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처럼 닿지 않는 그녀와의 거리 ? 바실리 악쇼노프 ‘달로 가는 도중에’
찰나의 순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그 마법 같은 순간. 보통의 시작은 낯섬, 혹은 결여다. 스스로에 결핍된 육체적, 지적, 미적, 물질적인 무엇에 대한 갑작스런 발견, 혹은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다. 익숙해져서 잊었거나 주변에 없던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빼어난 외모나 타고난 힘, 출중한 재주, 잠깐의 대화로도 느껴지는 깊이 모를 정신세계와 지적인 축적 같은. 다르게는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 재력 차이와 드물게 ‘팜므 파탈’ 같은 성적 매력 앞에서도 쉽게 사람들은 공손해지고, 호기심과 경외감, 드물게는 ‘유사’ 사랑으로 발전한다. 물론 역으로 동정과 연민, ‘동어반복’(알콜중독자의 딸이 다시 알콜중독자와 결혼하는 경우처럼) 같은, 썩 논리적이지 못한 우월감이 만든 격차도 있겠다.
그렇게 스스로의 예상치를 벗어나는 대상을 접한 감정은 짧든 길든 격렬해지기 마련. 호기심, 호의, 존경, 경악, 질투, 불신, ... 어느 것이 먼저이든, 무엇으로 이어지든. 그 사랑의 깊이와 지속시간은 대부분 그 다음 문제다. 그 순간 견고한 방어기제가 사실상 전략적인 ‘거리두기’에 성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익숙한 제 모습을 수면에서 재발견하는 것(나르시시즘)조차 존재를 파멸로 이끄는 설득력 있는 신화적 상징, 많은 경우 피하기 힘든 사랑의 비유로 남아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인간사에 가장 특별한 일 중 하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목록에 꼭 넣고 싶어하는 주제다.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어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 대상이 특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꼭 머리칼이 뱀인 메두사나 하반신이 말인 켄타우로스족처럼 눈에 틔는 특이점이 있어야 맹목적인 열정에 빠지는 게 아니다. (메두사가 여신 아테나의 질투를 살만큼 미인이었다든가, 헤라클레스의 스승이었던 케이론이 켄타우로스족임은 잠시 잊어두자.)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 역시 비슷한 경우다. 주인공 발레리 키르피첸코는 ‘상남자’다. 유배지로 유명한 사할린 벌목현장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인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원과 군대, 수용소를 거쳐 현장 합숙소까지 거친 생활을 이어왔다. 작가의 표현대로 ‘수틀리면 그 자리에서 한 방 먹여 상대방의 눈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만드는 그런 사람’이자 ‘기계를 좋아하고 현재 생활이 만족스러’운 사내다. 그런 그가 여름 휴양지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스튜디어스 타냐에 반해 중간 기착지인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를 오가며 돈과 시간을 모두 써버리는 얘기다. 그 사이 끼어드는 사건이래야 동료 바닌의 여동생 라리사과 사흘 남짓 짧은 흥청거림 정도다. 물론 연애경험이 없지 않은 그에게 그녀는 ‘그처럼 형편없는 가격에 자신을 팔 인물’이 아님을 되뇌이게 만드는 대상에 그친다.
인상적인 것은 발레리의 감정선이다. 작가는 수사적이거나 감상적인 과장 없이, 담담한 대화처럼 전지적 관점으로 그를 들여다보지만 이렇다 할 기복이 없다. 몇 마디 타냐와의 가벼운 대화, 떼지 못한 시선 끝에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자태’로 승격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아기를 갖고 싶다는 충동’까지 갖는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순간의 욕정과는 조금 다르다. “... 사람들이 아기를 갖고 싶어할 때 하는 짓거리를 그녀에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에게는 좀처럼 들지 않았다.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냥 그렇게 타냐는 발레리에게 들어온다. 앞서 며칠 전 라리사와의 며칠 이후 결혼을 강요하는 동료를 거칠게 두들겨주는가 하면, 공항에 배웅 나와 눈물 글썽이는 라리사에게 하염없이 약해지는 감정 변화 같은 것이 타냐를 상대로는 없다.
