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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창작과 소설 읽기의 전범이 될 현대소설의 백미!”
작가 이문열을 사로잡았던 세계의 명작,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이십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이 되었다. 여기 세련된 장정과 판형으로 소장가치까지 한층 높였다. 지난 이십여 년간 그래왔듯이, 이번 개정판도 수많은 독자들을 세계명작의 산책로로 안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주요 문학잡지의 해외 특집란을 검토해 추린 후,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우선 1권과 2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되는 법이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다만 모두에게 다른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우러를 것인가, 예비하고 다가갈 것인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가. 우리 삶의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한다. 2권에 수록된 9편의 중단편을 통해 문학이 다루는 “죽음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발다사르 실방드르의 죽음>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기존에 중역했던 헤르만 헤세의 중편 <크눌프>는 원전을 재번역해서 수록했다. 그 외에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잭 런던의 <불 지피기>, 셔우드 앤더슨의 <숲속의 죽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샤를 루이 필리프의 <앨리스>, 바이올렛 헌트의 <마차>와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을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거장들의 손길을 거쳐 독자들에게 ‘미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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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머리말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죽음과 맞서는 인간의 태도 또는 자세
잭 런던
불 지피기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삶이 죽음의 일부인가, 죽음이 삶의 일부인가
셔우드 앤더슨
숲속의 죽음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헤르만 헤세
크눌프
삶의 최종심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샤를 루이 필리프
앨리스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바이올렛 헌트
마차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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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7명)

저 :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작가 한마디 책만큼 충성스런 친구도 없다.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저 : 레프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작가 한마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저 :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Marcel Valentin Louis Eugene Georges Proust)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귀족과 상류층 전용 술집을 드나들며 사교계의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그는 이따금씩 소품을 쓰거나 영국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이야기꾼이자 비전문적 문인으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프루스트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쓰며 사교계를 드나드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건강상태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고, 이러한 동성애로 인해 그는 부자들과 세력가들이 드나드는 술집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의 숙소와 매춘굴까지 드나들었다. 그리하여 1890년대의 프루스트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사교계의 관심이나 끌려고 속태우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속물처럼 보였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이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도 점차 깨달았다.

1883년 파리의 명문 콩도르세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문예지 [라일락]에 「어두운 보라색 하늘」,「극장에서 받은 인상들」 같은 글을 게재하였다. 1989년 파리 법과대학 및 정지학 전문학교에 등록하였으나 학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끔 소르본느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 강의를듣는 한편, 사교계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딜레탕트를 자처하며 사교계를 기웃거리고,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극장,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한다.

1895년부터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초벌 그림과 같은 자서전적 소설 『장 상퇴유』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첫 수필집 『기쁨과 나날들』을 출간했다. 1893년경부터 십수 년간 러스킨의 작품을 연구하였으며, 1904년 『아비앵의 성서』, 1906년에『참깨와 백합』을 번역 출간했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1909년부터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집필하며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출판을 위해 갈리마르 등 여러 출판사와 교섭하였으나 실패하고, 1913년 11월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첫 편 「스완 댁 쪽으로」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하여 1919년 6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편 「피어나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출간하고,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이후 「게르망뜨 쪽」, 「소돔과 고모라」등이 출간되었고, 「갇힌 여인」과 「탈주하는 여인」,「되찾은 시절」은 그가 타계한 후에 출판되어 1927년에야 완간을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탁마 작업을 계속하다 1922년 11월 18일 평생의 지병이었던 천식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은 1896년 그의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에 수록된 산문시집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품은 씨앗의 면모를 보여준다.

1896년 첫 작품집 『쾌락과 나날』을 출간했고, 이후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한 『아미앵의 성서』(1904), 『참깨와 백합』(1906)을 출간했다. 그의 초기작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거역해서』는 1908∼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또한 과거가 무의식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예술 속에서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그가 이룩한 혁신의 중심은 등장 인물들을 고정된 존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지각에 의해 점차 드러나고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강력한 실례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파리의 8구에 위치한 오스만가 102번지는 프루스트가 살았던 아파트로 현재는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저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작가 한마디 전쟁의 유일한 효용은 바로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뿐이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저 : 잭 런던 (Jack London)
잭 런던은 1876년 1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통조림 공장 직원, 신문 배달원, 어업 감시원 등의 허드렛일들을 하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895년 20세 가까운 나이에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여 스펜서, 다윈, 니체 등의 책을 읽으며 교양과 사상을 습득하고 그에 심취했다. 1897년 클론다이크 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잭 런던도 그해 7월 12일, 21살의 나이로 그의 매형 셰퍼드와 함께 클론다이크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괴혈병을 얻어... 잭 런던은 1876년 1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통조림 공장 직원, 신문 배달원, 어업 감시원 등의 허드렛일들을 하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895년 20세 가까운 나이에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여 스펜서, 다윈, 니체 등의 책을 읽으며 교양과 사상을 습득하고 그에 심취했다.

1897년 클론다이크 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잭 런던도 그해 7월 12일, 21살의 나이로 그의 매형 셰퍼드와 함께 클론다이크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괴혈병을 얻어 돌아온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에게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오클랜드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뒤 우편국에서 일하며 잡지에 단편들을 기고했다.

