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사라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에세이 『집이라는 그리운 말』
2023년 03월 29일
“주택에서 자랐어요.”라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것을 부러워하던 내가? 정말로? 왜? 어째서 말야?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택에 사는 것이 로망이 된 시대가 되면서부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치곤 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게 되면 좋았던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유년 시절, 엄마가 “저녁을 지어야 하니 친구들이랑 좀 더 놀다 와.”라고 말을 하면 나는 부리나케 골목길을 와다다다 내달리며 모기차를 따라나섰다.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의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500m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놀아도. (가장 기억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아마도 겁이 많아서 혹은 운동신경이 없어서) 나 혼자만 담을 넘지 못해 빙 둘러 가야 했던 그 길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보다 하고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때를 회상해 본다.
집,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은데 그중 한여름에 너무나도 더웠던 집안의 꽉 막힌 공기.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습하고 눅눅하고 어쩐지 떽떽거리는 것 같던 더운 공기 말이다. 자다가도 몇 번이나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짓을 스물다섯 살까지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집에 에어컨을 놓기 전까지. 아니, 그마저도 에어컨 평형수를 잘못 구매해서(에어컨을 처분할 때까지 그 이유를 몰랐다) 에어컨 구매한답시고 돈은 돈대로 쓰고, 집은 시원하지도 않고, 주택이라 누진세는 열심히 붙고, 에어컨이 있는데도 집이 시원하지 않다며 에어컨이 고장 난 거 아니냐는 부모님의 볼멘소리에 그럴 거면 아빠 엄마가 사지 왜 안 샀냐고 버럭 하던 나. 그 여름. 나는 그전까지 여름에는 다들 이러고 사나보다,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며 J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때가 생각이 나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 여름이 싫은 이유와 지금 여름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금은 물먹은 솜사탕 같은 습도가 싫다면, 그때는 여름 그 자체가 싫었다. 정말이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춥냐면, 웃풍이 엄청났다. 아파트의 웃풍과 오래된 주택의 웃풍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이 덜덜덜 떨리는데 오죽하면 이놈의 집이 잘못 지어진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보일러를 틀어도 확 따듯해지지도 않았고, 따듯하지 않은 채로 가스비는 20만 원을 훌쩍 넘어 30만 원, 40만 원도 우스웠다. 매해 겨울은 추웠기에, 보일러실의 보일러가 얼어서 부모님은 드라이기와 뜨거운 물들을 받아다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물을 뜨겁게 데우면서 저놈의 보일러는 얼어도 문제고 터져도 문제네 생각했었다. 그걸 못 봐주겠다 생각했는지 엄마는 어느 날 집에 난로를 들였는데, 그게 연탄난로였다. 그 안에 고구마도 넣어 구워 먹기도 하고, 그 위에는 떡을 구워 먹기도 하고, 주전자를 올려놓고 끓이며 집안에 수증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게 따듯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훈훈했지만, 전기매트는 필수적으로 틀어놔야 하는 정도. 아마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여전히 그 연탄난로를 쓰고 계셨겠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때의 집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던 우리 집. 하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게다가 적어도 이웃 주민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것 자체를 불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공선옥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던 내 유년 시절에 대해 민망하게도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불우했다고 표현하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해 어쭙잖게 연민을 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쓰인 문장들과 내 생각이나 감정이 일치할 때마다 나는 안타깝게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라는걸.
11. 뭔가 포근하고 좋은 것들이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조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자연히 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초조, 긴장, 두려움들. 나는 나의 장소,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도 딱 그랬다.
특히 집 밑에 있는 슈퍼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싸움이 일어날 때면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어둠을 타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거의 대부분 딴짓을 하고 있는 내 방 창문에 똑똑 노크를 해왔다. 혹여라도 나의 아빠도 그곳에 끼어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그 생각도 잠시, 그러거나 말거나 귀를 틀어막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이 되면 신탄진역과 대전역을 오가는 기차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 소리가 내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는데, 지긋지긋하게 참 오래 살았다.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려나 하고.
