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김호연 저
백온유 저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간호사 경력 40년, 돌본 환자 수 5만여 명.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숫자 앞에서 이미 존경심이 드는 퇴직 간호사 전지은님의 에세이다.
한국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콜로라도 소재의 병원 중환자실에서만 20년을 근무한 베테랑. 그가 맞닥뜨린 무수한 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를 일깨워 준다.
병원에서 유일한 한국인 간호사였던 그가 영어가 서툰 한국인 환자를 돕는 것을 일순위로 삼고 이국 땅에서 느끼는 애달픔을 이민자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특히 감동이 컸다.
시인이셨던 아버지가 서른 셋에 돌아가시고 당시 서른이 채 되지 않았던 어머니가 세 살배기 저자를 외할머니와 함께 키운 가족사도 담담하게 들려주는데, 어머니가 잡지에 기고하셨던 글과 그 안에 실린 아버지의 시가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책에는 기구하거나 애잔하거나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드라마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를 하늘나라에서 만날 때 고운 모습이고 싶다며 화장을 지우지 않고 수술실에 들어갔던 환자 이야기, 60년을 함께 산 부부가 한날 한시에 떠난 사연, 암에 걸려 입원한 환자가 치매로 요양병원에 홀로 있는 남편을 걱정하던 사연, 장기기증을 약속하는 뭉클한 리빙 윌(Living will 생전 유서)을 남긴 환자 이야기, 자식이 있지만 전 재산을 병원에 기부하기로 한 전직 간호사 이야기 등..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 보게 되는 글, 내 삶의 마지막에는 후회가 없기를,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떠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글이다.
응급실 이야기를 다룬 남궁인 선생님의 <만약은 없다>에 이어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지막은 어떠하길 바라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할 때 유서를 써보고, 연명치료를 받을 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미리 해놔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삶의 이유를 모르겠을 때, 마음 속에 불이 났을 때 식혀줄 수 있는 책이다.
p.5
죽음은 본인에게는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 어떤 삶을 살았든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은 채 평화롭게 인생의 한 점을 찍고 있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평온의 상태. 그 상태가 되면 오롯이 그들만의 모습이 되었다. 절대적 평온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난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p.말과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 살아 내는 방법으로 선택했던 간호사의 일은, 그들의 사연을 만나면서 삶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것을 알게 했다. 엄마의 마음, 자식의 도리, 사랑의 위대함,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존감 등등. 그리고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최선을 다해 헤쳐 나가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p.58
임종을 할 때, 사람의 감각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이 청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환자가 듣는 이야기에 말로 대답은 못 하더라도 신체 반응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p.112
난 무심코 그런 이야길 했다. 하늘이 사람을 부를 때는, 착한 순서로 부르는 것 같다고.
갓 태어난 아기들이 하늘나라로 갈 땐 천사처럼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배냇짓하던 모습으로 떠나간다. 조금 더 자란 어린 아이들이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
그러나 어른들의 죽음은 간혹 옆에 있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집착에 가까운 삶에 대한 욕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만 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할 때도 있다.
p.123
서서히 온기를 잃어가는 모습에서 평화를 배운다면 너무 모진 말일까. 평화 가운데서 무릎 꿇고 있는 가족들의 숙연함. 그것도 사랑이리라.
p.147
나는 중환자실에서 오래 일한 탓인지 이미 오래전에 리빙 윌을 만들어 두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우리 둘은 서로가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고 싶은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마지막을 보낼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 놓는 것, 육체와 정신이 건강했을 때 정해 놓아야 목숨을 잡고 끝까지 버티는 모순을 피할 수 있다.
.
.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아직도 코로나19는 우리 주위에서 떠날 생각이 없나보다. 확진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는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고, 이제 곧 '위드 코로나'의 국면에 접어들 거라고는 하나 아직도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되니 말이다. 물론 한창 확진자가 급증하고 코로나19가 우리의 코밑까지 가까이 오는 듯한 공포감에 휩싸이던 때에 비하면 그야말로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나는 아직도 두렵기만 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던 우리에게 '코로나 19'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현장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내몰린 이들과 함께 하며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숭고한 사명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였을까? 40년차 간호사가 기록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반짝이는 마음들'이라는 부제에 시선이 꽂히며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한국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했으며 미국에 건너가 계속 간호사 일을 하다보니 햇수로 41년을 간호사로 근무한 저자. 그녀가 돌본 환자 수만 5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녀의 표현대로 '간호사로 산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보다 길어'졌으니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을 환자들과 함께 했는지 알고도 남겠다.
저자는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 펜로즈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겸 상담가 역할을 하는 케이스 매니저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써 왔다. 그것도 그냥 글쓰기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국내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을 하며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나 그녀가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담겨있는 이 책은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순간에 그들이 남긴 말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할 정도로 큰 울림을 준다.
60년을 함께 살았던 노부부, 자신의 의지와 달리 할아버지의 의지로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해 온 할머니는 아픔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뒤늦게야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고, 사랑의 미련을 내려놓으며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인생의 마지막 배웅 길에 그들이 남기는 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이는 사랑을, 어떤 이는 감사를, 어떤 이는 미안함을 남긴다. 그리고 그곳에 삶이, 사랑이 있다. - p. 8~9 中 - |
40대 중반이 되고 나니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도 조금은 달라진 기분이다. 이제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간 이 앙 다물고 두 손 불끈 쥐고 전반전을 달려왔다면 이젠 몸에서 힘을 좀 빼고 싶다. 어깨에서도, 눈에서도, 입가에서도, 두 손에서도. 그리고 한껏 유연해진 입으로 가족들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싶다. 사실 '사랑한다'고 말하는게 나에겐 세상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간접적으로 만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표현하라고. 시간이 우리에게 무한정 있는 게 아니라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저자를 비롯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좀 더 많이 사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미련없이 용서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책장을 덮어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