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김호연 저
백온유 저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여러 미술관에 가서 그림들을 보고 느낀 점을 쓴 글이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글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리학적으로 미술을 분석한 글도 아니다. 미술을 보고 자기가 아는 물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감상을 적었다. 그래서 읽다보면 미술 내용과 과학적 내용에 연결이 미흡하다. 그냥 개인 감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은 미술과 그림 작품과의 연결을 위해서 표면적인 지식들을 늘어놓는 것은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과도 같다. 이런 글이 흥미를 유지하려면 적절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 전체를 잇게 되어서 책을 읽다보면 이것저것 알아본 것이 마지막에는 큰 퍼즐로 연결되어 큰의미를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냥 책이 잡혀서 읽었는데, 미술관에 간 누구라는 시리즈 중 하나인것 같다. 다른 글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술책은 미술전문가에게 그리고 과학책은 과학전문가가 쓴 것을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서로 멀리 떨어진 분야를 잇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일것이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서민아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마지막은 물리학자이다.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가장 어려운 분야가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 권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ㅋㅋ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뮤즈가 인문학이었다면,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예술가들의 뮤즈는 물리학이었다.
"누군가는 내 그림에서 시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 보았다."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가 한 말로 그는 광학과 물리학을 집요하게 탐구해서 작은 점들로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 점들은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라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역시나 미술과 과학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라고 봐야하는 구나를 또 한 번 느끼게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물리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왠지 어렵다. 지루하다. 재미없다가 떠오를 정도이다. 나의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며 물리가 참 어려워했던 기억이 생각나며 아직도 물리를 왜 공부할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미술과 물리의 조화라니 어렵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는 4파트( 빛으로 그리고 물리로 색칠한 그림, 과학이라는 뮤즈를 그린 그림,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그린 그림, 물리학으로 되돌린 그림의 시간)로 나눠서 예술작품과 물리학의 이론을 찾는 것이다.
그림에서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빛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림 속에 빛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그림의 느낌과 표현이 달라지는 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적절하게 빛과 어둠이 공전하여 뭔가 더 신비함과 극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며, 또한 빛을 응용한 퀀텀닷은 빛이나 전압을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 원리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게 스테인드글라스로 성당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샤갈의 멋진 그림이 그려져있는 슈테판 교회의 그림은 햇빛이나 조명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면 신비롭게 빛나게 된다. 정말 보면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꼭 한 번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클로드 모네의 '라그르누예르' 그림을 통해 수면에 흐르는 물결을 통해 파동을 알 수 있고,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라 가레트이 무도회' 그림에 남녀가 신나게 추고 있는 왈츠를 통해 원자와 분자의 진동을 비유하며, 그림을 통해 구름이 생성되는 원리와 태양빛의 반사·산란·회절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말 어려우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특히나 신기했던 작품은 조르주 쇠라는 점소묘를 이용하여 멋진 그림을 표현한 것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 점도 그냥 막 그려서 표현한 게 아니라 직점 빛의 사물의 관계를 잘 알고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부터 그림자 색의 조화가 너무나도 조화롭게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또한 유명한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이라다. 단순한 작가의 상상속의 그림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그림 속에는 작은 우주를 유영하는 생명들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연인, 키스'의 작품은 내가 알고 있는 그림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랐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림 속에 남녀의 옷은 단순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직선과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여자는 동근 도형과 다양한 크기의 동심원들을 옷에 표현했다. 그것은 뜻이 담겨있었다. 정자와 난자. 핏속의 적혈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로틱한 정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렇게 야한 의미가 담겨있었다니 ㅋㅋ
그 외에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그림 속의 물리학 표현들이 참 다양하게 설명되어 있다. 앞의 책 속에서 만났던 그림들을 또 만날 수도 있고 미술작품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물리학들이 정말 신기하고도 재미있으며 그 속에서 또한 예술작가의 삶 또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물리는 살짝 이해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이해하려면 몇 번을 다시 정독하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책을 공부하면서 미술은 단순한 그림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미술이 하나의 분야가 아니라 폭넓은 이론이 더해져서 멋지게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미술 작품에 대해서 조금밖에 모르던 나에게 미술속에 숨겨진 다양한 원리와 이론을 공부하게되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부했던 미술작품이 나오면 조금은 아는 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은 두고두고 보면서 공부하기에 좋을 것 같다. 또한 한참 지식을 쌓아가는 초등고학년부터 대학생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또 나오지않을까 기대해보며 미술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마무리해본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를 무척이나 고생스럽게 했던 과목이 있다. 바로 수학과 물리!!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고 외워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험 당일날 아침까지 끙끙대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 과목들을 만든 사람들을 저주(?)라도 하고 싶게 만든 공포의 과목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괜히 애꿎은 물리 선생님을 원망했을까. 결국 '찍자!!'라는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었던 시험.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더 이상 수학과 물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명화 분야에서 만난 물리학이라니!!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거부감으로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오잉??!!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등장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도 함께 읽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으면서 느낀 것은 화학과 물리학에서도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책들을 읽으면서 명암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나는 명암법 하면 이제 카라바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5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화가 마사초가 자신의 작품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에서 선보였던 명암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진일보시켰고,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이라는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테네브리즘은 이탈리아어로 어둠을 뜻하는 'teneb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을 연구, 분석한 결과를 회화에 적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에만 빛을 비춰 강조하고 그 밖의 부분은 어둡게 그리는 것으로, 밝고 어두움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의 심리 상태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카라바조의 수많은 그림들 중 이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다.