79.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난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집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집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집과 나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내가 노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고향을 꼽았다. 그 생각은 몇 년째 굳건했고 그렇기에 변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불현듯 그때의 그곳이 지금의 그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장소도, 많이 바뀌고 있고 바뀔 테니까. 내가 모르는 곳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인 화가 송현숙도 고향 무월리는 언제든지 돌아갈 곳,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을 테지만 직접 목격한 무월리는 그곳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결국은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겠지. 그래서 조금 유연하게 흘러가는대로 두려 한다. 아직 노년이 멀기도 했거니와 세상에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어쩌면 안일한 생각을 기반으로.
몇 년 전에 읽은 김미월 작가의 <여덟 번째 방>과 최근에 읽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차례로 떠올랐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집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기승전 집이 되는 세상. 결국 집은 무엇인가ㅡ 다시 원질문으로 돌아왔다.
오탈자 ; 79.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 우산으로써
_책 속의 문장
8. 고향을 생각하고, 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있는 스산함. 황량함의 감정을 나는 쉽게 말해오진 못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93. 산다는 것은 복불복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그러니,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과연 천운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99. 인생에도 확실히 막간은 필요하다.
잠시 쉬는 시간, 독일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파우제라고 했다. 파우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다.
221.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떠돌았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늘 ‘이방인’ 같을 수밖에 없었다.
- 뚜덕뚜덕 지은 집
- 싸목싸목 : 천천히의 방언(전남)
그분이 살고 있던 집은 논길을 돌아 주택들이 여러 채 있던 곳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었다. 흰색 벽이었고, 자그마한 이층집이었다. 제일 큰 공간은 서재였다. 책장이 한 곳에 자리 잡고 길다란 책상이 있던 곳. 넓은 공간 한쪽에는 소파가 있었던 거로 기억된다. 2층의 방 들을 포함해 1층의 방은 작았다. 잠깐 낮잠을 자도 좋을 곳. 고양이들이 좋아할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부엌. 창문이 커, 창문을 통해 밖으로 음식을 내보낼 수도 있었던 곳. 목재로 된 식탁에서 김장 김치를 꺼내놓고 뜨거운 밥을 먹었다.
책을 읽는데 어쩐지 그 공간이 자꾸 떠올랐다. 눈이 와 녹은 마당이 질척거렸고, 개가 한 마리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만의 집을 갖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유심히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저 이 공간이 아름답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최근 집들에 관한 에세이를 몇 편 읽게 되었다. 집을 추억한다는 건 시절을 추억한다는 거다. 집은 우리가 거쳐온 공간이다. 가족의 기억들을.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 유년시절의 우리가 있다.
사랑과 행복 가득한 집보다는 햇볕이 들지 않아 오히려 추운 집의 시간을 그린다. 그곳에는 엄마, 아빠가 계셨던 곳. 시골이라 책 한 권을 구하기 어려운 시간을 기억한다. 전남 곡성의 서향집에서부터 작가가 머물렀던 집들은 비록 화려한 집은 아니었고, 소박한 공간일망정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작가가 존재할지 모른다.
태어나서 열일곱 살 때까지 살던 집, 그 뒤로 거친 여러 집. 그리고 방황하듯 여러 도시를 떠돌았던 집. 그리고 현재의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건넨다. 작가가 살고 있는 집은 수북이라는 곳으로 할머니들과의 일화를 말하는데 상당히 다정하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글을 쓸 때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엄마들이 했던 말들. 할머니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옮겼는데 정감있다. 책에서 보는 전라도 사투리가 이렇게 정감있게 들려온 적이 없다.
