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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500년 역사가 답하는 리더십의 왕도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8일 한줄평 총점 0.0 (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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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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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누군가 리더의 왕도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조선을 보게 하라!
최태성 소장, 썬킴 교수, 박시백 화백 추천!
KBS [역사저널 그날], JTBC [차이나는 클라스]의
조선 전문가 신병주 교수가 전하는 왕의 리더십

자타공인 조선 역사의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가 베스트셀러 『왕으로 산다는 것』에 새로운 내용을 더해 개정판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500여 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8개의 분류로 나누어 소개한다.

아들도 예외 없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를 행동으로 실천한 왕, 태조
조선시대에 유급휴가가 있었다는데? 백년대계 인재를 양성한 왕, 세종
아버지 세종을 보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화차·측우기를 발명한 왕, 문종
술자리를 정치의 장으로 활용하며 강한 이미지를 희석했던 왕, 세조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임진왜란 시기 분조를 지휘하며 민심을 얻은 왕, 광해군
탕평하는 한편 조선판 뉴딜 정책 '청계천 준천 사업'을 펼쳤던 서민 군주, 영조

왕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의 리더십은 국가의 성패를 가름했다. 조선은 500년 이상 장수한 왕조였고, 27명의 왕이 재위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왕들은 체제의 정비가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고, 강력한 개혁이 요구되던 시기를 살기도 했다. 태종이나 세조처럼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야 했던 왕, 세종이나 성종처럼 체제와 문물의 정비에 총력을 쏟았던 왕이 있었고, 광해군이나 선조처럼 개혁이 시대적 요구가 되던 시대를 살아간 왕도 있었다. 선조와 같이 전란을 겪고 수습해야 했던 왕, 인조처럼 적장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왕, 원인은 달랐지만 부왕의 복수와 명예 회복을 위해 살아간 효종과 정조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왕의 인간적인 이모저모와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함께 풀어내어 왕의 선택에 숨은 행간의 의미를 흥미롭게 파헤쳤다. 그 시대를 살아간 왕의 발자취를 더욱 풍성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 자료도 함께 실었다.

왕의 시행착오에 무임승차하라!

어지러이 흩어지는 현실의 정치를 보자면, 우리 역사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살펴보게 된다. 역사 속 리더십은 왜 그렇게 발현될 수밖에 없었을까?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조선을 살던 왕과 현대 사회를 사는 리더의 고민은 그 결이 비슷하다. 이미 조선의 왕은 같은 땅에서 동일한 문제를 고민했고, 어떤 형태로든 역사로 답을 알려주었다. 조선시대 왕의 리더십에 대해서 더욱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왕의 모습과 그 리더십이 현재에 지니는 의미들을 생각하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 지혜를 빌려보자.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들어가며

제1장 창업과 수성, 나라를 세우고 지키다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오지 않은 까닭은?
태종, 인공하천 청계천을 조성하다
인간 세종에게 다가왔던 시련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한 까닭은?
준비된 왕세자, 문종
세조가 술자리를 자주 베푼 까닭은?
성종, 장인 한명회의 빛과 그늘
성종이 왕비에게 사약을 내린 까닭은?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5대 왕 문종의 어필

제2장 사화와 당쟁, 갈등과 반복의 시대

연산군의 흥청망청 독재정치
중종과 조광조의 위험한 동거
명종의 어머니, 여걸 문정왕후
선조의 즉위와 당쟁의 시작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9대 왕 성종의 어필

제3장 왜란과 호란의 시대

임진왜란과 선조의 피난, 리더의 부재를 알리다
정통성 시비에 발목 잡힌 광해군, 빛과 그림자
광해군의 탁월한 외교 감각, 전쟁을 억제하다
1623년 3월 인조, 반정에 직접 참여하다
인조, 두 차례의 호란을 당하다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어필

제4장 북벌과 이념의 시대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효종의 즉위와 북벌
하멜의 표류와 효종의 나선정벌
현종이 왕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한 까닭은?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어필