잭 런던은 1900년에 『늑대의 아들』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3년에 『야성의 부름』을 발표해서 초판 1만 부가 하루 만에 매진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바다늑대』『강철 군화』 등을 비롯해 많은 단편집과 자전적 소설들을 발표하고 평론가로도 활동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렇게 명예와 부를 누리던 잭 런던은 1916년 11월 22일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저 : 스티븐 크레인 (Stephen Crane)
미국 소설가 겸 시인, 신문 기자. 29살의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생생하고 강렬하며 독특한 방언과 아이러니가 넘치는 글을 썼다. 사회적 고립이라든가 인간의 두려움에 관한 주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작품은 다음 시대의 사회적 사실주의에의 길을 열었으며 헤밍웨이를 비롯한 현대 미국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시에서도 이미지즘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주요 작품에는 『붉은 무공훈장』등이 있다. 미국 소설가 겸 시인, 신문 기자. 29살의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생생하고 강렬하며 독특한 방언과 아이러니가 넘치는 글을 썼다. 사회적 고립이라든가 인간의 두려움에 관한 주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작품은 다음 시대의 사회적 사실주의에의 길을 열었으며 헤밍웨이를 비롯한 현대 미국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시에서도 이미지즘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주요 작품에는 『붉은 무공훈장』등이 있다.
저 : 셔우드 앤더슨 (Sherwood Anderson)
1876년 9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캠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잡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야간학교에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고,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해 광고 카피와 칼럼 쓰는 일을 했다. 성공적인 결혼과 사업을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던 중 1912년 서른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발이 젖어 있는 느낌, 그리고 점점 더 젖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나흘 뒤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신경쇠약’을 치료하며 그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6년... 1876년 9월 13일 미국 오하이오주 캠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잡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야간학교에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고,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해 광고 카피와 칼럼 쓰는 일을 했다. 성공적인 결혼과 사업을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던 중 1912년 서른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발이 젖어 있는 느낌, 그리고 점점 더 젖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나흘 뒤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신경쇠약’을 치료하며 그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6년 최초의 장편소설 『윈디 맥퍼슨의 아들』을 펴냈고, 1919년 출간한 연작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 인정을 받았다. 존 스타인벡,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동시대의 작가들은 셔우드 앤더슨과 그의 작품에 대해 ‘영문학의 바이블’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하고 섬세한 작가’라고 평했으며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지금도 20세기 미국 문학 강의 교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작품이다. 『달걀의 승리』 『말(馬)과 인간들』 『검은 웃음소리』 『삼림 속의 죽음』 등의 소설과 여러 편의 시집, 에세이를 남겼다. 1941년 이쑤시개가 꽂힌 마티니를 마시고 결장에 구멍이 생겨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저 : 샤를 루이 필리프
프랑스 작가. 1874~1909년. 프랑스 중부 세리이 출생. 파리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에 힘썼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글을 주로 발표했다. 출세작 『뷔뷔 드 몽파르나스』는 매춘부와 포주, 그리고 그녀를 구하려는 젊은 지식인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며, 그 밖에 『어머니와 아들』, 『페르드리 노인』, 『작은 집에서』 등이 있다. 프랑스 작가. 1874~1909년. 프랑스 중부 세리이 출생. 파리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에 힘썼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글을 주로 발표했다. 출세작 『뷔뷔 드 몽파르나스』는 매춘부와 포주, 그리고 그녀를 구하려는 젊은 지식인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며, 그 밖에 『어머니와 아들』, 『페르드리 노인』, 『작은 집에서』 등이 있다.
저 : 바이올렛 헌트
영국 작가. 1862~1942년. 영국 더럼 출생. 그녀의 아버지는 예술가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어머니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마가렛 레인 헌트이다. 활동적인 페미니스트였으며 1908년 여성 작가의 참정권 리그를 창립했고 1921년 국제 펜클럽 창립에 참여했다. 자서전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장편소설 『시든 잎의 하얀 장미』, 소설집 『불안한 자들의 이야기』 등의 작품이 있다. 영국 작가. 1862~1942년. 영국 더럼 출생. 그녀의 아버지는 예술가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어머니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마가렛 레인 헌트이다. 활동적인 페미니스트였으며 1908년 여성 작가의 참정권 리그를 창립했고 1921년 국제 펜클럽 창립에 참여했다. 자서전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장편소설 『시든 잎의 하얀 장미』, 소설집 『불안한 자들의 이야기』 등의 작품이 있다.
편 : 이문열 (Lee Mun-yol,李文烈,이열)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 전쟁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 이원철이 홀로 월북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들소」, 「황제를 위하여」, 「그해 겨울」, 「달팽이의 외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대표작이다.

한국 전쟁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 이원철이 홀로 월북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으나,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대구매일신문]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가작으로 뽑힐 때까지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사범대까지 모두 중도에 포기했으며, 신춘문예, 사법고시 등에서 연이어 실패를 맛 보았다.

1994년 학문 연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제의를 받아들여 세종대 강단에 섰으나 3년만에 개인적인 이상실현의 문제와 작가로서 충분히 작품 세계를 이룩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지는 것을 우려,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했다. 2003년 12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조각가 친구의 권유로 경기도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깊은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자리를 젊은 친구들에게 마련해주고자 뒷동산 부아악負兒岳이라는 산 이름을 따와 「부악문원」을 설립하여 새로운 지식의 샘을 젊은 학도들과 함께 탐구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2000년 5월 이문열의 책 판매량이 2천만 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삼국지, 수호지 평역을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판매량이 천만 권 이상이라니, 한국인 4명에 한 명은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을 따지면 그의 글을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 성공은 이문열을 이해하는 단서 가운데 작은 하나일 뿐이다.