순하디순한 전라도 엄마들의 말이 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자식들에게 ‘아가’라는 호칭을 썼는데 그 호칭은 자식들의 나이가 서른 살이 넘어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다정하고도 애정이 넘치는 ‘악아 혹은 아가’라는 말. 다시는 들을 일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79페이지)
작가의 다정한 언어들을 계속 읽었으면 싶었다. 할머니들뿐인 동네여도 소소한 일상들을 글로 남겼으면 하고 바랐다. 책을 읽고 동생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여 다시 한번 그 집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띄워 주소를 검색해보고는 곧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장소? 오래전에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다. 시골의 바닷가 마을. 엄마의 산소에 갈 때 한 번씩 가보게 되는데 집터만 있는 곳을 바라보아도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게 된다. 집은 그리움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리운 시절이 있는 곳. 그게 바로 집이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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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이야기인데 떠돌며 살아 온 이야기가 더 진하게 강하게 느껴지는 글이다. 사용해 본 적 없는 표현, ‘세상을 떠돈다’라는 구절이 생각날 만큼.
떠돌며 살기로 치자면 지구촌 여기저기를 오가면 산 한 때의 나도, 한반도에서 전라도 빼고는 이래저래 연고가 있는 나도 만만치는 않지만, 내게는 잠시 혹은 상당히 오래 머문 집들이 특별한 애정과 추억으로 글로 남지 않았다.
이사가 아니라 근무지에 따른 임시주거공간의 의미였고 원래 집이란 짐 맡기고 잠자고 세탁이나 하는 공간이었을 시간도 짧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진짜’집이라고 느끼는 곳들은 정해져 있었다. 조부모님 댁과 부모님 댁,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집들이고 불안과 걱정 대신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도와줄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었던 진짜 집이고 고향이었다.
양쪽 조부모님들이 모두 소천하시자 본가만 덩그러니 남았고 부모님 노화와 건강 약화로 간편한(?) 아파트로 이사한 뒤 우리 모두의 집은 사라지고 물리적 공간에 담겼던 추억도 흩어졌다.
떠난 분들이 그리운 만큼 따뜻하고 다정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좋은 날 좋은 일에 모이던 그 집들이 그리워서... 왜 사는 공간이 생각이 만남이 내 깜냥 마냥 쪼그라들기만 하는지 속이 상한다.
공선옥 작가는 떠돈 이야기, 살아 온 삶과 머문 집들을 글로 남겨 불멸의 생을 주었다. 모든 집들이 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한 이유와 영감이 되었다.
“호기를 부렸던 딱 그만큼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다. 내가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절대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나의 평소 비관론을 확인하려고 온 것만 같았다. 나에게 ‘내 집’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요령껏 나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인 양 쓰고 살아야지 무슨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
불편한 집은 있어도 부끄러운 집은 무엇인가 반발하고 싶은 나조차 툴툴 거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낸 이야기들이 조곤조곤 정겹다.
“안락하지도, 안정적이지도, 고요하지도 않았던 나의 거처들, 나의 시간들. 그리고 내 주위를 음산하게 배회하던 그것, 불안의 그림자. 그런 결과로 나는 내가 거쳐온 지리적, 장소적 공간들에 그리고 시간들에 썩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나는 나의 장소,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집이란 무엇일까. 특히나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버린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두어 해전인가 부동산 실태 조사 보도를 보니 아파트를 100채도 넘게 가진 이가 있었다. 그에겐 집이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부동산 자산 말고 어딘가에 소중하게 여기는 집이 있을까.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가 사회안전망이 되지 못하고, 하필이면 부동산 장사로 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고착된 한국의 형편이 난감하다. 그 대가가 꿈과 삶을 몽땅 바치라하니 동화 속 악당의 요구보다 더 악랄하다. 주인공도 영웅도 현자도 해피엔딩도 없이 삶을 갈아 넣다 영혼까지 바쳐야 한다.
이런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울음을 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사는 어른들은 어떤 울음을 넘기고 있는지.
공선옥 저자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만 알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아쉬워한다. 자식 먹일 밥상을 차리려 뼈가 녹도록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 끝에 돌아가셨다.
저자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라 방언은 그 정서를 다 녹여낼 수 있도록 녹진하다는데 나는 말맛을 볼 줄 몰라 조금 서럽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 집도 표정이 있다. 때로는 집이 말도 한다. 집은 웃는다. 집은 울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집이 내게는 얼마나 미운 집이고 미운 만큼 얼마나 정다운 집인지.”
춥고 덥고 슬프고 서럽던 시절이 머무는 책이 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