제5장 부국과 중흥의 시대

14세의 카리스마, 숙종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상평통보의 유통
숙종 시대의 국방 강화와 지도 제작
영조의 즉위와 탕평책의 실천
서민을 위했던 왕, 영조와 균역법
영조가 청계천 준천 사업을 실시한 까닭은?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어필

제6장 개혁, 정치와 문화의 부흥

정조의 즉위와 개혁정치의 산실, 규장각
정조 시대의 편찬 사업과 문화 중흥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까닭은?
1795년 정조, 화성 행차를 단행하다
1791년의 신해통공, 경제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다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18대 왕 현종의 어필

제7장 시련, 나라가 기울고 백성이 신음하다

1800년 개혁군주 정조의 승하
순조의 즉위와 세도정치의 시작
순조,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을 명하다
헌종과 낙선재, 그리고 경빈 김씨
강화도령 철종, 왕이 되다
1862년 진주 민란, 전국을 휩쓸다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어필

제8장 개항과 근대

흥선대원군의 아들, 왕이 되다
고종과 명성황후, 동반자인가 경쟁자인가?
고종,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다
고종, 강제 퇴위를 당하다
고종을 기억하는 공간들
마지막 황제, 순종
조선 왕실의 마지막 사람들
쉬어가는 페이지_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어필

맺으며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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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신병주 (申炳周)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매뉴얼의 힘, 조선 왕실 의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매뉴얼의 힘, 조선 왕실 의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왕비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왕으로 산다는 것》,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56개의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 왕실의 보물, 의궤》, 《조선평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분열을 봉합하라!”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왕의 인간적인 이모저모와 숨겨진 일화까지

“고사성어 ‘흥청망청’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타공인 조선시대의 가장 잘생긴 신하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수도를 버린 왕은?”


사학자 신병주 교수의 대표 베스트셀러 『왕으로 산다는 것』이 더 깔끔한 디자인과 새로운 내용으로 읽기 쉽게 재탄생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군 세종, 문종의 이야기를 더했다. 무엇보다 책에서 왕이 살아 움직여 흥미롭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교과서에 나열되어있는 ‘사실’로 배우고 접하는 경우가 많다. 재미를 더하고, 이유를 알아야 역사적인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들도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같은 땅에서 역사를 만든 조상의 지혜를 재미나게 소개한다. 그중에는 ‘청계천’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은 태종, 영조 시대에 걸쳐서 만들어진 인공 하천임을 모른다. 그래서 청계천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천거해서 수리했다’는 뜻의 ‘개천’으로 불렸던 청계천이 어떻게 조성되고 이름이 붙여졌는지 자초지종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또 5장에서는 영조가 홍수로 자주 범람해서 국가적인 문제였던 청계천을 본격적으로 개보수한 과정을 소개했다. 영조의 ‘청계천 준천 사업’은 서민의 삶의 터전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야말로 조선판 뉴딜 정책이었다. 이렇게 독자는 텍스트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유기적으로 엮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종으로도, 횡으로도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조선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매사가 쉬웠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각 시대마다 복잡한 정황이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때로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선보였고, 왕권에 맞서는 신권에 대해 대응하며 조정자의 역할도 했다. 모든 왕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폈다. 하지만 대동법과 균역법처럼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서 성공한 정책도 있었고, 무리한 토목 공사와 천도처럼 실패한 정책도 있었다. 이렇듯 체제의 안정과 개혁의 중심에 국가의 리더, 왕이 있었다. 과거이든 현재이든 리더의 고충은 같다. 결국 세상사를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 같은 땅에서 같은 고민을 했던 조상의 혜안을 빌려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나가면 어떨까.