유배생활 같은 벌목장에서 떠나 1년에 단 한 번, 평소라면 술, 도박 외엔 쓸 곳도 없는 돈을 탕진하러 가는 목적 없는 휴가. 비싼 양복을 맞추고 거들먹거리며 술과 여자에 돈을 탕진할 기대에 찬 발레리가 타냐 앞에서 한 마리 순한 양 같은 사내가 됐다. 여드름 가득한 중학생이 첫사랑 겪듯 설레인다. 매사에 거침없던 그가 그녀에게는 적극적으로 지분대지도 유혹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매양 비행기 표를 끊는다. 우연히 마주쳐도 눈인사 이상 접근해 말을 걸 마음이 없다. 그저 양복을 사고 책을 읽고 공항과 모스크바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그녀가 있을지 모를 같은 노선 비행기를 갈아타며 달뜬다.
그렇다고 그녀가 대단히 특별한 여자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칠흑 같은 머리, 섬세한 손가락, 멋진 미소, 그리고 매혹적인 목소리 정도다. 스스로도 생각하듯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모스크바시내에서 비슷한 수준의 외모, 느낌을 주는 여자는 많았다. “... 고리키 거리에 나가 보니 천지에 온통 타냐가 널려 있었다. 그녀는 전차를 타거나 내리기도 하고, 상점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길 건너편에서 불량 소년 차림의 젊은 아이와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상점의 진열장 창문 저쪽에서 미소를 던지기도 했다. ...”
다만 (거리 가득한 미녀들이) 그녀가 아니고, (그에게는 꼭) 그녀여야 한다는 차이다. “... 다듬고 칠한 손톱, 굽이 높은 구두 위의 늘씬한 다리, 갖은 정성을 들여 손질한 머리는 비할 바 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했었지만, 결국에는 단조롭고 김빠진 것처럼 보이기 마련인 ...”, 그간 스쳐지나간 여자들처럼 ‘한때의 바람’이 아닌 것이다. 모스크바에서도 그는 헌팅하러 가자는 동료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호텔에서 잠을 자고 체호프를 읽는 쪽을 택한다. 그녀를 떠올리면 다가오는 ‘느긋한 평온감과 행복감에 다시금 도취’되면서.
휴가는 그것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를 오가며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감각을 잃을 정도가 되고, 심지어 조종사, 스튜어디스와 낯이 익는 사이. 물론 태어나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느닷없이 울어본 적이 없달 정도의 새로운 경험이다. 게다가 이처럼 멋진 휴가를 보냈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만큼 만족스럽다.
그렇게 다시 벌목현장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감정변화는 없다. 그간 비행기로 오간 거리를 계산하며, 그녀라는 ‘달’에 닿는 거리를 가늠할 뿐이다. 사할린에서 유즈니를 거쳐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를 여러번 오간 거리, 가까이 볼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저 달과의 거리(약 38만km)가 그리 차이 나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중얼거린다. “그렇게 멀진 않은데. ... 아무것도 아니군.”
돌아가는 공항에서 멀찍이 타냐를 응시하며 그는 생각한다. “... 트럭을 몰고 능선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능선에 올라가면 너무도 생각해야 될 일이 많아서 그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산허리까지 내려오게 되면 다시금 그녀 생각이 나리라. 그리고는 저녁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그녀 생각을 하게 되리라.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리라. ...”
덧붙이자면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했던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는 국내에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지난 2009년 별세했다지만 해외 위키피디아를 통하지 않으면 검색도 잘 되지 않고, 책도 모두 절판돼 도서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20~30년 전쯤 소련을 필두로 견고했던 동구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며 잠시 근현대 작가들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작가다. 그러다보니 현재 출판되는 것은 이 중단편선집이 사실상 유일하지 싶다.