이문열의 작품 세계엔 그의 경험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좌절, 전통적인 가풍의 집안은 그의 경험이며,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 쉽사리 읽어낼 수 있는 특징이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선택』 등의 책은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험이 한국 현대가 겪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거듭 묻는 질문, 전통과 현대의 문제, 분단 상황의 문제 등은 바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며 한국사회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이문열의 대답은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수구주의나 남성우월주의로 비판받기도 했다.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나, 총선연대 활동이나,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문열이 자신의 소설에 담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든 그가 소설을 통해, 또는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대표 작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등 다수가 있고, 단편소설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12권), 『대륙의 한』(전5권)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역 : 김석희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역자 후기 모음집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으며, 1997년에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역자 후기 모음집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으며, 1997년에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역 : 장경렬
장경렬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평론집으로 『미로에서 길 찾기』(1997),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2004), 『응시와 성찰』(2007), 『시간성의 시학』(2013), 『즐거운 시 읽기』(201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2016), 『예지와 무지 사이』(2017),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2017),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2017), 『삶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삶으로』(2020) 등이 있으며 문학이론 연... 장경렬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평론집으로 『미로에서 길 찾기』(1997),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2004), 『응시와 성찰』(2007), 『시간성의 시학』(2013), 『즐거운 시 읽기』(201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2016), 『예지와 무지 사이』(2017),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2017),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2017), 『삶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삶으로』(2020) 등이 있으며 문학이론 연구서로 The Limits of Essentialist Critical Thinking (『본질주의 비평적 사유의 한계』, 1990), 『코울리지』(2006), 『매혹과 저항』(2007)이 있다. 번역서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Robert Pirsig, 2010), 『노인과 바다』(Ernest Hemingway, 2012), 『백내장』(John Berger, 2012), 『젊은 예술가의 초상』(James Joyce, 2012), 『라일라』(Robert Pirsig, 2014), 『학제적 학문 연구』(Joe Moran, 2014) 등이 있다.
역 : 진형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세계상상력센터 한국 지회장, 한국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서 한국이 주빈국이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한국문학과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세계상상력센터 한국 지회장, 한국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서 한국이 주빈국이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성공적으로 주관하며 한국문학과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등이 있다.
역 : 김다은
1962년 진주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1962년 진주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해에게서 사람에게』,를 출간했다. 프랑스어 장편소설 『Le Jardin interdit』, 단편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Le rat de bibliotheque」 등이 있다.
역 : 천승걸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대학원 영문과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교수 및 아이오와대학교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문학과 그 전통』, 『미국 흑인문학과 그 전통』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프로스트의 명시』, 『현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한때 흑인이었던 자의 자서전』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대학원 영문과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교수 및 아이오와대학교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문학과 그 전통』, 『미국 흑인문학과 그 전통』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프로스트의 명시』, 『현대소설과 의식의 흐름』,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한때 흑인이었던 자의 자서전』 등이 있다.
역 : 정서웅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학술교류처(ADDA) 초청으로 독일 브레멘대학 교환교수, 숙명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 『독일어 시간』, 『콜린』, 『크눌프 로스할데』, 『환상소설집』, 『스퀴데리 양』, 『베네치아와 시인들』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학술교류처(ADDA) 초청으로 독일 브레멘대학 교환교수, 숙명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 『독일어 시간』, 『콜린』, 『크눌프 로스할데』, 『환상소설집』, 『스퀴데리 양』, 『베네치아와 시인들』 등이 있다.
역 : 유두선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D. H. Lawrence’s The Rainbow and Women in Love : A Critical Study』가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D. H. Lawrence’s The Rainbow and Women in Love : A Critical Study』가 있다.

출판사 리뷰

■ 다만 철저하게 무관심할 뿐인 자연의 여신 앞에서
―장경렬 서울대 명예교수,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이 말해 주는 것

