역사적 상관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주로 중국과 베트남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사의 연장선에서 리센코주의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으며, 중국과 베트남에서의 리센코주의 및 소련 토양학의 수용에 관한 논문인 「주의주의적 생산주의와 변증유물론의 결합: 사회주의 중국과 북베트남에서의 리센코주의의 인식론적 토대(Dialectical Materialism Serves Voluntarist Productivism: The Epistemic Foundation of Lysenkoism in Socialist China and North Vietnam)」를 미국 《생물학사 저널(the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에 발표했다. 공역서로 『사회정의와 건강: 사회 불의에 맞서 어떻게 건강을 지킬 것인가?』(한울, 2021)가 있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삶의 의지로 가득 찬 중국 공유경제 공동체를 배경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돌봄, 폭력, 유대, 착취, 노동, 희생을 다룬 박사 논문 「인민을 넘어서는 인민공사: 수의 노동자들, 동물들, 그리고 일상 속의 마오주의(More-than-People’s Communes: Veterinary Workers, Animals, and Everyday Maoism)」를 준비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후성유전학의 전통
후성유전학과 러시아 생물학, 그리고 우생학

리센코의 현상을 이해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제반 사항이 있다. 바로 후성유전학과 20세기 초반 러시아 생물학계의 상황이다. 획득 형질의 유전에 관한 믿음은, 그것을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2000년이 넘도록 거의 보편적으로 유지되어 온 관념”이었다.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찰스 라이엘도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고 믿었다. 심지어는 다윈도 자신의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부 변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획득 형질의 유전을 수용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획득 형질이 유전한다는 관념은 라마르크가 내세운 이론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라마르크 이전에도 획득 형질이 유전한다는 관념을 받아들인 생물학자는 많았고, 그런 전통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는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후반까지 러시아에서는 라마르크주의와 다윈주의 간의 모순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어쨌든 둘 다 ‘진화론’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힘을 얻으며 획득 형질 유전에 관한 이론이 비판을 받기 시작했지만 라마르크주의자들이 많던 러시아에서는 라마르크주의에 유리한 방식으로 최신 유전학을 수용했다. 요컨대 소련 내에서 획득 형질 유전의 중요성은 리센코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유전학이 발전함에 따라 떠오르던 우생학은 정치적으로 여러 논란을 일으킨다. 생물학이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커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만 우생학적 기획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우생학을 적용하려던 생물학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복잡한 과학적?정치적 지형이 리센코주의가 태동할 토양이 되었다.


논란의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다
역사가의 앞에 둔 리센코의 변명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가장 손에 땀을 쥐는 대목은 저자인 로렌 그레이엄이 리센코가 직접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책을 쓴 로렌 그레이엄은 1933년생으로 90세를 넘긴 노학자다. 영미권에서 러시아 과학사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1년 어느 날 그는 러시아 최고 도서관인 레닌도서관에서 리센코에 대해 연구하다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과학자의 집’이라는 레스토랑을 찾는다. 그곳에서 이미 명예가 실추된, 평생의 연구 대상인 리센코를 직면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눈다. 리센코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리센코가 악명을 떨치게 된 행위를 한 개인적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책이기도 역사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토리텔링에 매우 신경을 쓴다. 단순히 상황을 서술하거나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를 부각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하지만 ‘리센코는 옳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리센코가 내세운 이론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한 장을 할애해 리센코의 연구 방식, 이론의 핵심, 결론, 파급 효과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리센코 이론은 신화화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현대유전학과 결정적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이 부분 때문에 서방 세계 과학자들은 리센코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논란의 한 축을 담당하는 후성유전학도 다룬다. 현대 후성유전학이 등장하고 발달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기초적인 수준에서 후성유전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리센코주의와의 관련성을 논한다.