1932년 러시아 ‘제3의 수도’ 카잔 출생인 악쇼노프는 28세에 첫 작품인 중편소설 ‘동기생’을 시작으로, 장편 ‘별나라로 가는 차표’(1961), 단편 ‘달로 가는 도중에’(1962)를 잇달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구 소련 체제 하에서 새로운 젊은 세대에 대한 대담한 표현으로 젊은층에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러시아 문단과 정부에 시달리다가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표작이라 할 ‘강철새’(1977) ‘화상’(1980) 등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실험적인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현대 러시아문학의 ‘서유럽파’로 불렸다.
■끝 모를 경외와 사모의 감정 ?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 春琴抄」
“두 묘비는 낮은 석단 위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는데, 슌킨의 묘 오른쪽에 소나무 한그루가 푸른 가지를 마치 지붕처럼 묘비 위로 드리웠고, 그 가지 끝이 닿지 않는 왼쪽으로 두세 자쯤(약 60~9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사스케의 묘가 황송해하며 모시듯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생전에 사스케가 충실하게 스승을 섬기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수행했던 때를 떠올리게 하며 자못 묘비 속에 혼령으로 남아 오늘날도 여전히 그 행복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p84)
이야기는 작가가 주인공인 ‘모즈야 슌킨전’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릴 적 주인집과 거래처 견습공 관계로 시작해, 옛악기 고토 스승과 제자, 그리고 사실상 부부관계로 이어지는 두사람인 만큼, 사스케가 평생 슌킨에게 품었던 경외와 사모의 감정으로 써진 책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식이다.
“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슌킨은 어릴 때부터 매우 영리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그 우아함을 견줄 자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춤사위를 스스로 터득하여 손을 뻗거나 당기는 자태의 우아함과 요염함은 무희조차 당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 스승도 혀를 내두르며 ‘아, 이 아이가 이렇게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으니 온 천하에 명성을 떨치리라 기대하지만, 양갓집 규수로 태어난 것을 행운이라 할지 불행이라 할지……’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또한 일찍부터 글을 익혔는데 그 속도가 대단히 빨라서 두 오빠를 능가했다.” 이 기록들이 슌킨을 마치 신처럼 여겼던 사스케로부터 나왔다고 하니 어느 정도나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타고난 용모가 단아하고 우아했음은 여러 사실에서 확인되었다.” (p85)
슌킨은 부유한 약재상 집안 아가씨, 사스케는 거래처에서 온 가게 수습생이다. 덧붙이자면 슌킨은 아홉 살에 시력을 잃었지만 고토와 샤미센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부유한 집안 형편과 음악적 재능, 미모가 ‘선물’이었다면, 실명은 그녀의 삶을 뒤틀어버린 재앙이었을 테다. 반면 사스케는 형편이 넉넉치 않은 상인 집안에서 거래처에 위탁된 견습생, 당시 가게를 물려받는 장남 외엔 일정 시기 독립해야 하는 에도시대 관습으로는 사실상 ‘머슴살이’ 신세다. 결과적으로는 고토 명인으로 성장하지만, 이는 슌킨과 짝지어주려는 주인집의 도움이 컸다. 다시 말해 시작은 그저 건강한 몸, 멀쩡한 눈, 순종적인 성품 정도가 장점의 전부였을 테다.