내기 운동경기 끝에 살인을 저지른 카라바조는 체포되었다가 3일만에 탈옥했고, 죽기 전까지 4년 동안 도망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주옥같은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 목이 잘린 골리앗은 죽기 직전 카라바조의 자화상이고,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카라바조를 향해 묻는다. '당신에게 미술은 무엇'이냐고. 나도 그에게 묻고 싶다. 도망다니면서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인가, 삶을 향한 미련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에 대한 애증인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마르크 샤갈'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름이야 들어 알고 있었지만,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통해서였을 뿐이고, 심지어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 이름으로나 익숙한 정도였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된 그림들을 보니 취향저격. 특히 벨라와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생일날>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얼마 전인 7월 7일 샤갈의 생일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생일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벨라에게 감동한 샤갈의 마음이, 하늘에 둥실 떠올라 곡예를 하듯 얼굴을 돌려 여인에게 키스하는 남자로 그려져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놀란 얼굴의 벨라. 피어나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은 붉은 바닥으로 대변되고, 방안을 가득 채운 붉은 열기도 사랑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 잠시 과학 이야기를 하자면,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샤갈이 그림에서 자주 사용한 세 가지 색은 빛을 인지하는 시각, 즉 망막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들이다. 망막에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라는 두 가지의 시세포가 있는데, 원추세포는 망막의 중앙부에 많이 분포하고 색을 식별한다. 어두울 때는 간상세포가 주로 활동하고 밝을 때는 원추세포가 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여러 책들의 표지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 바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집시 여인이 만돌린을 연주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 옆으로 사자 한 마리가 다가오지만, 어쩐 일인지 이 사나운 동물이 그냥 지나쳐 간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따스함. 달빛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듯한 느낌이다. 앙리 루소의 모든 그림은 각각 하나의 '꿈'을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은 꿈이라는 잠재의식으로 표출되고 형상화된다. 정글 수풀과 야생 동물, 사람을 주로 그렸던 루소의 그림은 모두 그의 꿈 이야기다. 그의 마지막 꿈은 1910년 작품 <꿈>. 그의 그림 안에서, 늘 등장인물들과 감상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저 달, 달이 참 마음에 든다.
언급한 그림들 외에도 나노입자, 퀸텀닷,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등 물리학으로 풀어낸 명화 이야기가 가득하다. 과학자의 시선으로는 경이로운 현상들을 쉽게 풀이해주고, 휴일이면 붓을 든다는 화가의 시선으로는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리학에 대한 거부감까지 줄어들게 만들어 준 책. 평생 간직하고픈 이야기들이다.
이번엔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에이브러햄 혼디우스는 런던으로 건너가, 1677년 "얼어붙은 템스강을 그렸습니다.
그 시기에 템스강은 수십번이나 얼어붙었으며, 다른 화가들 역시 그 시기에 혹독한 겨울 추위를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즉 눈앞에 펼쳐진 자연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화가들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가는 모습에 공감하며 붓을 든다는 것이죠.
미술관 시리즈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