종이책 회원 리뷰 (4건)

왕으로 산다는 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k*******2 | 2023.07.31

 

 

 

한양으로 천도한 후 해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 피해가 심해지자 태종은 보다 근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또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신하들에게 공표했다. 1411년 윤12월 1일 태종은 "해마다 장맛비에 시내가 불어나 물이 넘쳐민가가 침몰되니, 밤낮으로 근심이 되어 개천 길을 열고자 한 지가 오래이다. 지금 이 개천을 파는 일이 백성에게 폐해가 없겠능가> 아직 후년을 기다리거나 혹 자손 대에 이르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아직 후년을 기다리거나 혹 자손 대에 이르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하면서 개천 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이것이 백성들에게 부담아 되지 않을지 염려했다. 태조의 대표적 참모 하륜은"기쁨으로 백성을 부리고, 백성을 적당한 시기에 부리는 것은 예전의 도입니다. 만일 의리에 합한다면, 비록 칼날에 죽더라도 또한 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29-)

불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만큼 세조에게는 늘 정통성 시비가 따라 붙었다. 1456년 (세조 2년)에는 성삼문, 박팽년 등이 중심이 되어 단종 복위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세조에게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세조는 문종, 단종 이후 추락한 왕권 회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육조직계체를 부활시키는가 하며 <경국대전>,<동국통감. 과 같은 편찬사업을 주도하여 왕조의 기틀을 잡아갔다. (-55-)

"왕비 윤씨는 후궁으로부터 드디어 중전의 자리에 올랐으나, 내조하는 공은 없고, 도리어 투기하는 마음만 가지어, 지난 정유년(1477) 에는 몰래 독약을 품고서 궁인을 해치고자 하다가 음모가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내가 이를 폐하고자 했다. 그러니 조정의 대신들이 함께 청하여 개과천선하기를 바랐으며,나도 폐출하는 것은 큰일이고 허물은 또한 고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 감히 결단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뉘우쳐 고칠 마음은 가지지 않하고, 덕을 잃음이 더욱 심해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결단코 위로는 종묘를 이어 받들고 , 아래로는 국가에 모범이 될 수가 없으므로, 이에 성화 15년(1479) 6월 2일에 윤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다. 아, 법에 칠거지악이 있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사사로움이 있겠는가? 일은 반드시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니, 만세를 위해 염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72-)

일견 광해군은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연목대비를 거궁에 유폐하면서 정통성 시비를 없앤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이 두 사건은 오히려 광해군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결집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서인과 남인이 비밀 회합을 하면서, 정권 타도에 나섰고, 마침내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134-)

16세기 이래로 재야의 사림파 학자들은 사육신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의 정신을 따르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국가에서 이를 공인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육신의 복권은 노산군이 단종으로 명에를 회복하는 길과 맞물려 있었다. 사육신을 국가적으로 포상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어느 왕도 사육신을 '국가의 충신'으로 공인하는데는 주저했다. 그런데 230여 년이 지난 후, 숙종 스스로가 총대를 맸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 사육신의 관직을 회복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230-)

조선의 왕은 태조 이성계에서 시작하여, 순조 순조 (純祖) 이공(李?)에 이르기까지 27 대 임금을 모셔왔다.이 중에서, 세 명의 왕 , 단종(노산군) 과 연산군, 그리고 광해군을 주목해 보았다. 성리학, 유교의 나라 조선은 이 세 임금을 왕으로서 자격을 박탈하였고, 노산군, 연산군,광해군으로 명명하였으며, 그들의 업적은 노산군 일기, 연산군 일기, 광해군 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이 사화에 연루되었던 이유는 세 임금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가정환경과 연결되고 있다. 단종복위 운동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금성군이 이끄는 단종 복위운동은 실패로 끝났으며, 순흥도호부가 불타버린다.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의 칠거지악에 의해 폐위되었고, 윤씨가 폐위 된 사실을 연산군에겐 함구를 지시했다.하지만 권력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연산군에게 윤씨 폐위를 발설하였고, 조선 시대 4대 사화중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를 일으켜 피비린내 나는 연산군의 폭정이 조선시대에 일어났으며, 연산군은 곧 폐위되고 말았다.