만 29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1871.11.1.~1900.6.5.)은 미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장?단편소설과 시를 창작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일찍이 윌리엄 포크너는 마크 트웨인을 현대 미국문학의 할아버지라고 한다면 크레인은 아버지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바로 이 말에서 우리는 크레인의 문학사적 존재 의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적인 학교 교육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크레인은 1891년 6월 만 20세가 되기 전의 나이에 대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신문 기자와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893년 장편소설 ??거리의 소녀 매기 Maggie: A Girl of the Streets??를 발표했는데, 비록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어서 1895년 또 한 편의 장편 소설 ??붉은 무공 훈장 The Red Badge of Courage??을 발표함으로써, 크레인은 대서양 양안―즉, 미국과 영국―에서 주목받는 저명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저명한 작가가 된 크레인은 1896년 12월말 한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그 무렵 스페인의 압제에 항거하여 진행되고 있던 쿠바 독립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떠난다. 쿠바에 잠입할 목적으로 그는 12월 31일 저녁 선원 자격으로 플로리다의 잭슨빌에서 출항하는 증기선 커머도어(Commodore)에 승선한다. 전쟁 물자 및 쿠바 독립군 자원자를 싣고 출항한 이 배는 항구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모래톱에 얹히고 만다. 모래톱에서 끌어내어 물에 띄우려고 하는 가운데 배는 부분적으로 파손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틀 후에 마침내 침몰하고 만다. 배에 있던 모든 구명정이 동원되었으며, 크레인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작은 구명정에 오른다.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네 사람을 태운 채 대략 30여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던 이 구명정은 마침내 데이터나 비치의 해안 가까이(약 800미터 전방)에 이르러 파도에 뒤집히고 만다. 마지막 사투 끝에 네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은 살아남고 한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
크레인은 이때의 경험을 기록하여 1897년 1월 6일 ?스티븐 크레인 자신의 이야기 “Stephen Crane's Own Story”?라는 제목으로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단편소설 ?구명정 “The Open Boat”?을 창작한 다음 이를 ??스크리브너즈 매거진 Scribner's Magazine??에 발표한다. 크레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느끼는 진정한 동지애와 신뢰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은 자연이란 인간에게 잔인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으며, 그를 배반하거나 그의 앞에서 현자인 척하지도 않은 채 다만 무관심할 존재라는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물론 자그마한 구명정에 몸을 싣고 있는 네 사람은 때때로 절망하기도 하고 때때로 자연의 여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력과 잠재력이 얼마나 무한한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신문사 특파원은 크레인 자신의 소설적 형상화로 추정되며, 기관사와 함께 구명정의 노를 젓는 일을 맡아 한다. 그는 또한 많이 생각하고 깊이 느끼는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신문사 특파원이라는 직업의 영향으로 그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배 안에서 싹튼 동지애를 감지하고 이로 인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일깨워나가게 된다. 구명정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낸 고난의 시간이 그에게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이해됨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또한 여러 번 자연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자연이란 인간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증기선 커머도어가 침몰할 때 부상을 당한 선장은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신중하고 주의 깊은 그에게 절대적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보인다. 이야기 속 대화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배에 함께 있는 다른 세 사람보다 나이와 경륜이 한결 높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또 배의 항로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배의 안전을 위해 육체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없지만, 그는 결코 잠에 빠져들지 않은 채 항상 배의 안위에 주의를 기울인다.
기관사인 빌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바의 일을 끈기 있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커머도어가 침몰하기 전 기관실에서 이중 당직 근무를 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누구보다도 피로에 지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노 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묵묵히 주어진 바의 일에 충실했지만, 그는 해안에 거의 다 이르러 죽음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리사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면에서 볼 때 ‘어린아이답다(childish)’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항상 모든 일이 밝은 쪽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런 생각을 수다스럽게 입 밖으로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위기감에 젖어 긴장해 있지만 그런 순간 엉뚱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파이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배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닷물을 퍼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위의 네 사람은 서로 다른 개성의 소유자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험난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아울러,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을 냉정하고 절제된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빌리의 죽음을 통해 인간사란 결코 교과서적인 해답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사실 광포한 바다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 소설에는 두드러진 플롯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극적인 반전을 통해 읽는 사람들을 특별히 긴장케 하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문학적 비유와 상징 및 생생한 정황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생동감과 현장감을 잘 살리고 있다. 아울러,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자연과의 대결 속에서 절망에 빠져들기도 하고 희망을 갖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깊고도 뛰어난 문학적 호소력은 결코 소홀히 여겨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자는 이 소설을 해양 전도와 온갖 해양학 표본이 있는 서울대학교 해양학 실험실에서 번역을 시작했으며 또 그곳에서 번역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건물 개축 공사로 인해 잠시 연구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연대학 교수 한 분의 배려로 해양학 실험실 가운데 하나를 연구실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 도중 미국으로 건너가 태평양 연안에서 얼마 동안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 역자는 자주 들르던 바닷가 어느 주점의 발코니에서 파도와 갈매기와 펠리컨에 우두커니 눈길을 주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이 소설의 번역을 계속하기도 했다. 우연이긴 했지만, 이처럼 역자는 광포한 바다와 인간 사이의 싸움을 다룬 이 소설에 대한 번역을 바다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 또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진행했다. 해양학 실험실의 분위기와 태평양 연안의 바다는 이 소설을 번역하는 역자에게 실로 각별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니, 번역을 하는 동안 내내 역자는 소설 속의 정경이 시시각각으로 현재화되어 역자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제목 번역과 관련하여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짤막한 소개의 글을 마치기로 한다. 이는 너무도 유명한 소설이기에 작품 자체에 대한 번역이 시도된 바도 있지만 미국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제목만 따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된 적도 여러 번 있다. 이를 검토해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난파선’이나 ‘무갑판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고, 또는 ‘구명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오픈 보트(the open boat)’란 갑판도 없고 햇빛이나 비바람을 피할 보호막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배, 그러니까 아무 설비도 없는 일종의 거룻배를 말한다. 물론 소설 속의 ‘오픈 보트’는 배가 조난을 당했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작은 배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난파선’이라는 번역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인명 구조를 위한 작은 배 자체가 난파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무갑판선’이라는 번역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구명선’이 가장 적합한 번역일 수 있겠다. 하지만, ‘구명선’의 ‘선’(船)은 배를 지칭하는 일반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작은 배의 느낌을 전하기에는 이 역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명정’으로 번역해 보았는데, ‘구명정’의 ‘정’(艇)은 ‘작은 거룻배’를 뜻한다는 점에서 원래 제목의 의미를 가장 잘 전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배에 설치된 구명정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명정과는 느낌이 다른 것일 수 있다. 이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묘안이 없어 그냥 ‘구명정’으로 옮기기로 한다. 보다 더 적절한 우리말 번역이 있다면 역자에게 깨우침을 주기를 독자 여러분께 부탁한다.