“슌킨보다 네 살 많은 사스케는 열세 살 때 처음 이 집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바로 슌킨이 아홉 살 된 해로, 슌킨의 아름다운 눈은 영원히 닫힌 뒤였다. 사스케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슌킨의 눈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고 한다. 만일 슌킨의 실명 전 얼굴을 보았더라면 실명한 그녀의 얼굴이 불완전하다고 느껴졌을 테지만, 다행히 그는 그녀의 용모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얼굴로 보였다.” (p94)
“훗날 사스케는 슌킨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동정이나 연민으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천만의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가엽다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네. 스승님에 비한다면 도리어 눈이 보이는 쪽이 더 비참하지. 스승님께서 저 기상과 용모로 무엇이 아쉬워 남의 동정을 구하시겠는가? 오히려 ‘사스케가 가여워’라고 하시며 나를 불쌍히 여겨주셨어. 나나 너희는 눈코가 있을 뿐, 다른 것은 무엇 하나 스승님께 미치지 못한다. 우리들이야말로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p96)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고토를 배우러 다니는 슌킨을 사스케가 수행하면서다. 시력을 잃어 불편했지만 동정심 같은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던 슌킨을 한결같이 동경해온 사스케의 진심이 느껴졌을 수 있다. 이후 사스케가 몰래 고토를 배우다 들키자 슌킨이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를 자청하며 둘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슌킨전』에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로 그때 슌킨은 사스케의 뜻을 갸륵하게 여겨, ‘너의 열정이 기특하니 앞으로는 내가 가르쳐주마. 틈이 나면 언제고 나를 스승으로 의지하여 연습에 힘쓰도록 하라’고 말했고, 슌킨의 아버지 야스자에몬도 마침내 이를 허락했다. 사스케는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마음으로 수습 업무를 보는 한편,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슌킨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열한 살 소녀와 열다섯 살 소년은 주종 관계에 이어 이제 또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p107)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가끔 마음 내킬 때마다 사스케를 2층 마루로 불러 가르쳤는데, 그것이 마침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게 되었다. 아홉 시, 열 시가 되어도 여전히 사스케를 놓아주지 않고 “사스케!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안 돼, 안 돼! 제대로 켤 때까지 밤을 새우더라도 해”라며 엄격하게 질타하는 목소리가 들려 아래층의 점원들을 놀라게 했다. 때로는 어린 여스승이 “바보야, 왜 못 외우는 거야?”라고 큰 소리로 혼을 내며 머리를 때리면 그 제자가 훌쩍거리며 우는 일도 드물지는 않았다.” (p110)
모두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슌킨의 가르침은 혹독했다. 사실 당시 예인들의 세계에서 사제지간의 혹독한 훈육과 체벌은 흔한 일이었다. 사스케는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였지만, 훗날 슌킨의 다소 잔혹할 만큼 엄격한 교습방식은 스스로에게 큰 화를 부르게 된다.
“게다가 다마지로를 때린 다마조도 일찍이 자신의 스승 긴시金四에게 주로베에 인형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이때 부서진 인형이 그의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 부러져나간 인형 다리를 스승에게 간청해 얻어다가 풀솜으로 싼 후 맨 나무 상자에 넣어두고 때때로 꺼내서는 어머니의 영전에 큰절하듯 예를 올리곤 했다. “이 인형으로 혼쭐이 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지극히 평범한 예인藝人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라고 이따금 울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p112~113)
“어떤 사람은 “남자 스승이 제자를 엄하게 꾸짖는 예는 많지만, 슌킨처럼 여자가 남자 제자를 때리거나 야단치는 경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오. 어찌 보면 슌킨이 어느 정도 가학적 기질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교습을 빙자하여 일종의 변태스러운 성욕적 쾌락을 즐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p113)
슌킨은 사스케와의 남녀 관계를 자존심 상해하며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 아이가 생기며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그런 이야기는 듣기도 싫어요. 작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스케 따위와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요. 저를 딱하게 생각해주시는 것은 송구하지만, 제가 아무리 불편한 몸이라고 해도 아랫것을 남편으로 맞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배 속의 아이 아버지에게도 미안한 일이에요.”” (p122~123)
“어째서 슌킨은 사스케를 그런 식으로 대했을까. 오사카는 오늘날에도 혼례를 치를 때 자산이나 격식을 운운하는 것이 도쿄 이상인 곳이다. 더구나 예로부터 상인들의 식견이 높았던 지역이니 그 봉건적 풍습은 가히 상상 이상이리라. 따라서 오랜 전통이 있는 집안의 여식으로서 긍지를 버리지 않은 슌킨 같은 여인이 대대로 고용살이한 집안 출신인 사스케를 낮추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맹인의 비뚤어진 마음도 있어 다른 사람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투지마저 불타올랐을 것이리라. 그러니 사스케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은 완전히 자신을 모욕하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았을 때 아랫사람과 육체적인 연을 맺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그 반동으로 더욱 쌀쌀맞게 대했을 것이리라.” (p125)
앞서 슌킨의 괴팍함과 사치스러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녀는 모든 것을 사스케에게 의지했다. 그 결벽증과 사치스러움은 대단했다. 특히 휘파람새와 종달새를 키우는 게 특히 그랬다. 당시 1만엔이 넘는 휘파람새였으니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제자가 월사금과 선물에 소홀하면 가차없이 그만두게 했고, 하인들의 먹는 것까지도 간섭할 지경으로 인색했다.