한편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종식하였고, 탁월한 외교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된 이후 ,자신이 해오던 일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데, 광해군에게 왕으로서의 자격을 물은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으로 인해,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연목대비를 거궁에 유폐하기에 이르렀다.즉 역사적으로 볼 때, 광해군은 연산군과 다르다. 단 자신이 왕으로서, 서열 2위에 해당된다는 것은 재임 내내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두번의 왕자의 난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조선시대의 성군이 되었던 것처럼,광해군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창대군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서인이 주도한 인조 반정(1623년) 성공으로 인해 폐위되었다. 역사는 아이러니 하다.유투브를 볼 때, 억울하고 ,최악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을 때, 어느 한 순간을 잘 넘어갔더라면, 역사의 큰 물줄기가 바뀔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지혜와 성찰을 얻기 위함이다..과거의 잘잘못을 답습하지 않은 것, 같은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의 줄기를 만들어 나가기 함이다. 그것이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 속에서 , 우리가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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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리뷰] 왕으로 산다는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c********5 | 2023.07.23
왕르로 산다는건

본 서형은 출판사의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조선 시대의. 왕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 조선의 왕의 국정을 운영 해야 하는

왕의 모습과. 그 외에 왕으로 올라오기 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쉬운것도 아닐것이다.

또한 왕이 되면 모든걸 마음대로 할수 있을것 같지만 신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살이 너무 심하면 자기 뜻대로 진행을 할수가 없다

이 왕들도 대단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쓸거를 생각하면 어찌 보면 이것도 스트레스 쌓이는 직업일듯 하다

15 ~ 16 페이지 왕자의 난의 서막이라는 소제목에서 처럼.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간의. 갈등은 단순한 갈등에서 시작 된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충효 사상이 있는 아버지와 새로운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앞을 막는자는 제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방원 과의 대립이다

이방원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지. 않고 조선을 개국 했을때 게속 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사사건건 방해할 가능성이 많았을걸로

생각한 방원은 훗날 집권 하여 방해하는 세력을 줄이러고 했고 이러한 생각 차익라 결국은 비극의 시작이 된것은. 아닐까?

23페이지 무학댁사도 처음에는 태조에게 가서 설득 하는 일에 대해서 사신들이 가면 다 죽어서 오는 일이 있기 때문에

자기도 가서 어떻게 설득 하지도 모르고 혹여 자기도 죽임을 당할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읅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 해도 지금.시대에 생각 해도 나 같아도 가기 싫을거 같다 아마도 고믾이

깊었을 것이다. 고민 끝에 가서 태조를 긴긴 설득끝에 그래도 귀경 하게 만들었으니 함흥차사를 끝내는

계기를 만들었지 않은가 어쨋건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하나 풀어 낸 샘이지 않을까?

111페이지 선조는 다른 형제 들에 비애 학문 실력이 뛰어 나서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를 받아 춧날 선조가 된다

하지만 왕이 학문만 안다고 국정운영을 할수 없는 것인데 그게 선조의 무능함의 시작 이었을지 모른다.

115 페이지 선조가 즉위 하고 이후에 문을 중시하고 무 즉 국방을 무시. 하면서 나라의 국방이 약해지다 보니 훗날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데 단초를 제공 했는지도 모른다

123페이지 전쟁이 시작 되자 마자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는 있었으나 상대의 밀려 오는 기에세 의해 속절 없이 밀리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124~125페이지 선조는 왕으로서 지금 같으면 대통령이다 현대의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전쟁이 낫다고 해도 수도를 지키면서 군사들을 지위하면서 더이상 침략하지 못하게 방어를 하거나 혹은 최적의 전략을

세워 상대를 공격하기도 해야 하는데 수도를 방어 하기 보단 자기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 했는지.