■ 죽음은 변덕스러운 삶의 가장 강렬한 체험
-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

죽음을 앞둔 한 친척을 관찰하는 소년의 시선과 그 죽음을 실제로 겪는 발다사르 자작의 내면적 변화를 극명하게 변주한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천식 발작으로 병과 죽음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프루스트 특유의 감수성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이 단편소설은 후에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위해 꼭 필요했던 ‘습작’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변덕스러운 심리 변화에 대한 묘사가 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 할 것이다. 특히 소년 화자가 어른들의 죽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도 겪고 될 운명임을 깨닫고 죽음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무들과 산에 은둔을 시도하지만, 곧 어머니의 품에 안겨 천진난만한 소년의 세계로 돌아가는 모습은 코믹한 슬픔을 자아낸다. 반면에 자작은 자신이 곧 죽으리라고 생각했으나 한동안 회복의 기미를 느끼자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날카로운 불안감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욕망이 다시 일기 시작하고, 죽음을 기다리며 절망하던 그 동굴의 시간을 도리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그것도 잠시 다시 병이 깊어지자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절망하면서도 질투와 열정 그리고 자작이라는 귀족 신분의 자존심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데 인간의 가장 변덕스러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의 백미는 자작이 죽는 장면의 묘사이다. 의사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지인들이 일제히 자작 곁으로 모여든다. 사람들의 눈에 자작은 이미 죽었지만, 자작은 그 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키스해 주던 어머니, 저녁에 그를 자리에 눕히고 그가 잠들지 못할 때면 곁을 떠나지 않고 발을 덥게 해주던 어머니, 누이가 노래 부르던 정원에서의 저녁들, 그가 장차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던 가정교사의 말, 그 아래서 약혼식을 올렸던 큰 보리수, 그리고 첫 약혼이 파혼되던 날도 눈앞에 보였다. 늙은 하녀에게 키스하고 처음 바이올린 음악을 듣던 생각도 났다. (…) 이 모든 것이 마치 들판 쪽의 창문으로 저절로 들어오듯 그는 (…) 아련하게 보고 있었다.”

죽는 ‘순간’에, 죽음이 선언되고 2초가 지나가기도 전에, 자작은 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들판 쪽 창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펼쳐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는 심장이 더 뛰지 않아 피가 돌지 않는 신체 내의 생물학적 변화라고 하는데, 예술작품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프루스트의 시간에 대한 천착과 함께 이 생리학적 현상의 문학적인 의미를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은 왜 이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인간은 나이와 함께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젊었을 때 시간을 길게 느끼는 것은 처음 경험하거나 낯선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을 매우 집중해서 경험하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어 반복 경험으로 뇌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시간이 사라진다고 한다. ‘죽는 순간’은 전 생애를 통해 처음 마주하는 낯설고 가장 강렬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뇌가 더없이 집중하기에, 몇 초에 전 생애가 영사막처럼 펼쳐지는 모양이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생전에 7편 5권 중 4편까지 발표했지만, 나머지는 유작으로 완간되었다. 1927년 『되찾은 시간』이 간행됨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작업이 완성된다. 죽음의 순간에 삶의 일생을 돌아보아 완성하는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의 방식과 유사하다.


■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한, 너무나 끔찍한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p41)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정시대의 부패한 관료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지상 목표로 하는 야심찬 법관(판사)다. 그의 야심 탓인지, 본래 천성인지 소위 ‘상류사회’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입던 옷처럼 잘맞았다. 그는 쾌락과 정욕, 허영에 몸을 맡기면서도 업무적인 능력을 증명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사교계에서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인물로 통했다. 업무적인 권한과 사람들의 경외심을 함께 즐겼고, 자신이 응당 누려야할 자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치고 올라갔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동안 유능하고 쾌활하고 싹싹하고 사교적인 남자, 하지만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엄격하게 실행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높은 양반들이 그의 의무로 생각하는 일,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 시절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는 결코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었지만, 파리가 빛에 끌려들 듯 지체 높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천성이었다.” (p42)

훌륭한 관리라는 평판 속에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당히 좋은 가문에 약간의 유산, 못생기지 않은 편인 외모를 갖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도 이룬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곧 서로에 대한 원망과 간섭으로 점철되고, 가정은 그저 더 많은 연봉과 더 큰 집을 강요하는 빚쟁이에 지나지 않는 곳이 된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를 잡아 그는 만족스러운 연봉을 보장하는 새로운 직책을 따낸다. 더불어 그와 아내의 허영에 걸맞는 집을 찾아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다.