“『슌킨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데루의 이야기에 의하면, 슌킨은 볼일을 보고 나서도 손을 씻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볼일을 볼 때도 하나부터 열까지 사스케가 다 해주었기에 자신의 손을 전혀 쓰지 않았다. 고귀한 부인은 목욕할 때도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데, 슌킨도 사스케에게는 그런 고귀한 부인과 다를 바 없었다.” (p127)
“그래서 화장에 보통 몰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휘파람새를 기르면서 그 배설물을 쌀겨와 섞어 사용했고 또 수세미에서 짜낸 물을 아껴두고 바르며 얼굴과 손발에 윤기가 흐르지 않으면 언짢아했는데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했기 때문이다.” (p128~129)
“슌킨의 집에는 주인 한 사람에 고용인이 대여섯이나 되어 다달이 들어가는 생활비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왜 그렇게 돈과 일손이 필요했느냐 하면, 첫 번째 원인은 작은 새를 기르는 취미에 있었다. 특히 그녀는 휘파람새를 사랑했다.” (p132)
앞서 얘기했듯 슌킨의 가학적이기까지 한 교습방식은 결국 그녀의 나이 37세에 자신을 망치는 화를 불렀다. 어느 밤 잠입한 괴한이 뜨거운 물을 한 주전자를 슌킨의 얼굴에 끼얹고 도망갔고, 때문에 화상으로 짓무른 피부가 가라앉기까지 두 달 이상 걸릴 정도로 큰 상처를 입는다.
“사스케는 하녀들의 방에 들어가 그녀들이 쓰는 경대와 바늘을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이부자리 위에 정좌한 채 거울을 보며 자기 눈의 중앙을 바늘로 찔렀다.” (p162)
“사스케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안방으로 가서는 “스승님! 저도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평생 스승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고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사스케, 그게 정말이냐?” 하고 묻고서 슌킨은 긴 시간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사스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동안 이 침묵의 몇 분간만큼 즐거운 시간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p163)
““잘 결심해주었구나.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누구의 원한을 사서 이런 험한 꼴을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진심을 털어놓자면 지금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지라도 너에게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잘 알아차려주었구나.”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이 기쁨은 두 눈을 잃은 정도로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과 저를 비탄에 빠뜨리고 불행을 맛보게 한 놈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의 얼굴을 망가뜨려 저를 힘들게 하려고 한 짓이라면 그 모습을 제가 안 보면 그만입니다. 저만 눈이 멀면 스승님의 그 사고는 없었던 일과 다름없어서 모처럼의 간계가 수포가 되어 필시 그놈의 예상대로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지금 불행하기는커녕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비겁한 놈의 허를 찌르고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스케!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맹인 사제는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p166)
나란히 장님이 된 사제지만, 여전히 사스케는 심지어 슌킨의 목욕까지 모든 시중을 들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사스케에는 더 큰 기쁨이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고집을 꺾은 슌킨과 달리, 사스케는 굳이 결혼을 거부할 정도로 슌킨에 대한 다른 관념에 빠져들었다.