자기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간다 결국 백성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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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조선 500년 역사가 답하는 리더십의 왕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b******g | 2023.04.19
저자 #신병주 교수님은 이야기꾼이다. 꾸밈이나 과장이 없고, 가만히 듣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를 전한다. 특히 #왕으로산다는것 내용은 조선 500년 역사를 통해 리더십에 대해 답하고 있다. 삶은 정치의 연속이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현 시점보다 더 먼 미래의 몫이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현 시점을 비추고 미래에 과오를 덜 남기고자 한다. 현재를 살아가며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다. 선과 악, 옮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으로 나뉘어 지지 않기에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뒷걸음 친 듯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혼돈 자체인 것 같지만 인류의 시간 전체로 보면, 엎치락뒤치락 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도 답을 찾고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 있듯이 #조선500년역사 #조선왕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리더십의 왕도를 찾아본다. 왕이 리더로서 가졌던 능력도 살피지만 시대를 읽고 리더로서 갖춰야 할 소양, 감각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발굴된 인재와 함께 사회의 변혁을 이끌었던 역사적 판단 및 안목을 제시한다. 정치 및 사회 분야가 시끄러운 소식으로 가득할수록 고전과 역사 이야기를 찾는 이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답없는 상황과 이들을 선별하는 능력을 우리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맛깔나는 강의로 유명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가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 #신병주 교수님의 강의를 글로 보는 재미가 여기에 있다. 왕의 업적이나 제도를 외우는 것에 그쳤던 과거 역사 학습과 달리, 왕의 행적과 판단의 이유를 들여다보고, 시대적 상황 뿐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 펼쳐진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하였다. 단, 전문적 지식과 해석보다는 시대를 읽는 안목을 기르는 역사를 보여준다.

■ 세조는 술자리를 정치의 장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했다. 홍윤성과 같은 측근 신하가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자, 세조는 직접 홍윤성을 불러 벌주를 내리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도록 했다. 또한 세조는 술자리를 신하들의 장점을 칭찬하는 자리로 활용하기도 했다. 궁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흥이 나면 교외에서 신하들을 불러 술자리를 자주 베풀었다. (세조, 61p)

■ 중종은 반정에 의해 추대된 왕이었으나, 왕권 추구라는 왕의 본능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광조는 '개혁'에는 동의했지만 왕권을 점차 제한하고 신권을 강화하려는 입장이었으므로, 점차 중종과 조광조의 사이는 멀어졌다. 조광조는 개혁정치의 완성을 위해서 신권을 포기하지 않는 소신의 정치인이었다. (중종, 97p)


■ 당파 간의 학문적인 경쟁과 대립도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성리학이 이론적으로 강화되고 이황, 조식, 이이, 성혼 가은 학자들이 배출되는 '빛'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 사회가 전체적으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게 되면서 국방 약화를 가져오는 '그늘'도 양산했다. (선조, 115p)

■ 서인의 논리에는 효종의 왕통보다 가통을 우선시하는 입장과 함께, 신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종, 206p)

■ 1728년(영조 4) 의욕적으로 추진된 탕평책은 이인좌, 정희량, 박필몽 등 소론과 남인 급진파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 일으킨 무신란(이인좌의 난)으로 위기를 맞았다. .....중략..... 영조는 당쟁이 백성들을 반란 세력에게 합류시킨 일차 원인임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당과 사를 옹호하지 말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협력해 중흥의 기틀을 삼자고 호소했다. 무신란을 계기로 당파를 철폐하고자 하는 영조의 정치적 승부수였다. (영조, 252-253p)

■ 어머니와 아버지의 회갑이라는 의미가 있는 해를 맞이하여, 화성의 행궁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성대히 열며 지극한 효성을 표현했다. 또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화성의 현륭원을 참배했다. ...중략.... 정조는 이 행차를 통해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자신의 친위 군대를 중심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자 했다. (정조, 313p)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역대 왕으로부터 폭정으로 지탄받는 이들, 굴곡의 역사를 너머 변혁의 시대를 이끌어낸 이들, 경술국치 전후로 풍전등화였던 나라의 위기 속 역사까지 500년 역사를 담았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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