“사실, 그 집의 실내장식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 않으니까 독특한 멋은 부릴 수 없고, 따라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흉내 내는 데만 성공할 뿐이다. 그들의 집에는 어김없이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시트와 식탁보, 흑단 목재, 화분, 깔개, 둔탁한 빛을 내는 청동 제품 따위가 갖추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두는 것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집도 다른 사람들의 집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지만, 그의 눈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집처럼 보였다.” (p60~61)
이반 일리치는 다시 만족스럽고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도회를 열어 상류층 명사를 초대하고, 유력인사나 젋은이들의 방문을 받으며 과시하는 번지르르한 삶.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p66)

하지만 집 수리 중 사다리에서 삐끗하며 부딪힌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유명하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이제 고통은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를 힘들게 하고 만다.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거나 동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이해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혼자 그렇게 살아야 했다.” (p79)
“주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무서운 행위를 (마치 누군가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객실에 들어온 것처럼) 우발적이고 불쾌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사건 정도로 끌어내린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바로 그가 평생 동안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바로 그 예의범절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99)

그는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무력감과 절망 속에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가 그렇듯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등을 들쭉날쭉 오가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발버둥친다. 그럼에도 그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배변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고, 젊은 하인의 어깨에 다리를 올려놓지 않고서는 잠도 자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이 직접 꾸민 객실?그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바로 그 객실?에 자주 들어가보곤 했다. 그때 창문 모서리에 부딪힌 것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객실을 위해 그는 목숨을 바친 셈이었다(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p91)

그가 이처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관심은 다른 데 쏠렸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계산에 분주할 뿐, 시시각각 이반 일리치의 목을 조아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끝없는 고통에 무심했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도 가족과 사윗감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오페라 극장에 나서고, 그 젊음과 생명감에 대비되는 자신의 고통 속으로 그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가 병을 앓은 지 석 달이 지나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가 법관 자리에서 곧 물러날 것인가 어떤가에만 쏠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 친지들, 의사들, 하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바로 이반 일리치 자신이었다. 그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떠나 그의 존재가 야기하는 불편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마침내 해방시켜주고, 그 자신도 고통에서 해방될 것인가가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p93)
“자신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력함, 끔찍한 고독, 인간의 잔인함, 신의 잔인함 그리고 신의 부재를 한탄하며 흐느껴 울었다. “주여,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나를 이 세상으로 데려왔습니까?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십니까?””(p115)
“상상 속에서 그는 즐거웠던 인생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즐거웠던 인생의 좋았던 순간들 가운데 어떤 것도 이제 와서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즐겁거나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p116)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났건만,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지겨워질 뿐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p117~118)
““그게 우리 탓인가요?” 리사가 어머니한테 말했다. “꼭 우리 탓인 것 같잖아요! 아빠가 가엾긴 하지만,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죠?” (p124)

이반 일리치는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후회와 상념, 원망과 분노에 빠진다. 그리고 체념과 화해, 용서로 승화되다 다시 분노 속으로 내동댕이 쳐지기를 반복한다. 드디어는 죽음에 대해 묻고 스스로 답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도, 가족에 대한 약속도, 사교상의 관계는 물론 업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지만, 자기가 변호하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변호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반듯이 누운 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에 먼저 하인을 보았고, 다음에는 아내를 보았으며, 다음에는 딸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의사를 보았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것들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 즉 그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가짜이며, 삶과 죽음을 덮어버린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은 육체적 고통을 열 배나 가중시켰다. 그는 신음하며 마구 뒹굴었고, 숨이 막혀서 옷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내와 딸과 의사를 증오했다.” (p125~126)

마지막 사흘간 계속된 고통, 그 끝에 그는 깨닫는다. 그의 여윈 손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막내아들을 보며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톨스토이가 58세(1886년)에 발표한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대작들 대비 짧지만 대표작 목록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혁명 전 러시아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 담겼다는 평가가 많다.
해설에서 작가 이문열은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 캐릭터, 스토리, 진행 모두 사실상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두 작품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작가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양대 거봉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신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다. 거기다가 80세의 고령을 누리면서 남긴 문화적 유산과 일화도 많아 그를 짧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톨스토이에 관해 알고 싶으면 역시 시간을 따로 내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p134)

☞ 메멘토 모리의 훌륭한 전통 안에 자리 잡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 카드놀이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의 저자, 인생학교 설립자)

☞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완벽하며 또한 가장 정교하다. - 블라지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저자)


■ 간결한 죽음에의 과정 - 잭 런던 「불 지피기 To Build a Fire」
한 사내가 영하 80도의 맹추위에 유콘강을 따라 길을 나선다. 봄이 오면 상류에서 통나무를 베어 강으로 옮기는 경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거리는 한나절 걸으면 되는 정도, 그는 비스킷 빵을 점심 삼아, 늑대개를 동행 삼아 길을 나섰다.

“몸을 돌려 길을 계속 가다가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었다. 침이 날카롭게 파열음을 내며 얼어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마이너스 50도에서는 침이 눈 위에서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공중에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이너스 50도 이하는 분명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다.” (p197)

그는 소위 ‘체카쿼’라고 불리는 신참일 뿐 바보가 아니었다. 빈틈없고 재빠른 ‘빠릿빠릿한’ 사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고 ‘영하 80도’라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다면 설명이 될까. 이미 추위에 감각 없는 광대뼈와 코를 문지르면서도, 뱉은 침이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대단한 추위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입김이 얼어 수염에 고드름처럼 늘어져도.

“확실히 추운 날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이 이 지방엔 때때로 무시무시한 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도 세상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p205)

영리하게도 사내는 이런 추위에도 제대로 얼지 않은 강의 위험을 잘 피해 점심 무렵까지도 무사히 일정을 소화했다. 쉴 틈 없이 강 주변의 지형과 위험, 특이점을 살피며 꼼꼼히 기억해두면서. 하지만 대개의 사고가 그렇듯 미숙함과 부주의가 불운의 시작이었다.