“맹인의 몸을 맹인이 씻겨줄 때는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일까. 일찍이 슌킨이 손가락 끝으로 오래된 매화나무 가지를 쓰다듬은 것처럼 했을 터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만사가 그런 식이라 대단히 까다로워서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용케도 잘해나가고 있구나’ 싶었지만, 당사자들은 이런 성가심을 즐기는 듯 말 한마디 없는 가운데 깊은 애정을 나누고 있었다. 짐작건대, 시력을 잃어버린 사랑하는 남녀가 촉감의 세계를 즐기는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스케가 헌신적으로 슌킨을 모시고 슌킨 또한 흔쾌히 그 봉사를 요구하니 서로 싫증 낼 줄 몰랐던 것도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p168~169)
“스승의 일을 물려받아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한 집안의 생계를 꾸려나간 사스케는 왜 정식으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슌킨의 자존심이 이때까지도 결혼을 거부한 것일까. 데루가 사스케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슌킨 쪽은 꽤 고집을 꺾었지만 사스케는 그런 그녀 보기를 서글퍼했다고 한다. 슌킨을 가련하고 불쌍한 여인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맹인인 사스케는 현실의 눈을 감아버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념의 경지로 비약했던 게 틀림없다. 그의 시야에는 과거 기억의 세계만 존재했다. 만일 슌킨이 사고로 성격이 변해버렸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슌킨이 아니었다. 사스케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교만한 슌킨만을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미모의 슌킨은 파괴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슌킨보다 사스케 쪽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p170)
사스케는 오히려 맹인이 되고 나서 새로운 경지에 나아갈 수 있었음을 강변한다. 스승 슌킨과의 관계에서도, 샤미센 소리에서도.
““누구든지 눈이 멀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맹인이 되고 나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구나. 오히려 반대로 이 세상이 극락정토極樂淨土라도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스승님과 단둘이 살아가면서 연화대蓮花臺 위에 사는 기분이었다. 눈이 멀고 나니 눈을 뜨고 있었을 때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가 보였기 때문이야. 스승님의 얼굴도 그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보게 된 것은 맹인이 되고 나서였어. 그 밖에 손발의 부드러움, 피부의 윤기, 목소리의 아름다움도 진정으로 잘 알게 되었단다. 눈이 밝았을 때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나는 스승님이 켜는 샤미센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실명한 후에 비로소 음미할 수 있었어. 언제나 스승님은 이 방면의 천재라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었지만 그제야 간신히 그 진가를 알게 되었구나. 미숙한 내 기량과는 너무나도 큰 격차가 있음에 새삼 놀라 ‘이제까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하고 내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되었지. 그래서 나는 신령님이 다시 앞을 보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셔도 거절했을 것이야. 스승님도 나도 맹인이 되어서야 눈 뜬 자가 모르는 행복을 맛보게 되었단다.”” (p172)
병으로 슌킨이 세상을 뜨고, 다시 사스케는 20여년 이후 슌킨 기일에 세상을 뜬다. 사스케는 아들도 처첩도 없이 여생을 보냈고, 슌킨이라는 관념을 지켜냈다. 과연 두 사람의 일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감정과 고집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별개의 얘기다.
“덴코는 이 곡을 듣고 태어난 고향 계곡을 상상하며 넓디넓은 천지의 햇살을 그리워했겠지만, 정작 〈춘앵전〉을 타는 사스케의 넋은 어디로 달려갔을까? 촉각의 세계를 매개로 관념의 슌킨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그는 청각으로 그 부족함을 채웠던 것일까.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는 한 꿈속에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지만 살아 있는 상대를 꿈에서만 보았던 사스케는 언제 죽음으로 이별하였다고 확실하게 그 시기를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p175)
“추측건대, 이십일 년이나 고독하게 살아가는 동안 사스케는 생존할 때의 슌킨과는 완전히 다른 슌킨을 만들어냈고 더욱더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교토의 사찰 덴류지天?時의 가잔오쇼?山和?(교토 출생의 승려로 덴류지 관장-옮긴이) 스님이 사스케가 스스로 눈을 찌른 이야기를 듣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사를 판가름하고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선기?機(선의 수행으로 얻는 힘의 발현-옮긴이)를 칭찬하며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평했다고 한다. 독자께서는 수긍하실 수 있겠는가.” (p176)