현재진행형인 리센코주의의 논란들
리센코주의는 러시아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리센코의 망령』은 국내에는 처음으로 번역 출간된 리센코에 관한 단행본 분량의 책이다. ‘리센코’라는 이름을 아는 국내 독자들은 대부분 그 이름을 생물학이나 과학사 책에서 스쳐가듯 보았을 것이다. 예전 소련에 리센코라는 가짜 과학자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소련 생물학계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정도의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리센코’라는 이름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그를 집중적으로 다룬 단행본이 이제라도 출간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지적하는 건, 이게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리센코와 관련된 논란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의미 또한 매우 중층적이다.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리센코와 관련된 논란은 역사적인 맥락에서뿐 아니라 현재적인 맥락에서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진다.
일단 러시아 내에서 극우 공산주의(자칫 형용 모순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현재 러시아의 상황에서는 성립될 수 있다) 성향의 세력이 리센코를 복권시킴으로써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스탈린 시대의 향수를 일으키려 한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리센코가 옳았고, 리센코에 힘을 실어줬던 스탈린 체제도 옳았다는 논리 구조는 이들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반대로 러시아 주류 유전학계에서는 리센코가 옳았다는 결론을 지지하게 될까 봐 후성유전학 연구를 기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후성유전학의 주요한 사례가 될 수 있는 기근 연구가 러시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그것이 리센코주의를 확증할까 두려워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러시아 내부의 종교, 정치 상황 때문에 후성유전학의 연구가 왜곡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리센코의 망령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 과학사에 나타나는 여러 부조리를 알 수 있다. 몇 번이고 강조되는, ‘용례(usage)’가 ‘정확성(accuracy)’을 압도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라마르크는 획득 형질 유전설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획득 형질 유전설’을 ‘라마르크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리센코는 획득 형질 유전설을 신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리센코 또한 라마르크주의자였어야 한다. 그런데 리센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마르크주의적 관점에서 행해진 작업에서는 그 어떠한 긍정적인 결과도 얻을 수 없다.” 이게 말이 되는가? ‘획득 형질 유전설’을 ‘라마르크주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이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린다. 라마르크는 당대를 대표하는 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였고, 획득 형질 유전설은 그가 주장한 다양한 이론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획득 형질 유전설과 라마르크주의를 동일하게 취급하기엔, 획득 형질 유전설을 주장한 다른 생물학자도 매우 많았고 라마르크의 이론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일반 대중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획득 형질 유전설과 라마르크주의를 동일시한다. 용례가 정확성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과학자보다는 과학사가들이 더 잘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와 과학의 관계,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공모를 리센코 현상처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심심치 않게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 발견을 했다는 뉴스를 본다. 많은 경우 과학적 발견의 내용이나 과정보다는 그 발견이 향후 이뤄낼 수 있는 성과나 ‘한국인’이 그 발견을 해냈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곤 한다. 그러니까 과학이 한국인의 긍지나 위상을 높여주는 수단으로써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뉴스 수용자 입장에서 과학적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엄청난 발견이라든지, 한국인이 이룬 업적이라는 건 눈길을 끌기 쉽다. 다행인 것은 한국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최근 리센코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을 이런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 상처를 간직한 러시아 과학계는 후성유전학의 발전을 아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리센코의 사례를 마냥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도 황우석의 그림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차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만큼 과학과 역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사점을 던지는 연구도 많지 않을 것이다.



종이책 회원 리뷰 (2건)

파워문화리뷰 리센코는 여전히 틀렸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e*a | 2021.12.30


 

 

라마르크는 진화론의 선구자 역할을 했음에도 약간은 조롱받는다.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걸 바탕으로 진화를 설명했다는 이유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그의 설명은 터무니없다는 투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사실은 다윈도 유전의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을 옹호했다(물론 그것으로 다윈의 업적이 폄훼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한 비판, 내지는 조롱은 21세기 들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이른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등장 때문이다. 후성유전학은 DNA의 서열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변화된 특성(분자생물학적으로는 메틸기의 첨가, 혹은 상실 때문에 일어난다)이 적어도 몇 세대는 유전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라마르크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사실은 라마르크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독창적으로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의 저서에서 강조한 것도 아니었지만, 라마르크와 획득형질의 유전을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공식화되어버렸다. 이를 로렌 그레이엄은 용례(usage)가 정확성(accuracy)를 압도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예를 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들고 있다).

 

후성유전학의 등장과 발전은 라마르크를 복권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부이지만) 리센코까지도 무덤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트로핌 리센코. 그는 누구인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유전학계, 아니 생물학계, 아니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멘델과 그 이후 서구에서 발달한 유전학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수많은 학자들을 숙청하는 데 일조함으로써(물론 자신은 부정했지만) 소련의 생물학을 퇴보시켰다. 그런데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획득형질의 유전에 기초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고, 획득형질의 유전을 부분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후성유전학의 등장은 리센코가 옳았다!”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련 과학사의 대가 로렌 그레이엄은 과연 리센코를 복권시켜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러시아 내지는 소련 유전학의 역사, 현대 유전학의 역사, 그리고 현대 후성유전학의 의미 등을 종합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선 리센코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했다는 것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다. 당시 획득형질의 유전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개념이었다. 러시아 혹은 소련의 유전학자들은 더욱더 그랬다. 물론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개념은 점점 쇠퇴해가는 실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리센코의 주장은 동시대 생물학자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획득형질의 유전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독창적인 것은 있었다. 한 종을 다른 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그랬다. 세균 등에서 인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일을 리센코가 식물에서 만들어낸 적은 없다. 그래서 로렌 그레이엄은 그가 옳았던 부분에 있어서 그는 독창적이지 않았다. 그가 독창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옳지 않았다(Where he was right, he was not original; where he was original, he was not right.)”라고 표현하고 있다.