“불은 잘 탔다. 이제 안전했다. 설퍼 수로 쪽에서 온 노인의 충고를 기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이 노인은 아무도 마이너스 5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클론다이크 지방을 혼자 여행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매우 진지하게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래, 그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기 살아 있다. 혼자이지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저 노인네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여자 같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라면 겁을 내지 말아아 한다. 그리고 그는 멀쩡했다. 정말 사내대장부라면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p209)
“그러나 그가 신발 끈을 자르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잘못 아니면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전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나무가 없는 빈터에 불을 피웠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 잔가지를 끌어다가 불에 직접 던지기가 훨씬 쉬웠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불을 피웠는데, 그 나무는 그 큰 가지 위에 눈을 이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잔가지를 끌어모을 때마다 진동이 생겨 약간씩 나무가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진동이었다. 저 높이 있는 나뭇가지에서 눈이 쏟아져내렸다. 이 눈이 그 아래쪽의 나뭇가지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거기에 있던 눈도 또 쏟아져내렸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나무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결국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사나이와 불을 덮쳐버렸다. 불은 꺼지고 말았다.” (p210)

어떻게든 저녁식사 전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려는 사내는 점심 때 잘 피운 불을 서둘러 버리고 길을 재촉하다 젖은 군화를 깨닫는다. 다시금 얼어가는 손으로 어렵게 불을 지피지만 눈 쌓인 나무 밑인 탓에 결국 반쯤 녹은 눈을 뒤집어쓴다. 불은 꺼지고 이제 몸에는 감각이 사라졌다. 성냥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얼어 감각이 사라진 손으로 간신히 켠 성냥은 기침에 꺼지고, 다시 붙인 군불은 부주의로 또 꺼졌다.

“사나이는 조심스럽지만 둔한 동작으로 불을 간수했다. 불은 생명을 뜻하기 때문에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몸 표면에 피가 없어 그는 오한이 났고, 그래서 동작이 더욱 둔해졌다. 꽤 큰 새파란 이끼 덩어리가 작은 불 바로 위로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이끼를 꺼내려고 했으나, 몸이 떨렸기 때문에 이끼에서 빗나갔고, 그 결과 그나마 작은 불 한가운데를 헤집어놓고 말았다. 타던 풀과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다시 이것들을 집어 모으려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뭇가지들은 다시 모을 가망이 없을 정도로 산산이 흩어졌다. 하나씩 연기를 피식 내고는 나뭇가지의 불이 꺼졌다. 불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215)
“개를 보자 야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를 만났을 때 소를 죽여서는 그 사체 안에 기어들어가서 목숨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개를 죽여서 따뜻한 몸 안에 손을 묻으면 손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새로 불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p216)
“그러나 개의 몸통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있는 것 이외에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개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무력한 두 손으로는 칼집에서 칼을 빼서 손에 쥘 수도 없었고 개의 목을 조를 수도 없었다. 그가 개를 놓아주자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계속 짖어대면서 미친 듯이 튀어 달아났다. 마흔 걸음쯤 물러나서는 멈춘 다음 두 귀를 쫑긋 앞으로 세우고 호기심을 갖고 사나이를 관찰했다.” (p217)

이제 사내는 자신이 불을 다시 켤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개를 죽여 몸을 덥히려는 참혹한 생각까지 했지만 역시 그 몸으로는 어림없는 일. 추위에 노출된 얼굴과 손을 시작으로 감각이 사라지고 몸속의 피가 점점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그를 엄습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희미하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자 그는 힘이 빠졌다. 방향을 틀어 수로 바닥을 넘어 오래된 희미한 길을 따라 뛰었다. 개가 합세하여 그를 따랐다. 평생 몰랐던 공포를 느끼며,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맹목적으로 뛰었다.” (p218)

그는 달리고 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이미 관속에 들어가 앉은 상태였던 그다. 달리기로 몸의 피가 빨리 돌기보다 오한이 덮쳐오는 게 더 빨랐다.

“이번에는 그에게 오한이 좀 더 빨리 닥쳤다. 동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중이었다. 동상은 사방에서 그의 몸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달렸지만, 100피트 정도 달리고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최후의 고통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자제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앉아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식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니라 목이 날아간 채 뛰어다니는 닭처럼,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글쎄, 어쨌든 얼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 사실을 점잖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리라. 이렇듯 새로 찾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처음으로 희미한 졸음이 다가왔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다가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취당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얼어 죽는 것이 사람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더 험하게 죽는 방법도 많지 않은가.” (p220~221)

공포와 환각,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 그렇게 끝이다.

““노인장 말씀이 옳았소.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이오.” 사나이는 노인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낮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p221)

종이책 회원 리뷰 (25건)

구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n | 2023.09.04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리뷰입니다 

이전에 절판되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재출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매해봤습니다 

하드커버에 예쁜표지까지 새로운 판형으로 너무 예쁘게 나와서 택배를 받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2권인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한 9편의 중단편 모음집인데요 

죽음에대한 여러시각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에 오래된 판본이다 보니 그런지 좋게말하면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낡은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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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커버 디자인은 최신, 선정 작품은 오래된 구성...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2***c | 2023.05.19

 

96년 처음 출간된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각각의 소주제에 따라 일곱 권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출간 후 단편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 온 이 시리즈가

출간 후 24년이 지난 20년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작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제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다. 삶과 사랑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은은 시작과 끝을 공유하는 

인생 흐름의 대미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되는 법이다.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죽음이라면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경건하게 바라볼 것인지, 미리 준비하고 다가갈 것인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지...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한다. 그 중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작가의 글깊이가 주는 묵직함이 떨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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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 죽음의 미학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명*********마 | 2020.11.22

