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한화택 저
"조금 고통이 느슨해지면 죽은 듯이 잠에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통증의 파도가 밀려오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중략)...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얇고 노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순록의 달(Reindeer Moon)'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2편 332~333쪽.
한국에서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많이 읽힌 소설의 클라이맥스 대목이다. 원제 『 Riendeer Moon 』에 등장한 초승달 아래, 홀로 아기를 낳는 주인공 야난의 고독과 생존본능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다. 저 독백을 조아리던 한 사람, 여성, 초산 중인 10대 소녀, 야난의 숨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야난은 그렇게 죽어갔고, 아기는 태어났다.
벚꽃 만개한 4월의 환한 대낮, 스타벅스 매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물을 어찌 억제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다 뜨거운 눈물의 강둑이 몇 번이나 터지려는 걸 어찌 막으랴.
K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짧은 혼절과 진통 주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칼라하리 사막의 니사도,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생명을 낳았어."를 되뇌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진통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런 낭만적 생각을? 에라!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야난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 아기를 낳는 그 장면에서 바로 K가 전해준 그 '짧은 잠과 진통의 반복' 대목이 등장했다. '소설이 아니었구나. 경외했던 것이구나. K는 야난, 아니 생명을 낳고 지켜온 이 땅의 그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격했기에 진통을 감사해하며 견뎠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은 20,000년전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매머드, 여우, 늑대, 호랑이, 순록, 하이에나가 등장하고 파카(기능성 방한 아웃도어가 아니라, Inuit언어에 등장하는 가죽옷의 이름이다)를 입은 수렵채집 부족들이 등장한다. 원서로는 393쪽, 번역판으로는700쪽에 이르며 무려 2만년 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21세기 넷플리스 SF마냥 빠른 전개와 생동감 있는 묘사로 쓰여진 건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인생이력과 관련 있다. 그녀는 부시맨(San族) 탐사대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에(1950~1956) 칼라하리 사막에서 지내며 그 곳 사람들과 자연물,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인류학자로서 그녀는 이 경험에 기반해 『The Old Way』, 『The Harmless People』 등을 썼다. 부시맨이 따뜻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이라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묘사한 수렵채집민들은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견뎌내야하는 지역 사람들인데,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부시맨의 생활양식, 종교의례, 약혼과 결혼, 선물 교환의 규칙 등을 반영해서 상상해냈다.
예를 들어, 이 가계도만 보아도 약혼과 결혼으로서 집단의 연망이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에 어떤 잇점을 가져오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좁은 사회, 면대면 관계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상상한 20000년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체면, 윗 어른에 대한 공경, 서열짓기보다는 공동체성, 공동육아, 연대 등의 정서와 가치가 발달했다. 주인공 야난은 이 사회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한다면 더 충동적이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남편 티무에게 발끈해서 바로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여동생 메리와 함께 집단을 떠나 홀로 이동하는 길을 택한 에피소드가 야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야난은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생존에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고 고난과 마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동생도 살아 남긴다.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페미니즘의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1980년, 90년대에 학술서가 아닌 소설로서 여성의 존엄과 특히 어머니로서의 거룩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야난,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아내로...
스마트폰이나 족보가 없던 20000년 전, 사람들은 피부 냄새와 음성으로 서로를 식별하고 이야기의 타래에 엮어 이름을 기억하고, 황홀경에 이르는 춤을 추어 천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하고자 한다. 마블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유니버스가 아니어도, 이들은 원초적 생명력과 상상력의 힘으로 이 불가해한 우주의 거룩함을 만난다.『세상의 모든 딸들 』을 꼭 여성, 어머니의 시각에서만 읽으려하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 그 거룩한 생존력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를 비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육체성으로 살지만 나는, 너는, 우리는(심지어는 늑대와 순록까지도) 연결되어 통한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여자의 존재 이유를 묻는 책!
「세상의 모든 딸들 2」
가슴아프고 너무 힘겨운 과정을 거쳐 그레이랙의 집으로 돌아온 야난과 동생메리. 야난은 예정대로 멋지게(?) 성인식을 치뤄냈고, 티무와 결혼도 하게된다. 티무의 첫번째 부인이 아닌 두번째 부인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당시 일부 다처제의 삶을 사는것이 평범한 상황인 듯 하다. 이후 첫번째 부인인 에티스가 티무의 아이를 갖게 되자 티무는 당연한 듯 늦은밤 야난의 곁으로 다가온다. 성인식으로 인해 아직 여물지 않은 그녀의 상처따위는 그가 신경써야 할 일이 아닌듯.. 그렇게 야난은 어른의 세계를 알게된다.
메리를 쫓아온 어린 늑대는 초반에는 다른 가족들에게 그저 짐짝일 뿐 이었다. 사람들의 돌팔메질을 받으며 고기를 훔쳐먹는 존재였던 어린 늑대가 야난이 혼자 사냥을 갔을때 도움을 줬다는 걸 알게된 후 사람들은 늑대와 함께 사냥하면 조금더 쉽게 사냥감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된다. 이후 늑대와 함께 사냥을 하려 하지만 늑대는 이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키워준 메리의 앞에만 나타날 뿐. 끝까지 야난의 주변을 멤돌며 늑대와 함께 사냥하길 바랬던 메머드 사냥꾼 스위프트 역시 사낭을 하던 순간 늑대를 발로 걷어 차 버림으로 써 그의 곁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역사책을 통해 접한 그 시대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책이다. 당시 시대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듯한 느낌이 들만큼 실감나는 책이었다. 겨울철 오로지 먹을것과 땔감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과정도 낯설었다. 또한 남자가 당연하게 여자를 메질하는 장면 역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주인공 야난의 죽음이 삶이 고되고 힘들어서가 아닌 아이를 낳다 죽었다는 것 역시 그 시대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이겠지만 생각의 요소가 참 많은 책이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야난이 엄마가 되려 하는 순간 죽게되는 상황 역시 여운이 많이 남았다. 단순해 보이는 책이지만 꼭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문화인류학적 관점에 기초해서 구석기 시대에 어머니의, 여자의 모습을 풀어냈다는 이 책의 제목과 명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정말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정말 재미있어서 술술 읽어 내려갔는데, 출산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어머니가 어린 딸 야난에게 남긴 유언에서 한참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니까!”
이러한 내용이 요즘 말하는 페미니즘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 성차별이나 여성의 지위에 대한 논리를 지닌다면 이 책의 내용은 모성 그 자체의 위대함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을 찾아보니 ‘REINDEER MOON’이라고 합니다. REINDEER가 순록을 뜻하므로 이 책의 제목은 "순록의 달"이란 뜻으로 현대의 시기로는 10월 정도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책은 인류가 지구상에 막 자리를 잡아가던 구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 책의 주인공인 야난이 펼치는 인생역전을 그린 소설로 주인공 야난이 최후를 맞이할때 순록의 달이 떠서 소설 제목으로 붙여진 듯합니다.
사실 이 책은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으로 이주하여 원시 상태에 머물고 있던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던 문화인류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자신의 문화인류학 지식을 투영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내 자식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굳은 일도 마다 하지 않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 보내는 하나의 찬사라고 생각합니다. 험한 세상에 맞서가며 우리 가족들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한 편으로는 눈물 많고 여린 우리 어머니들 말이죠. 이 책을 보면서 엄마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막 자리를 잡아가던 구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부모와 자식의 사랑 더 정확히는 어머니의 그 사랑인 거 같습니다. 집에 두고, 온 가족이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