 

후성유전학과 리센코를 연결시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후성유전학은 멘델에서 시작한 고전 유전학의 전통에서 발달했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후성유전학이 나올 수 있었지만, 리센코는 분자생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한 후성유전학의 많은 연구 업적과 문헌들이 리센코를 언급하는 일도 없다. 다만 리센코를 복권시키고자 애를 쓰는 측에서(주로 러시아의 일부 과학자 내지는 종교인) 후성유전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부적절하게.

 

리센코가 소련 유전학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숙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는 리센코 자신의 주장도 로렌 그레이엄은 한 마디로 비판하고 있다.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스스로 그들을 사형장으로, 유형장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고발은 언제나 권력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으며, 늘 실제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그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과학을 정치에 귀속시켰다.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로렌 그레이엄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리센코는 여전히 틀렸으며, 리센코주의의 복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결론 맺는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는 과학을 위협하는 것이 정치일 수도, 종교일 수도, 문화일 수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 자체가 과학을 위협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리센코의 망령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9***d | 2021.11.29

트로핌 리센코.. 제목에서 그 이름을 듣자 가물가물하게 가라앉아 있었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소련에서 종자은행을 설리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니콜라이 바빌로프 입니다.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로서 1926년에 파블롭스크 실험국을 만들었고,
이 기관은 세계 최초 종자 은행이며, 종자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였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에게 숙청되어 굶주림과 질병으로 비참하게 사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과학자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는 당시 스탈린의 총애를 받으면서
소비에트 과학자의 새로운 모범이었던 트로핌 데비소비치 리센코의 책임이 컸습니다.

 

리센코는 춘화처리라는 기법으로 씨앗을 개량하였고 당시 후생유전은 불가능하다는 주류 유전학을 비판하였습니다.
이는 과학적인 연구 활동이 아닌 당시 소련의 정치적 이념, 혈통이 아닌 무산자 계급이 자력으로 다할수 있다는 방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묘했던게 유전학의 발전이 혈통을 중시하는 우생학을 낳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 우생학이 파시즘과 결합해서 온갖 해악을 끼친게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었습니다.

 

하여간 리센코는  태어나서 노력을 획득된 형질도 물려줄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같이 불가능하다는게 주류였지요.

 

그러나 최근 유전자 연구가 진전되면서 후생획득설이 탄생하고 일부는 유전이 되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리센코가 다시 주목을 받는 기류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기류에 관해서 이 책의 저자 로렌 그레이엄은 리센코의 문제점을 제대로 밝히고 그렇지 않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유전자 연구에 기반한 후생획득설과 별개로 리센코의 주장들은 당시 수준으로도 미흡한 연구 방법에 기반한 결과였습니다.
그 연구의 조잡함과 문제점을 속속들히 밝히고 당시 소련의 프로파간다가 리센코를 지지한 이유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리센코를 다시 주목하고 불려내려는 러시아내 집단이 어떤 이들이 밝히고 그들이 어떤 의도인지도 밝히고 있습니다.

 

과학에 지나친 국가주의를 불러넣으면 어떤 사태를 빚어내는지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된 적이 있습니다.

 

흥미로왔던 점은 저자가 직접 말년의 리센코를 만나서 언쟁을 벌인 점입니다.

 

바빌로프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고 자신의 공산당원도 아니었다는 주장을 늘여놓은 리센코에게
저자는 당시 스탈린도 참석한 회의에서 공개적인 연설로 바빌로프를 비난했고
비밀경찰에 대한 고발을 통한 수법을 밝히면서 반발합니다.


최근 유사과학이 설치고 과학외적인 요소로 과학을 이용하려는 세태가 있는 시기에 적절한 내용인듯 합니다.

 

한번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더욱 많이 알려졌으며 합니다. 분량이 좀 아쉽네요. 

 

당시 유전학이나 정치적 상황등.. 얽혀 있는 이야기의 규모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  종이책 상품상세 페이지에서 더 많은 리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한줄평 (0건)

0/5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