[ 사람의 아들 ],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등등 인간 세계를 냉철하게 꿰뚫어보고 예리하게 분석한 글을 많이 쓰신 이문열 작가님이 선별한 단편들이 모인 [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 이 재출간되었다. 대중적일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주제의식도 가지고 있는 이문열 작가의 작품들은, 한때 큰 히트를 쳤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었었다. 이번 세계명작 산책 중 [ 죽음의 미학 ] 은 바로 " 죽음 "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때론 불길하게 때론 어둡고 공포스럽게 여겨지는 죽음, 그러나 빛과 어둠처럼 인간의 삶을 논할 때 이 " 죽음 " 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 죽음의 미학 ] 에서는 어떤 작품들이 독자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우리가 필시 만나게 될 " 죽음 ",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톨스토이의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이 작품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그는 작가라는 제 삼자의 눈으로 평범한 한 인간의 생애를 관찰해가면서 그의 평온했던 삶을 “ 죽음 ” 이라는 것이 어떻게 산산조각을 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 재직하면서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물론 아내와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으나 살아가면서 약간의 불행의 요소들은 참아낼 수 있었다.

“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날 이반 일리치는 옆구리에 원인모를 통증을 느끼고 입에서 알 수 없는 끔찍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생의 정점에서 더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그에게 다가온 고통이라는 낯선 방문객. 그는 하루하루 병이 깊어감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하지만 그가 병으로 조금씩 죽어가자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그를 외면한다.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충성스런 하인 한 사람 밖에는 없다.

“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 이런 거짓말 - 죽음을 앞둔 그에 관해 날조된 거짓말, 죽음이라는 무섭고도 엄숙한 행위를 사교적인 방문이나 커튼이나 만찬 때 먹는 철갑상어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거짓말 - 이 이반 일리치에게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

단편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은 고독하게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질병의 고통 때문에도 힘들어하지만 사람들의 외면과 차가운 위선 (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위선 ) 을 목도하는 것이 더욱 더 괴롭다. 이 뿐만 아니라 이 단편은 인간이 “ 죽음 ”을 대할 때 거치는 과정을 이반 일리치의 모습을 통해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를 힘겹게 거치는 이반 일리치. 죽음까지의 여정은 힘겨웠으나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반 앞에,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구원인가?

“죽음 대신 그 자리에는 빛이 있었다. 죽음도 끝났어. 이젠 죽음도 없는 거야 "



스티븐 크레인의 [ 구명정 ]

스티븐 크레인의 단편 구명정은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소설이다. 구명정을 타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떠 있다. 선장, 기관사, 요리사 그리고 신문사 특파원으로 구성된 그들은 조그만 구명정이 파도에 뒤집히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들이 발견한 육지에 다다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암초에 의해 번번히 해변에 도달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방해를 받게 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이 생생한 노력 와중에 그들의 슬픔과 공포, 좌절 그리고 절망감이 가감없이 느껴져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자연은 그들에게 무심하고 자신들은 바다에 버려진 먼지 같다는 느낌 그리고 신이나 그 누구에게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 만약 내가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내가 만일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내가 만일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바다를 지배하는 미친 일곱 신의 이름에 걸고 묻겠는데, 도대체 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서 모래와 나무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단 말인가? 내가 막 삶의 신성한 열매가 내뿜는 향기를 맡으려는 바로 이 순간에 내 코를 억지로 돌려놓기 위해, 단지 그러기 위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단 말인가? “

내 생각에 크레인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길 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는가? 만약 인간이 어파치 죽어야 한다면 애초에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 존재는 이 우주에서 중요하기나 한건가? 우리가 이렇게 의미없는 존재라면 우리의 인생은 어떤 중요성을 띄고 있는 것일까? 필연적인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희망을 품는다는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결코 닿을 수 없는 해변을 그냥 보는게 나을까? 아니면 해변에 닿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죽는게 나을까? 그리고 생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어떤 사람들은 ( 그들의 선함과 악함에 상관없이 ) 살아남고 다른 사람들은 결국 사라지게 될까?



해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다하다 지치고 또 지쳐 무표정해진 사람들 속에서 신문 특파원은 문득 한 구의 시를 떠올린다. 그는 자신이 이 시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지만 갑작스럽게 시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외인부대의 한 병사가 알제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네.

돌보는 여인의 손길 하나 없었으며, 여인의 눈물 한 방울도 없었다네.

하지만 전우가 그의 옆에 다가와 섰고, 그는 그 전우의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네.

” 나는 내 고향, 내 고향 땅을 다시는 못 볼 거야 .“

처음으로 그는 시 속의 군인을 하나의 사람으로, 외딴 곳의 해변에서 죽어가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한 인간으로, 그리고 그는 시 속의 군인과 동질감을 느끼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인류와 동질감을 느끼고 가엾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그는 자신이 개별적 존재라기 보다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없이 추상적으로 들리는 " 죽음 " 이 생생하게 다가올때 비로소 인간은 겸허해지는 것 같다. 신에게 분노하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다가도 그것이 운명이라면 (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 결국 " 죽음 " 을 받아들이게 되는게 인간인 듯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결국 " 죽음 " 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이런 명작들을 통해서나마 간접 체험을 하면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깝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긴 했지만 정말 훌륭한 작품들로만 모아놓은 단편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못 읽어본 나머지 단편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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